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6화 〉2부 3장 01
강원 인면조 사태 이후.
한국 히어로 협회는 SS급 이능력자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나, 사람들의 온갖 질문을 받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SS급 히어로를 숨겨왔던 겁니까?
-강원도에 몰래 육성하고 있었던 겁니까?
-A+급 괴수가 그냥 죽었다는 걸 믿으라는 겁니까?
한국에서 SS급 히어로의 존재를 숨긴 것이 아니냐 하는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었고, 이는 의도치않게 선의철 정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 정부에서 일부러 히어로의 존재르 숨긴 것이 아니냐?
그리고 선의철은 이에 대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한 가지 방책을 내놓게 된다.
서울수복작전.
선의철에게 있어서 일종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작전.
괴수에게 빼앗긴 수도를 되찾기 위함이라는 명목하에, 정기적으로 서울의 괴수들을 소탕하는 작전.
벌써 몇 번이고 실패하여 사실상 이름도 무색해졌지만 그 취지 만큼은 모두가 공감하는 작전.
사람들은 삼일절을 맞아 매번 있었던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으나, 선의철은 외쳤다.
이번 만큼은 다르다!
무엇이 다르겠느냐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진짜로 달랐다.
S급 히어로 설화공주의 참전.
히어로 협회장 나이트메어의 공인.
그리고 ‘희망자 전원 참전’에 대한 승인.
정말로 서울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함께, 신서울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서울을 되찾을 수 있다.
그 열망이 신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 * *
<2월 27일 오후 2시, 신서울 오라클 스튜디오.>
"...이상이 서울에 있을만한 위협입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풀었다.
내가 이미 알고있던 정보를 베이스로 하여, 게임 속 히어로 위키의 정보를 수합하고, 거기에 김가온과 함께 은밀히 현장 시찰을 나서 파악한 정보를 종합하여 정보를 알렸다.
“대외적으로는 괴수들의 땅이에요. 하지만 지하는 사정이 다르죠.”
“와...빌런 천국이라 이거임?”
“평범한 빌런인지, 아니면 괴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테이블 위에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마구잡이로 펼쳐진 거미줄만큼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는 우리에게 있어 일종의 지하 미궁, 던전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지상의 괴수들은 밀려나온 놈들이에요. 진짜배기는 지하에 숨어있죠.”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만약 사람들이 살아있다면 왜 지하에 숨어있는 겁니까?”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거든요."
내 말에 모두가 표정이 굳었다. 보통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고 하면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기 쉽지만, 뒷세계의 사정에서는 존재가 소멸당한 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서울에 끝까지 남아있다가 괴수들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버려진 사람들. 선의철에 의해 신서울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 히어로들의 눈을 피해 떠난 사람들. 그들 모두가 숨어있는 곳이 바로 서울인 겁니다."
"...조금 이해할 수 없군요."
선겨울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록 우리 스튜디오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부친은 선의철 본인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음해는 차치하고...그걸 제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대체 뭐죠?"
"그게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
"겨울 양도 알잖아요? 부친의 실체를."
선겨울은 침묵했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따지는 게 아니라 왜 굳이 내가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그녀가 그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뭐...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두 얼굴의 독재자든 구국의 결단을 위해 단장의 심정을 가진 다크 히어로든, 중요한 건 그의 작전에 우리가 편승하여 이득을 보는 것이죠."
아직 선의철의 진짜 실체에 대해서 모두에게는 언급하지 않았다. 괜히 벌써부터 학살자니 뭐니 이야기를 했다가 어그로가 끌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겨울 양, 부담스러우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좋습니다."
"아니에요. 그냥...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퇴사할만큼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겨울은 쓰게 웃으며 캬라멜 마키아토를 들이켰다.
"아버지는 아버지, 저는 저. 제 인생이니까...괜찮아요."
"알겠습니다. 혹시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아버지가 실은 정적을 무참히 학살하는 존재라거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서슴치 않는 존재라거나, 선꼬삼이라거나 하는 진실을 알면 꽤 충격이 클 것이다.
'연기 중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실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르고. 어느쪽이든 선겨울은 우리 스튜디오의 직원이다.
"아무튼 서울은 그냥 괴수가 날뛰는 곳이 아니고, 협회에서는 서울수복작전으로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려고 하고, 우리는 거기에 하나의 팀으로 참전할 예정입니다."
강원도에서의 전투 이후 우리는 제법 강해졌다. 지난 1,2월 두 달 동안 스타팅 멤버 셋은 집중적으로 마력이 성장했고, 개개인별로 최소 15씩 사용가능한 마력이 늘어났다.
이유나, 현재 광속성 29.
박라온, 현재 풍속성 27.
김누리, 현재 수속성 45.
누리가 혼자서 독보적으로 튀기는 하지만, 29의 마력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유나와 경험의 힘을 살려 27 이상의 전력을 내는 라온과는 조금 달랐다.
김누리, 현재 순수 전력 23.
1월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그녀가 마력을 각성했다고 한들 전투 경험이 그리 많을 리가 없다.
"이렇게만 보면 서울에 가는 것조차 민폐라고 보일 정도로 난감하네요."
따라서 셋의 전투력은 대략적으로 평균 C-급. 준수한 실력이지만 앞으로 있을 위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약한 편에 속하며, 발목을 붙잡는 게 아닐까 싶은 초라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제 지시대로 움직이면 괜찮습니다."
내 오더가 들어가면 C급.
유성제 배틀 슈트를 입고있으면 C+급.
"거기에 위험하다 싶으면 서포트 해 줄 전력도 있고."
세 명의 메인 히로인에 더불어, 나는 서울수복작전에 참가 가능한 스쿼드 전력의 7명 중 두 명의 전력을 새로이 영입했다.
A급 이능력자 <세이렌> 김가온.
C급 X로이드 <트레일러 운전수> 유은하.
"김가온이 전투 방면에서 서포트 해줄 거고, 유은하 양이 여러 방면에서 지원해줄 겁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원래 은유하는 이 시기에 X로이드로 들어오는 멤버다. 이번에는 나와 거래를 했기에 노골적으로 우리를 지원하지만, 원래는 하유준이나 유하은처럼 전혀 다른 존재로서 동료로 들어온다.
따라서 김가온과 유은하까지 포함하면 평균 전력은 대략 B-~B급 수준.
50레벨 수준의 괴수는 쉽게 상대할 수 있고, 60레벨 정도는 강원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법 그럴 듯 하게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2명의 자리.
"이 분들에 관해서는 비밀입니다."
이 2명에 대해서는 나는 모두에게는 함구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존재감이 큰 존재들이라 나는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분들은 지원을 해주시나요?"
"직접적인 지원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명은 양지에서, 한 명은 음지에서 서포트 해줄 겁니다."
냐아아.
우리 사무실의 마스코트가 된 검은 고양이, 김펜릴은 그릇에 놓인 민트초코우유를 홀짝이며 길게 하품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손가락으로 쓸어준 뒤, 정식으로 제출하기로 한 명단을 확인했다.
"이게 이번 작전에 참가할 우리 스쿼드입니다."
팀장, 백청화.
1. 이유나
2. 박라온
3. 김누리
4. 김가온
5. 유은하
6. 선겨울
그리고 7.
"석하랑."
<설화공주>이자 S급 히어로. 오늘 저녁에 신서울로 올라오기로 한 그녀가 바로 우리 팀의 마지막 팀원이자 양지에서 우리를 지원해 줄 존재다.
* * *
잠시 뒤, 신서울 공항.
많은 인파가 신서울 공항에 몰려든 가운데, 제복을 차려입은 군인들은 오와 열을 맞춰 비행기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국민 여러분! 설화공주가 탄 비행기가 신서울 공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신서울까지 하늘길로 250km가 채 되지 않을 거리였지만, 공식적인 방문이라는 이유로 비행기가 떠올랐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괴조 때문에 비행기는 쉽게 떠오르기 어려웠지만, S급 히어로가 탄 비행기는 흠집하나 나지 않고 공항에 도착했다.
찬바람이 날리는 겨울임에도 공항은 모여든 인파의 열기로 뜨거웠다. 설화공주를 보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광기어린 열망에 사로잡혀있었다.
S급 히어로가 참가하는 서울수복작전.
"석하랑! 석하랑! 석하랑!"
공항 밖에 모인 이들 마저도 설화공주의 이름 석 자를 연호하는 가운데, 그들이 그리도 바라마지 않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정장에 더불어, 그녀는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순백의 코트를 위에 걸친 채 비행기에서 내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은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얬다.
"......."
설화공주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를 하던 진행자가 순간 말을 잊을 정도였다. 한 달여만에 모습을 드러낸 석하랑은 이전보다 더욱 기품과 아우라가 서려있었다.
"어, 음...."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분."
설화공주는 살포시 미소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번 서울수복작전에 정식으로 참가하게 되어...영광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신서울 전체가 함성의 도가니에 빠졌다.
* * *
<잠시 뒤, 신서울 히어로 협회 본부.>
"귀찮은 행사는 전부 빼주세요. 귀찮으니까."
"설화공주 님,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습니까."
"뭐요? 하늘같은 대-슨-배가 하라면 해야지 말이 많아요."
"......하아, 이 선배 진짜."
<나이트메어> 설지영은 소파에 건어물처럼 누워버린 석하랑에 골치가 아팠다. TV 영상 속 얼음여왕이 내방한 듯한 기품은 블루베리라떼가 담겨있던 컵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정부 공인 행사에도 빠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치만 귀찮은 걸. 노친네들 끈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 더러워서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죠."
석하랑은 소파에서 시위를 벌였다.
"가봤자 다들 로비나 해댈 게 뻔하죠. 내가 아는 누구랑 같이 팀을 구성해달라. 누구와 함께 해달라.... 어차피 나는 이미 '소속'되어 있는 곳이 있는 걸?"
"그쵸. ...대외적으로는 일인 군단 형식으로 알려져있지만."
2025년 서울수복작전에는 이능력자라면 누구든 참여가 가능했다.
무기나 장비는 모두 본인 지참에 상해나 사망 보험금은 일절 없었지만, 석하랑이 참전한다는 것에 제법 많은 이들이 참가의사를 밝혔다.
협회에서는 몰려드는 이들을 쳐내기 위해 처음부터 7인 이상의 팀을 구성하라고 공지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 팀이 되어 명단을 올렸고, 석하랑은 과연 누구와 팀을 이룰까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축하드려요. <지휘관>님의 팀에 소속된 걸."
"어차피 다들 모를텐데 뭘. 한국에 지휘관이 온 것도. 그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지도."
"그치만 덕분에 SS급이 되셨잖아요?"
"......."
석하랑은 멎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베베 꼬았다.
"아, 뭐. SS급 만들어준 건 고마운데...굳이 풍유환이니 뭐니 하면서 사람 부끄럽게 할 이유가 있었나?"
"결과적으로는 커졌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요?"
"그게 더 짜증나는 기라. ...크흠. 짜증나는 거죠. "
석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빈정거렸다.
"어차피 소속만 지휘관 팀이지 뭐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애초에 본인이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니더구만."
"네. 아직까지 설화공주를 영입할만큼 팀이 성장하지 못했다면서...."
"칫. 그게 다 누구 때문에 눈치보는 거라고요. 틀딱 꼰대 때문에."
석하랑의 노골적인 적의에 설지영은 쓰게 웃었다.
"그 양반은 지금 뭐해요? 이번에도 불참?"
"...그, 그게."
설지영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 * *
은유하와 김가온, 선겨울이 잠시 업무차 외출한 사이.
나는 유나-라온-누리 셋을 데리고 협회 본부에 잠깐 들렸다. 스쿼드 등록을 위해 온 우리는 본부 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설지영이 직접 우리 스쿼드의 명단을 받아가기를 기다렸다.
"광검은 이번 서울수복작전에 나오지 않을 거야."
한국에 있는 또다른 S급 히어로.
광검 허윤환. 그는 절대로 이번 작전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지병을 앓고 있거든."
"지병이요?"
"응. 공식석상에 안 나온지 벌써 1년이 넘었지? 지병 때문에 그래."
"하지만 종종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만."
"일부러 괜찮은 모습만 보이는 거야."
2025년의 광검.
그는 심장에 박혀있는 '그것'의 존재로 인해, 심각한 지병을 앓고 있다. 나중에는 폭주하기 직전에 스스로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지병.
괴인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모를 수 없는 얼굴을 한 금발의 소녀가 카페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