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16화 (616/1,497)

〈 616화 〉2부 2장 11

지휘관의 사무실은 왜 하필 카페 Padre Juan-농부 후안의 2층에 위치하게 되는 걸까.

단순히 1층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를 히로인들이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농부 후안의 도움을 받아야만이 씨를 뿌리기에 쉽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히로인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후안 사장님이 만드는 음료부터 디저트들 모두 히로인들 호감도를 올리기 쉬운 것들이죠."

석하랑의 경우, 이곳에서 블루베리 디저트를 먹고 나면 부산까지 배달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짜증을 부린다.

은유하의 경우, 애초에 자신의 본체로 카페에 드나들 정도로 후안의 커피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히로인을 위해 메뉴판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재미가 있으며, 해당 히로인이 좋아하는 메뉴로 판 전체를 가득 채울 경우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정확히는 주차 플레이에 따른 새로운 기능이 해방된다.

"지휘관의 체액은 기본맛이 커스터드 크림 치즈 맛입니다. 이유나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죠. 물론 그 맛을 싫어하는 여자들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왕이면 자기 좋아하는 기호의 맛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체액변환>.

자신의 체액이 가진 맛을 바꾸는 지휘관 이능의 또다른 특성.

그 누구도 카페의 메뉴를 하나의 컨셉으로 갈아치울 생각을 하지 않기에, 고인물들도 모르는 발견하기 어려운 이스터에그 아닌 이스터에그였다.

'이게 P 공략의 포인트지.'

메뉴판의 시작부터 끝까지 딸기로 정복하는 순간, P는 한국을 멸망시키는 걸 아주 야아아아악간 고민하게 된다. 그 일말의 망설임이 생기는 게 피닉스 루트의 진입 트리거 중 하나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김펜릴 공략하려다 알게된 겁니다."

민트초코에 미친 간부의 호감도를 폭파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나는 후안 사장을 민트초코파로 만들었다.

당연히 히로인 중 민트초코를 좋아하하는 이들 말고는 호감도가 모두 바닥을 쳤지만, 어차피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건 김펜릴 루트라서 딱히 문제는 없었다.

"님들 그거 아십니까? 그렇게 하면 진엔딩 수준으로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되는데, 그러면 김펜릴 인격 안 죽고 절풍이랑 공존하게 됩니다."

간부는 정령으로 각성하고 나면 이전의 인격이 사라지거나 통합된다. 당연히 정령으로서의 자아가 강해지지만, 김펜릴은 경우가 다르다.

"민트초코에 대한 사랑으로 정령에 준하는 자아를 가지게 된 겁니다. 세뇌를 풀지는 못하지만."

그리하여, 나는 지휘관의 새로운 기능을 익혔다.

상대에 마력이 들어갈 때 원활하게 공급되기 위해 체액의 맛을 바꾸어 거부감을 줄인다...하는 그런 복잡한 시스템적인 문구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휘관 스스로 맛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 수단이 바로 후안 사장의 카페 메뉴다.

<체액변환> 오전 9시, 카페가 오픈하고 처음으로 마시는 음료의 맛으로 체액의 맛이 전환됩니다. 이 효과는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펜릴이 P를 설득해서 살아서 돌아오는 날. 아침은 무조건 민트초코입니다."

어차피 아래로든 위로든 먹이려고 할 건데, 거부감 없이 먹일 거라면 그나마 느낌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을까...?

* * *

<오후, X로이드 매장.>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들의 복장을 맞추려고 하는데요. 바디 슈트 매장으로 안내해주시죠."

"오더메이드입니까?"

"아뇨. 기성제품으로."

"칫."

눈을 금빛으로 반짝이던 X로이드는 가볍게 혀를 차며 우리를 안내했다. 내 뒤를 따라오는 두 명의 여인, 가온과 선겨울은 주변을 살피기에 급급했다.

"사장님, 따라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여기는 유성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니까. 정확히는 물건 사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면 마음대로 들어오거나 나가지도 못하지."

들어와서 보는 건 마음대로일지 몰라도, 나갈 때는 반드시 물건을 사서 나가야 하는 곳이다. 라온이 싫어하는 악덕기업 유성은 정부의 블랙 요원이나 협회의 히어로를 상대로도 가차없었다.

- 임무 중 경비 발생? 최소 천만원ㅋㅋㅋ

- 하, 하지만 들어가려면 무조건 물건을 구입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 신입이 업무추진비용으로 바디 슈트를 바가지 쓰고 온 건에 대하여.

'설마 임무 때문이라도 돈 쓰면서 까지 쫓아오지는 않을테죠.'

지금쯤 윗층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선겨울에게 SP로 붙은 이들은 더더욱 난처할 것이다.선의철이 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리가 만무하므로.

"빨리 옷 맞추고 가도록 합시다. 가온 양은 기존에 쓰던 히어로 슈트 메이커가 있나요?"

"아, <블라디미르> 제품을 쓰기는 했는데...."

가온은 슬쩍 X로이드-유하-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신토불이! 한국인은 역시 한국제품 써야죠."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고객님. 해당 사의 제품과 비슷한 재질과 디자인의 제품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하A는 가온을 데리고 떠났다. 우리 뒤에 또다른 X로이드가 따라붙었고, 나는 선겨울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그녀의 바디 슈트를 고민했다.

"사장님, 저 사무원으로 취직한 건데 바디 슈트는...?"

"겨울 양도 현장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진짜로 저까지 서울에 데려가실 생각이세요?"

"서울보다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해외로 나갈 수도 있고. 일은 얼마든지 많아요. 나중에는 진짜 미국에 다녀와야 할 수도 있고요. 근데 겨울 양은 아무래도 사무원이니까, 전투복을 입는 건 조금 그렇겠죠? 그러니까 이쪽으로."

나는 선겨울과 유하B를 데리고 바디 슈트 매장의 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백화점 일반 의류 매장과 비슷한, 혹은 조금 고급진 의복을 입은 마네킹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바디슈트가 꼭 전투원 복장만 있는 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일상생활복 스타일로 만든 것도 있죠. 혹시 우사라고 아세요? 삼사의 A급 히어로인데."

"네, 잘 알죠."

"그 분 초기형 전투복이 삼선 츄리닝이었잖아요. 츄리닝 차림으로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바로 싸울 수 있게. 겨울 양도 그렇게 입고 다녀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

선겨울은 다소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매장 안쪽으로 잡아끌었다.

"어머, 여기는...?"

"정장 위에 코트 한 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이런 옷이면 충분히 스타일에 방해되지 않고 예쁘게 입으실 수 있죠?"

X로이드 마네킹들은 하나같이 예쁜 코트를 입고 있었다. 선겨울을 여느 잡지에도 실려있지 않을 최고급 코트를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태그에 적힌 엄청난 가격에 또 경악했다.

"50...!!"

"역시 선겨울 양이 보는 눈이 있네요. 그거 코트 한 벌에 50이에요. 저기요, 저거는 등급이 어떻게 되죠?"

"일반 복장 형식이기에 그렇게까지 비싼 건 아닙니다. 하지만 방어력은 낮습니다. C급입니다."

"히익."

선겨울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마네킹에서 물러났다. 옷을 입고 있던 X로이드는 모델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선겨울의 앞에서 옷태를 뽐냈다.

"음...저건 직접 입어봐야 구분이 갈 것 같은데요. 혹시 시착 가능합니까?"

"...사이즈 변형 시 무조건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거야 얼마든지."

코트를 입고있던 유하C는 다소 적의어린 눈빛으로 선겨울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이 꽂혀있던 곳은 당연히 가슴. X로이드들도 제법 큰 편이었지만, 선겨울의 크기에는 이길 수 없었다.

"사장님, 저 진짜로 이거 입는 건가요?"

"예. 앞으로 신서울에서도 이거 입고 다니세요. 자금 사정이 괜찮아지면 코트 여러 벌 입고 다닐 수 있게 해드릴테니까."

"이제 한 달 뒤면 겨울도 지나가는데...."

"후후, 글쎄요. 요즘 이상 기후 때문에 날씨가 한창 변덕스럽지 않습니까? 한 여름에 눈이 내려서 패딩을 챙겨입어야 할 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입어보세요."

선겨울은 계속 머뭇거렸지만 코트에 꽂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 온 김에 다른 것들도 구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겨울 양, 안에 받쳐 입을 옷도 한 번 이참에 구매하시겠어요?"

"예?!"

"보니까 지금 그냥 평상복인 것 같아서. 구매하시죠. 한 두 세 벌 정도는 더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러면 있잖아요."

선겨울은 코트를 벗었던 유하C를 가리켰다.

"이, 이 디자인 그대로 입어도 괜찮을까요?"

"마네킹 전체로? 얼마나 하죠?"

"...세금 포함 합계 100정도 입니다."

"탈의실로 데려가주세요."

유하C는 선겨울의 팔을 잡고 탈의실 안쪽으로 잡아끌었다. 애초에 마네킹이 X로이드다보니, 마네킹이 벗은 옷을 그대로 선겨울이 입으면 끝이었다.

'나중에 가슴 사이즈 물어봐야지.'

결코 음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이것은 모두 선겨울이 천가을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과정. 신체 데이터를 넘겨받고 그 수치를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정도 검증이 가능하다.

"아, 만져보면 딱 아는데."

아직까지는 만질 수 없는 사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탈의실 앞에서 둘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릴 것 같...응?"

계단에서부터 금발의 외국인 여자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한 그들의 모습에 짜증이 살짝 치밀었다.

"9월에야 나올 난이도 이벤트가 왜 지금 나오는 거지...? 이게 DLC 때문인가?"

다소 이지를 잃은 듯한, 그러면서도 얼굴이 붉은 금발 벽안의 여성들. 나는 그들을 주의하며, 아무 일도 없는 척 마도기어에 연락을 넣었다.

- 마트료시카의 괴인 등장.

김가온을 잡기 위해 신서울로 왔던 라스푸틴의 마수가 이곳까지 뻗어진 것이다.

* * *

"타깃 로스트."

"여기에 들어온 게 맞나?"

"분명하다. 사무실로 들어간 자는 김누리. 그리고 김누리와 교대하여 이곳에 온 자가 김가온이다."

"그렇다면 당장 잡아서 본국으로, 그분의 앞에 무릎을 꿇려야겠군."

"아아,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

"""큥큥."""

* * *

"......크시네요."

선겨울은 X로이드의 질투를 받으며 어쩔 줄을 몰랐다. 홀딱 벗은 X로이드의 앞에 선 그녀는 당장 속옷부터 입는 걸 실패했다.

"기성복은 현재 C컵 정도로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큰 가슴에는 맞을 리가 없습니다."

"어, X로이드 맞으시죠? 왜 안에 사람이 들어서 짜증을 내는 것 같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면, 저희 유성의 AI는 빅-데이터를 통해 고도로 발달된 논리회로를 바탕으로 실제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네, 알았으니까 빨리 후크 채우는 것 좀 도와주세요."

선겨울은 몸을 돌려 유하C를 향해 브래지어 후크를 가리켰다. 유하C는 표정을 굳히며 후크를 잡아 끌었다.

"...끈이 모자랍니다. 이건 도저히 안되겠군요. 죄송합니다만 속옷은 구매 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힝, 되게 맘에 드는 속옷이었는데...."

유하C는 선겨울의 애교에 잠시 속이 뒤틀렸지만, X로이드의 접객용 미소를 유지하며 그녀가 걸어놓은 속옷에 손을 뻗었다.

"원래 속옷으로 입으시고, 그 위에 이 옷들을 입으시죠. 이제-"

"잠깐 실례."

문이 열리고, 금발의 남자, 청화가 들어왔다. 두 여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어온 청화의 태도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쉿. 괴인이야. 밖에 괴인이 있어."

"......."

청화는 진지한 목소리로 둘을 진정시키며 문을 잠궜다.

"X로이드 양, 혹시 나랑 같이 온 키 작은 여자애는 어떻게 됐지?"

"지금 치수를 재고 있는 중입니다."

"패닉룸으로 보내줘. 지금 밖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놈들의 타깃이니까."

"......."

유하C는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확신에 찬 그의 눈빛에 말대로 따라 해주기로 했다. 만약 진짜로 괴인이 여기서 날뛴다면 경제적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그, 그런데 왜 사장님이 여기로 숨는 거죠...?"

"가온이랑 같이 온 사람을 찾아서 인질로 삼으려는 거지. 같이 있는게 안전해. ...온다, 쉿."

청화는 두 여자의 입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호흡조차 멈추고 눈을 감았다.

"...는 여기로 갔나?"

"이쯤에서 사라진 것 같다"

"모두 쉿."

청화는 숨을 죽였다. 또각또각 거리는 구두굽 소리가 탈의실 안쪽으로 들려왔다.

끼이익, 벌컥!

옆의 빈 탈의실 문이 열렸다.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친 소리에 선겨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덜커덕, 덜커덕.

청화가 문을 잠근 덕분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덜커덩 거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여차하면 문이 부숴질 지경이었다.

"뭐, 뭐에요?! 안에 사람있어요!"

선겨울이 밖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밖에 있던 이가 잠시 뜸을 들이며 물었다.

"이곳에 금발의 외국인인 들어오지 않았나?"

"옷 갈아입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여자 탈의실이에요. 남자 탈의실 아니에요!"

"...하아."

청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유하C에게 눈빛을 보냈다. 유하C는 한숨을 내쉬며 벽면의 거울을 짚었다.

끼이익.

거울이 좌우로 열리는 사이, 청화가 선겨울의 허리를 끌어안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금발 외국인이라고 했지, 남자라고는 안 했잖습니까."

"아."

선겨울이 깜짝 놀란 사이.

콰과과광----!!

탈의실 너머에서 금빛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곧 탈의실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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