〈 650화 〉2부 3장 15
지휘관이 빌런들을 지휘하여 서울수복작전을 방해한다.
그 말인 즉슨, 빌런들을 이용해 히어로들을 공격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 괴수들을 정리하러 온 히어로들은 졸지에 괴인과 빌런들의 습격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수복작전은 항상 그랬죠. 대외적으로는 괴수 퇴치라고 하지만, 지하로 들어간 히어로들 중 일부는 서울 지하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죠.”
그리고 진실을 알게된 이들은 두 가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신서울에 돌아가 침묵하기로 하거나, 서울의 진상을 알리려고 노력하거나.
“선의철의 헬조선에서 그걸 폭로할 용기는 공익제보자가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히어로들이 그러하듯 서울의 상황을 외면하거나 침묵하고, 후자의 경우는 거의 99% 확률로 자살당한다. 사회적으로 존재가 소멸당하고 ‘호국청년단 192호’와 같은 이름으로 존재하게 된다.
“서울의 진실을 파묻는 사냥개 역할을 광검이 해대니 선의철이 아주 기고만장해졌죠. 1%는 간신히 신서울을 탈출해 서울의 빌런들에 합류하는 이들이고요. 헬조선에서 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여러분.”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세계의 헬조선은 사실상 독재국가라고 봐도 무방했다. 국가의 체제마저 주인공에게 역경을 주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버린 게임 제작사의 악랄함에 몇 번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인공과 히로인들이 만드는 헤븐조선, 아니 갓한민국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협회에서는 가만히 있냐?”
지휘관이 히어로 협회를 상대로 대놓고 트롤링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과연 협회는 가만히 있을 것인가?
“네. 가만히 있습니다. 오히려 더 지휘관과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났죠.”
청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나이트메어와 설화공주가 온 힘을 다해 지휘관 백청화와 싸울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
“지휘관의 배신은 배신이 아니다. 서울 지하의 빌런 연합을 이용해 한국 히어로들의 전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에 불과하다. ...그게 설지영에게 전한 말이었죠.”
지휘관이 자신의 역량과 값어치를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모의전이다. 빌런들을 이용해 위기상황에서 히어로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 테스트하는 셈이었다.
“물론 지휘관인 걸 드러낼 생각도 없고, 빌런들을 살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이용할 뿐이고, 지휘관의 능력이 이만큼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뿐이죠.
대상은 은유하, 백희아, 석하랑이라는 AAA 트리오이며, 이들에게 지휘관의 능력을 어필하여 호감을 따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선겨울과 다른 히로인들도 추가하여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전투에서 모든 지역의 전투가 실전이라고 한다면, 구로만큼은 진실로 ‘짜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하죠.”
청화는 납치를 당하기 전부터 유나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작전을 전달했다. 그들이 청화의 무모한 작전에 반발하지 않은 이유는 청화 근처의 S급 보디가드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이다.
“김펜릴은 미국가서 없지만요. 없는 거 말했으면 분명 절대 안 된다고 반발했을 겁니다.”
보디가드의 존재가 없다고 하면 무조건 작전을 반대할까봐 일부러 김펜릴의 부재를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청화는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해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밝힐 수 있었다.
“내가 빌런 연합을 지휘하겠노라.”
빌런 연합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청화는 순수하게 빌런 연합을 이용할 수 있는 장기말 정도로 생각하지, 그들을 이용해 서울을 선의철의 야욕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생각은 일절 없다.
-역캐리로 서울 전선 유지하면 선겨울이랑 큥큥각 나오는 거 아닌가요?
청화는 그저 순수한(?) 의지 하나만으로 빌런에게 손을 거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가을과는 다른 신선한 맛이 일품이라며, 청화는 선겨울과의 유사 섹스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나한테도 간접체험하게 해주면서 나중에 미안하다고 그 플레이 똑같이 해주는 게 참 귀엽지.’
기기를 통한 성감은 기기를 착용한 청화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카메라로 구경만 할 뿐이나, 청화는 항상 하고 난 뒤에 자신이 먹어치운 히로인과 비슷한 체위로 나를 유혹했다.
-선겨울은 제가 먹을 게요. 대신 당신은 저를 선겨울 처럼 먹는 거죠. 푸흐흐.
청화의 은근한 질투심과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청화가 선겨울을 따먹고 싶다고 트롤링을 해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흠흠. 지휘관이 빌런 연합 데리고 싸운다고 우리가 피해볼 일은 없습니다. 피해를 보는 건 오직 한 명.”
선의철.
“주인공도, 히로인도, 협회도, 빌런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겁니다. 딱 한 명 손해보는 사람 빼고.”
선의철.
“전 지역에서 히어로들과 빌런들이 교착상태에 빠질 겁니다. 구로에 있는 주인공과 히로인들은 유일하게 서울의 괴인을 체포한 실적이 생길 것이며, 히로인들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늘어날 것이며, 협회는 지휘관이 파악한 빌런들에 대하여 정보를 얻을 것이며, 서울 지하의 난민들도 과격분자를 쳐낼 절호의 기회죠. 그리고 그 결과 서울수복작전이 실패로 끝나 피해를 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선의철.
선의철을 꼬박 3회 부른 나는 청화의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 것이라 확신했댜. 이것은 원작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도 아니고, 오히려 정해진 미래로 나아가는 걸 지키는 방향이기에.
“서울수복작전은 실패합니다. 왜 그런지는 다들 아시죠?”
3월 2일 밤 12시 34분 56초.
종로에 잠든 S+급 괴수, <시청사의 뱀>이 똬리를 풀고 난동을 부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인 만큼 서순 꼬이면 게임오버 당할 플래그도 많지만, 딱 두 개만 주의하면 게임오버 없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어겼을 경우 무조건 게임오버된다.
"주인공 일행이 구로 이상으로 활약하지 않을 것."
과도한 주인공 일행의 활약은 게임오버로 직결된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말하기에는 너무 많고...간단히 한 마디로 요약해서, 선의철에게 큐브가 들어가는 일만 안 생기면 된다 이겁니다."
선의철이 큐브를 얻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꼬삼은 영꼬삼입니다. 그 운명을 거스르니까 게임오버 당하는 겁니다."
즉, 선의철 자지가 3cm에서 커질 기미가 보이는 순간 운명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게임오버, 세계 멸망이라는 운명이.
***
<오후 3시 29분, 구로 오라클 스튜디오 거점.>
“...라는 게 사장님의 계획이에요.”
유나의 설명에 모두가 침묵했다. 이미 라온, 누리, 가온, 그리고 X로이드 은유하는 백청화를 통해 개요를 들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계획은 유나의 입을 통해 처음 듣게 되었다.
“사장님은 그냥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작전대로만 되면 그야말로 대박인 거죠.”
“...대정화 작전.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 나라의 모든 악을 뿌리뽑는 시금석이 될 지도 모릅니다.”
“와...오빠 미친 거 아님?”
누리는 마도기어를 통해 미리 백청화가 던져준 ‘빌런들의 얼굴’을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그가 납치당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도기어를 통해 살핀 빌런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뉘어있었다.
“딸기 마크가 새겨진 빌런들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에요. 하지만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빌런으로 등록된 이들이죠.”
“선의철에 의해 제거된 이들이 틀림없습니다. 신서울을 탈출해 서울로 도망친 겁니다.”
첫번째, 딸기 마크. 그들은 반드시 체포해야할 적은 아니었다. 예상출몰지역이 ‘구로’라고 적힌 빌런들 중 1할이 딸기 마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 유나 언니, 민트초코 마크는?”
“빌런이기는 한데 악질까지는 아닌 수준이래. 서울이라는 열악한 환경이 빚어낸 괴물들이라고 하시더라.”
두번째, 민트초코 마크. 초범이나 죄질이 약한 이들, 그리고 서울에서 살며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된 이들에 민트초코 마크가 박혔다. 약 6할의 빌런들이 민트초코 마크가 박혔다.
“그럼 나머지 3할은….”
“검녹색 칼날 마크. 사장님은 <윈드시어> 마크라고 하셨어.”
“살인, 강간 등 흉악범죄를 일삼은 놈들입니다. 사살 가능이라고 하실 정도로...악질들인가봅니다.”
마지막, <윈드시어> 마크.
검녹색의 칼바람 문장은 마치 해당 마크가 새겨진 이들을 죽이라고 암시하는 듯할 정도로 칼바람의 모양이 날카로웠다.
“사장님이 내린 임무는 하나. 윈드시어 마크가 박힌 빌런들을 잡아 체포하는 거예요.”
“구로에서 괴수들 사냥하고 빌런들 체포하면 되는 거임? 꿀이네.”
“누리야. 여기는 전장이야. 집중해.”
“언니있고 오빠있고 다 있는데 뭐가 두렵겠음? 흐흐흐.”
팀원들은 자신들이 위치한 장소, 구로에 있는 빌런들에게 새겨진 마크를 확인했다. 어떻게 백청화가 빌런들의 정보를 얻었는 지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오라클이 알려준 게 아닐까.
지휘관이니까.
단 두 문장 만으로 팀원들은 치트나 다름없는 행위에 대해 수긍했다.
"구로에 있는 요주의 인물은...두 명이네요."
"<등대>. 구로 내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변태.... 미친 거 아님?!"
"윈드시어 마크가 박혀있습니다. 꼭 체포해야합니다."
첫 번째 요주의 타깃, <등대>. 천리안의 이능력을 보유한 그에 대하여, 백청화는 여자들이 샤워하는 걸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 변태라고 말했다.
"자신보다 이능력이 강한 존재 근처에는 관음할 수 없으므로, 화장실에 갈 경우 반드시 가온이랑 손 잡고 갈 것."
"...자, 잠깐만. 그럼 내가 한 명 한 명 같이 가줘야 한다는 거야?"
김가온은 왜 백청화가 자신을 구로에 데려온 건지 깨닫고 말았다.
"언니, 내가 언니 사랑하는 거 알지?"
"미쳤나, 이게. ......미리미리 얘기해. 괜히 늦게 다녀오다가 뒷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팀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등대를 반드시 체포하기로 결정한 팀원들은 다른 이들을 하나 둘 살피기 시작했다.
"...이상하네요. 분명 사장님 파일에는 C급 빌런이 있는데...?"
"걔가 우두머리인 거 아님?"
"지금 필터를 윈드시어 마크로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조금 낮춰보도록 합시다. 민트초코 마크로."
라온이 필터를 정정했으나 C급 빌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을 느낀 다섯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기 마크'로 재정렬했다.
"이런...!"
C급 추정 빌런, <마스커레이드>.
추정 이능력 : 변신.
딸기 마크가 달린 빌런의 데이터에는 Sex : Female 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이 인간 설마?"
팀원들은 한참동안이나 침묵에 잠겨야만 했다.
* * *
<오후 4시 4분. 구로 지하 등대지기 소굴.>
"네, 네. ...본인이 잡혀온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VVVIP로 모시세요. 인류에게 단 하나뿐인 희망의 등불이니까.]
"힉?"
[어디가서 방정맞게 입 놀리지 말고. 당신이니까 얘기해주는 거예요. ...작전 개요는 다 받았으니까 당신이 잘 지키는 겁니다. 알겠어요? <마스커레이드>?]
"네, 네!"
무전기를 통한 연락이 끊어졌다. 마스커레이드는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이 소름이 돋았다.
"어...씨발 나 좆된 건가?"
빌런 소굴이나 다름없는 곳에 혼자서 온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마스커레이드는 괜히 주변에 자기 목을 날리려고 하는 존재가 있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으으. 모, 모른 척 하면 되겠지? 그럴 거야. 야, 어떻게 생각해?"
"크윽...."
마스커레이드는 뾰족한 구두굽으로 아래에 깔려있는 남자를 짓밟았다. 남자의 엉덩이 속으로 정확히 들어간 구두굽에 남자는 눈에 핏발이 선 채 괴로워했다.
"대답 안 해? 어쭈, 이 정도로 아파하면 어떻게 해? 너 때문에 내 뒷구녕은 허벌이 되었는데."
"이...썅년. 내가 너를 살려줬는데 배신을 해?!"
"어쭈. 무슨 깡으로 나보고 쌍년이래, 씨발놈이."
퍽, 퍽퍽. 마스커레이드는 구두굽을 뽑아 남자를 뒤집었다. 그리고 딱딱하게 발기한 그의 자지를 사뿐히 즈려밟으며 비웃었다.
"남의 처녀를 강간으로 빼앗은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다, 닥쳐!"
"네 이능력 때문에 살았으니까, 네 이능력 생각해서 살아있는 줄 알아. 쯧, 싸지른 거 핥아서 없애든 알아서 치워."
퍽. 마스커레이드는 남자를 걷어차고 구두를 벗었다. 백화점 매장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던 명품 구두였지만, 마스커레이드는 그걸 쓰레기 태우듯 마력을 이용해 없애버렸다.
"에이, 젠장. 도움도 안 되는 게. 역시 내가 직접 나서는 게 제일 낫지."
마스커레이드는 가면 위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방을 나섰다. 주인으로부터 VVVIP라는 언질을 받은 만큼, 괜히 긴장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 죽으면 안 되지.... 여기는 내 땅인데."
승냥이도 제 영역에서는 호랑이인 법. 마스커레이드는 VVVIP가 있는 방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축하해. 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
"오, 왔어?"
남자는 상반신을 탈의한 채 운동하고 있었다. 탄탄한 가슴을 타고 흐르는 땀이 복근에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다른 구역의 빌런들이 내 말에 따르기로 했어?"
"......너, <지휘관>이지?"
"응?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흐흐, 씨발. 너 좆됐다. 빌런이 지휘관 강간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마스커레이드는 방문을 꼭 걸어잠그고, 채찍을 그의 목에 휘감았다.
"안 그래도 따먹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잘 됐네. 자지 딱 대. 나도 한 번 S급 찍어보자."
촤---악!!
마스커레이드는 백청화의 바지를 찢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