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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32화 (632/1,497)

〈 632화 〉2부 2장 32

키에엑.

C급 괴수는 마탄에 의해 벌집이 되어 죽었다. 박평식을 비롯한 수비대는 자신들이 한 행위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 어떻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지시대로 움직여주셔서."

마법소녀들은 꾸벅 인사하며 한 자리에 모였다. 주변에는 D,C급 괴수들이 즐비했지만, 그들은 괴수들의 코어에 딱히 관심이 없어보였다.

"분대장님. 지금 '그 분'의 마지막 지시가 도착했는데...."

"마, 말씀하십시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네요. 지금 바로."

마법소녀들은 강릉시 방향을 가리켰다. 마탄을 전부 쏴버려 빈 탄창을 실탄이 든 탄창으로 바꾸던 수비대원들은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저기 코어들이!"

그들의 눈앞에는 자신들이 사냥한 괴수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하나같이 코어가 밖으로 빠져나와있었고, 울타리를 내려가 앞으로 조금만 달려나가면 코어를 챙길 수 있을만한 거리였다.

"안 돼요. 지금 당장 튀어야 하는 거임."

검은 마법소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미 사내들은 눈앞의 달콤한 유혹에는 견딜 수 없었다. 홀로그램에는 붉은 경고등이 당장 뒤로 돌아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울타리 아래로 뛰어내린 이들은 귀찮은 마도기어까지 벗어던지며 코어를 주워들었다.

"흐, 흐하아! 이거 하나에 씨발 중고차 한 대라고!"

"3개만! 3개만 챙겨갑시다!!"

"C급 어딨어!"

승리에 도취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눈앞에 그득한 코어들에 욕심이 났기 때문일까. 눈앞에 뿌려진 코어 더미 속으로 뛰어든 수비대원들을 향해 박평식은 선뜻 퇴각을 명령하지 못했다.

"......꿀꺽."

눈앞에 코어만 족히 100개가 넘게 떨어져있다. 그 중 질 좋은 놈 5~6개만 챙겨도 족히 1억은 당길 수 있다. 히어로인 자신이라면, 1분만에 그 정도 수를 챙겨 도망칠 수 있다.

"지금 빨리 도망가야한다니까요!!"

"자네들에게는 고맙지만, 자네들 먼저가!"

"그래! 우리는 이거 챙기고 갈테니까!"

마법소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비대원들은 예비군복 안주머니에 괴수의 피비린내가 묻은 코어를 쑤셔넣었다. 마법소녀들의 외침도, 홀로그램의 퇴각 지시에도 그들의 눈에는 코어만 보였다.

"코어, 코어!"

그들의 눈에는 코어에서 풍기는 불길한 마력에 눈이 멀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가는 참혹했다.

푹!

"어...?"

심장이 갈라져 코어가 드러난 말벌 괴수의 속에 손을 집어넣었던 남자의 군복이 꿰뚫렸다. 복부부터 등뒤로 말뚝만한 침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키릭, 키리릭....

코어가 아직 달라붙어 있던 말벌 괴수는 남자의 배에 독침을 찔러넣었다. 죽은 척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죽기 직전에 마지막 힘을 짜낸 건지는 몰라도 말벌 괴수의 일격은 분명히 남자를 찔렀다.

"우븝, 크허...!"

남자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디지털 군복위에 붉은 피가 후두둑 쏟아졌고, 그의 마도기어는 점점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한 명이 죽자 수비대원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허둥지둥 괴수들의 시체밭을 빠져나와 울타리로 향했다.

"어, 이거 씨발 왜 이렇게 높아?!"

뛰어 내릴 때는 미쳐 몰랐으나, 괴수들을 막기 위해 설치된 울타리는 당연히 높았다. 이능력자도 아닌 이들이 코어에 눈이 멀어, 스스로의 다리가 다쳤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어, 어...?"

"내 다리가...갑자기 왜?"

그리고 그 순간.

애애애앵---!!

괴수들 사이에 던져놓았던 마도기어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원문 경고와는 다른, 위험 괴수의 접근을 알리는 긴급 신호.

[A급 괴수 접근 중!!]

모두의 마도기어에 화상이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을 한 학 형태의 괴수가 산을 두 발로 달리고 있다. 숲을 헤쳐가는 모습이 마치 타조가 달리는 듯 했다.

문제는 그 괴물이 달려오는 위치가 정확히 수비대를 향하고 있다는 점.

"으, 아아악!"

죽음의 공포에 빠진 수비대원들은 패닉에 접어들어 울타리를 손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위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이들은 깜짝 놀라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미친 놈들아! 울타리 무너져!"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 머저리 놈들이!!"

자신이 욕심을 부려 코어를 챙기러 사지에 들어가놓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다. 가만히 두고 가자니 울타리가 무너져 A급 뿐만 아니라 C급 괴수들이 도로로 넘어올 것이며, 구하자니 곧 도착할 A급 괴수에 의해 몰살당하게 생겼다.

"씨발...이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소수의 미친 놈들 때문에 왜 목숨이 위협받아야 하는 것인가. 박평식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던 순간.

[불합리한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히어로 아니겠습니까.]

울타리 너머로, 세 명의 마법소녀가 뛰어내렸다.

* * *

- ????

- 와 저걸 구하러 간다고?

- 청화 당신이 죽였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아우성이다. 코어에 눈이 멀어 위기에 처한 수비대원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채팅창이 불타기 시작했다.

'사실 유나 때문에 어그로가 끌린 거지만, 자업자득이기는 하죠.'

A급 괴수는 정확히 유나를 노리고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유나가 없었으면 괴수도 다른 곳으로 갔을테지만, 유나가-우리 팀과 나의 지시가 있었기에 그들은 코어를 챙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근데 여러분, 이거 히어로 게임입니다?'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지구의 평화와 세계의 안녕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 주인공의 역할이다.

'이런 트롤러들조차 지켜야 하는 게임이잖아요?'

- 진짜 죽여버리고 싶은 놈들인데

- 근데 놔두면 괴인됨ㅋㅋㅋ

- 그래도 구해주면 나중에 보상으로 돌아오잖아...나중에..ㅋ

그리고 히로인들은 그런 불합리함에 정면으로 맞서싸워 목숨을 걸 줄 아는, 영웅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히로인이죠.'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자는 주인공의 명령에 아무 망설임없이 뛰어들 수 있는 사람.

저들을 버리고 퇴각하라는 주인공의 명령에 구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영웅'.

재능과 인성은 비례하는 게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영웅적인 면모와 자기희생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바로 히로인인 것이다.

"사람들 구하려고 하는 건 좋은데, 그러다 고객님 팀원들 몰살당할수도 있어요?"

"그렇죠. A급 슈트라고 한들 A+급 괴수 상대로는 까딱 잘못하면 죽으니까."

유하가 시청자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하지만 어그로가 유나에게 끌린다고 해서, 마법소녀들이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는 동안 A급 괴수가 유나에게 도달할 일은 결코 없다.

"근데 그건 인면조가 사람들 구출이 끝나기 전에 도착할 때의 이야기잖아요?"

게임에는 당연히 스토리라는 것이 있고, 레벨 디자인에 따른 최소한의 보정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시작부터 치트를 치고 시작하는 것 마냥 레벨을 쭉쭉 올리고 재능있는 이들을 영입한다고 한들, 아직 우리 팀의 '평균' 전력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아무리 드래곤이 미쳐 날뛰는 세상이라도, 1챕터에서 만나는 드래곤은 경비병에게도 썰리는 법.'

심지어 이곳에 데려온 셋의 평균 전력은 장비의 힘을 합쳐봐야 C+. 그런데 레벨 수치로 따지면 그보다 두 배는 높은 A+급 괴수가 날뛴다? DLC라고 해도, 게임의 기본적인 틀을 이겨낼 수는 없다.

'만약에 그러면 개쓰레기 DLC인 거죠.'

- 없데이트 쓰레기 맞는데?

- P쟝 죽었으니 쓰레기 맞음

- 게임이 108배 풍성해졌지만 P쟝이 없어졌으니 쓰레기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닌데.'

"유하 양. 만약에 이게 게임이라고 한다면, 지금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저는 게임에 그닥 흥미가 없어서."

"후후, 그럼 정답을 알려드리도록하죠."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위성 지도를 펼쳤다. 우리쪽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빨간색 덩어리를 향해, 두 개의 녹색 삼각형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주인공들이 감당 불가능한 적을 감당해낼 수 있는, 선배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이벤트전이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도록 고객님이 뒤에서 지시를 내린 거 아녜요?"

"푸흐흐."

A+급 괴수가 날뛰는데, A급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 *

"으랴아!"

누리는 마지막 군복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울타리 너머로 집어던졌다. 울타리 위에 남아있던 남자들은 누리가 구한 남자를 붙잡고 나무 판자로 엮은 들것에 올렸다.

"미안합니다, 먼저 갑니다!"

"고마워요!"

누리는 다리를 다친 남자를 들고 도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리가 구한 이를 마지막으로 울타리 너머에 남은 사람은 없었다.

"다 구했습니다."

"그럼 저희도 도망치도록 할까요?"

크르르.

세 마법소녀가 모이기 무섭게 새로운 괴수들이 셋의 주변을 에워쌌다. 죽은 괴수들의 코어 냄새를 맡아 달려온 괴수들은 마법소녀들의 눈치를 보며 괴수들의 코어를 향해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언니, 저것들 다 죽여야 하는 거 아님?"

"괴수끼리 코어를 포식하여 더욱 강해지는...큭. 인원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그것도 그렇지만,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해요."

유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확인한 인면조의 위치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주변에 코어를 서리하러 온 괴수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이쪽을 향해 정확히 달려오고 있는 A급 괴수가 문제였다.

"누리야. 가자."

"응. ...어?"

막 울타리 위로 뛰어오르려던 누리는 말벌 괴수에 의해 꿰뚫린 남자의 시체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유일하게 사망한 남자는 배가 뚫리기는 했지만, 몸이 꿈틀거리는 게 꼭 살아있는 것 처럼 보였다.

"언니, 저기-!"

[퇴각.]

홀로그램을 통해 단호한 지시가 떨어졌다. 누리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리며 울타리 위로 뛰었다.

"........"

"잘했습니다."

라온은 누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유나는 벌에게 쏘인 남자가 뒤틀거리는 것을 보며 스태프를 겨눴다.

"편안하게."

스태프 끝에서 튀어오른 광탄이 남자의 머리를 날렸다. 단 일격에 즉사였다.

"......."

유나는 착잡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좀비화로 인해 좀비가 된 사람이 있다면 쏴 죽여야 하는게 인지상정이라면, 괴인이 될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어떻게 해야할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배운 교범대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역시 속이 쓰라렸다.

"사장님. 정말 저희...."

[너희는 내 지시에 따랐을 뿐이야.]

다소 딱딱했던 목소리가 누그러지고 인자함이 담겨있었다.

[괴인화. 목숨이 붙어있는 것처럼 움찔거리지만, 사실은 히어로를 꾀려는 함정이지. 잘 참았어, 누리야.]

지휘할 때의 딱딱하고 고압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평소와 같은 목소리에 유나는 안심했다.

[셋 다 고생했어. 17점 만점에 17점이야. 지금부터는....]

캬아아악!!

그래서, A급 괴수가 지척까지 왔음에도 걱정되지 않았다. 셋이 고개를 돌리니, 울타리 맞은편 숲속에서 인면조가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현직 A급 히어로들이 싸우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

"우오오오-----!!"

누군가가 울타리를 디디고 높이 뛰어들었다. 북쪽 하늘에서 하얀 빛이 날아와 인면조의 날개를 저격했다.

[강릉 지키는 건 강릉 로컬 히어로들에게 맡기자고.]

<백표>, <반월곰>. 세 마법소녀는 두 A급 히어로들의 전투를 바로 눈앞에서 견학하게 되었다.

* * *

"히야, 역시 싸움은 좆밥싸움이 제일 재밌다냥."

강릉의 가장 높은 건물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펜릴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통을 안아들고 한 스푼 입에 넣었다. 인면조와 A급 히어로 둘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부터 약 10km 떨어진 지점이었지만, 펜릴에게는 딱히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지휘관도 참 독하다냥. 애들 저런 식으로 자존감 떨어뜨리고."

세 명의 마법소녀는 복잡한 얼굴로 두 히어로의 싸움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면조와 전투를 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숨은 그들은 히어로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마치 자신도 저런 식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것처럼.

"과연 저 격차를 보고 성장할 지...아니면 그대로 좌절할 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펜릴의 꼬리가 치솟았다.

아무리 지휘관이라고 한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인간으로서 '마음'이 꺾이면 모든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펜릴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며, 숱한 A~S급 히어로들을 상대하며 그 진리를 깨달았다.

과연 지휘관은 저들의 심적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냐하하. 참 재미있는 인간이야."

펜릴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휘관의 총을 흔들었다. 바람의 마력 속에 집어넣은 총은 마치 정밀 투시를 하는 것 마냥 내부의 구조가 속속들이 데이터로 바뀌어 펜릴의 마도기어 속에 저장되고 있었다.

"자기 유일한 자위 수단인 무기조차 나한테 빌려줄 정도로...이 몸이 매력적인가?"

펜릴은 지휘관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과의 섹스를 돌이켜봤지만, 후배위로 그렇게 격하게 한 건 펜릴이 유일하다. 마치 S급 이상의 존재에게는 S급 테크닉에 걸맞는 대우를 하겠다는 것처럼.

"...아직 시간 남아있지?"

지휘관의 용어, '막타'는 설지영을 비롯한 중앙 본부의 히어로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이루어져야한다. 펜릴은 귀를 쫑긋 세워 바람의 흐름을 읽었다.

<나이트메어>가 대관령을 넘어오기까지 앞으로 대략 32분. 펜릴은 지휘관의 총을 유심히 바라보며, 겉면에 자신의 마력을 둘렀다.

- 그거 알아요? 지휘관의 총...실제 사이즈랑 똑같다는 거. 푸흐흐.

".......이, 이건 거짓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냥."

결코 시간이 남아서, 심심해서 하려는 건 아니다. 펜릴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찌걱.

옥상 위.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바람의 결계 속에는 민트초코향이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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