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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27화 (627/1,497)

〈 627화 〉2부 2장 27

강원도는 B급 괴수들의 천국이다.

태백산맥이라는 험준한 지형, 괴수 소동으로 인해 파괴된 교통 인프라, 그리고 38선 이남의 땅에 몰려있는 S급들의 기형적인 배치 때문에 강원도는 B급 괴수들의 성지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S급 괴수.

신서울에 있는 S급 광검.

부산에 있는 S급 석하랑.

세 S급의 존재로 인해 파워 밸런스가 미묘하게 맞물려들어가면서, 괴수들은 자연히 이들의 눈을 피해 대지로 숨어들었다. 그 대부분이 강원도로 숨어들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강원도는 헌터들에게 있어서 최적의 사냥터다.

망가지 교통 인프라는 헌터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태백산맥을 넘어가기 전까지만 차를 타고 그 뒤는 걸어가거나 뛰어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헌터들이 자주 오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에는 괴수들이 떠나지 않는다.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A급 괴수들은 보통 강원도를 거쳐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대부분 A급 히어로들에게 토벌당한다.

강원도에 자리잡은 괴수들은 깨달았다.

험준한 지형을 바탕으로 숨어있으면서 힘을 기르면 된다는 것을. 간혹 오는 헌터들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좋은 먹이가 된다는 것을.

덕분에 강원도는 B급들의 성지가 되었다.

각자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헌터들이 기어들오기만을 기다리며, 북이든 남이든 더욱 강력한 존재를 먹어치우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 강원도 곳곳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강원도의 괴수들은 세 명의 마법소녀들에게 학살당하고 있다.

* * *

"누리 잠깐 빠져서 마력 회복. 유나가 광탄으로 시야 교란. 라온이가 창으로 찌르면 끝. 아킬레스 건이 약점이야."

세 마법소녀는 프릴달린 치마를 나풀거리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누리는 백덤블링을 하며 도끼를 피했고, 유나가 스태프로 광탄을 날려 시야를 차단했다. 그 사이 라온이 앞으로 달려가 아킬레스건을 창으로 찔렀다.

끄어어!!

갈색 털의 미노타우르스가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양손에 집어든 붉은 소나무는 땅에 떨어졌고, 키가 4m에 이르는 미노타우르스는 마법소녀들의 공격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빠르게 갈무리하자. 유나랑 라온이는 코어 적출. 누리는 검 뽑아서 뿔을 잘라."

미노타우르스가 쓰러지자마자 셋은 신속히 내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로 활용하는 유나와 전투 경험 많은 라온은 순식간에 미노타우르스의 심장에서 B급 코어를 뽑아냈고, 누리는 날카로운 검에 물의 마력을 둘러 뿔을 잘라냈다.

"사장님, 하나 더 자르면 됨?!"

"아니. 하나로 만족해야할 것 같네. 튀자."

나는 트럭에 연결된 소방호스를 흔들었다. 미노타우르스의 피가 전신에 튄 셋은 바로 호스의 앞에 다가와 피를 씻어냈다. 마력이 깃든 물줄기 덕분에 셋은 금방 전신을 씻어냈다.

푸쉬이.

마법소녀 배틀슈트가 열기를 뿜어냈다. A급 배틀슈트답게 전투 후의 살균세척도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고, 셋은 갓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것처럼 뽀송뽀송해졌다.

"뒤에 타면 바로 코어는 밀봉캡슐안에 넣어줘. 뿔은 파밍박스에 넣어두고."

"사장님, 그래도 저거 아까운데...."

누리는 아직 남은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누리에게 남아있는 마력이면 충분히 자르고 귀환할 수 있다. 뿔 하나에 최소 50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험해. 명령이야, 돌아와."

"......알았음."

누리는 입맛을 다시며 트레일러에 올랐다. 처음에는 다소 불만을 드러내기는 했어도, 굳이 내가 한쪽 뿔을 자르고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숱하게 깨달았다.

구구구.

산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참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불길한 기운이 사방에 맴돌기 시작했다.

"강원도 국룰. 코어는 헌터의 것. 그리고 남은 부산물 중 대부분은...."

"괴수들의 것."

끼아아악!!

하늘에는 괴조가, 땅에는 괴짐승이, 그리고 바닥에서 땅벌레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우리 트레일러를 흘깃 노려봤고, 나는 그들을 향해 총을 흔들며 인사했다.

"매너합시다?"

나는 총구를 죽은 미노타우르스에게 겨눴다. 괴수들은 뿔과 코어를 제외하고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미노타우르스를 보고 바로 뛰어들었다.

심지어 4족 보행 괴수는 우리 트럭 앞을 지나치기까지 했다.

으적, 으적, 콰드득!

괴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조수석에 올랐고, 운전석의 유하X는 트럭을 몰아 전장을 이탈했다.

"누리야, 봤지? 그거 잘랐으면 분명 저기서 셋은 달라붙었다."

"그래도 500만원인데...."

"다른 거 더 잡으면 되지. 그나저나 괴수들 조금 부럽네. 1++급 횡성 한우를 생으로 씹어먹고 말이야."

강원도의 괴수들 대부분은 강원도 현지에 있는 짐승들이 괴수가 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잡아먹을 만큼 강해졌음에도, 과거 가축 시절과 들짐승 시절의 기억이 남아 인간들을 무차별로 습격하지 않았다.

인간들을 건드리면 귀찮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져, 괴수들은 헌터들과 요상한 공존을 하게 되었다.

"사냥을 한 자에 대한 존중."

가장 맛있는 먹이인 코어는 사냥감을 사냥한 자에게 양보하는 것. 헌터들은 괴수를 사냥한 상징물로 살점 두 어점을 가져가고, 남은 시체는 다른 괴수들에게 먹히게 내버려두는 것.

인간과 괴수가 서로 이해관계가 맞물렸기에, 강원도는 B급 괴수들이 엄청나게 많이 서식하는 기묘한 생태계가 되었다.

C급은 헌터들에게 쉽게 잡힐 정도로 너무 약하고, A급은 도시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강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B급 괴수들에게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힘을 기르기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장소가 바로 강원도이기 때문이다.

"라는 이유로 B급 괴수가 강원도에 몰려있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

[역시 지휘관. 학계에서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한반도 괴수들의 서식 환경을 너무나도 쉽게 밝혀내시는 군요. 나중에 10억 드리겠습니다.]

나는 뒤의 셋에게 설명을 하며 유하로부터는 정보제공료를 받았다. 뒤의 마법소녀들은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는 사실 B급 몰려있는 사냥터일 뿐이지만.'

B급, 그러니까 레벨로 따지면 50~75 수준의 이능력자들이 사냥하기에 적당한 장소일 뿐이다. C급이 없는 것도 아니고 A급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B급이 조금 많은 이유를 그럴듯하게 가져다 붙인 것 뿐이다.

"그래도 삼척에서 저걸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아까 미노타우르스요?"

"그래. 한우타우르스. 횡성에서 괴수가 되어 성장한 놈이 여기까지 내려온 것 같아."

우리는 강원도 남쪽을 통해 삼척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해양괴수나 식물형 괴수들을 주로 상대하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횡성 쪽에서나 나올법한 한우타우르스가 나타나고 말았다.

"뭔가 서식경쟁에서 밀린 걸까요?"

"아니면 동해 쪽으로 사람들 잡으러 온 거 아님?"

"강릉은 아직 도시가 유지되고 있으니...그럴 가능성도 높습니다."

"강릉?"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히어로 위키를 켰다. 정부 공식 사이트보다 히어로 위키가 훨씬 더 빠르게 지역에 관한 정보를 갱신하고 있었다.

강릉, 현재 인구 30만.

"많이 줄었네."

"강원도 인구가 전부 강릉으로 모인 셈이니까. 나 이거 사회 지리시간에 배웠음."

"<백표>, <반월곰>. A급 둘이서 강릉을, 강원도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신서울과 부산에 사람들이 몰린다고는 하지만, 아예 도서 산간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살던 지역에서 멀리 떠나지 못한 이들은 각 지역의 거점 도시로 모여들었고, 지역 출신의 히어로들은 신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의 대표로 주민들을 지키는 방패를 자처했다.

"오늘 강릉 사람들 하룻밤 정도는 편안하게 자겠네."

"왜요?"

"우리가 강릉에서 하루 쉬어갈 거니까."

"푸흡."

셋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유하도 운전을 하면서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는 괜히 허세를 부린 것 같아 무안해졌다.

'농담아닌데.'

B급들은 몰라도, 강원도 곳곳에 있는 80레벨 이상 A급 괴수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냐아아-

오늘, 강릉을-우리를 건드리면 칼바람에 목이 잘릴 거라는 것을.

* * *

<늦은 밤, 강원도 강릉 유성 호텔.>

강릉에 있는 유성 호텔에서 저녁을 해결한 우리는 방을 두 개 예약했다. 하나는 세 마법소녀가 자고, 다른 하나는 내가 따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셋을 나의 방으로 불렀다.

"17점 만점에 15점."

셋의 활약은 충분했다. 내가 상정했던 모든 전장에서 셋은 완벽하게 팀워크를 발휘하여 내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어노잉 포테토>를 상대로 누리랑 라온이 딜이랑 탱 스위칭 한 거라거나, <콘 프라이로스트>의 강냉이를 전부 날려버린 것도 좋았어. 내가 지시하는 약점을 아무 의심 없이 충분히 따라준 것도 주요했고. 다만 감점 1점은-"

"나 때문임."

누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손을 들었다. 그것도 완전히 위로 들어올린 것이 아니라, 손바닥만 살짝 들어올리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내가...뿔 챙겨가자 머뭇거려서 감점임."

"맞아. 지휘관의 철수 지시가 떨어졌는데도 그러지 않은 거. 그건 분명 감점 요인이야."

누리는 침묵했다. 다른 둘은 내 눈치를 보며 주눅 든 누리를 감싸려했지만,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했다.

"그 어떤 지시에도 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따라야하는 거야. 군대는 아니지만, 군대 이상으로 상명하복이 적용되는 게 히어로나 헌터들이지. 다른 것도 아닌 목숨이 관계되어 있는 거니까."

코어와 미노타우르스의 뿔만 수거하여 빠졌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단 이번 사태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사소한 욕심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일은 비일비재 할 것이다.

"코어 한 개만 더. 그런 욕심 때문에 죽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겠어."

"...미안."

누리는 쭈그리 상태가 되어 더욱 주눅이 들었다. 나는 손을 앞으로 뻗어 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원래는 3점 감점인데 반성의 기미가 보여서 1점. 내가 한 번 지시내리고 바로 몸을 돌려서 1점. 그래서 마이너스 1점이야. 잘했어."

"만약에 둘 다 안 했으면?"

"3배로 혼났지."

김누리를 상대함에 있어서, 그녀가 오랫동안 괴롭힘을 받아 자존감이 많이 내려간 존재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말실수를 해도 주눅이 들고, 그걸 만회하고자 과욕을 부리는 게 트롤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근거있는 훈계와 적절한 칭찬. 누리를 상대로 하는 건 정말로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그래도 잘 했어. 10점만 넘겨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희 셋을 팀원으로 고른 내 안목이 대단하다니까."

"자화자찬이시네요."

"당연하지. 내 지시대로 완벽하게 따라주는데 어떻게 예쁘지 않을 수 있겠어. 사실 이게 내가 한국에 와서 몰래 팀을 꾸리는 이유야."

"본국...미국 쪽 히어로는 지시에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까?"

"그런 셈이지."

유나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지만, 실제로 외국 국적의 동료들은 다소 자유분방한 경향이 있다. 군인 출신이라면 몰라도, 일반인 출신은 지휘관의 명령에 대놓고 반항하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슈리랑 아르엘 두 명이지.'

성장 배경부터 반골의 기질이 강한 여자와 만인지상의 위치에 존재하는 여자. 당연히 지휘관의 명령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 비해 내가 지금 꾸리고 있는 이들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사장님 대단한 것 같아요. 사장님 지시대로 하니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유나 양, 그건 다릅니다. 저희가 '할 수 있을만큼' 지시하시는 겁니다."

"라온이가 잘 아네. 역시 유경험자야. 한 번 해봐서 그런가? 후후."

"...사장님 저거 지금 섹드립임. 내가 다 암."

"아, 들켰다."

요 한 달간 쉴틈없이 유나가 해야할 섹드립을 선수치다보니 패턴이 읽혀버렸다.

"후후, 지휘관이니까 딱 할 수 있을 것 만큼 아는 거지."

그리고 섹드립을 친다는 건 다소 분위기를 가볍게 가지자는 말. 호텔 가운으로 갈아입은 세 명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나를 에워쌌다.

"그렇게 안 해도 다 알아.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일단 유나부터 벗을까?"

"사장님, 저희는...."

"오빠 손 노니까 우리도 좀 해주면 안 됨?"

유나가 가운을 벗는사이, 둘이 불만을 드러냈다. 4P를 하자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거부했다.

"한 명씩 해줄 거야. 인당 한 시간 씩."

"후우, 그거 다 오빠 배려해서 저희가 큰 맘 먹고 제안하는 건데요."

전라가 된 유나는 마법소녀 복장을 입고 싸울 때보다 더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언제까지 한 명씩 차례대로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는 점점 누구 때문에 경험치가 오르고 있는데."

"후후, 너희 레벨로 아직 나랑 비비려면 한참 멀었지. 1:1, 3번으로 해도 아직은 안 돼."

신위에 이르지 못한 히로인 정도야 3연전을 해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어."

나는 순서대로 유나-라온-누리에게 한 시간씩 사랑을 부어준 뒤, 셋을 나란히 침대에 기절시켰다.

덧붙여서 1점 더 감점인 이유는 하나.

마법소녀 복장을 입고 부끄러워했기 때문.

* * *

옥상.

가벼운 샤워를 마친 나는 따뜻하게 데운 딸기라떼를 들고 호텔의 옥상으로 나왔다. 유하 덕분에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홀로 강릉의 찬바람을 맞이하는 도중,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밤바람이 차다냥."

"김펜릴."

펜릴은 검은 롱패딩을 입은 채 내 앞에 섰다. 주변에는 바람의 결계가 쳐져, 그 누구도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이유라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역시 이게 맞는 것 같아서."

콰득. 김펜릴이 날카로운 손톱을 꺼내들었다.

"널 죽이겠다냥, 지휘관."

서늘한 바람이 내 목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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