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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15화 (615/1,497)

〈 615화 〉2부 2장 10

끼이익.

자율주행택시를 탄 우리는 목적지, 유성의 X로이드 판매관에 도착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판매관을 드나드는 가운데, 나와 팀원들의 앞에는 정장 차림의 여자 X로이드가 우리를 맞이했다.

“<백청화>님 맞으십니까?”

“예. 한국 이름으로 신청했습니다. 여기는 피팅해야하는 팀원들이고요.”

유나, 라온, 누리 셋은 어지간한 아울렛보다도 거대한 판매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박물관에 온 것 처럼 사방을 두리번 거리던 셋은 남성형 X로이드에 푹 빠져있었다.

“우와, 이거 오빠 닮지 않았음?”

“이목구비가 다소 선명하기는 하지만 금발은 아니군요.”

“흑발로 염색하면 저런 모습일 것 같기도 한데….”

셋은 X로이드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내 앞에 카탈로그를 가져온 인형에게 카탈로그 맨 뒷 장을 가리켰다.

“X로이드 구매도 하고 싶기는 하지만, 저희는 지하매장으로 가고 싶은데요.”

“지하 매장은 히어로 협회나 헌터 협회에서 승인한 사람만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형의 눈이 순간적으로 금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세 명은 X로이드들 통해서 따로 피팅룸으로 먼저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계속 따라와주시길.”

인형-에 들어간 유하는 엘레베이터를 통해 나를 지하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X로이드들이 마네킹처럼 서 있었고, 그들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현대풍의 군복. 히어로 물에서 나올 법한 히어로 슈트. 중세 판타지풍의 갑옷. 무협지에서 볼 법한 무복. 사냥꾼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사냥꾼의 옷.

배틀 슈트.

이게 다 유성에서 히어로 산업 중 가장 많은 돈을 얻는 사업이다. 현대를 살아가며 괴수들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이능력자들에게 있어, 괴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장비는 예비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셈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어느쪽으로 하시겠습니까?”

“오더메이드.”

“오더메이드는 기존 가격에 비해 경우에 따라 몇 배씩 증가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만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애초에 이걸 위해 풍유환을 팔아제끼며 돈을 모았다. 무기야 개인의 마력에 따라 필요한 경우도 있고 딱히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방어구만큼은 돈지랄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낌없이 투자해야했다.

“세 분에 대해서는 신체 데이터 스캔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신체 데이터, 저한테 꼭 주세요.”

“여성의 3사이즈는….”

“괜찮습니다. 뭣하면 본인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받아도 되는 건지 아닌지.”

“...알겠습니다. 데이터 스캔이 끝나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사이즈는 알고 있지만 또 지금의 3 사이즈는 다를 수 있지 않은가. 배틀 슈트를 맞춤제작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재 사이즈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참 제품들이 많네요. 이것들 다 새 제품들입니까?”

“예. 정확히는 저희 유성을 이용해주시는 고객 분들의 코스튬을 여벌로 제작한 겁니다. 혹시나 급히 슈트를 새로 착용해야 할 경우, 그 분들에게 즉각 슈트를 제공하고자 하는 회장님의 배려입니다.”

“사야하죠?”

“60개월 무이자 할부도 가능합니다.”

“보통 A급들 배틀 슈트는 얼마나 하죠?”

“기성 제품의 경우, A급 <밀키웨이> 같은 경우에는 200억 정도 합니다. 추가 옵션을 달 경우, 풀 옵션 기준으로 350억까지 올라갑니다.”

S급 슈트 쯤 되면 입고 다니는 전용기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야 은유하로부터 받은 돈으로 배틀 슈트를 사면 그만이지만, 과연 일반 히어로들은 이 배틀 슈트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까.

'초반에 자금 빠져나가는 일등공신이지.'

너무나도 비싼 판매가 때문에 바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목숨 하나를 더 번다고 생각하면 비싸다는 생각도 쏙 들어가게 되어있다. 다른 건 몰라도 유성 제품 중 X로이드와 배틀 슈트 만큼은 확실히 돈값을 하기 마련.

“오더메이드로 500억 씩 세 명 맞춰주시고요, 수속성 A급 슈트로 300억 맞춰주시고, 150억으로 여자 한 명 더 슈트 맞춰주세요. 남은 50억으로 세금 처리 해주시고. 그러면 견적 2000억 딱 맞게 나오나요?”

“지금 오시는 분들 말고 다른 분들도 계십니까?”

“예. 두 명 더 있어요. 수속성 이능력자 한 명이랑, 환속성 서포터 한 명.”

“저희야 많이 구입해주시면 고마울 따름입니다만….”

유하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내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2천억을 전부 써버리는 것에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그저 놀라기만 할 뿐 돈을 번다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결국 따지고보면 풍유환과 배틀 슈트 5벌을 교환한 셈이다. 내가 지불하고자 하는 돈은 결국 유하의 돈이었으니까.

“일단 이대로 구매하겠습니다. 아 참, 디자인은 이런 쪽으로 해주시길."

"......진심이십니까?"

유하는 금빛의 안광을 숨기지도 않고 나를 진심으로 경멸했다. 하지만 나는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배틀 슈트도 마도기어에 마력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꺼내는, 이른바 변신 형태로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런 디자인이 안 될 이유는 없지요."

"그, 그렇기는 한데."

유하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언젠가 자기도 입게 될 히어로 슈트가 될 거라는 걸 직감이라도 한 걸까.

"이런 코스튬은 저희도 주문을 받은 게 처음이라…."

"이참에 도전해보시는 거죠. 아, 이건 시작입니다. 컨셉 잡고 슈트 여러벌 제작 의뢰할 거니까요."

"......!!"

유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나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께서는 저희와 자주 거래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신경써서 챙겨드리겠습니다. 제 값은 받겠지만."

"어휴, 물론이죠. 그런데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마도기어에서 시안을 꺼냈다. 이미 내가 유하에게 보여준 디자인에 더불어, 또다른 하나를 본 유하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눈을 반짝였다.

"이건…."

"언젠가 둘 다 주문을 하겠지만 당장은 한 종류만 가능할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홀로그램 마네킹 속 두 명의 여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행성수호자 컨셉의 마법소녀 룩이 나을까요, 아니면 SF 판타지에서 나올법한 택티컬한 기계화 슈트가 나을까요?"

사실은 그가 돈 주고 산 DLC다.

* * *

"즐거운 거래였습니다."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유성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싱글벙글 웃는 유하를 뒤로한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셋은 슈트 제작을 위한 임시 슈트를 입은 채 마력을 조정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거 좀 쩌는듯?"

"유성의 제품 치고는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입고 전장에 나가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평소에 입던 훈련복보다는 좋지만...어때요?"

"그거 너희가 입을 옷 아니야."

제복 비스무리한 옷을 두고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던 셋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거 저희가 입으려고 산 거 아니었어요?"

"맞아. 그거 여기 사장님이 서비스로 준다네."

"......말도 안 돼요. 아무리 기성품이라고 하더라도 수백억은 하는 물건이잖아요."

"수천억을 썼으니까 이 정도는 서비스로 줄 수 있다는 배포가 대단하신 것 같아. 그리고 계속 거래를 이어가기로 했어. 앞으로 전투복은 유성에 전적으로 맡기는 거야."

가장 불만스러워 할 것으로 추정되는 라온은 아무 내색도 않고 자신이 입은 배틀 슈트를 쓰다듬었다. 그녀에게 있어 배틀 슈트는 진짜 여벌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이었다.

"기성품이든 오더메이드든 성능만 충분하면 됩니다."

"좋은 마인드야, 라온. 근데 유성에서 거지같이 만들었으면 쌍욕박으려했지?"

"쌍욕까지는 아닙니다."

"그래, 쌍욕까지는 아니지.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서 같이 점심 먹고 교대하자. 끝나고 나면 퇴근해도 좋아."

내 말에 셋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뭔가 자신의 영역에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온 정글 속 사자 무리를 보는 것 같았다.

"사장님, 혹시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죠?"

"대통령 딸이라도 지휘관인 거 밝히고 한다거나...."

"아니면 괴인 간부라고 해도 몸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거 아님?"

"너희들 나를 뭘로 보고. 설마 너희를 보내는 게 둘 중에 하나랑 하려고 각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셋은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아니면...."

누리는 손바닥을 퍽퍽 부딪히며 씩 웃었다.

"울 언니랑 하려고 하는 거임."

"얘들이 영 사람을 믿지 못하네. 진짜 순수하게 슈트 맞추러 가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그게 더 이상하네. 아무튼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들려야 해."

"아이스크림은 왜요?"

"김펜릴 밥 사러."

선겨울에게 가르쳐 준 업무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다른 팀원들도 익히 알고 있어야 할 김펜릴의 식성.

"쟤 민초말고는 아무것도 안 먹어."

둘의 표정이 복잡해지고, 한 명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잠시 뒤.

사무실에서 새로운 식구들과 식사를 한 나는 잠시 티타임을 가질 겸 김펜릴과 따로 옥상으로 올라왔다. 민트초코 한 통을 손에 든 그녀는 박수를 치며 마력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김펜릴의 주변에 옥색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마력은 나와 그녀를 중심으로 바람의 결계를 만들어냈다.

"흐흥, 간부들 죄다 다들 기본으로 쓰는 기술이다냥."

"잘 알고 있어. 이거 외부에서 손 닿으면 칼바람에 찢어지는 거 아냐?"

"...아무래도 다크 레기온에 대해 허투루 파악한 건 아닌 것 같다냥 ...음, 그래. 거래를 계속 해보도록 할까."

펜릴은 민트초코 통에 스푼을 꽂은 채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지휘관은 매일매일 절풍의 펜릴에게 삼시세끼와 간식 두 번을 제공한다."

"아침에 한 통, 점심에 두 통, 저녁에 한 통."

"간식은 이 세상에서 먹어보지 못한 최고급 제과로."

"후안 사장님은 최고의 바리스타셔. 그 분이 만드는 민트초코 케이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을 거다."

"바리스타랑 케이크랑은 관계가....그래,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해."

펜릴은 스푼을 내게 겨누며 말로써 선을 그었다.

"첫 번째. 나는 다크 레기온과 관련된 싸움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을 거야. 죽던 말던 내버려 둘거라는 얘기라고. 알아?"

"얼마든지."

우리의 편이 되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다크 레기온과 관련 없는 적을 상대로 하겠다는 것이지, 만약 다크 레기온과 싸움이 일어나면 펜릴은 싸우지 않는다.

"설령 내가 당신이 아닌 이 아래에 있는 네 여자들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놓여도, 오직 나뿐만이 얘들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그게 다크 레기온과의 싸움이라면 나는 수수방관하겠다는 거야. 이해해?"

"얼마든지."

펜릴은 든든하 동료지만 이미 성장이 사실상 끝난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경험치 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레벨 97에 해당하는 펜릴이 다크 레기온과의 전투까지 관여하면 손실되는 경험치가 엄청나다.

"두 번째. 만약 P에 대해서 설득이 실패할 경우, 나는 너와의 계약을 무효로 돌리고 3월 1일에 다시 너를 죽이러 올 거야. 미루는 거 없어. 무조건이야."

"당연하지."

세계에 운명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P가 지정한 지휘관 암살일은 3월 1일. 이 날에 몰려있는 게임 오버만 무려 10개 이상이 되고, 그 중 펜릴에 의한 암살이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은 데드 엔딩이다.

"걱정마. P는 무조건 내 설득에 넘어오게 되어 있어."

"......후우, 내가 진짜 큰 마음 먹고 저질러본다."

펜릴이 우리의 동료가 되기 위한 선결 과제는 P가 무조건 펜릴의 나태를 눈감아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약 설득에 실패한다면 너 스스로 나를 잡아다가 P에게 바쳐도 좋아. 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도망친 이유도 P에게 붙잡힐 것 같아서 그랬던 거니까."

"...너 진짜 내 뭘 믿고 그렇게 막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사람을 보는 눈?"

안 속에 있는 누군가와는 달리, 펜릴만큼은 믿을 수 있다. 할 때면 확실하게 하는 녀석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네가 우리 팀에 들어왔을 때의 가장 큰 효과를 이야기해주지. 내가 얘기했잖아. 지휘관의 힘이 간부에게도 통할까 하고."

"윽."

펜릴은 대놓고 인상을 썼지만 불쾌감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지휘관의 힘이 통용되었을 경우,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형태로는 S+가 최대 출력이지? 하지만 거기에 내 힘이 섞이면 어떨까?"

"......SS+까지 성장할 수 있다? 괴인화, 괴수화가 아니더라도?"

"물론."

"......."

간부 중 괴인이나 괴수화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는 없다. 인간형으로 99레벨까지 오를 수 있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된 김에 지휘관의 이능 중 비밀 하나를 알려주지. 지휘관의 체액 맛은 커스터드 크림 치즈 맛이야."

"알고 싶지 않은 정보네."

"그리고 커스터드 크림 치즈는 유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맛이지."

"지금 내 앞에서 유나한테 막 먹이고 그런다고 자랑하는 거야?"

"아니. 중요한 건 맛이 그것 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펜릴에게 다가가 그녀가 꽂아놓은 스푼을 들어올렸다. 안에는 민트초코가 한 움큼 들어있었고, 나는 그걸 한 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너!"

"자, 내가 민트초코를 먹었어. 그럼 어떻게 되는 지 알아?"

할짝. 나는 고양이끼리 서로 핥아주듯, 펜릴의 손등을 가볍게 핥았다.

"이제 나는 민트초코맛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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