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49화 (649/1,497)

〈 649화 〉2부 3장 14

<3월 1일 오후 12시 03분, 구로 지하 등대지기 소굴.>

"대장, 역 화장실로 들어오는 놈들 잡았어. E급 정찰병인 것 같은데?"

"감옥에다가 묶어놔. 조금 있다가 확인하러 갈 거니까."

구로의 등대지기 소굴의 우두머리, C급 간부 <마스커레이드>는 시작부터 좋은 징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E급 정찰병이라고 한들 최소한의 정보는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대장은 좋겠네."

"왜? 남자야?"

"어, 존나 잘생김."

"씨발, 건드리지 마라. 내가 따먹을 테니까."

마스커레이드는 손에 쥔 채찍을 팡팡 당기며 부하를 위협했다. 등대지기 소굴에 몇 안 되는 여자 부하 A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잉, 언니. 내가 먼저 먹어보면 안 됨?"

"씨발, 이 년이 미쳤나. 보지에 거미줄쳤다고 위아래도 없니?"

"아 뭐래. 자기가 더 오래 쳤으면서. 언니, 나 한 번만 먼저 쓰게 해주라. 깨끗하게 닦아놓을게. 응? 코어 줄게."

"얼마나 잘생겼길래 네가 코어까지 주면서 먹으려고 하니?"

마스커레이드가 채찍을 휘둘러 부하의 목을 휘감았다. 언제든지 부서뜨릴 수 있게 손에 마력까지 부여하며 서늘하게 웃었다.

"연예인 뺨치니?"

"...씨발. 어, 존잘이야. 심지어 금발서양남."

"야, 앞장서. 언니 보지에 오랜만에 기름칠 좀 하자."

마스커레이드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래에 깔려있던 남자는 네 발로 엎드린 자세 그대로 엎어졌다.

"어라? 의자가 망가졌네? 부서줘?"

"아, 아닙니다!"

남자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다시 반듯하게 잡았다. 그의 등허리에는 낡은 쿠션이 앉은뱅이 의자와 함께 허리띠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 의자였다.

"흥. 잘 해. 네 전에 있던 의자가 어떻게 됬는지 알지? 저기 강서에 남색 잘하는 집에다가 엉덩이까고 던져줬단다. 나 돌아왔을 때 자세 무너져있으면 그렇게 될 줄 알아."

"시정하겠습니다!"

"흥."

마스커레이드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을 나섰다. 흙벽을 깎아 만든 지하 통로는 마치 판타지 속 던전과도 같은 구조였다.

"언니, 쟤 진짜 엉덩이까서 넘길 거야?"

"코어 D급으로 10개 정도 받고 팔지 뭐. 자지는 분질러서 보낼 거야."

"흐흥, 쟤가 언니한테 그랬던 애 인가봐?"

"너 뒤지고 싶니?"

마스커레이드는 채찍을 잡아당겨 부하의 목을 졸랐다. 부하는 켁켁거리며 감옥 앞에 도착할 때까지 숨을 쉬지 못했다.

"야, 문 열어."

"대장님. 지금...조금 난감합니다."

감옥 앞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안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스커레이드는 자신이 왔음에도 난감하다며 난색을 표하는 부하의 말이 제법 신선했다.

"뒤지고 나면 난감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근데 너랑 같이 세워둔 신입년 어디갔어?"

"아으, 그게...."

"으히이이익!!"

안에서 요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마스커레이드는 가면 속 눈을 가라앉히며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이게 뭐야?"

"만나서 반갑습니다!"

따먹기 위해 벼르고 있던 금발서양남은 마스커레이드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 같은 모습에 마스커레이드는 흠칫 놀랐다.

"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마스커레이드는 '익숙한 얼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적어도 저 남자는 감옥에 이리도 쉽게 잡혀올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 음. <마스커레이드> 맞죠? 변신술이 특기인 C급 빌런이라고 들었는데."

"......너 뭐하는 새끼야? 아니, 그 전에."

마스커레이드는 남자, 백청화가 잡고 있는 여자 부하의 상태에 어이가 없었다. 사지를 묶어둔 밧줄을 풀어낸 백청화는 여자 부하를 두 손가락으로 제압했다.

푸슛, 푸슈슛.

"아으, 으으으...."

......두 개의 손가락을 보지 속에 집어넣어, 손가락을 이용한 피스팅만으로 간수를 제압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 과정에 이르게 되었는 지, 마스커레이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이 사람이요? 글쎄 덮치려 하길래 반격했어요. 저는 제 맘에 안 드는 사람이랑은 섹스하기 싫어서."

"......마인드가 참 글로벌한데. 어디 나한테 무릎꿇어봐야 정신을 차릴까?"

"오, S에요? 나 마조도 할 줄 아는데. 이거 천생연분이네요!"

"......씨발,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미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능력자가 서울에서 빌런들에 의해 납치된 상황에서 보이는 행동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혹시 따라온 건가?'

마스커레이드는 괜히 섬뜩한 기분에 목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전해들었던 정보가 퍼뜩 스쳤다.

- 백청화의 뒤에는 S급 암살자가 있다.

"너 도대체 뭐하는 새끼야?"

"제 소개를 해도 될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시안.w.히비스커스. 영어이름보다는 한국 이름이 더 정감이 가니까, 백청화라고 불러주세요."

찡긋. 백청화는 윙크를 하며 앞에 잡고있던 여자를 내동댕이쳤다. 여자 부하는 이미 전신을 경련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라클 스튜디오의 한국 지사 지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도 유망한 마법소녀들의 매니저이자 마스코트인 파랑새기도 하죠. 푸흐흐, 그리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1년안에 한국을 넘어 전세계가 제가 사랑하는 마법소녀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될 테니까요."

"헛소리는 하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뭐?"

마스커레이드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분명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당신들을, 서울의 지하에 숨어든 빌런들을 돕겠다고 한 겁니다. 정확히는 이 구로에 있는 이들을 말이죠. 아, 이렇게 말씀드리면 더 이해하기 쉬울까요?"

백청화는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은 뒤, 여자 부하의 위에 쓰레기버리듯 던졌다. 정작 손수건이 떨어진 위치가 음부를 정확히 가리는 위치라 마스커레이드는 더 어이가 없었다.

"한강 이남의 모든 지역이 히어로들에 의해 정리될 겁니다. 당신들은 이제 선택을 하게 되는 거죠. 이대로 잡혀서 선의철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목숨을 걸고 한강을 넘어 강북으로 도망치느냐."

"이 개새끼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우리가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아?"

"예. 너무나도 쉽게 당할 것 같네요. 그거 아십니까? 지금 <설화공주> 석하랑을 필두로, 각 구마다 최소 B급 히어로들이 두 명씩 배치되었습니다. 이곳 구로의 경우에는 A급 히어로가 배치되었죠. 아, 이명은 비공개입니다. 실제 명단이랑은 달라서."

"......."

최소한의 정보가 아니라 당장 자신의 목숨이, 그리고 지하 전체가 위험한 정보였다. 시간상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가장 먼저 첩보를 얻은 건 자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B급 정도면 비벼볼만 하겠지. 그런데 어이쿠, A급이 왔네요? 구로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지 않나요?"

"......알면서 지껄이는 거야? 건방지네."

촤륵! 마스커레이드가 채찍을 휘둘렀다. 백청화의 머리 옆을 스치는 날카로운 궤적에 귓볼에 실핏줄이 터졌다.

"다음은 머리야. 계속 그렇게 건방지게 입 놀려봐."

"흐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건 표정이 다 읽힐 까봐 그러는 거죠? 그냥 위협인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백청화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마스커레이드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지만,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백청화의 기백에 괜히 불안해졌다.

"저를 공격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무능력자가 빌런을 앞에 두고 겁을 먹지 않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리라. 마스커레이드의 바로 앞에 멈춰선 백청화는-

"어...?"

"보자마자 '팟'하고 꽂혔습니다. 아이돌이나 마법소녀에 흥미 없으십니까?"

분홍색 사각형에 금박이 박힌 명함을 건넸다. 오라클 스튜디오라는 명함에 마스커레이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신에게서 헐리우드에도 통할 대배우의 자질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빌런으로 체포 당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몸이에요.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충무로와 헐리우드를 제패해보지 않겠습니까?"

"...충무로 터졌어, 병신아."

마스커레이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진심으로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차마 채찍을 목에 휘감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장난해? 나 빌런이야. 이미 주민등록상에는 죽은 사람으로 되어있을 걸?"

"요즘 세상에 신분세탁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150명 정도는 껌입니다. 돈이면 뭐든지 해결해주는 흥신소 하나 잘 알고 있거든요."

"......."

외통수에 걸린 기분이었다. 이미 백청화는 구로의 지하에 있는 인원수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마스커레이드는 뒤에서 전전긍긍하는 부하들을 눈으로 흘긴 뒤, 명함을 집어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흥. 웃기지도 않아. 당장 차로 1시간 거리 안에 설화공주가 눈 뻔히 뜨고 있는데, 네가 무슨 힘으로 우리를 돕겠다는 거야? 이 헬조선에서."

"순서가 바뀌었어요. 지금 구한다는 게 아니에요. 일단 들어볼래요?"

백청화는 자신의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눈앞에 펼쳐진 서울의 지도에는 강남을 중심으로 수많은 푸른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친...!"

마스커레이드는 점마다 박힌 이명에 숨이 넘어갈 뻔 했다. 각 구역마다 B급 2명이 배치되었다는게 거짓이 아닌 듯, B급 이상의 히어로만 족히 수 십명은 되어 보이는 듯 했다.

"자, 제가 도와드리겠다는 건 뭐냐."

삑, 삐빅.

백청화는 마도기어의 홀로그램을 몇 번 조작했다. 그러자 서울의 조감도가 3D 지도가 되었고, 지상에 있는 파란 점들이 모두 '붉은 점'으로 바뀌었다.

"편의상 '빌런연합'이라고 할게요. 마스커레이드 당신이 저를 조금만 도와주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거죠."

삐비빅. 지하에 수많은 푸른 점들이 나타났다. 점들은 하나같이 지하의 <빌런>이나 <괴인>들을 암시하는 이명들이 박혀있었다.

"이건 시뮬레이션이에요. 제 지휘를 정확히 들었다는 가정하에."

점들이 개미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를 통로로 지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릴라전에 지상의 히어로들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빌런 연합이 이겼다. 히어로들은 막대한 전력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성남으로 후퇴했다. 빌런 연합도 상당한 손실이 있었지만, '구로'는 가장 손실이 적었다.

"어디 한 번 저한테 걸어보시겠어요?"

백청화는 야릇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마스커레이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백청화를 노려봤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거야?"

"하나죠."

백청화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이랑 계속 섹스하고 싶어서요. 서울에 빌런으로 두는 것 보다 내 옆에 두고 자주 섹스하고 싶어서. 그걸로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

"......."

마스커레이드, 천가을은 진심으로 눈앞의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 *

<미스트롤가을> : 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트롤!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천가을!

"은근슬쩍 천가을 엿먹이는군요."

천가을=트롤. '가을'했다.

이것은 모든 지휘관에게 통하는 말이다. 천가을의 트롤링은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천가을의 전성기는?"

- 1장!

- 1챕터!

- 2챕터 이후에 가을이 나오나요?ㅋㅋ

1장에서는 트롤링을 하지 않지만, 지휘관을 얕보았기에 패배하게된다. 사실상 이 때의 천가을은 흉악한 보스이나, 그 뒤는 틈만나면 상황을 꼬게 만드는 주범이다.

"천가을 때문에 피 본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RPG적으로는 빌런 출신답게 동료와 척을 지는 것은 기본이고, 미연시적으로는 하렘에 눈엣가시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가만히 놔둬도 숨쉬듯이 트롤링 하는게 천가을이죠."

- 라온이 루트 탔는데 라온이 트라우마 도지게 만들어서ㅅㅂ

- 저 년이 우리 하랑이한테 국밥먹였어요!

- 비처녀가 왜 히로인이죠?

<미스트롤가을> : 싱크로하면 처녀거든ㅗㅗㅗㅗ

다른 히로인 루트를 타다가 동료가 된 천가을 때문에 게임 오버 되는 경우는 심심찮게 발생하는 일이다.

'아무렴 나만큼 천가을한테 호되게 당했을까 싶냐만.'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지만 쌍으로 옆에서 지랄들을 해대는 바람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지.

"그런데 여러분, 가을이랑 겨울이랑 같이 무릎 꿇려놓고 양옆에서 더블로 가슴으로 봉사받는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데요."

- ㄱㄱㄱㄱㄱ

- 이 새끼도 보통이 아니네ㅋㅋㅋㅋ

- 아내님! 여기 남편이!!

- (정보) 아내는 개씹변태다.

"그런 의미에서 천가을의 트롤링을 억제하는 김에 선겨울이랑 한 번 떡각 잡아보겠습니다."

- ???

- ????

- ??????

"활약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벅지에 쌌잖아요. 그럼 역캐리 하면 대주지 않겠습니까?"

선겨울이 내건 조건. 선의철이 북진의 야욕을 내지 못하도록 서울수복작전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

이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천가을이 트롤링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절히 제어하며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

"지휘관이 빌런들 지휘하는 것만큼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 또 어디있겠어요?"

청화가 맘먹고 트롤링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가 보게 되리라.

"지금부터 여신급 트롤링 보여드립니다."

채팅창이 마하의 속도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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