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5화 〉2부 1장 25
<잠시 뒤, 카페 Padre Juan.>
석하랑에게 떡밥은 뿌려두었다.
한 번 꿀맛을 본 나비는 알아서 거미줄을 향해 다가 올 것이며, 나는 그걸 기다렸다가 단 번에 잡아먹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한우 집에서 3명이서 100만원을 긁었고, 유성의 택시를 이용해 카페로 돌아와 후식을 즐겼다.
"그러고보니 사장님, 결국에는 스카우트 오늘 실패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S급 여자 헌팅한다고 하시더니."
둘이 가진 의문은 당연했다. 아직 둘에게 석하랑에 대한 작업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고, 그 외에는 따로 추파를 던진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내 행동 반경에 도움을 줄만한 히어로나 X로이드에게 눈도장을 찍었을 뿐.
"아직 스카우트 안 끝났습니다. 라온, 당신은 사무실을 지켜주세요. 유나도 괜찮으면 라온과 함께 자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씀은...."
"혼자서 다니시겠다?"
두 명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낮에도 혼자 다니기는 했지만, 밤에도 혼자 다니겠다는 건 어느정도 속이 보이는 것 같은 말이기도 했다.
"사장님, 혹시 저희 몰래 클럽 가려고 하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냥 스카우트를 하러 다니는 겁니다. 야행성인 분들을 찾아나서는 거죠. 걱정마세요."
"그, 그럼 사장님. 그...."
유나는 슬쩍 시계를 가리켰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소화시키는 동안 쿨타임은 끝났다. 시스템보다도 더 철저하게 마력공급 관리를 하려는 유나의 의지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안됩니다. 혹시나 스카우트 실패하면 풍유환 하나 만들어야죠. 만약에 스카우트도 안 되고 풍유환 거래도 안 되면, 그 때는 둘 중 한 명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네요."
"그건 역시...!"
"예. 혹시나 미각성자나 제법 괜찮은 분 있으면 낚아볼 생각이에요."
"......후우."
대놓고 다른 여자를 찾아나서겠다고 말했지만 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해둔 덕분에 호감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둘은 분명히 실망하고 있었다.
"아 참, 그거 알아? 마력공급은 결국 이능의 발현이라는 거. 내가 지금까지는 무조건 첫 발에 마력을 불어넣었지만, 그게 꼭 첫 발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얘기지."
나는 머그컵을 트레이에 넣었다. 둘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트레이에 자신의 컵을 올렸다.
"사장님, 저희 이거 들고가서 마실게요. 씻어서 반납해도 되죠?"
"그러시게. ...그런데 자네 혹시 일부러 내 영업시간 맞춰서 올라가는 건가?"
"후후. 사장님, 제가 오늘 여기서 산 음료만 10잔이 넘잖아요. 봐주세요. 내일 날 밝으면 바로 방음부스 설치하러 업자 들어올 것 같으니까."
"으휴, 내가 진짜 자네가 내 옛날 모습 보는 것 같지만 않았어도. 알겠네. 30분만 기다리시게. 정리하는데 시간도 필요하니."
나는 후안 사장과 가벼운 협상을 하고 바로 2층으로 올라왔다. 둘은 아예 카페의 뒷정리를 돕겠다며 1층에 남았다.
"흐흐흐."
나는 잠시 시스템을 열었다.
"호감도 관리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스카우트는 하러 가야한다. 그리고 스카우트보다도 중요한 건 유나가 조바심을 냈던 사정 관리, 마력공급의 쿨타임이었다.
한 시간이라도 손실이 일어나지 않게 나는 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 고기 냄새가 잔뜩 스며들어있지만 곧 제거가 되리라.
"사장, 아니 오빠. 후안 사장님 가셨어요."
"그...저희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순서는?"
"두 명 한 번에 하는 건 좀 그렇고,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지. 유나야, 씻고 와."
"네!"
유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샤워실로 달려갔다. 라온은 쓰게 웃으며 유나가 흘리고 간 외투를 정돈했다.
"역시 선후배 관계는 중요한...."
"응? 나이로 얘기한 건데?"
"......?"
"유나 씻는동안 가만히 놀 생각이었어? 벗어. 아니면 내가 벗겨줄까?"
"......벗겨주시길♡"
잠시 뒤.
유나가 무려 30분간의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라온이 세 번을 가버리고 기절한 뒤였다.
* * *
"......언니, 자요?"
"아직 안 잡니다."
한 침대에 알몸으로 누운 두 여인은 서로를 마주보며 멋쩍게 웃었다. 비록 박힌 타이밍은 다르지만, 둘의 뱃속에 뜨겁게 자리잡은 흔적은 같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오빠는...?"
"방금 나갔습니다. 저희 자는 줄 알고 나간 것 같습니다."
"...피, 재우고 나가다니. 치사해요."
"자는 척 해서 그를 배려한 건 유나 아닙니까."
둘은 암묵적 합의를 보고 잠든 척 했다. 유나는 스스로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 저희 이러다 임신하면 어떻게 하죠? 저 곧있으면 생리 오는데."
"유나는 그걸 바라십니까?"
"...적어도 책임 안 지실 분은 아니잖아요. 짧은 기간동안 보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신하면 분명 책임지실 겁니다. 역사상 지휘관이 다른 이를 임신시켰다는, 혹은 임신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둘은 잠시 슬픔에 잠겼다.
지휘관의 이능을 가진 자는 씨 대신 마력을 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혹시나 그라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둘은 잠시 해봤지만, 역시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자손을 본 지휘관은 없었다.
"......유나는 임신하고 싶은 겁니까?"
"그건 아녜요. 오빠를 뵌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 오빠는 저를 그냥 여자이자 키우고 싶은 이능력자로 보고 있으니까요."
유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만약 제가 오빠한테 반해서 사랑을 갈구한다고 해도, 오빠는 저를 사랑해 줄 수 없는 분이잖아요. 지휘관이시니까."
"만약이 아닌 듯 합니다만."
"...언니도 다를 건 없지 않아요?"
"훗, 그렇습니다."
라온은 시원하게 자신의 속내를 인정했다.
"모든 걸 차치하고, 그는 제게 있어줄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제게 유일하게 희망이라는 것을 준 분입니다. ...유나는 어떤 이유로 그분과 인연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둘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섹스로 인한 피로감이 몸에 깊게 묻어 있어 더이상 의식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유나."
"저도요, 언니."
새근, 새근.
둘은 조용히 침대에서 서로의 온기를 공유하며 잠에 들었다.
* * *
세 시간 뒤.
"사장님 카페가 24시간이 아니니까 이게 문제네요."
나는 두 명을 가볍게 재우고 밖으로 나왔다. 자정이 훌쩍 넘긴 때라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지만, 신서울의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진 네온사인은 어둠을 형광빛으로 밝히고 있었다.
"딸기라떼 하나 더 주문하고 올라올 걸."
- 딸기학살자ㅋㅋㅋㅋ
- 남편이 딸기 안 사줌?
- 내 생각에는 현실에서 먹고 여기서도 더 먹는 거임ㅋㅋㅋ
"어차피 게임 속에서도 음식 맛보고 할 거면 맛있는 걸로 먹는 게 낫죠."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딸기 단지 우유는 결코 잘못된 게 아니다. 나는 유성 산하의 편의점 브랜드, US24에서 비닐 한 가득 야식을 구매하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낮보다는 인파가 적으니까 쫓아오는 사람도 없네요."
낮에 보인 기행 덕분에 추적하는 사람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사람들의 눈이 줄어든, 나의 움직임에 대해 어느정도 눈감아줄 수 있는 사람들만 나를 보고 있을 때야말로 S급 여자를 스카우트할 절호의 기회다.
"아까 왜 3P 안하냐고 하는 사람들 자꾸 있는데,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사고가 안 나는 법이에요. 괜히 지금 없는 사람 한 명 왕따시키면 안 되잖아요."
- 쓰리썸 거르고 포썸 가즈아아아아
"사실 영입하고 4P하려고 따로따로 한 거임. 푸흐흐."
- ㅁㅊ?
"다들 쉬운 여자라고 생각해서 걸리기 쉬운 함정이죠. 지휘관 설정 자체가 하렘을 적극 권장하는 설정이니까."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세 명의 스타팅 멤버는 한 순간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영입이 상대적으로 쉬운 이들이라는 의미이며, 3월 전까지 영입하지 않으면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수도 있다.
"보통 라온이나 누리 영입하고 바로 3P각 보는 분들 있죠? 애들도 서로 의기투합해서 그런 분위기 조성하고. 휩쓸리면 님들 나중에 하렘루트 막혀요."
- ?????
- 아니 3P랑 4P랑 무슨 차이가 있다고?
- 하렘학박사ㅋㅋㅋㅋ
- 딱히 문제 없던데? 하렘이 왜 막힘?
"17P 하는 방법 알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하는 거 보시길."
- 따르겠습니다, 지휘관.
- 하렘 기준이 넘나 다르잖아ㅋㅋㅋ
- 아 하긴 유나랑 누리랑 편먹으면 골치아프지....
- 반대도 더럽게 골치아프긴 해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난교를 스타팅 멤버 셋과 동시에 하지 않으면 나중에 히로인들을 한 명씩 늘릴 때도 골머리를 썩히기 마련.
"먼저 3P한 애들이 자꾸 독점하려고 드니까 히로인들끼리 서로 다투는 경우가 생기죠. 어차피 다 똑같이 제 여자들인데도. 그러니까 이제 나머지 한 피스 모으러 갑니다."
- 앗
- 역시ㅋㅋㅋ
- 쉿쉿
"뭘 쉿이에요. ...크흠. 슬슬 왔네요. 그럼 시작합니다."
스르륵. 나는 시스템창을 내리고 놀이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등학생들이 놀 법한 놀이터의 그네에는 흑발의 작은 소녀가 그네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좋게 봐줘도 초등학교 5학년 정도.'
키는 대략 140. 가벼운 츄리닝 차림의 그녀는 그네에 홀로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는 체형과 어울리지 않는 캔맥주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참견, 하지않고는 못 배기겠어!"
나는 당당히 놀이터로 달려갔다.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성큼성큼 걸어가 여인의 앞에 섰다.
"실례합니다?"
"......?"
여인의 얼굴을 붉게 취해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뒤에는 빈 캔맥주가 여러 개 나뒹굴고 있었다.
"뉴구셰여?"
여인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내게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주사가 있던가?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고 그녀가 바닥에 흩뿌린 캔맥주를 가리켰다.
"혼자 드신 거예요?"
"왜요? 당신도 내가 애가타서 술 못 마시는 줄 아라여?"
"......잘 드시는 걸요. 그냥 제가 하고싶은 말은."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괜찮으시면 저랑 한 잔 하시는 게?"
짤랑. 나는 비닐 안에서 캔맥주를 꺼내들었다. 일부러 지금을 위해 챙겨온 캔맥주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게 될 브랜드의 캔맥주로-
"아, 나 흑맥 조아하는데. 히히, 고마워요."
"......아, 예."
나는 날짜를 다시 상기했다. 아직 그녀가 졸업을 하려면 한참 남아있고, 벌써부터 수입산 흑맥주를 입에 대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있었다. 뭔가 설정이 바뀐 건가?
"근데 머리는 왜 노란색이에여?"
"그거야 제가 외국인이니까요."
"헤헤, 신서울에서 외국인 보기는 처음...."
순간, 여인은 내게 캔맥주를 집어던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캔맥주를 피했다.
"꺼져, 씨발련아!"
"......???"
"이 개같은 길드! 휴가라고! 일주일 휴가 몰아쓰고 왔짜나! 씨발 한국 온지 이틀도 안 지났는데 일 시키려고 온 거지! 내가 사표쓰고 때려친다, 이 개간년들아! 퍼큐우우우!!"
"......술 취했네."
나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관심이 픽 사라졌다.
"술 내놔요. 당신 주려고 산 거 아니니까."
"닥쵸! 내 꺼야! 줬으면 내 꺼지 뭘 또 가져가려해! 길드장한테 전해! 나는 안 도라간다고!"
"말이라도 제대로 하던지. 나 참. 미치겠네."
있어야 할 누리는 어디가고 이런 술주정뱅이가 눈앞에 있다는 말인가. 나는 한숨과 함께 손을 들어올렸다.
"뭐, 때릴꺼야?! 때려봐, 씨발, 그럼 나도 때려칠 꺼야! 내가 그딴 취급 받으려고 한국 뜬 줄 알아?! 나도 한국에서 길드 드러가면 잘 나가는 여자라고-"
"결의, 원탁신조."
"우리의 결으...어...."
여인의 몸이 굳었다. 취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표정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그걸 당신이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 지는 알 바 아니고, 너 뭐냐? 너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그, 그게...."
여인은 침을 꿀꺽삼키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도, 동생 보러 한국왔는데, 저 휴가 복귀 시키러 쫓아온 길드원인 줄 알고...."
"...하아."
절로 한숨이 깊어졌다.
"DLC 개같은...."
<운디네> 김가온.
...원래 김누리와 마주쳐야했을 이벤트에서, 나는 김누리의 한 살 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