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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33화 (633/1,497)

〈 633화 〉2부 2장 33

히어로들과 비상소집 된 예비군들이 아무리 시민들을 대피시킨다고 한들, 그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오오! 저는 지금 역사의 현장에 나와있습니다! A급 괴수 쩐다아!"

그리고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옥상에 반듯하게 누워, 마도 카메라로 A급 괴수 인면조와 두 히어로의 전투를 촬영하는 청년이 있다.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7번 국도 인근에서 불과 2km도 떨어지지 않은, 전투로 인한 파편이 날아와 맞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 이능력 하나 없는 청년이 실시간으로 전투를 중계하고 있었다.

- 미친놈아 튀라고

- 죽어서도 방송하려고?

- 저런 놈들 때문에 씨발 히어로들 죽어나가지

여론은 몹시 좋지 않다. 하지만 청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청자 수에 댓글을 무시했다.

12만, 12만 2천, 12만 5천. 실시간으로 바뀌는 시청자 수는 백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다들 위험하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청년이 실시간 중계를 하는 영상을 보며 전투를 관음하는 것이다.

'평소에 할 때는 관심도 없더니!'

5백명도 보지 않던 <강원도 괴수 촬영 방송>이 떡상했다. 떡상을 넘어, 상한가를 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두 A급 히어로들의 분투를 실시간으로 담고 있는 영상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 A+급 괴수가 아닙니까? 왜 한국은 키잡을 안 하는 거죠?

- A급 둘 바쳐서 S급으로 진화시키자!

- 방장 저 검머외 새끼들 쳐내!

"촬영하는 것 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데 무슨...!"

매니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위장막 속에 몸을 숨겨 조용히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캬아악!!

인면조가 날개를 펼치자 주변에 냉기가 퍼져나갔다. 주변에 깔린 소나무들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위력에, 마치 설화공주가 이능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와!"

그리고 히어로들은 멋지게 공격을 피해냈다. 반월곰은 주변의 C급 괴수의 사체를 바디벙커삼아 몸을 엄폐했고, 백표는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냉기의 영향력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 강릉 A급 오지네ㅋㅋ

- 뭐야 님들 왤케 잘 싸워요ㄷㄷ

- S급 각성 가냐?!

"아니, 진짜 오늘 둘이 미쳤는데?"

A+급이라는 적을 상대로 각성이라도 한 듯, 두 히어로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분명 전력상 둘의 열세는 확실했으나, 둘은 완벽하게 인면조를 상대로 접전-아니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어갔다.

"원래 저 정도로 싸우는 사람들 아니거든요? 맨날 둘이서 합 안맞아서 격일로 근무 서고 그러던 사람들인데...."

- 영혼의 파트너인데?

- 결혼해라!

- (팩트) 백표 오늘 새벽에 남친이랑 속초에서...ㅋㅋ, ㅎㅎ, ㅈㅅ!

새벽에 강원도 일대를 뒤흔들었던 음몽은 진정으로 두 A급이 자식을 낳아 S급 아이를 탄생시키라는 태몽이라도 되는 양, A급 둘의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반월곰이 근거리에서 인면조의 시선을 끌고, 백표가 원거리에서 공격한다. 인면조가 백표를 공격하면 반월곰이 인면조의 위에 뛰어들었다. 인면조는 완벽하게 두 히어로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었다.

"근데 저러면...."

청년은 뒷말을 삼켰다. A+급 괴수를 상대로 선전하는 건 선전하는 거고, 이래서야 결착이 나지 않는다. 두 히어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청년이기에, 저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이 어느정도 인지 잘 알고 있다.

'이대로 가면 마력고갈이다.'

중앙의 히어로들이 도착할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청년의 걱정이 마치 현실로 일어나듯, 인면조가 날개를 크게 펼쳤다.

"어, 어어?!"

소나무 위를 뛰어다니던 백표가 발을 헛디뎠다. 인면조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는 듯 했지만, 그녀는 실수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오히려 인면조의 공격에 몸을 들이미는 꼴이 되었다.

"좆됐-"

쿠--웅!

반월곰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뛰어올랐다. 전력으로 뛰어오른 그는 백표의 허리를 잡고 멀리 내던졌고, 허공에서 인면조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냈다.

카가각!

인면조의 날개에 반월곰의 전신이 긁혔다. 배틀슈트조차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날개에 반월곰은 피를 흩뿌리며 땅에 떨어졌다.

캬아아아아---!!

귀찮은 날파리를 하나 떨어뜨린 것에 포효하듯, 인면조는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그에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돌려 도망칠 뻔 했다.

중앙에서, 신서울에서 달려오는 A급 히어로들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있다. 반월곰은 중상을 입었고, 백표는 자신을 구하다 뼈가 다 보일 정도로 팔을 다친 반월곰에 패닉에 빠졌다.

싸울 수 있는 히어로 둘이 순간 전투불능에 빠졌다. S급 히어로들이라도 뛰쳐나오지 않는 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살랑-

바람이 불었다.

* * *

"냐아...그것도 못 견디고."

펜릴은 허탈감에 몸을 일으켰다. 여자의 움직임이 어색하다 싶었더니, 누적된 피로가 터져 사고가 발생했다. 밤새 분명 뭔가 하다가 달려왔는지는 뻔했다.

"음...이대로 끝내기는 아쉽지만."

시간이 되었다. 펜릴은 스스로 정해놓은 기한이 되었다 싶은 순간, 옥상 난간을 디디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구름 위까지. 펜릴은 하늘에 떠오른 구름 사이에 몸을 숨겨, 아래를 향해 지휘관으로부터 건네받은 권총을 겨눴다.

위잉.

펜릴의 마력이 권총에 스며들었다. A급 괴수들의 소재를 갈아넣어 만들어진 마탄에 펜릴의 마력이 깃들어 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키이익!!

인면조는 펜릴의 존재를 눈치챈 건지 날개를 펄럭이며 급히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전장에 설치해놓은 펜릴의 함정에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락, 사락.

"글레이프니르."

보이지 않는 바람의 사슬이 인면조를 묶었다. 하늘로 치솟아오르려던 인면조는 바로 땅에 처박혀 날개가 꺾였다.

"...인간형으로 SS급 되니까 이런 기술도 쓸 수 있게 되다니. 신기하네."

펜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무 중에 잡담은 금물이지만, 확실히 지휘관의 이능이 신기하기는 했다. 괴인으로 변한 것도 아닌데, 괴인급의 힘을 인간의 모습으로 낼 수 있게 하다니.

이대로 몇 번 더 안에 사정을 받으면 P는 커녕, 그 이상의 존재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나중에."

속전속결. 구름 위의 펜릴은 남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 산맥을 넘어온 <나이트메어>가 부리나케 인면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괴인으로 만들면 제법 강한 괴인이 되겠지만...."

탕.

펜릴은 가볍게 눈을 찡그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새라서 마음에 안든다냥."

강원도 전체를 뒤흔드는 천둥 소리와 함께, 인면조의 몸통에 벼락이 내리쳤다.

* * *

"화려하게 저질렀네요."

나는 유하로부터 벗어나 인면조의 사망을 보며 경탄했다. 그냥 마탄을 당기면 끝나는 일에, 펜릴은 자신의 마력과 기술까지 사용했다.

"역시 미션 걸린 김펜릴."

임무 최적화 히로인으로, 암살이라는 임무에 있어서 펜릴을 따라갈 자가 없다. 남들 보는 백주대낮에 적을 죽였는데 무슨 암살이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누가 죽였는 지' 아무도 모른다면 그것 또한 암살이다.

"다크 레기온도 고생 좀 하겠고."

강릉에서 죽은 A+급 괴수에 대해 과연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어도 펜릴이 괴수를 죽였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마력 패턴을 읽는다고 해도 검출되는 풍속성 마력의 성질이 간부 펜릴과 다를테니까.

"절풍의 펜릴은 인간형 95. 김펜릴은 96. 완벽한 위장이네요."

수치가 1차이라고 한들 그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간부들은 오히려 주의하게 될 터.

"한국에 나타난 신원불상 S급 이상 히어로의 존재...푸흐흐."

김펜릴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A+ 괴수가 히어로를 죽이기 직전에 어떤 '특이한 능력'에 의해 죽었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일부러 방관해둔, 전장 근처에서 촬영 중이던 이의 중계방에 들어가 사람들의 반응을살폈다.

- ????

- 머임, 대체 머임?

- S급...?

"다크 히어로가 된 걸 환영하는 것이에요, 김펜릴."

본인의 의도는 아무 상관없다. 애초에 세계가 김펜릴을 다크 히어로로 판단하게 될 테니. 나는 구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역시 임최히."

(암살) 임무 최적화 히로인. 암살 이후에 자리를 이탈하는 것 또한 완벽하다. 무색무취로 적을 죽이고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사라지는 건 펜릴을 따라갈 자가 없다.

"보상을...어디보자."

나는 마도기어로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괜찮아요. 여기 상황 풀리면 오늘 저녁에라도 내려가려고요. 그...민트초코 마카롱 케이크 한 상자 미리 주문할 수 있을까요? 네, 지난번에 드렸던 재료 좀 넣어서."

펜릴이 암살자인 이유.

그것은 민트초코 케이크 하나로 부릴 수 있다는, 압도적인 가성비 덕분이었다.

***

A+급 인면조, 사살.

누가 죽였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누구도 준S급 괴수를 죽였는 지 나타나지 않았다.

- 내가 인면조를 죽였다!

숱한 이들이 자신이 인면조를 죽였노라 나섰으나, 신빈성은 없었다. 어지간한 S급도 준S급에 해당하는 인면조를 그리도 쉽게-일격에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슬.

천둥소리.

깔끔하게 도려내진 심장.

자신이 인면조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그 누구도 '일격기'를 따라할 수 없었다. 애초에 공격이 날아온 방향은 하늘이었고, 거대한 마력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전조조차 없었다.

누가 죽였는 지 모르지만 아무튼 죽었다.

백표와 반월곰 두 히어로의 분투에 힘입어, 일단 인면조는 강릉 지부에서 죽인 괴수가 되었다.

"A급들이 싸우는 거 보니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두 A급이 싸우는 영상을 셋에게 보였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돌아온 유나, 라온, 누리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A급의 전투 영상을 복기했다.

"사장님, 이거 사장님 지시인가요?"

"응, 맞아."

한국 협회장 설지영을 통해 경유하여 설치한 지휘 콘솔에 따라, 나는 두 A급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나는 A급 둘의 전력을 이용하여 인면조를 공략했다.

"따라할 수 있겠어?"

"무리입니다."

전직 A급이었던 라온이 딱 잘라 말했다.

"순간순간 방출하는 마력의 양, 전투경험, 상황판단. 그 모든 것들이 저희로서는 부족합니다. 설령 그 자리에서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한들...."

"몸이 안 따라가는 거임."

누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열등감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셋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거야. 아무리 인면조가 상대라고 한들, 왜 우리는 전면에서 싸우지 못하냐고."

"직접 겪어보니까 알겠어요. 이건...무리에요."

추후에 S급을 넘어 SS급까지 올라갈 재능의 보유자라고 해도 현재 스펙이 낮으면 무리다. 그걸 직접 눈으로 보고 마력으로 느껴봤기에, 셋은 자신들의 한계를 경험한 것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 그냥 여기서 포기할 거야?"

"아니요."

"아닙니다."

"왜 포기함?"

굳어있던 셋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 앞으로 내가 더 키워줄테니까 걱정하지마. 아직 시간 많잖아? 상황 해제되고 신서울 돌아가면 하루 쉬자. 그리고 강해지고 강해져서...."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셋에게 극비 자료를 넘겼다. 협회 안에서도 지극히 일부만 알고있는 기밀로, 외부에 유출되면 아주 큰 난리가 일어날만한 자료였다.

"3월 1일. 서울수복작전에 참가하는 거야."

* * *

<그 시각, 오대산 정상.>

"...혹시나 해서 왔는데 다행이네요. 저희가 나설 일이 없어서."

"예. 아가씨, 그런데 방금 그 공격은 뭐였을까요?"

"......글쎄요. 아버지의 정책 때문에 은거기인으로 지내는 분도 많으니까...지나가던 SS급이 죽였다. 정도로 할까요?"

"...참으로 태평하십니다."

"후후.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 않아요? 인면조 코어 그대로 두고 가셨는데. 분명 착한 사람일 거예요. ...소연 언니. 혹시 민트초코 먹었어요?"

"아닙니다. 아가씨가 드셨던 거 아닌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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