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21화 (621/1,497)

〈 621화 〉2부 2장 21

유성 그룹의 회장은 은유하(27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형술사>(A급)의 이능을 깨우친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겼고, 평양 사태 이후 일가족이 모두 몰살당한 것을 계기로 독해지기로 마음먹었다.

X로이드.

본래는 유성 그룹에서 영원한 젊음을 위해 가문의 핵심에 해당하는 이들만 사용하려고 만든 기계 인형.

이능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상 영혼과 정신을 기계인형에 깃들게 할 수 있게 된다면, 기계의 몸속에서 불로불사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기계인형은 원래의 주인을 잃고 은유하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유성 그룹의 회장 은하수.

차기 회장이자 후계자로 칭송받는 은재민 유성에너지 사장.

거기에 은재민 아래에 있는 여러 형제들.

은유하는 자신의 이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그들이 서브 육체로 남긴 X로이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은유하는 X로이드들을 이용해 유성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모든 X로이드는 은유하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은유하는 언제든지 X로이드에 접속할 수 있다. 1/7로 쪼개진 의식은 최대 7명까지 자유롭게 인형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만나서 반갑네, 지휘관."

그러므로 유성의 회장이 불렀다고 하여, 눈앞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앞에 있다고 하여 상대를 노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안에 들어있는 건 은유하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회장님."

"내가 자네의 정체를 아는 것에 놀랍지 않은가?"

"회장님 정도면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했기에."

대놓고 추켜세운다. 은유하(27세)는 절대갑에 위치한 사람답게 대접 받기를 좋아한다. 특히 그게 자신의 지적 능력과 관계된 분야라면 더더욱 좋아한다.

"낮말은 새가 듣지만, 밤말은 모두 X로이드가 듣죠."

"꼭 낮말을 새만 듣는 건 아니네만 정답일세. 애초에 자네도 딱히 내게 숨기지 않고 이야기를 하던 것 같네만."

"예, 맞습니다."

"어째서지?"

"이 나라에서 제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회장이 낮게 웃었다. 백발이 성성한 눈썹 아래의 눈동자는 은은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노인 은하수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었다.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라.... 유성 그룹은 사람이 아니네만."

"회장님이 곧 유성 아닙니까? 회장님이 곧 유성이니, 회장님이 제 편이 된다면 저는 유성이라는 아군을 손에 넣는 셈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흐흐흐, 맞다. 이 나라에서는 회장이 곧 그룹의 왕이지. 내가 유성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그대를 지원할 지, 아니면 그대와 척을 질 지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선택이란 말이네."

"지원해주시지요.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는 얼마든지 제공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무엇이든 제가 가져다 드리지요. 밤하늘에 걸린 별이라도 따다 드릴까요? 후후."

회장은 장고에 빠졌다. 회장은 지금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회장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자네가 지휘관인 걸 밝히는 날, 유성의 스폰이 달린 옷을 입고 나서야 할 걸세."

"아예 유성 그룹의 회견장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자네의 팀원들이 입을 모든 히어로 슈트, 사용할 모든 마도웨폰, 그리고 모든 마도구는 우리 유성의 제품을 이용해야 할 걸세. 협찬은 없어. 무조건 구매야."

"돈과 비례하는 품질이라면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자네가 벌어들인 코어는 모두 유성을 통해 거래를 해야할 걸세. 암시장이나 외국 세력과 거래는 일절 불가능할게야."

"바라던 바입니다. 오히려 편하군요. 아예 코어 수거 전담팀을 만들어주십시오. 저희는 괴수 사냥에 집중하겠습니다. 코어는 그들이 수거하도록 두시면 됩니다."

"......간이고 쓸개고 전부 다 내어줄 기세로군."

"회장님을 가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후후."

회장은 다시 침묵했다. 눈까지 감고 생각에 잠겼다. 회장은, 은유하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 저게 나를 아나?

유성의 진짜 회장이 은유하라는 건 한국에서 단 네 명만 알고 있는 진실이다. 한 명은 광검이지만 입을 꾹 닫고 있고, 또 한 명인 석하랑도 서로 약점을 쥐고 있는 사이라 말하지 않는다.

- 어떻게 알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텐데.

나머지 두 명이 더 있다면 은유하의 방을 관리하는 유성 그룹의 사용인 두 명. 그들은 은유하의 운전기사와 유모로서 오랜 기간 그녀에게 충성을 바친 이들이므로 어디가서 비밀을 누출할 리도 없다.

- 설마 남색인가?

"저는 남색이 아닙니다."

뜨끔.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생각이 읽혔다는 것에 다소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오해는 확실히 풀어야했다.

"회장님. 제가 유성에 바라는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성과 척을 지지 않는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유하인가?"

"예. 은유하 아가씨입니다."

"......."

회장이 불쾌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아버지로서의 분노를 연기하는 것. 진짜 딸가진 아버지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잔을 내던졌어야 했다.

"불쾌하군.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인가?"

"본심입니다. 개인적으로 재능있어보이고 아름다운 여성분들은 목숨 걸고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흠."

대놓고 앞에서 금칠을 해주는데 혹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장고하던 회장은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내게 물었다.

"지휘관은 그 어떤 존재라도 마력을 공급할 수 있지. 맞나?"

"예. 물론입니다."

"그럼 만약 우리 유하와 ...마력공급을 하게 될 경우, 유하는 이능력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미 이능력을 통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무능력자이자 망나니인 걸로 나를 속이려고 했다. 모든 것을 알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정말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도록 할 정도로 유성의 회장은 철저했다.

"......자네가 지휘관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할 수 있지. 내 딸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건 그대 노력하기 나름이지만, 한 가지 확인을 해야겠네."

"무엇입니까?"

"그대가 정말로 지휘관이 맞는가?"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마치 나의 신체 데이터를 스캔하는 듯 나를 위에서 아래까지 샅샅히 살피고 있었다.

'진짜로 3D 스캐닝 하는 거지만.'

아마 마력 검사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지휘관 특유의 박살난 마력 재능에 의아해하기도 할 것이다.

"내 눈에는 스스로를 지휘관이라고 사칭하는 사기꾼밖에 보이지 않는데."

"무엇으로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회장님을 이능력자로 만들어드릴까요?"

"아니. 그대가 증명해야할 대상은 내가 아니다."

짝. 회장이 손뼉을 치자 책장이 옆으로 밀려났다. 안에서 또각, 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X로이드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를 신은 X로이드인 듯 했다.

"지휘관이라면 X로이드에게도 마력공급이 가능하겠지? 어디 한 번 증명해보시게."

"후후, 얼마든지요."

어떤 상대든 마력이 흐르는 자라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이능력자, 무능력자, 심지어 괴인에 괴수까지도 가능한 게 주인공이다.

'정령에 여신에게도 박는데 기계에도 못 박을까.'

코어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인형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물며 섹스에 특화되어있는 X로이드라면 더더욱 못할 게 없다. 애초에 제작사는 시스템적으로 X로이드에게도 마력공급이 가능하게 만들어 두었다.

누가오든 나는 박을 준비가 되어있다...만.

"허."

나는 눈앞에 나타난 X로이드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 요망한 년 보게.'

"YUHA-777. 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회장실에 왔습니다."

정숙한 OL 차림으로 비서마냥 나타난 금발의 여인, 은유하는 기계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회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회장은 내게 은유하가 나온 방 안쪽을 가리켰다.

"나의 딸을 베이스로 삼은 X로이드일세. 어디 증명해보시겠는가?"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런데 하나 말씀 드릴게 있는데...."

나는 은유하에게 다가가 가볍게 허리에 팔을 휘감았다.

"유하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아니 왜 회장이 부끄러워하는 건데. 왜.

* * *

- 유하ㅋㅋㅋㅋ

- 저저저 요망한 년ㅋㅋㅋ

- 역시 빛속성

"어쩌다보니 은유하랑 떡치게 되었는데 참 기분이 묘합니다. 이걸 은유하랑 한다고 해야할 지."

청화는 은유하 X로이드-유하X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실에 마련된 패닉룸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렇고 그런 의도에 맞게 방이 구성되어 있었다.

"지휘관이 은유하랑 섹스 안 하는 건 아닌데, 은유하 루트 말고 은유하랑 하기는 또 처음입니다."

- 제일 먹기 힘든 히로인 2위ㅠㅠ

- 이제는 1위 아님? 1위님 미국가셨잖어

- 살아스님이 피닉계신다!

미안하지만 그 피닉스는 내 옆에서 혀를 낼름거리며 은유하를 어떻게 공략할 지 입맛을 다시고 있다.

"유하 공략하는 거야 뭐 간단하기는 한데...그래도 유하 몸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서."

- 저거 찐임?

- 찐일 리가 있나

- 은유하 자기 루트 엔딩은 가야 처녀 대주는데 그럴 리가

"...그 전까지는 X로이드로 마음껏 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말이죠."

은유하는 참 특이한 히로인이다.

미연시라서 당연히 공략대상이기는 하지만, 은유하 루트의 대부분의 섹스는 은유하가 조종하는 X로이드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X로이드는 은유하가 조종하지 않습니까. X로이드랑 하룻밤 자면 은유하랑 잠을 잔 거나 마찬가지죠. 이른바 정신 섹스라고 해야하나...."

- 만인의 공공재ㅋㅋㅋ

- 하지만 본체는 처녀ㅋㅋㅋ

- 본편에서 온갖 변태 플레이는 다 해주고 엔딩은 처녀 바치는 진정한 히로인니뮤ㅠㅠ

<유하는처녀빛이> : 그것도 나다.

뜬금없는 도네가 올라왔다. 하지만 1회차를 한 번이라도 해본 지휘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대사였다.

"면접 기간 중에 영입한 G컵 거유 지속성 헌터랑 자고 일어나면?"

<유하는처녀빛이> : 그것도 나다.

"이야기 중반에 중국 현지에서 만리행 탈출할 때 만나는 쿵푸녀랑 자고 일어나면?"

<유하는처녀빛이> : 그것도 나다.

"1층 카페 알바가 생각보다 예쁘고 재능도 B급이라 영입해서 떡각 잡으면?"

<유하는처녀빛이> : 그것도 나다.

그야말로 모든 곳에 은유하가, 모든 곳에 X로이드가 있다.

"그렇죠. 비히로인인 엑스트라들 공략하려고 괜히 좆대로 놀리고 다니면 나중에 은유하한테 공개 수치 플레이 당하지 않습니까."

지휘관이 네임드로 정해진 히로인 이외에 전혀 다른 존재와 섹스를 할 경우, 약 7할의 확률로 X로이드에 들어간 은유하라는 결론에 수렴하게 된다. 그리고 은유하는 그걸 히로인들의 앞에서 재생하여,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존재임을 자랑하게 된다.

"다들 왜 그런지는 알잖아요? 원래 새 제품 언박싱 할 때가 제일 두근거리는 법 아니겠습니까."

- 미개봉품ㅋㅋㅋ

- 처녀는 못 참지ㅋㅋㅋ

- 19금 미연시 떡겜인데 처녀를 못 먹고ㅠㅠㅠ

<유하팬티검정색> : 흐름상닉변ㅋㅋ 슴믈리에 님 저 유두는 찐유하의 유두 인가요오오?

"아뇨. X로이드 개망나니 은유하입니다."

내 말에 잠시 채팅창이 멎었다. 청화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침대 위에 다소곳이 앉은 유하는 갓 공장에서 출하한 듯한 신선함과 청초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른바 요조 숙녀.

"예전에 미리 빌드업 해놨었죠? 은유하 X로이드 하나 만들어달라고. 자기 X로이드 예비로 그 사이에 만들 시간이 없으니까, 급하게 망나니 짓을 하고 다니던 X로이드를 가져온 겁니다. 본체를 대줄 리는 없으니까."

물 35리터, 탄소 20킬로그램, 기타 등등의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 은유하(본체)는 아닐지언정, 눈앞의 은유하는 그와 비슷한 물질로 만들어져 그녀가 스스로의 이미지를 깎아먹기 위해 마음껏 밖에서 망나니 짓을 하고 다니던 X로이드다.

- 씨발 2월에 은유하 먹네

- 무슨 치트쳤냐

- 신고하기 전에 불어라

갑자기 누군가가 빠르게 채팅을 날렸다. 치트라는 말에 다소 억울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2월에 은유하의 몸을 상대로 같은 잠자리에 드는 건 분명 치트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치트라는 것도 없지만.

"플레이 이력 보면 알텐데...뭐 은유하랑 떡각 잡고 싶으면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침대 끄트머리에 정자세로 앉아있는 은유하는 기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외투부터 하나 둘 벗기기 시작하는 청화의 손길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궁금하게 만드는 겁니다. 저 남자가 얼마나 잘 하길래 주변에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꼬이는 걸까. 나와 한 번 섹스로 자웅을 겨루어보자. 뭐 그런 겁니다."

청화는 일부러 도청장치 달린 침대 위에서만 마력공급을 하려고 애썼다. 당연히 그걸 들은 당사자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은유하 몸이랑 하고 싶으면 유성에다가 누적 2천억 이상 쓰면 하게 해줍니다. 유성 제품 구리다고 혹시 안 사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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