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3화 〉2부 1장 13
"역시 침대가 최고지."
나는 사무실 한 켠에 놓인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비록 옆구리는 시릴 지언정 푹신한 침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히로인 한 명 늘릴 때마다 침대도 늘려야지.'
조만간 사무실에 책상보다 침대가 더 많아질 예정이지만, 공간은 더 늘리면 그만이다. 7~8월 중에 해외 파견을 가는 동안 후안에게 허락을 받고 윗 층을 하나 더 늘리면 되니까.
"흠흠...."
나는 매트리스 이곳저곳을 누르며 아래를 살폈다. 이런 사소한 침대 하나하나까지 신경쓰는 걸 생각해보면, 이 안에는 도청장치같은 것이 설치되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엿 먹이는 건 내일 아침에 하면 되겠군.'
뭔가 좋은 정보가 없나 생각하며 듣고 있다면 아마 식겁할 것이다. 동시에 금발서양남의 실체를 알고 잠시 실망할지도 모른다. 상당히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이 여자 저 여자 침대에 끌어들이는 문란한 남자더라.
"흠흠."
나는 잠시 시스템창을 열었다.
"아아, 제 침대에 도청장치가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창을 열어두면 아무 문제 없죠. 이야기 할 때만 시스템 열고, 마력공급 할 때만 듣도록 하게 할 거예요."
- 19금 떡신 ASMRㅋㅋㅋㅋ
"남의 침대에 도청장치 달아놓은 범죄자가 잘못이죠. 푸흐흐."
침대를 사무실에 설치하는 것으로 튜토리얼은 모두 끝났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당장 내일부터 직접 발로 뛰며 인재를 영입해 스쿼드를 구성해야했다.
***
<중요 퀘스트> 동료를 모집하라!
당신은 한국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졌다. 본격적인 '전쟁'이 예정된 3월 1일까지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신과 함께 일 할 동료를 모집해야 한다.
# 기한 : 2월 28일까지.
# 조건 : 동료 최소 7인 이상 확보 ( 1 / 00 ).
***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는 최소 7인 이상의 동료를 확보해야 한다 이거죠."
7명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스토리 상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3월 1일에 있을 큰 사건을 이겨내기 위한 전력을 확보하라는 의미가 크다.
"차원문이 하나 열리죠. 3월 1일에."
- 논산게이트ㅋㅋㅋㅋ
- 미리 훈련병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누군가의 발작으로 인해 열리는 차원문이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로 두고, 지금은 그 7명의 동료들을 '어떤 히로인'으로 모집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같아서는 히로인으로만 영입하고 싶은데 그건 어렵죠."
- 애초에 시작부터 유나 영입한 게 말이 안 되는 건데ㅋㅋㅋ
- 저 똑같이 했는데 유나 저 의심하면서 떠나던데요ㅠㅠ
- 저도 시도했습니다. 공항에서 지휘관인 거 유나한테 밝혔다가 게임오버됐습니다. 해 명 해
"뒤따라 붙은 암살자한테 사망하신 거예요. 암살 피하면 되는 건데 안타깝네요. 푸흐흐. 어쨌든 여캐 하렘 구축할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초반에 히로인을 영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걸 7명이나 하기에는 상당히 힘겨운 일이다. 따라서 히로인의 주변인들 중에 공략할 수 있는 서브 히로인을 영입해 함께 공략하는 것이 낫다.
"이왕이면 능력좋고 예쁘고 히로인 관계자로 하면 좋은데."
예를 들어 김누리의 언니인 김가온이라거나, 은유하가 조종하는 X로이드 여캐라거나.
'생각만해도 군침이 솟네.'
누굴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더러운 인남캐는 필요없다. 아무리 성능이 S급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XY 염색체에 덜렁덜렁 거린다면 나에게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만도 못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히로인, 또는 히로인으로 관련된 자들을 영입한다. 나는 그 청사진을 대략적으로 마련해두었다.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김누리의 언니인 김가온.
이유나의 친구인 정슈리.
은유하가 우리 팀의 감시를 위해 보낼 X로이드 인형 한 명.
그리고 마지막 피스인 '석하랑'.
"유나는 S급을 영입하는데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본인이 그걸 완강히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금전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개인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지만, 나는 석하랑이 우리 팀에 반드시 들어오지 않고는 베기지 못 할 떡밥을 이미 던져놓았다.
"어디보자...."
경매장에 내어놓은 물건은 이미 벌써 천정부지의 가격을 찍고있다. 어떤 이들은 <풍유환>이라는 용도 명확한, 신빈성도 없는 물건을 가지고 세 명이서 치킨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것을 중계하며 그들을 비웃고 있다.
- 이거 구라로 밝혀지면 저거 판매자 사회에서 매장각 아님?ㅋㅋㅋ
그 반응은 현실의 시청자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풍유환'이라는 이름의 아이템은 없다.
"구라였을 때나 매장각이죠."
풍유환은 실제로 존재한다. 단지 내가 아직 만들지 않았을 뿐.
'사실 풍유환은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풍유환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물건으로, 정확한 이름은 이상한 사탕...이 아니고<마력 UP 알약>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력을 1 올려주는 아이템. 그거 아시죠?"
- 앗
- ㅋㅋㅋㅋㅋㅋ
- 풍유환. 부작용으로 마력이 1 오를 수 있습니다.
오직 지휘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으로, 알약을 먹은 자는 심플하게 마력이 1 늘어난다. 회차 특전의 성능 없이 순수하게 1만 올려주는 아이템이라 딱히 사용할 일은 잘 없지만, 만들어두면 언젠가 사용할 곳은 반드시 있다.
그렇다면 풍유환보다 값어치 있는 이 물건이 어째서 풍유환의 역할을 하느냐.
"마력이 올라가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각성을 하면 신체 밸런스도 조정되는 거죠."
코어의 마력이 한층 더 올라갔기에 그만큼 신체도 더 보정이 된다. 특히 AAA 건전지 트리오는 S급으로, SS급으로 올라갈 때마다 속옷을 새로 구입해야 할 정도로 신체가 변하게 된다.
"혹시나 사 본 풍유환을 복용했더니 마력이 올랐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
- 어맛, 이거 꼭 사야해!
- 근데 이거 <지휘관>인 거 들키는 거 아님?
- 어떻게 남들한테 말함 본인이 풍유환 먹었다가 SS급으로 각성했다고ㅋㅋㅋㅋ
"그렇죠. 그러니까 직접 만나려고 할 거예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만든 건지, 또 다시 구매가 가능한지."
일석이조. 구매자가 누구든 판매자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우수 구매자를 위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팔 기회를 마련하고, 내 정체를 밝혀 그녀를 영입하는 것이다.
'미리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좋아.'
제작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밖에서 사온 도구들을 책상에 가볍게 펼쳐놓았다. 물건이 판매되는 즉시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알림> 마력부여의 쿨타임이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사용가능합니다.
"씁, 아쉽네."
유나가 있었으면 유나의 마력을 1 올릴 수 있건만, 아쉽게도 유나는 지금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유나가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문자를 확인했다.
[내일 아침에 준비끝나는대로 바로 사무실로 갈게요!]
"아침 8시부터 밖에서 기다리겠군."
아침 일찍 준비해서 내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릴 게 틀림없다. 마음같아서는 새벽부터 만나서 마력을 늘려주고 싶었다.
'시간 손실 어떻게 할 거야.'
유나와 했던 게 벌써 24시간 전이니, 유나와 다시 하기까지 대략 9시간을 손해보는 셈이었다. 사정을 통해 마력을 늘린 시점을 기준으로 24시간이 적용되는 시스템이라, 매번 조금씩 뒤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떡은 떡대로 즐기시고 얌전히 포션이나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이에요."
- 2주차 부터는 회차 보정 때문에 거들떠도 보지 않는 아이템을 이렇게 써먹네ㄷㄷ
"효율 때문에 다들 떡치느라 정신없어서 그런 거예요."
2주차 이후부터는 직접 마력공급을 하면 최소 2~3이 오른다. 심지어 풀보정을 넣으면 한 번의 마력공급에 무려 5~6이 오르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뭣하러 직접 마력공급을 하지 않도 알약을 만들겠는가.
"똑같이 24시간 쿨타임이 적용되는 것도 마찬가지. 더군다나 그 방법이 직접 하는 것보다 못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옆에 넘쳐나는 게 여자들인데."
- 탁탁탁
- 청화님은 왼손파예요, 오른손파예요?
무엇을 숨기랴. 알약을 만드는 방법은 '체액'을 굳히는 바에 있다. 나는 미리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하나는 에스프레소. 하나는 블루베리 에이드. 마지막 하나는 보령녹차."
각각 히로인들이 선호하는 음료로, 나는 그들이 진실을 알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야했다.
"구매자가 나오면 제작을 하려고 준비는 다 해뒀는데...오, 됐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마침 경매로 내놓은 물건이 낙찰되었다는 알림이 도착했다. 과연 셋 중 가장 가슴에 절실한 이는 누구일까.
"어디보자 5천만원이네요? ...잠깐만."
0의 단위가 이상하다.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봤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50억? 풍유환 하나에 50억을 쓴다고...?"
금전에 대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50억은 과하지 않았나. 나는 그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50억을 풍유환에 사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뭐 마력 포션이 있다고 하면 200억도 넘는게 적정 시세기는 한데...."
풍유환 하나에 뭘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산 거지? 어디보자...<틀딱광검>?"
- ㅋㅋㅋㅋㅋ
- 아아, 저것은 패드....읍읍
- 틀딱 맞긴 해
"석하랑이네요."
셋 중 가장 절박한 여자는 석하랑이었던 걸로 결정났다. 어차피 흉부 사이즈 대결로 치면 도토리 키재기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석하랑이 가장 절박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원래 내일 유나랑 아침부터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네요."
픽. 나는 몸을 일으켰다. 구매자가 벌써부터 나왔으니 반드시 제작을 해야만 했다.
"어디보자...얼음 트레이가 어디있지?"
나는 비닐 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트레이를 꺼냈다. 빈 공간에 액체를 넣고 굳히면 충분히 단단한 얼음 조각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케이스가 준비되었다면 이제 빈 공간에 담을 액체를 준비할 차례.
"으으."
나는 라이터로 달군 바늘로 손끝을 가볍게 찔렀다. 핏방울이 손가락 끝에서 망울지기 시작했고, 나는 손가락을 잡아 피를 쭉 짜냈다.
뚝, 뚝, 뚝.
알약에는 플레이어의 피가 들어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체액을 섞음으로서 복용자의 마력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슬슬 한 발 뽑아야하는데."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편하게 갈아입은 수면바지 아래 딱딱하게 굳은 물건은 벌써부터 체액을 뽑아내기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다. 나는 시스템창에서 <회상 모드>로 접속해 물건을 붙잡았다.
"유나랑 한 거 다시 보면서 한 발 뺄게요."
탁, 탁탁, 탁탁탁.
잠시 후.
블루베리 에이드 맛의 사탕이 완성되었다.
* * *
<그 시각, 서해 인근 지도상에 없는 섬-[백영도]>.
"당주님, 확인이 끝났습니다."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복장의 무복을 입은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보고를 올렸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발 너머에 앉은 여인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 예상대로 원탁의 끄나풀이더냐?"
"아닙니다. 오라클과의 관계는 친한 직장 상사인 듯 합니다. CCTV를 분석한 결과, <오라클 스튜디오>의 일원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능력자 한국인 배우를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시키려고 하는 게 진정이란 말인가? 허어."
여인은 곰방대처럼 쥔 비녀를 탁자에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가급적이면 겉에 드러나지 않도록 협조하도록. 그래, 우리 가문에 협조하는 의원의 자녀가 좋겠군. 한 번 수배해보게."
"예. 그런데 그 외국인에게 벌써 함락당한 아카데미 학부생에 대해서는-"
"함락...?"
탁!
"한국 여인이 지금 서양 남자에게 함락당했다고 말한 것인가...?"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군. 고작 공항에서 한 번 만난 것으로 아카데미 학부생을 꼬셔 제 것으로 만들다니. 무서운 남자야. 분명 한국에 온 이유도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려보려고 하는 게 틀림없네. 음...잠깐만. 선가놈의 딸년이 분명 허영심 많은 이능력자라 했던가?"
"당주님?"
발 너머의 여인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릿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독제독이라고 하지. 후후, 한 번 바람을 넣어보도록 하지. 딸이라면 껌뻑 죽는 자가 아닌가. 늘그막에 얻은 딸이 헐리우드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설마 계속 미국 쪽과의 교류를 끊으려고 하겠는가?"
"당주님, 혹시 선의철의 딸을...?"
"후후."
여인은 검은 부채를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년이 금발서양남아래에 깔려 '백인 굉장해요오옷!'하는 여자가 된다면 과연 그 자의 표정이 어떨 것 같은가? 후후."
"아 참. 그건 어떻게 됐지?"
"누군가가 50억에 낙찰해갔습니다. 20억으로는...택도 없었습니다."
"......조만간 의원들을 모으도록 하라. 경매장에 사기 물품이 올라오는 걸 가만히 눈뜨고 보지 못하겠네."
결코, 본인이 구매하지 못하여 곤조를 놓는 것이 아니다.
"쯧쯧, 사기꾼을 내가 낚아서 바로 검거하려고 했건만. 안타깝게도 50억이나 쓴 피해자가 나왔구나...."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