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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11화 (611/1,497)

〈 611화 〉2부 2장 06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회사에서 면접을 하면서 당신과 내가 섹스할 수 있는데, 그래도 들어올 수 있다면 들어오라. 그게 일단 선의철의 딸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즉, 나는 눈앞의 선겨울이라는 여자에게 넌지시 돌려서 입사를 거부했다.

'어차피 선의철과는 척을 져야하는 입장이야.'

여기서 캬라멜마끼아또를 내 얼굴에 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도 인정.

딸기티라미수를 통째로 집어 내 얼굴에 집어던져도 인정. 아니 압도적 감사.

'이런 조건인데도 들어올려고 한다? 그럼 100% 꿍꿍이가 있는 거지.'

주인공 팀에 들어오려는 대부분이 이능력자들이 속에 비수 하나씩은 가지고 들어오기 마련. 선의철의 딸이 무슨 생각으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천가을을 닮은 이상 나는 일단 공략대상에 집어넣기로 마음먹었다.

"소문대로였군요. 역시 오라클 스튜디오는 한국인 포르노 배우를 구하고 있다는 게."

"다르죠. 영화의 한 장면으로 섹스 씬이 들어가는 거랑, 섹스가 기승전결인 에로 비디오랑은."

영화의 제목은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

지휘관 1명과 여러 히로인들이 함께 이계의 적을 무찌르는 영웅적인 이야기. 그 과정에서 히로인들의 힘을 늘리는 방법이 찐한 정사 씬인 셈이었다.

"영화에 꼭 필요한 씬입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시나리오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므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19금 미연시에서 19금을 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선겨울 양, 죄송하지만-"

"좋아요, 할게요."

"......하신다는 말씀은?"

"사무원으로 일하겠습니다. 제가 뭐 미성년자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인데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죠."

"......."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우리 스튜디오에 들어오려고 한다? 분명 꿍꿍이가 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남자배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사에서는 네 파트너가 될 여자를 직접 구하라고 하여 제가 한국 지사에 직접 날아왔죠. 잘못하다보면 저와 다른 여인의 정사를 보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사회 공짜로 보는 셈이 되겠군요. 농담이고요, 일하시는 동안 잠깐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혹시 저한테 영상편집 같은 것도 맡기시고 그런 것도 업무에 포함됩니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죠. 인원을 확충하지 않으면."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도 나름 그쪽으로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선겨울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꿍꿍이가 있다면 역으로 받아치는 게 인지상정.

'게임오버는 절대 안 되지.'

만약 이 여자가 진짜로 천가을이라면 천가을에게만큼은 게임 오버 당할 수 없다. 이 여자 때문에 그가 얼마나 많은 개고생을 했던가.

'지분으로 따지면 족히 18%는 차지하고도 남을 거야.'

그 놈의 불행 때문에. 나는 들끓는 속을 딸기 티라미수로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시면 되겠습니다. 내일 오전 9시까지 2층 사무실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복장은...편한 복장으로 출근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나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아빠 쪽으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겨울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한 번만 더 제 구직 생활에 이상한 짓 하면 해외로 배낭여행 가기로 했거든요."

"......."

선의철은 의외로 팔불출...인가?

* * *

"선겨울. 나이 23세. 환속성 D급 이능력자. 신서울 대학교 자퇴. 그리고 선의철 대통령의 유일한 자녀. 혹시 이 여자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

"네. 저 1학년 때 3학년 학생회장이었어요."

"......? 아 참, 유나도 신서울여고 출신이지."

이유나, 21세. 확실히 선겨울이 고등학생이었다면 마주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똑같았니?"

"네. 얼굴은 조금 더 앳되보이기는 했지만, 맵시는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우야. 고딩 때부터 그 몸이라고? 누구는 초딩 때부터 아직까지 이 몸인데."

누리가 열등감으로 빈정거렸지만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미드차이...."

"오빠, 뒤질래?"

"미안하다."

막말로 그녀는 누리의 머리통 두 개를 앞에 달고 다니는 셈이었으니, 누리가 화를 내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다들 선겨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거네?"

"네. 알려진 바도 워낙 적어요.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냥 일반인 수준 아님? 이능력자인 건 알고 있지만, D급이라 그냥저냥이라고 해서 별로 관심없었는데."

"미인인 건 제법 유명했습니다. 도저히 선의철의 아래에서 태어날 딸이 아니라고, 사별한 아내 피만 물려받았다고 농담으로 얘기 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가...."

선겨울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여기서 얻을 수 없었다. 위키에도 정보가 검열되어 있는 만큼, 직접 탐문을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일을 시작할 거야. 스튜디오라고 해봐야 배우의 실감나는 전투씬을 위한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전투 훈련을 할 거지만."

"드디어 괴수를 잡으러 가는 겁니까?"

"마참내!"

"그래. 실전훈련이야. 서울까지 올라가는 건 무리고, 경기 남부 쪽으로 한 번 다녀오려고."

마력 공급의 이해당사자가 없는 이상 아무래도 낮 동안은 성실하게 스튜디오의 사장으로서 움직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사무실 곳곳에 있는 너희 속옷 부터 치워줄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속옷이라면 제 옷 밖에 없습니다만...."

"침대 들어올리면 너희가 하다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거 분명 몇 개 있을 거야. 나 잠깐 가온이랑 이야기하는 동안 정리해놔. 괜히 선겨울 씨한테 걸리기 전에."

셋은 미심쩍은 얼굴로 침대 하나를 들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색이 다른 브래지어 하나와 팬티 한 장이 튀어나왔다.

"...금방 치울게요."

셋이 본격적으로 청소를 하는 사이, 나는 가온을 내 맞은 편에 앉혔다.

"지금 너희 건물에 빈 방 있어?"

"네. 공실 하나 있어요. 거기 쓰시게요? 좁은데....."

"어차피 잠만 자면 그만이니까 괜찮아. 거기 내가 들어갈 테니까, 집에가서 월세 계약서 좀 가져와줄래?"

"금방 다녀올게요!"

가온이 집을 향해 떠난 이후, 나는 침대 시트를 정리하며 가온이 오기를 기다렸다.

"누리야, 섬유탈취제 좀 많이 사와야겠다."

"거기 냄새남? 안 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여기에 익숙해져서 그래."

문을 열어두면 소리가 새어나가고, 주기적으로 환기를 해도 냄새가 더 빨리 안에 스며들 정도로 매트리스의 상태는 조금 심각했다.

"그럼 사장님, 저희 이거 다 시트 빨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이건 돈으로 해결하자."

삑삑삑.

나는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니 다시 띵똥하는 소리가 울렸다.

"유성 클리닉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시죠."

기계적인 걸음으로 들어온 유성의 X로이드는 침대들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계라도 침대의 오염상태는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고객님, 실례가 안 된다면 이쪽 매트리스는 통째로 일광건조해야할 것 같습니다. 요금이 추가로 발생하는데 괜찮으실까요?"

X로이드는 좌우로 늘어진 침대 중에서도 내가 가장 처음으로 구매한 가장 넓은 사이즈의 침대 매트리스를 가리키며 일광건조를 제안했다.

"상태가 심한가요?"

"예. 오염도가 상당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매트리스의 교체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X로이드가 말하는 오염도, 그러니까 매트리스 안에 물이 흘러내려가 젖거나 냄새가 밴 정도는 상당히 심각했다.

"커흠흠."

물론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침대와는 달리 저 침대는 사실상 마력공급 전용 침대였으니까. 애초에 더블 사이즈인 여러 침대 사이에서 유일하케 킹 사이즈인 이유도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럼 저 매트리스는 새로 사야겠네요."

"...구매하신 지 한 달밖에 안 지났는...아닙니다. 유성의 제품을 애용해주시는 분을 위하여, 오늘도 유성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X로이드는 창문을 열고 매트리스를 들어 밖으로 집어던졌다. 다행히 아래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고, X로이드는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려 매트리스를 챙겨 건물을 떠났다.

"역시 유성의 것은 거르는 게 답입니다. 저게 판매사원으로서 할 짓입니까?"

"어쩔 수 없지. 너랑 내가 저기서 한 것만 하더라도 요 일주일 사이에만 다섯 번이 넘잖아. 아마 저기 1/4는 네 땀이랑 애액이...."

"버려야 할 건 빨리 버리는 게 정답이죠. 멋진 업무 처리였습니다. 역시 회사는 별로여도 그래도 X로이드는 좋습니다."

"사장님? 밖에 뭐 날아다니던데...."

가온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계약서를 받았다.

"301호에 들어가는 걸로 계약할게. 부모님께는 가온이가 잘 얘기해줘. 돈은 여기 적힌 계좌에 그대로 입금할테니까."

"사장님, 저희 집이지만 조금 가격 쎈데 괜찮으시겠어요?"

"솔직히 8평 원룸에 100지르는 건 에바임. 다른 곳이 5평에 100이라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긴 한데, 내가 설득 안했으면 울 엄빠는 120 질렀음."

헬조선의 신서울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이 더이상 아지트가 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새로운 마력 공급의 아지트를 구해야했다.

"계약하면서 방음부스도 설치할게. 부모님께는 뭐...개인방송한다고 전해줘. 설치비용이랑 해체비용 전부 다 내가 지불한다고 하고."

"아무리 그래도 역시 사장님한테 안 좋은 조건만 가득한데...."

"어차피 내가 월세 내는 돈 너희한테 돌아가는 셈이잖아. 그리고 가온아, 누리야. 여기서 제일 유리한 사람은 누구?"

"......!!"

내가 사무실에 출퇴근을 하게 된 이상, 둘은 이제 한 층만 내려오면 나와 만날 수 있다.

"그,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요. 누리야, 내가 엄마한테 얘기해둘게. 나중에 물어보시면 말 잘 해줘."

"엄빠는 내가 지금 이능력자 된 것도 모르는데 뭐 나한테 묻기나 하겠음? 언니가 했다고 하면 잘했다고 칭찬하시겠지. 언니 알아서 하셈."

집문제는 이걸로 해결. 이제 남은 건 사무실에 있는 중요 물품들을 나의 새로운 숙소, <가온누리>로 옮기는 것 뿐이다.

"용역 부르자. 웃돈 좀 주면 사람 칼같이 날아올 거야."

"사장님,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녜요? 그, 내일 그거 하시려면 돈 엄청 깨질텐데."

"걱정마. 오늘 돈 벌고 올 거거든."

나는 넷에게 합장을 하며 사과했다.

"풍유환 만들어서 팔 거니까, 오늘 분량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할 것 같아. 어, 오늘 누구랑 하기로 했지?"

나는 ###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 * *

"오셨습니까, 아가씨."

"네. ...그보다 여기까지 와서 가면을 그렇게 써야 해요?"

"이건 제 아이덴디티 같은 거라."

문신사는 자신이 쓴 하회탈을 톡톡 건드리며 웃었다. 안쪽에 검은 그림자가 피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문신사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알아보신다고 하신 건 어떻게 되셨습니까?"

"말짱꽝이에요. 지휘관은 무슨. 그냥 발정난 변태새끼더구만."

선겨울은 자신의 가슴을 아래에서 받쳐들며 피식 웃었다.

"자기는 아닌 척 하면서 몇 번이나 보던데, 남자들 시선이 다 똑같죠.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보더라니까요."

"......그건 조금 부러운 말이군요."

"푸흡. 당신은 당신 거 보세요."

"그런 식으로 받아치기 있습니까?"

선겨울과 문신사는 서로 키득거리며 소파에 마주앉았다. 시시콜콜한 농담은 이제 끝났고, 서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되었다.

"아버님 진짜로 서울수복작전 하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죄송합니다만 이번에는 저도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아가씨께서 한 번 제안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빠랑 싸웠잖아요. 한 번만 더 내 '일상생활'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선겨울은 인상까지 찡그리며 성질을 부렸다.

"그리고 제 말이라고 듣겠어요?"

"하나뿐인 혈육 아닙니까."

"혈육 말을 무조건 들으면 모든 자녀가 부모님의 아래에서 교육을 받는게 아니라 명령을 듣는 게 되겠죠. 저는 그런 사람은 싫네요."

선겨울은 손을 좌우로 흔들며,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후우, 답답해. 그냥 평소처럼 코트 입고 나갔으면 편했는데 괜히 사무원처럼 꾸민다고 나서가지고."

"하지만 덕분에 사장님의 눈길은 끌지 않았습니까? 물론 캐쥬얼 복장이든 뭐든 그의 눈을 끌었을 것 같지만요."

"쯧. 풍유환 좀 어떻게 얻어볼까하고 접근한 건데...."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하던가. 문신사는 조금 배알이 뒤틀렸다. 하지만 풍유환을 간절히 원하는 건 자신 쪽이라 조용히 입을 닫았다.

"거래를 누구 한 명이랑 터놓은 건지 계속 한 명한테만 파는 것 같...어라?"

"왜 그러십니까?"

"하나 더 판매한다는데요? 이번에는...100억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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