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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593화 (593/1,497)

〈 593화 〉2부 1장 23

헌팅이라고 밖을 나섰지만 신서울은 위험한 곳이다. 서울보다도 더 작은 도시에 인구 천만이 한 곳에 모여있으니,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 넘쳐흘렀다.

"유나, 라온. 둘에게는 지금부터 둘이서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와주세요."

나는 둘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겼다. 사무실에 떨어진 물품들을 구매해달라는 의미인 동시에, 둘과 따로 행동하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사장님, 위험하지 않겠어요?"

"에이, 신서울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 아닙니까? 위험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 혼자서 다녀도 괜찮습니다."

사실 노리고 있는 자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서로를 견제하느라 역설적으로 주인공은 제법 프리하게 다닐 수 있다.

'그리고 혼자서 다닐 때 히로인들과 썸이 생기기 마련이지.'

보이 밋 걸. 러브 인카운트. 운명적인 만남은 무조건 생기게 되어 있으며, 그걸 캐치하여 히로인과 만날 기회를 만드느 게 진정한 프로 지휘관의 면모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럴 껀덕지를 만들어놓았다.

"여성용품 같은 건 둘이서 사는게 아무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그걸 여기서 대놓고 말씀하시면."

침대위의 둘은 세상 부끄러울 것 없이 행동했지만, 역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바깥에서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마도기어를 이용해 둘에게 현금을 넘겼다.

"둘이서 이것저것 사고 와요. 만날 시각은...6시면 되겠죠? 식당 하나 예약해뒀으니까 여기서 만납시다."

나는 윙크와 함께 둘에게 손을 흔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유나와 라온은 둘에게 지급된 품위유지비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사장님!"

"너무 많습니다!"

"걱정마요, 나 돈 많으니까."

앞으로 들어올 돈이지만. 나는 둘에게 나의 전재산을 1/3씩 맡기고 몸을 돌렸다. 돈이야 지금부터 벌면 그만.

"돈 들어올 곳도 있고."

저 멀리서, 블루베리 향을 풍기는 여인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 *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 혼자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여기서 퀴즈. 주인공을 노리고 있는 세력은 전부 몇이나 될까요?"

- 답 : 존나많다

- 세력으로 줄이면 일단 손가락안으로 셀 수 있음

- 정조를 노리고 있는 세력도 추가해야하지 않음?ㅋㅋ

"아, 전제 안 달았다. 신서울입니다."

나는 홀로 유성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색했다. 그들은 금발외국인이 혼자서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빨고 있는 것에 의아해했지만, 금방 관심을 거두고 나를 스쳐지나갔다.

"일단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제 뒤 테이블에 앉은 사람 둘, 선의철 끄나풀이네요."

- ???

- 결혼 앞두고 있는 연인들 아님?

- 걍 헌터들인데

"신혼 앞둔 부부가 이 시간에 모텔가서 섹스하고 있어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농담이고 유성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쌩으로 시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선의철네 애들이라는 증거에요. 설정상 여기 커피 쓰레기니까."

- 그건맞지

- 클레임 걸어봤자 무소용ㅋㅋ

- ??? : 나는 돈이 제일 좋아!

범인은 당연히 은유하(27세).

본인은 외국에서 전용기로 커피콩을 공수해 올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지만, 대중에게 판매하는 아메리카노의 원두는 그닥 품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따라서 그걸 둘이서 주문해서 마시고 있다? 검정(黑)이다.

"그리고 쟤들 저 누군지 알아요. 한 명은 성범죄자 출신 C급이고, 한 명은 문신 박혀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D급 사기꾼이죠. 둘 다 쓰레기인 건 마찬가지고요."

- 호국청년단 다 얼굴 가리고 다니는 엑스트라들인데?

- 쟤들 간부급도 아니라서 평대원 아님?

- 뭐 60억 다 알고 다니나ㅋㅋㅋ

"이능력자들은 왠만하면 다 알고 있어서."

피닉스 루트에 진입하기 위해 조그만 단서라도 얻으려고 그는 모든 이능력자를 전수조사했다. 그건 적이라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호국청년단의 끄나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 맞은 편 카페에 노트북으로 뭐 보고 있는 빵모자 쓴 여자 있죠? 저 사람 히어로에요. 협회에서 비밀리에 지휘관 지키라고 감시하는 히어로. 아마...<화륜> 강시아?"

- 어 진짜네ㄷㄷ

- 남자아님?

- 변장이잖아ㅋㅋ 알고보니까 화륜 티가 나네

<라스트지휘관> : 여자니까 스카우트 ㄱㄱ?

"B급 화속성. 여자지만 거릅니다. 히로인 아니니까. 음...하지만 재미있겠네요. 잠시만요."

화속성이니까 한 번 장난이라도 쳐볼까.

나는 시스템창을 내리고 음료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머그컵도 아닌 플라스틱 테이크 아웃 잔이라 들고 나가는 것에 눈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시스템창을 연 방금 전과는 달리, 지금 목소리는 전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들리니까.

"마스크 좋고, 체형 괜찮고...."

뚜벅뚜벅.

대로를 성큼성큼 가로질러, 나는 곧장 유리창 너머의 화륜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왁?!"

누구나 유리창 너머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면 놀랄 것이다. 하물며 금발의 외국인이 손까지 유리창에 붙이고 자신을 바라본다면.

"초럭키."

나는 명함을 꺼내 카페의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은 나를 바라보며 몹시 당황했지만 말을 붙이기 어려워했다.

"힘세고 강한 저녁, 안녕하신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시안.히비스커스."

나는 공손히 화륜에게 인사했다. 실내인데도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 으, 익스큐즈 미?"

"만나서 반갑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잠깐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예. 무슨 일이시죠?"

화륜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의연히 대처했다. 눈빛에 나에 대한 경계와 믿음이 동시에 스쳤다. 나는 안에서 분홍색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이돌에 흥미 없으십니까?"

"......아이돌이요?"

화륜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나는 영업용 스마일을 지으며 설명을 이었다.

"저희 스튜디오에서는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로 배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장의 아이돌>을 컨셉으로 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히어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혹시 생각 있으시면 이 명함으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아, 네, 네."

폭풍같은 말에 화륜은 명함을 자켓 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내게 다가온 점원에게 사과를 한 뒤 화륜에게 손을 흔들었다.

"설령 배우에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다음에 좋은 곳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아...네!"

화륜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걸로 당분간 나를 노리는 시정잡배들은 뜨거운 맛을 맛보게 되리라. 굳이 히로인들이 나서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아아, 크흠."

나는 다시 시스템창을 열었다.

"히어로 협회에서 주시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단순히 금발서양남을 털어먹으려고 접근하는 잔챙이들도 있죠. 거기에 다크 레기온의 첩자도 많아요. 저기 저 남자."

나는 대로를 다시 걸어가 길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남자의 근처에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되실까요?"

그는 대학 레포트라는 핑계로 경부고속도로 수복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라는 명목의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다크 레기온에는 괴인만 있는 게 아니에요. 괴인이 되고 싶은 인간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죠. 이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대신, 괴인이라도 되어서 막강한 힘을 각성하고자 하는 놈들."

- 테라리스트?

- 테러사이트?

- 걍 새끼 괴인이라고 합시다ㅋㅋㅋ

"새끼 괴인...푸흐흐. 그러면 저건 개새끼 괴인이라고 할까요."

사족 보행의 괴물이니 개가 맞다. 나는 회색과 자색이 섞인듯한 마력을 가진 그에게 다가갔다.

"어, 외국분이시네요! 혹시 설문조사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가 지금 대학 과제 중인데...."

"라를 아십니까?"

"......예?"

"마음 속에 근심이 가득해보이십니다."

설문조사에는 전도로 받아쳐라. 나는 당황한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낯빛이 어두워보이십니다. 자주 태양을 마주하며 광합성을 하시죠. 어두운 곳에서만 계속 있으면 몸에 곰팡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예, 마음에도 곰팡이가 생길지 몰라요. 바이러스 같은 거죠."

"......뭐라고 하는 거야?"

"때로는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록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햇빛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창염개진."

"당신 사이비야?"

"그럴 리가요. 한국에 설문조사 하는 대학원생이 있으면 대부분 사이비라고 해서 해본 말입니다. 당신은 아니죠, 그런 사람? 저도 아닙니다."

"......."

그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내가 그를 상대로 장난을 쳤다는 걸 깨달았다. 나야 그가 괴인의 길을 걷지 않도록 했을 뿐이지만, 그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니미 씨벌 치즈 새끼가. 재수가 없으려니...."

"저 지금 번역기 쓰는 거 아닌데. 흐흐흐."

"......."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렸다.

"흠흠. 그럼 실례."

적당히 여러 곳에 어그로는 끌었다. 이제 몇 번 더 종잡을 수 없는 또라이 짓을 더하면 어중이떠중이는 알아서 떨어져 나가리라.

'그러면 진짜배기만 남게 되겠지.'

재미를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다. 주인공의 옆에 꼬이는 파리들을 걷어치워야만 진짜 어여쁜 이들이 주인공의 곁에 스스로 다가온다. 나는 남들의 눈이 닿지 않을, 선의철도 차마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지 못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성희롱이다!!!

- 아바타는 남자니까 관계없음.

남자화장실.

나는 변기 뚜껑에 앉아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따라다녔을 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마도기어를 통해 열린 경매 사이트를 통해, 나는 상대에게 문자를 건넸다.

[약속 장소 나왔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는 잠시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잠시 뒤 옆 칸의 문이 열리더니.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 썩을...."

똑똑똑. 옆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혹시 휴지 있습니까?"

"예. 잠시만요."

나는 품에서 휴지안에 감싸둔 물건을 꺼냈다.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은 옆칸과의 틈이 있기 마련이고, 나는 아래쪽 틈으로 물건을 밀어넣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적당히 휴지로 무언가를 닦는 시늉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적당한 시간을 기다린 뒤, 가볍게 손을 씻고 밖으로 나섰다.

띵동.

마도기어에 알람이 울렸다. 100억. 입금자는 미상이지만 누군가가 내게 100억이라는 거금을 보낸 것이다.

'이 년이?'

50억을 잘못 보내서 나를 테스트하려는 셈이구나. 나는 저 멀리 쇼핑백을 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러면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엣취."

화장실 바로 앞에 있던 흑발의 여성이 기침을 했다. 연예인 뺨칠 정도로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 쓴 그녀는 빤한 내 시선을 피하며 몸을 피했다.

"저기요!"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혹시 아이돌 하실 생각 있으세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딱딱한 목소리. 감기에 걸린 것처럼 낮게 목소리를 깔았지만, 나는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물건을 수령한 자는 그녀의 부하일지라도, 마도기어로 날아온 마력의 흔적은 그녀의 마도기어와 닿고 있었으니까.

- 미친ㅋㅋㅋㅋ

- 와 소름

- 아주 사고싶어서 안달났네ㅋㅋㅋ

"운명처럼 느꼈습니다. 당신은 헐리우드, 아니 전세계에 통할 분이라는 것을!"

"아, 그...뭐 그거야 당연하긴 한데."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혹시 생각 있으시면 꼭 연락해주십시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명함을 쥐어준 뒤,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갔다.

"소고기! 소고기!!!"

내게 명함을 받은 S급 그녀, 석하랑은 더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 * *

"......또라인가?"

석하랑은 검은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을 빙글빙글 꼬며 연락을 기다렸다.

[선배님! 물건 받았습니다.]

"그거 협회 제 숙소에 넣어주세요. 안에 내용물은 절대 확인하지 마시고."

[아무렴 선배님 마력단환을 제가 건드릴까봐요. 이번에는 꼭 효과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지루(地淚)>."

석하랑은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분홍색 명함을 비쳤다.

"......먹튀하면 직접 찾아갈 껀덕지 만들어줘서 고맙다, 똘개이야."

석하랑은 싱글벙글 웃으며 히어로 협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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