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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10화 (610/1,497)

〈 610화 〉2부 2장 05

문을 열자 나타난 사람은 OL 복장의 흑발 여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나는 바로 여인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라온과 비슷한 170 조금 넘는 키. 검은 정장은 분명 사무실에서 매일 입어야 하는 옷이지만, 마치 섹스 어필을 위해 일부러 몸의 선을 드러낸 것 마냥 몸의 라인이 전부 드러났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름모를 그녀의 마음가짐.

- ㅗㅜㅑ

- ㅗㅜㅑ

- 누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죽어어어

정장 마이와 와이셔츠 사이에 감춰진 그녀의 흉부장갑은 눈으로만 슬쩍 봤음에도 E~F는 족히 될 정도로 풍만했다. 허리까지 가늘다보니 더욱 가슴의 크기가 더 부각될 정도였다.

"음…."

스캔에 0.5초, 다시 눈을 마주하는 데에 0.5초.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어떤 면접을 보기 위해 오신 거죠?"

"오라클 스튜디오 사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왔습니다."

"사무원이라…."

확실히 아직 공고는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면접을 직접 보러 올만한 곳은 아니다.

'별점 1점대 기업.'

내가 하도 면접에서 많이 까버리다보니 온갖 악플 테러를 받아, 사실상 오라클의 이름을 팔아 한탕하고 튀려는 벤처 기업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사무원이 확실히 지금 자리가 비었기는 했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조금 곤란하네요."

"그럼 안에서…?"

"아뇨. 모처럼이니까."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커피 한 잔 하면서 면접을 보도록 할까요? 저희 스튜디오가 딱히 까다로운 곳은 아니라서요."

나는 안쪽을 향해 윙크한 뒤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여인은 내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왔다. 나는 평정을 유지하며 카페의 문을 열었다.

'좆됐다.'

도대체 이 여자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흐름을 박살내기 위해 태어난 여자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DLC 없데이트로 인해 운명이 뒤바뀌기라도 한 걸까.

"사장님, 잠시 자리 있을까요? 사무원 면접을 보려고 하는데."

"자리야 널린 게 자리지. 뭘로 하겠나?"

"저는 주는대로 마시겠습니다."

"딸기 에이드 한 잔이랑…."

나는 그녀의 가슴을 눈으로 흘기고 메뉴판을 가리켰다.

"...캬라멜 마끼아토 핫으로 한 잔."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왜 지금 이곳에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모르는 얼굴이지만, 딱 하나 아는 건 있었다.

저 F컵 가슴은 내가 아는 가슴이다.

"앉으시죠."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의 이력서를 꺼냈다. 일부러 종이로 출력하여 투명 파일집에 넣어온 그녀의 철두철미함에 나는 내 생각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일단 개인 신상 좀 확인하겠습니다. 이름이...선겨울? 나이는 23살?"

"네. 23살입니다."

"......."

아무리봐도 23살이 아니라 숫자를 뒤집어야 할 32살의 연륜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녀의 얼굴은 23살이기는 했다. 몸매가 탈한국인이었지만, 일단 프로필은 그랬다.

"신서울여고 졸업에...이능력자시네요? 환속성 D급. ."

"정신계 이능입니다. 전문가 분에 따르면 사고 속도가 두 배라고 했습니다. 히어로나 헌터 쪽으로 활동하기에는 제 이능이 그 쪽으로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과연. 사무업무에 확실히 뛰어난 재능이 있으시겠군요."

딱히 특이한 이능은 아니다. 마력을 각성했으니 신체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한 것도 보통이고, 환속성 중에 대표적인 사기 이능인 시간가속이나 공간왜곡에 비하면 훨씬 깜찍한 이능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희 스튜디오에 입사를 지원하셨습니까? 솔직한 말로 저희 스튜디오, 네트워크 보고 오셨으면 진짜 평이 안 좋았을텐데."

"그,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배우가 꿈입니다."

"......계속 말씀해보세요."

"하지만 집의 반대가 심해서 배우 일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관련 업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우고 싶습니다!"

선겨울의 포부는 가슴만큼이나 당당했다. 마침 후안 사장이 음료를 만들어 우리 테이블에 놓았다. 가운데에는 티라미수가 놓여있었다. 그것도 그냥 티라미수가 아니라 딸기 티라미수.

"사장님?"

"서비스임세."

후안은 선겨울에게 윙크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딸기 에이드를 홀짝이며 포크를 집어들었다.

"집의 반대가 어느정도로 심하시길래?"

"...어, 음, 세무조사...를 하십니다."

"...? 가족분이 국세청장이라도 되세요?"

"아뇨. ...거기 프로필에 적어놨습니다."

나는 티라미수를 딸기와 함께 퍼서 들어올렸다. 다른 손으로는 입사 지원서를 들어올렸다.

"가족관계, 부친, ...선의철?"

"...네. 아버지께서...선의철 대통령이십니다."

툭.

딸기 티라미수가 에이드 속으로 퐁당 떨어졌다.

* * *

"이거 아무리봐도 천가을인데."

- 와! 천가을 아시는구나! 겁나 불쌍합니다.

- 리얼큥큥만 치라고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하 씨, 반응 보니까 천가을 각인데."

[라온.D.슴가] : 무슨 근거로 천가을이라고 하는 거임? 지금 서울에 있는데.

"그러니까요."

천가을.

3월 1일 서울수복작전에서 주인공 일행이 맞딱뜨리게 되는 빌런이자, 챕터 1의 보스이자, 숨겨진 히로인.

나로서는 인연이 깊은 그녀를 마주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타이밍에 이런 신분으로 나타나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애초에 선의철이 어떻게 딸이 있는 거죠? 그 사이즈로 애를 만들 수 있기는 한가?"

- 거기가 작은 거지 씨가 없는 건 아니잖아

- 현대 의학 대단해!

- DLC라고 엌ㅋㅋㅋㅋ

"진짜 골때리게 하네요. 얘 까면 괜히 세무조사 들어오는 거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선의철의 딸이다. 위조를 하지 않은 이상 선겨울은 선의철의 딸이 분명했다.

"진짜 천가을같은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눈앞에 23살을 연기하고 캬라멜 마키아토를 달콤하게 들이키고 있는 이 흑발의 폭유 여인은 천가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심증만 확실할 뿐 물증이 없다.

'큥큥하면 바로 알 수 있는데.'

그냥 만지는 걸로는 상대의 스탯을 확인할 수 없다. 자지가 자궁을 찔러 마력을 공급하는 순간, 상대의 스테이터스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영입해서 스텟 확인하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고."

[라스트지휘관] : 능력치 조작한 이능력자면 그 조작된 스텟으로 보이니까요. 마력공급 하기 전까지는...ㅎㅎ

영입한 동료의 능력치마저도 믿으면 안 된다.

예를들어 유성의 X로이드일 경우, 마력공급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간 이능력자로 프로필에 나타난다. 시스템창 마저도 지휘관 이능의 발현이기에, 서로 살을 섞으며 그 실체를 알아보라는 의미라나 뭐라나.

"근데 떡쳐서 확인하면 지휘관인 거 걸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선의철한테 들키잖아요."

매력적인 여성인 건 분명 인정하는 바이다. 얼굴은 달라도 몸매는 천가을을 쏙 빼다박았으니까.

"흠...분명 DLC로 뭔가 바뀐 것 같은데."

DLC는 어디까지나 추가 요소지 본편의 내용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챕터 1의 보스는 천가을이 확실하고, 서울의 지하에 자리잡은 빌런들이 개미처럼 뛰쳐나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게임은 흘러가기 시작한다.

"천가을 자매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좋아요. 이거 공략해보겠습니다."

- ㄹㅇ?

- 선의철 딸인데?

- 히로인 아니면 어쩌려고 그럼?

- 히로인만 공략한다며

"아, 시끄러워요. F컵 OL 마력공급 씬 한 번 찐하게 찍어드리면 되잖아요."

- ㅇㅈ

- ^^7

- 오늘부터 너는 히로인이야!

태세전환이 수준급이다. 나는 잠시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히로인과는 달리, 천가을은 그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여자였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누구도 보지 못하게 허공에 글자를 적었다.

천가을이면 계속 가고, 그냥 DLC 추가 히로인이면 나중에 다시 정하는 걸로.

"푸흐흐."

허락을 구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녀가 천가을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면 된다.

즉, 마력공급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천가을이 아니라면 선의철의 딸을 금발서양남이 잡아먹는 셈이 될테니 선의철에게도 큰 정신적 타격이 될 거고, 천가을이라면 나중에 고생할 필요 없겠네요. 빌런을 동료로 영입하는 거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결정났다.

"그럼 지금부터 작업들어갑니다."

알고있는 공략이 통할 지, 아니면 새롭게 공략을 시도해야 할 지.

나는 본격적으로 선겨울을 먹을 계획을 세웠다.

* * *

"언니, 뭐 들리는 거 없음?"

"2층에서 1층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겠습니까. 방음부스까지 설치되어있는데."

"아 씨, 방음부스 왜 설치함!!"

"방음부스 있으니까 '햐으아아앙!'하면서 소리 마음껏 질러도 안심된다고 한 게 누구더라."

유나는 조용히 커피를 홀짝였다. 라온과 누리, 가온은 바닥에 귀를 기울인 채 1층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마력까지 사용하며 엿들으려 했다.

"참…."

"유나 언니, 언니는 걱정 안 됨? 뉴페이스가 될 지도 모르는데?"

"그거야 오빠 마음이지. 그냥 사무원으로 영입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다섯 번째...아니 여섯 번째 팀원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유나는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습니까?"

셋은 유나의 의연함에 놀랐다. 유나가 그를 향해 보이는 애정을 생각하면 당장 아래로 쳐들어가도 모자라지 않건만, 유나는 마치 득도한 도인처럼 커피만 홀짝이고 있었다.

"애초에 오빠가 팀원 7명 모집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저말고 다른 여자 6명은 더 있다고 처음부터 마음먹고 있었어요."

"...언니 진짜 대박."

"대범하다고 해야할 지, 아니면 해탈했다고 해야할 지."

"둘 다죠. 여기서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유나는 자조하며 사무실에 늘어진 침대를 가리켰다. 이미 벽면 한 켠을 가득 채운 침대는 무려 다섯 개나 놓여있었다.

"이러다 나중에 사무실 전체를 침대로 가득 채우지 않기만 바랄 뿐이에요. 다행히 여기는 침대가 오빠 거랑 여자 7명, 총 8개 침대가 들어올 공간밖에 없으니까요."

"오빠 나중에 건물 새로 산다고 하지 않았음? 길드하우스 전용이라는 느낌으로."

".......어머, 커피 다 떨어졌네요. 1층에 가서 주문 좀 하고 올게요."

잠시 뒤.

네 여자는 서로 누가 내려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 * *

"선겨울 양. 한 가지 확답을 받고자 합니다. 당신의 입사를 저희가 수용할 경우, 정부측에서는 아무런 해코지가 없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럴 겁니다. 왜냐면…."

선겨울은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당당히 말했다.

"저를 자꾸 옭아매려 한다면 아예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아, 예."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선의철이 딸을 과연 어떤 식으로 대하는 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선겨울을 스튜디오의 직원이자 팀원으로 들이기는 다소 애매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회사에 들어오면 온갖 일을 다 보게 될텐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맡겨만주세요."

"만약에. 이건 만약입니다만."

나는 팔을 괴고 선겨울을 향해 다른 쪽 손을 뻗었다.

"제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해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면, 그래도 저희 스튜디오에 들어오실 겁니까?"

"......이건 면접 질문입니까, 성희롱입니까?"

선겨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에 경멸이 어리기 시작하고, 살짝 뒤로 당긴 의자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뛰쳐나가려는 듯 보였다.

"무례한 성희롱이죠."

"그걸 알면서 하는 이유가 대체 뭐죠?"

"그거야 저희 스튜디오에서 하는 일이 그런 거니까요."

"......네?"

"선겨울 양이 진심으로 끌리지만, 동시에 선겨울 양을 생각하여 분명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 스튜디오는 명함을 통해 아셨다시피 진짜 오라클 스튜디오의 한국 지사이나, 구체적인 배우 모집에 대해서는 알려드린 바가 없습니다. 사무원 일을 하시다보면 싫어도 보게 되겠죠. 앞으로 겨울 양이 보게 될 분들에게 말할 업무이기도 합니다."

"......설마 배우라는 게?"

"예. 그렇습니다."

나는 오라클을 팔았다.

"포르노 비디오-"

"남녀배우간에 정사씬이 들어가는 영화거든요. 참고로 제가 남자 배우 역할까지 겸하는...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선겨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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