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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30화 (630/1,497)

〈 630화 〉2부 2장 30

<다음 날, 유성 호텔 조식 코너.>

"모두 일어났어?"

"......."

조식 코너에서 맞이한 셋은 눈아래에 다크서클이 짙게 물들어있었다. 걸즈토크로 밤을 지새우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밤잠을 설치기라도 한 걸까.

"혹시 침대가 이상했어? 그럴 리가 없는데. 강원도라도 스위트룸이라 푹신했을텐데."

"오빠는 이상한 악몽 안 꿨음?"

"악몽?"

"어. 남녀가 이거하는 거."

누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찹찹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오픈된 공간에서 하기에는 다소 상스러운 제스쳐였지만, 유나와 라온을 비롯해 식당에 모여든 이들 대부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무슨 꿈인데?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

"...아마 사장님이 사장님이라서 그런 걸 겁니다. 저희 모두, 이능력자들 모두가 그런 꿈을 꿨습니다."

라온이 마도기어로 내게 여러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냈다. 새벽부터 집중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글은 대부분 누리가 말한 '음몽'을 다루고 있었다.

<꿈으로 포르노보기는 처음이네>

- 돈주고 사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머리 위로 안 보여서 그렇지, 남녀 둘다 존잘일 듯

ㄴ개처럼 박히던데 얼굴은 고양이상일 듯ㅋㅋ

ㄴ남자 거근ㄷㄷㄷ

<아니 씨발 꿈 내용이 떡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 강원도에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거에 주목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게 말이 됨?

ㄴ 딸치고 현자타임 중에 쓴 글이랍니다.

ㄴ 으악 들킴ㅋㅋㅋ

<이건 무슨무슨 계시임>

- 조만간 강원도에서 태어날 아기가 SS급으로 태어날 예정임. 이능력자들만 이런 꿈 꾼 게 말이 안 되거든.

ㄴ아닌데? 나 무능력자인데 꿈꿨는데?

ㄴ구라거나 각성했는데 모르거나ㅋㅋㅋ

<아가야, 네가 태어나던 날.>

- 감자국 모든 히어로들이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보았단다.

"...폭발적이네. 음."

"사장님은 진짜로 못 보셨나요?"

"어, 음...혹시 막 이렇게 하던 거였어?"

나는 양손으로 남녀의 자세를 만들어 후배위로 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아...난 또. 내가 뭐 요즘 기가 허하나 싶었지."

"킥킥. 후배위에 굶주려 있던 거 아님? 내가 해 줌?"

"딱히 굶주려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넷 중에 한 명이랑은 무조건 했을텐데."

"어제 밤에 저희끼리 얘기 다 해봤어요. 사장님, 저희들 상대로 체위 로테이션 돌리고 있던 거."

"......."

들켰다. 나는 차를 홀짝이는 것으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로테이션이라고 하기보다는 나도 나만의 레시피가 있다는 거야. 그중에 겹치는 게 일부 존재할 뿐이지. 없는 것도 있고."

"왜 나랑 라온 언니 번갈아보면서 얘기하는 거임?"

"누리야. 양심에 손을 얹고...아, 양심이 없구나."

"오빠 나중에 내가 가슴 크면 젖으로 뺨맞을 줄 아셈."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나는 누리를 향해 컵을 들어올렸다. 호텔 조식은 아쉽게도 뷔페가 아니라 지역 특선에 가까웠다. 어차피 신서울에 비해 뷔페의 가짓 수가 적은 이상,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요리한 음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은유하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식사였다.

"그나저나 모두 똑같은 음몽을 꿨다라.... 이건 가능성이 두 가지 뿐이야."

나는 내 눈앞에 애피타이저로 나온 감자수프에 담긴 감자를 반으로 갈랐다.

"하나는 환속성 이능력자에 의한 장난. 근데 강원도만 그랬다면 아마 최소 A급은 되어야 하니까 논외.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꾼 꿈이 마력의 파장으로 퍼져나갔다는 것.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누군가 각성하면서 꿈을 꾼 거지. 그게 강원도에 한정되어 퍼지면서 마력이 들끓었던 거고, 이능력자들이 꿈속에서 간접체험 하는 것 마냥 보게된 거야."

아무 소리다. 나는 감자를 입에 굴리며 숨을 삼켰다.

"혹시 사장님 때문 아니에요?"

"유나야, 설마 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겠어?"

"오빠."

유나는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 내 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오빠 좆을 모를 것 같아요?"

"...맞아."

......<절풍의 펜릴>.

마력공급으로 인간형에서 SS급으로 각성하는 바람에, 모든 이능력자들이 영향을 받았을 뿐이다.

* * *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들은 신서울로 귀환하기 위해 트럭에 올랐다.

신서울로 돌아가는 동안 셋은 나름 애정이 든 마법소녀 배틀슈트를 착용한 채 트레일러에서 대기하기로 했고, 나는 운전석에 앉은 유하X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고객님 짓이 아닌가요?"

"호텔에서 못 들었구나. 다른 셋한테는 조식 먹으면서 실토했는데. 그거 나 맞아. 남자가 나야."

유나가 꿈속의 남자가 나라는 걸 알아버린 덕분에, 나는 셋에게 펜릴의 존재를 실토하게 되었다. 다행히 셋은 아무 의심없이 자기들 나름의 답을 내렸다.

- 하긴 지휘관이 혼자서 지옥불반도에 올리가 없는 거임.

- 보디가드 분이 계셨습니까? 그래서 강원도에 오는 걸 부담가지지 말라고 하셨던 겁니까?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그런 강자를 옆에 두고 계시다니.

- 그럼 보디가드 분이 각성하신 거네요? 와아. 축하드려요. 진심으로. 어쩐지 어제 마력공급 안하시더라니, 그 분이랑 하셨네요?

...다행히 셋은 펜릴의 존재를 이해했다. 지휘관이 가지는 특수한 사회적 지위에 나는 잠시 감사했다. 지휘관에게 S급 이능력자 보디가드가 붙어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당신 곁에 보디가드가 있는 셈이군요."

그리고 유하 또한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제 매장에서 괴인을 죽였던 거도 그 사람이죠?"

"맞아. 역시 똑똑한 걸."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유하는 금방 펜릴의 존재를 깨달았다. 이미 이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만, A급 괴인을 일격에 죽여버리는 이능력자가 내 옆에 있다는 생각에 확신이 든 것이다.

"누구인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국적은 어딘지 말씀해주시면 각각 정보료 지급할게요."

"어이쿠. 그건 안 되겠는 걸. 그거 알려면 네 본체 애널에 박는 이상으로 더 깊은 관계가 되어야 해."

"...제 애널보다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냐아아.

나는 내 품에 앉아 잠을 자는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었다. 갸르릉거리며 하품을 하는 검은 고양이는 내 허벅지 위에서 기지개를 켜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유하는 트럭을 몰며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그 고양이가 보디가드라는 건 아니죠?"

"맞는데? 가라, 김펜릴! 냥냥펀치!"

냐앙. 검은 고양이, 김펜릴은 귀찮다는 듯 내 허벅지 위에서 벌러덩 누워버렸다. 나는 그녀의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길고양이치고는 되게 귀엽지 않아?"

"하. 제가 인정하는 고양이는 사향 고양이 뿐이에요. 김펜릴은 무슨. 노르웨이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름이네요."

절풍의 펜릴.

SS급 괴수이자 괴인이자 다크 레기온의 간부. 노르웨이 일대의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십만을 학살한 신살랑(神殺狼).

"그런가? 펜릴이라는 이름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으로 히틀러를 붙이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거랑 다른...."

하악. 김펜릴이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그녀를 손으로 누르며 창 너머를 확인했다.

"산길이 조금 험할 것 같은데."

"네? ......이런."

유하의 눈이 반짝이며 핸들을 급히 돌렸다. 위성영상을 통해 우리가 달릴 도로의 상태를 확인한 게 틀림없다. 나는 트레일러와 연결된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아아, 마법소녀들. 사건이야."

"사건이요?"

"어. 아무래도 음몽을 꾼 건 인간만 그런게 아닌가봐."

애애애앵----

마도기어에 괴수 출현을 알리는 경보가 울려퍼졌다.

* * *

<그 시각, 히어로 협회 강릉지부.>

"<반월곰> 님! 큰일났습니다!"

"알아, 안다고. 흐아아, 귀찮아 죽겠네."

반월곰이라는 이명을 가진 남자는 남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을 긁적이며 지부의 상황실에 앉았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온 그의 단정치 못한 모습에 지부의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누구도 지적할 수 없었다.

"오늘은 어디 누가 어디서 난리를 부리고 있는 거야?"

"A급 괴수 반응! 평창입니다!"

"평창?"

반월곰의 표정이 굳었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내려온 그에게는 강원도 지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평창이 강릉과 인접해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한 때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가, 평양 사태 이후 모든 게 엎어졌던 곳. 괴수 반응이 유달리 적어서 안심하고 있던 곳에 A급 괴수가 나타나고 말았다.

"위치는?"

"좌표는-"

"나 빡대가리니까 간단하게!"

"서쪽으로 30km 지점에 있습니다!"

쾅! 반월곰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A급 괴수에게 30km 거리라는 건 1시간 안에 이 도시 저 도시 들리며 갈팡질팡하면서도 도착할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아니 미친, 원래 A급 없었잖아!"

"그, 그러니까요!"

협회에서 알기에, 원래 평창에는 A급 괴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떡하니 나타나고 만 것이다.

"미친! 북괴야?! 왜 레이더 감시망 피해서 갑자기 나타나는 건데?!"

북에서 내려온 괴수. 이전과는 대상이 다르지만 크게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레이더에 찍히는 괴수 반응또한 시뻘겠다.

"백표는?"

"속초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젠장, 그 멍청이는 왜 속초에 올라간 거야?!"

"그, 남자친구 분이랑 데이트...."

쾅! 반월곰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책상이 반월곰의 머리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반월곰이 머리를 들어올렸다.

"...시민들 일단 쉘터로 옮겨. 지금 우리 좆됐다."

강원도는 미묘한 생태계 밸런스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A급 괴수가 뛰쳐나온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던 괴수와 인간들의 영역 사이에 A급 괴수라는 새로운 존재가 나타난 이상, 밸런스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평창 인근의 B급 괴수들이 A급 괴수로부터 도망치고, 그로 인해 괴수들이 대거 난동을 부리게 되어있다. 강원도는 예전부터 그랬다.

"씨발, 어제 꿈부터 지랄맞더니. 남녀가 떡쳐서 SS급이 나올 태몽이라더니 괴수가 나왔잖아!!"

[본부! 본부!!]

반월곰의 마도기어에 검은 머리칼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인의 목덜미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진한 키스마크가 남아있었다.

"야! 너! 아오, 진짜!"

[나 아니야!!]

"떡 쳤어 안 쳤어?!"

[그거랑 나랑 관계 없어! 난 아냐! 그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백표의 격한 부정에 반월곰은 정신을 차렸다. 마침 상황실에 A급 괴수의 위성 영상 정보가 들어왔다.

"그쪽으로 데이터 갈 거다! 일단 받아! 적의 등급은 A급! 예상 수치는-"

순간. 반월곰은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88?"

A+.

혹은 준 S급라고 불리우는 등급.

그리고 79, 83이라는 백표와 반월곰의 전투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수치.

삐빅. 대상의 '코드네임'이 정해졌습니다. 곧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너무나도 듣고싶지 않은 적의 코드네임과 함께,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는 괴수의 모습이 상황실 스크린에 또렷히 드러났다.

"<인면조>...?"

머리에 사람 얼굴이 달린 듯한, 학을 연상케 하는 괴물이 날개를 펼쳤다.

"하, 하하."

튈까.

반월곰이 죽음의 공포를 느낀 순간, 희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중앙! 강원도 들립니까!!]

"협...회장...?"

결코 연락을 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여인이 강원도 지부에 연락을 넣었다.

* * *

"음...."

나는 유하X가 핸들을 꺾어 강릉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마도기어에는 이미 적에 관한 데이터가 전해졌다.

"이거...."

DLC 괴수 같은데.

강원도에 내가 모르는 괴수가 나타났다. 나는 자신의 탓인 줄 알고 벌벌 떠는 펜릴의 털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A급 괴수가 튀어나온 이유가 뭘까.

"아. 이유 알겠다."

냄새를 맡은 것이다. 펜릴이라는 최상위 포식자가 옆에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날뛰게 만들만큼 맛있는 먹이를.

'여신.'

유나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유나의 마력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아, 원래는 B급만 잡고 가려고 했는데."

"네?"

"이러다 A급 잡게 생겼네. 음...."

나는 내가 이용 가능한 전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강릉을 향해-우리 트레일러를 향해 날아오는 괴수의 데이터를 살피고 유하에게 질문했다. 방금 전까지는 편하게 대했다면, 지금은 지휘관 답게 움직여야했다.

"아아, 유하 양. 그냥 싸우면 승률 77%인데, 나머지 23%를 끌어올리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뭘 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 뭐...."

나는 펜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우리 정체는 숨기고 괴수 잡을 생각이죠."

A급 괴수를 잡으면 이목이 끌린다. 하지만 A급 코어를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게 내버려둘 수 없고, A급 괴수는 유나를 노리고 있다.

그럼 들키지 않고 잡으면 그만.

"신서울에서 헌터들 달려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버리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려고요!"

"흐흐, 간단한 겁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여기 A급 둘 있잖아요? 걔들한테 명령내리면 돼요. 귀찮은 건 설지영 협회장 통해서 해결하면 되고."

"코어는요?"

"후후."

나는 펜릴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걱정마세요. A급 코어 꼭 유하 양 지갑에 넣어드릴테니까."

A+급 DLC 괴수, <인면조>를 사냥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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