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38화 (638/1,497)

〈 638화 〉2부 3장 03

잠시 뒤.

일행과 해산하여 혼자가 된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기 위해 몰래 아무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

옥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 절풍의 펜릴은 나를 향해 바람의 칼날-절풍을 겨누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은 금방이라도 내 목을 날려버릴 것처럼 따가웠다.

"드디어 그 날이 되었도다."

"그래. 너와 계약을 맺은 약속의 날이지."

지금의 펜릴은 임무 수행 직전으로 들어간 상태.

인면조를 일격에 죽였던 것처럼, 지금은 그 어떤 장난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와 만나 하고 싶었던 말을 본론부터 꺼냈다.

"미국 가라."

"후후, 무슨 소리지?"

"약속시간 다 됐잖아. 미국 당장 날아가."

"후, 후후, 후후...."

펜릴은 몸을 들썩이며 웃더니.

"빼애애앵!!"

...옥상에 드러누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팔다리로 아둥바둥하는 모습은 몹시 꼴불견이었다. 팬티도 보였다.

"싫어어어! 가기 싫어어어! 미국 가면 영영 못 돌아오는 거잖아!"

"그냥 비행기타고 다녀와도 되는 걸 왜 안 가려고 하는데. 미국 가."

"뭐어? 미국이 아니라 하늘나라겠지! 다들 그렇게 얘기했다고! 미국 가는 게 아니라 불타올라서 재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거라고!!"

"......하아."

그렇게 내가 얘기해줬건만 아직도 P를 두려워하는 게 상당히 꼴사나웠다.

제일 꼴불견인 건 남들 눈에 안 보이려고 옥상에 바람의 결계는 쳐놨다는 것. 나는 임무 최적화 히로인이라고 불리우는 김펜릴이 해야할 일을 두고 밍기적거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다녀오라고."

"싫어! 그래, 시차! 시차아아아!"

"한국시 3월 1일에 한국에 있어야 하니까 지금 미리 다녀오라는 거잖아. 원래 이 시각에 출발하기로 약속한 거 아니냐. 괜찮아. 너 안 죽어."

장담컨대 죽지 않는다. 내가 김펜릴에게 지금까지 주입한 나의 체액과 논리회로만 있으면 그녀는 P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김펜릴이 설령 배반했다는 걸 그녀가 안다고 한들 아무 문제 없다.

"애초에 걔는 네가 임무에 실패하든 말든 크게 상관 안 한다니까?"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냥?"

"나를 믿으라는 거지."

간부 P라고는 하지만 나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김펜릴이 내가 주입시킨 논리로 말을 했을 때의 반응을 알고있다.

창염의 피닉스.

조별과제에 있어서 조원이 노답이라고 생각하면 혼자서 하드캐리를 해버리는 과탑 같은 존재.

7명 조원 중 전부 답이 보이지 않을 경우 혼자서 7인분을 해내는 기염을 토해낼 존재.

"그러니까 절풍의 펜릴이 멸망의 날까지 놀고 먹고 섹스하고 다니든 간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 이거지."

24년을 놀았는데 1년 더 논다고 지구 멸망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주가 도착하면 싹다 죽으니까, 그 전까지 지휘관과 섹스를 해도 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성주가 오면 다 죽을테니까. 패배주의가 아니라, 간부 P는 성주의 힘과 자신의 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6명의 간부가 적으로 돌아선다고해도, 성주랑 자신이 다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배신을 때려도 너는 안중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거지."

"그건 그거대로 슬픈데.... 하지만 상대가 P인데? 예측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변덕쟁이에 자기 기분 조금만 뒤틀려도 계획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제멋대로 하는 년인데? 그 년으로 소설을 쓰면 분명 플롯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거야.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년을 두고 무슨 계획이라는 게 있겠어?"

"......."

심사가 뒤틀렸지만 팩트니까 참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펜릴에게 강짜를 부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를 믿으라고.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를 믿고 그냥 다녀와!"

"그치만...그 년 분명 내가 그 소리를 하면 바로 모가지를 따려고 할 걸?!"

나를 믿고 다녀와라.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상대는 P. 절대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간 열심히 펜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나, 펜릴이 가진 자신감보다 P에 대한 불안감이 더 강했다.

'솔직히 그럴 만도 하지.'

24년간 간부로서 갈굼을 받았을테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마력을 수복하기 위해 숨어든 와중에도 간부 네트워크를 이용해 언제는 이렇게 움직이라고 하며 달달 볶았을 게 틀림없다.

나라면 분명히 그랬다.

내가 간부 창염의 피닉스의 위치에 있었다면, 내 생각만 나도 벌벌 떨게 만들 정도로 쪼았을 것이다.

"...하아. 펜릴아. 우리 좀 솔직해지자."

내가 벌써 이 주제로 펜릴을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이건 펜릴답지 않았다.

"너 솔직히 말해라. 미국 가기 싫은 다른 이유가 있잖아. 피닉스랑 싸우는 게 무서워서 미국 가기 싫다? 천하의 김펜릴이가 그럴 리가 없지."

"......."

P를 상대로 도망칠 자신이 있으니까, 내 쪽으로 붙는 게 더 본인에게 나으니까 내게 붙은 것이다. 애초에 P에게서 도망칠 자신이 없었으면 나랑 섹스도 하지 않았다.

그래, 섹스.

"섹스라면 어제 해줬고, 마력 공급도 닷새 전에 해줬고.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오늘 하루 비었지 않냥?"

김펜릴은 나를 향해 다리를 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그녀는 명백히 암컷이 유혹하는 자세였고, 나는 옥상에서 밍기적거리는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래서 오늘 하루 너한테 힘을 써달라고?"

"여자 부끄럽게 하는 거 아니다냥."

"그래. 그건 공감하지 그런데...."

나는 펜릴의 허리를 붙잡고 일으켜세웠다. 그녀의 하복부를 내 고간에 붙이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이상은 추가요금이 발생합니다, 고객님."

"냥?!"

나는 펜릴의 고양이귀를 잡아 비틀었다.

"너 이미 마력 99까지 올려줬잖아. 지구 최강. SS+. P도 인간형으로는 SS거든?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그래서 지금부터 마력공급하면 큥손실온다."

"뭐...라고...."

펜릴은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은 진심으로 억울해보였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냥!"

"진정하고 들어. 너는 이제부터 마력을 공급받을 수 없는 몸이라는 거지."

포화상태.

자궁을 아무리 정액으로 가득 채운다고 한들 최대 수용 가능한 한계치가 있는 것처럼, 펜릴의 마력 또한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나 더이상 마력을 늘릴 수 없게 되었다.

"마력 레벨 100은 신의 영역이야. 네가 신이야? 신을 죽인 늑대지."

"그, 그런 식으로 추켜세워주면 부끄럽다냥."

펜릴은 멎쩍게 웃으며 꼬리를 베베 꼬았다. 간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그녀답게, <신살랑>이라는 이명으로 불러주니 몸둘 바를 몰라했다.

"신을 죽인 늑대라도 신은 아니니까 마력 공급은 안 돼. 아이고, 안타까워라. 신이었으면 신의 권능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텐데."

"그, 그치만 지휘관은 만능아니야...! 왜 안 되는데! 왜 안 되는 거냐고! 지휘관이잖아! 마력 1밖에 없는 여자도 100일동안 섹스하면 SS+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거잖아!"

"응 99레벨로 끝."

"아아아악!!"

펜릴은 진심으로 억울함을 드러내며 몸을 아둥바둥거렸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고작 그것 때문에 이렇게 나를 부른 거야? 나 지금 다른 곳 가야하는데 너 때문에 여기로 온 거라고."

뭣때문에 미국으로 출발하기로 마음먹기 직전까지 땡깡을 부리나 싶더니, 마력공급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펜릴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를 올려다봤다.

"지휘관. 나 1레벨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냥?"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진작에 다크 레기온 간부들 잡아다가 어디 지하실에 묶어놓은 다음 싹다 1레벨로 만들었겠다."

마력강탈은 하는 빌런은 있어도 지휘관은 마력 공급밖에 할 줄 모른다. 큥큥원툴.

"그럼 괴인화는? 괴수화는? 네가 지난 번에 얘기한대로 괴인화가 96이고 괴수화가 99라면, 괴인 상태로 마력공급 하면 되는 거 아니냥? 아직 3번 남았다냥!"

"미친년."

나는 펜릴의 꼬리를 잡아당겨 엉덩이를 때렸다.

"나보고 지금 갑옷괴인에게 박으라고?"

<절풍의 펜릴>. 괴인화 상태의 모습은 특촬물에서 나올법한 늑대괴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몸은 다르다냥! 섹시 다이너마이트 수인 여자가 되는...."

"너 괴인화하면 몸이 검은 갑옷 되는 걸 다 아는데 거기다가 박고 싸라고? 이게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내가 다 미래에서 보고왔어, 이것아."

논리정연한 나의 반박에 펜릴은 좌절했다. 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고, 가슴에 내 얼굴을 묻고 이마를 비볐다.

"그치만 억울하다냥. 인생에 있어서 이런 쩌는 경험이 네 번 밖에 없다니...."

펜릴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멱살을 붙잡았다. 거짓 눈물은 아닌 듯 했다.

"지, 진짜로 안 되냥...?"

"하아."

나도 펜릴과 마력공급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의 펜릴에게 마력공급을 해봐야 과포화 상태로 빠져나오기만 할 뿐이다.

"잘들어. 민트초코 하프갤런 통에 민트초코를 가득 담을 수 있지?"

"응응."

"하지만 통 하나에 꽉꽉 눌러담아도 그 이상으로는 더 못 담지?"

"그럼 통 하나를 더 들고 오면 되는 거 아니냥?"

"코어 하나 더 들고 오던가."

"......."

즉, 질싸를 하더라도 다 흘러나올 뿐이다. 그건 곧 펜릴이 원하는 마력공급을 통한 극락의 오르가슴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섹스가 될 뿐이다.

"네가 바람의 결계 칠 때마다 와서 섹스해줬잖아. 심지어 마력공급도 강원도에서의 첫 날 포함해서 네 번이나 야외 섹스를 해줬다고. 호텔 옥상, 놀이동산, 여자고등학교 옥상, 그리고 우리 사무실 안...!"

"아, 스릴 쩔었다냥. 들키느라 아주 조마조마 했다냥."

펜릴의 결계는 외부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다. 투명한 바람의 결계가 형성되기에, 안에서 아무리 섹스를 한다고 한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후훗. 탁 트인 공간에서 바람 쐬면서 하는 게 얼마나 좋냥?"

"당신은 공연음란죄라는 것을 아십니까?"

"CCTV에 찍히지도 않고, 마력 스캔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데 증거가 있냥? 아, 내 보지에 흐르는 범인의 정액이 증거다냥!"

"...어쩌자고 내가 이런 섹냥이랑 편을 먹은 거지."

이 발정난 냥견이 P와 만나기 무섭다고 찡찡거리는 바람에, 나는 요 2월 중에 무려 네 번이나 펜릴에게 마력을 공급해야했다.

"지휘관,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냥. 그래서 진짜 일말의 가능성도 없냥?"

"뭐, 아예 안 될 건 없는데...."

"시켜만 주시면 어떤 임무든 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

펜릴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진지하게 임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일으켜세워 지시를 내렸다.

"그럼 명령을 내리겠다. 절풍의 펜릴. 미국가서 P랑 얘기하고 와."

펜릴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펜릴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마도기어를 건드렸다.

"내가 사용하는 무기, 내가 영입한 동료,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며,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얘기해. 셀카도 찍었잖아."

나는 펜릴이 찍은 사진을 꺼냈다.

<지휘관 분신 자/지 만들기 1초전 >=<★>

셀카모드로 사진을 찍은 펜릴은 팬티만 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내 고간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겨누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성질을 부리게 된다면 이걸 주는 거지."

나는 펜릴에게 특별히 준비한 물건을 건넸다. 펜릴조차 내용물을 모르는, P를 위한 뇌물이다.

"지, 진짜 이거면 된다 이거지?"

"무조건 통한다. 안 통할 리가 없지."

"...진짜지?"

"그게 안 통하면 우리 애들 싹다 죽이고 나를 딜도 괴인으로 만들어서 평생 노예로 부려먹어도 좋아."

나는 펜릴을 보내기 위해 초강수를 놓았다. 그제서야 펜릴은 내 눈치를 보며 내게서 떨어졌다.

"아, 알았어. 근데...."

"또 뭐."

"...마력공급은 안 되더라도, 그냥 해주는 건 안 되는 거냥?"

펜릴은 스스로의 다리 한 쪽을 들어올리며 치마를 걷어올렸다. 치마를 들추고 아래로 살짝 내린 팬티 사이로 투명한 실선이 반짝였다.

"혹시나해서 일부러 한 시간 일찍 불렀는데.... 나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한 시간 남아있지 않냥?"

"하."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왔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 그럼?"

"다리 그대로 들고있어."

나는 바지를 내렸다.

"아주 미국으로 보내버릴테니까."

* * *

한 시간 뒤.

펜릴을 여러 의미에서 미국으로 보내버린 나는 백발 여인의 호출을 받았다.

장소는...신서울 호텔 스위트룸.

- 1:1로 만나고 싶습니다. 지휘관.

나는 설화공주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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