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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582화 (582/1,497)

〈 582화 〉2부 1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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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후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는 스페인 사람인 바리스타 '후안'이 신서울에 차린 카페다.

세계적인 바리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모종의 이유로 세계 곳곳을 누비다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카페의 2층 빈 사무실이 바로 주인공이 활동하는 기반 시설인 공방, 사무실이 된다.

"미국에서 왔다고? 멀리서 왔군. 신서울에서 외국인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지. 만나서 반갑네. 혹시 괜찮으면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하다마다. 처음 플레이어하는 사람들은 후안으로부터 신서울의 정세를 알고 외국인이 얼마나 차별받는 가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만, 나는 후안을 상대로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곧장 찾아왔다.

"흠흠, 그래. 사무실을 찾고 있다고?"

"예. 오라클 스튜디오에서 헐리우드 배우로 영입할 동양인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람들을 뽑을 예정이고요."

"사무실을 찾았나?"

"아뇨. 가는 족족 죄다 <유성> 그룹의 건물이라. 권리금과 월세가 너무 비싸서 곧장 적자보겠다 싶었습니다."

"그래...?"

후안의 눈이 빛났다. 나는 딸기에이드를 홀짝이며 표정을 숨겼다. 웃고 싶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

[농부 후안은 바리스타이며 카페 사장이며 건물주입니다.]

- 갓물주님ㄷㄷㄷ

- ㄹㅇ 후안 아조씨 없었으면 미연시불가

- 미스터 상담사ㅠㅠ

그의 해설에 플레이를 보는 이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후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접근한 세 가지 목적 중 첫번째는 그가 이 건물의 주인-건물주라는 것.

"자네, 혹시 이 위에 사무실 한 번 보겠는가?"

"사무실이 비어있나요?"

"그래. 이전에 있던 사람이 나간지 꽤 되어서 정리는 좀 필요하지만, 사무실 정도면 굳이 설비 힘들게 안 들여도 될 걸세. 월세 밀리다가 도망가서 책상이나 이것저것 그대로 남아있거든."

"음...좋군요. 혹시 주인 분이랑 아는 사이십니까?"

"알다마다. 내가 주인일세."

카페가 있는 2층 건물의 주인. 주인공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후안은 자신의 빈 사무실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선뜻 내어줬다.

"다만 나도 그냥 공짜로는 해 줄 수 없고...."

"계약서 좀 봐도 되겠습니까? 합리적인 가격이면 저도 이곳으로 하고 싶습니다."

"음...계약하자고 한 입장에서 묻기 그렇지만 무슨 이유라도 있나?"

"이유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른 곳보다 30% 가량 월세가 저렴한 것이 가장 큰 메리트인 동시에, 건물 내부에 <유성>의 CCTV가 전혀 없다는 것이 주인공이 사무실을 이곳으로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주인공의 <지휘관>이능이 외부에 노출되면 곤란해지므로.

그러므로 적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는 딸기에이드를 들어올리며 눈을 찡긋였다.

"차가 맛있어서요. 앞으로 매일매일 출근하면서 사먹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후후."

"......완벽한 이유군. 좋네."

나와 후안은 미리 짜놓기라도 한듯 즉석에서 계약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2층 사무실에 올라가 청소만 끝내놓으면 튜토리얼은 끝나는 셈이었다.

"그나저나 멀리까지 와서 참 고생이군. 어찌 연인은 있는가?"

"뭐...겸사겸사 찾으러 온 거죠."

"한국 여성과 만나려고 하면 제법 고생 좀 할텐데?"

"이미 공항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자 분 한 명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중입니다. 잘하면 오늘 저녁에 올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내일 중이라도 한 번 소개시켜드리죠."

후안은 씩 웃으며 자신의 컵을 들어올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그도 젊었을 때는 제법 여러 여자 울리고 다녔을 얼굴이었다.

"카사노바로군."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혹시나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시게. 내 얼마든지 들어줄 터이니."

후안의 두 번째 의의이자 내가 그에게 접근한 두 번째 이유.

그건 히로인을 공략하는 '미연시'에 있어서, 히로인 공략에 어려워하는 주인공을 도와줄 일종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는 것.

"한국에서 만날 여성들은 자네가 외국에서 만나던 이들과는 확연히 다를 걸세. 이럴 때 아니면 또 나잇값을 언제 해보겠는가. 흐흐."

"신세지겠습니다."

후안과의 상담은 연애 고자인 플레이어를 위해 마련된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히로인마다 각자 좋아하는 음료들이 하나씩 카페 메뉴판에 비치되어 있기에, 1층의 카페는 미연시 적 요소를 지원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늦었군. 혹시 한 잔 더 마시겠는가? 이건 서비스일세."

"그러면...."

나는 특별한 메뉴를 주문했다.

"커스터드 크림 치즈가 들어간 딸기 요거트로."

"...호오, 그런 메뉴는 없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레시피가 될 것 같군."

후안의 건물에 들어온 마지막 이유.

'현실의 딸기 음료들에 비할 수 없지.'

비록 가상 현실의 게임이라고 하지만, 후안이 만드는 음료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들을 마음껏 만들어서 제공해주리라.

"아니지, 아니야. 모처럼이니 케이크도 조금 구워볼까."

"반으로 잘린 딸기가 중간중간 잔뜩 들어간 쇼트 케이크로 부탁드립니다."

"...자네 취향은 워낙에 확고해서 알기 쉽군!"

후안은 냉큼 가게 문으로 달려가 문패를 '폐점'으로 바꾸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런 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업의 근본은 당연히 그의 신분에 있었다.

"역시 건물주가 최고지."

나는 딸기 음료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 * *

[저 못 갈 것 같아요ㅠㅠ 대신 내일 아침에 꼭 갈게요!]

아쉽게도 유나는 사무실에 방문하지 못했다. 유나가 아무리 바라는 바가 있어도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아아, 음. 혼자있으니까 직접 중계합니다."

나는 케이크 한 판을 들고다니며 청소를 끝낸 사무실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제법 을씨년스러운 곳이지만, 이제 이곳은 여자들로 북적거리는 카페 2층이나 마찬가지인 장소가 될 것이다.

"보통 여기서 다들 가온누리로 가시죠?"

- 존대하니까 어색ㄷㄷ

- 그래야 누리 루트 개방되는 거 아님?

- 집도 구해야 튜토리얼 끝이니까.

"그쵸. 임무에는 분명 사무실과 살 집을 구하라고 했으니까요."

다세대주택 <가온누리>.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방을 넣으려고 한 층에 8개 집이 들어가는 작은 다세대 건물은 히로인 중 한 명인 '김누리'의 부모님이 주인인 건물이다.

"여기서 집 구하러 부동산 가는 길에 누리 만나서 스토리 진행되고 그러잖아요."

꼬마인 김누리가 공원에서 홀로 놀고있는 것을 주인공이 오지랖을 부리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침 카페에서도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에 집이 있어, 출퇴근 하기에 정말 용이한 장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 ?????

"지낼 집이 여기 있는데 뭐하러 집을 또 계약하겠어요? 푸흐흐."

- ?????

나는 사무실을 가리켰다. 책상 몇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고객을 응접하기 위한 탁자와 소파가 사무실의 끝이었다. 물건 하나만 들이면 이곳이 곧 내가 살 집이 되는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집이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방안에 침대 놓고 다른 사람들 신경쓰이지 않게 떡치려고 하는 거죠."

식사는 외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문제 없음.

더군다나 아침의 게임 시작은 자잘한 준비가다 끝나고 출근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니 세면이나 샤워를 굳이 할 필요가 없음.

꾀죄죄한 몸을 씻기 위해서는 분명 샤워시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빠르게 건물주를 공략하여 2층 사무실에 샤워 시설을 들이면 만사형통이었다.

"사무실에서 스쿼드 조정하고 애들 훈련 보내고 능력치도 키우고 그러는데, 사무실에서 섹스하면서 마력 강화하는 것도 하면 안되나요? 안 될 것도 없죠. 어차피 하렘 쪽으로 방향 잡고 후반가면 집보다 사무실에서 떡치면서 지낼 날이 더 많고요."

전 히로인 공략 루트로 갈 경우, 플레이어와 메인 히로인 17명이 한 자리에 어울려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럼 다른 히로인들은 훈련을 하든 자기 일을 처리하든 하면서, 주인공이 옆에서 다른 히로인과 떡치고 있어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지낼 이유가 하나 더 필요해요."

원작 주인공 루트를 타기로 정했기에, 나는 스쿼드에 영입할 두 번째 히로인으로 '그녀'를 선택했다. 비록 공항에서의 조우는 과감하게 스킵을 했지만, 굳이 그런 인연이 아니더라도 그녀-<청운> 박라온은 우리 사무실에 들어올 것이다.

"집 없는 히로인들을 위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사무실에서...푸흐흐."

당장 지휘관터가 사무실 생활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휘관>은 로또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60억 분의 1에 해당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무방비하게 밤에 사무실에서 곤히 자고 있다?

"역강간 플레이 싫어하시는 분들은 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이러면 나중에 하렘 관리하기도 편해요."

주인공이 원해서 한게 아니라, 히로인들이 원해서 스스로 위에 올라타는 케이스이므로. 따라서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쁜 건 다 본능과 성욕을 참지 못하고 주인공을 덮치는 히로인들이다.

"그러니까 집을 구할 필요는 없어요. 네? 그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냐고요? 집 못 구하면 튜토리얼 막히니까? 간단하죠."

나는 게임 속 마도기어를 두드려 전화를 걸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해결해주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네, <유성가구>죠? 침대 하나 혹시 급하게 구할 수 있을까요? 킹사이즈로. 장소는...."

외국인이 가진 푼돈이라도 웃돈주면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 * *

<그 시각, 신서울 유성일가 저택.>

"회장님, 말씀하셨던 'VIP'의 요청입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는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초로의 노인에게 깍듯이 보고를 올렸다. 노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구수한 커피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래, 무엇인가?"

"침대를 킹사이즈로 사무실에 주문했습니다. 아마도 숙식을 사무실에서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끙, 그래서 CCTV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구만."

회장은 이미 그가 빛처럼 다녀간 다른 사무실에 난색을 표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적당히 시간 끌다가 상황 보게. 그리고 우리 아파트 중에 적당한 빈 자리 있으면 그곳에서 계약하도록 유도해보고."

"늦은밤이라서 죄송하니까 은퇴 히어로 용역을 쓰겠답니다. 이것저것 다 합치면...250만원 정도 될 겁니다."

"그럼 해줘야지. 바로 배송하도록 준비해놔. 안쪽에 도청장치도 설치해두고."

"작업이 끝나는대로 바로 보내겠습니다."

회장은 불법을 저지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건 그의 아래에서 일하는 비서 또한 반론없이 회장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공항에서 오라클과 격의없이 악수한 사내다. 분명 원탁의 관계자이거나, 미국 정보국의 일원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항상 타깃 주변에 X로이드들이 한 두 대는 있도록 배치하라."

"예. 회장님, 제 사견입니다만...1층 카페에도 사람 한 명을 배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뭐야?"

회장의 목소리에 노여움이 깃들었다. 비서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적절한 생각인듯 하지만, 임무로 카페에서 장시간 오래 앉아있는 건 분명 들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회장은 별빛으로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유하를 보내도록 하지."

"예? 그 망나.... 크흠. 유하 아가씨를 직접 보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유하 커피 좋아하잖나. 내가 알기로는...거기 자주 가는 걸로 알고 있네만."

"하아...."

비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이 아내와 사별하기 전 낳은 늦둥이이자 유성 그룹 후계자 중 유일한 여자인 '은유하'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여자였다. 오죽하면 유성그룹의 일원만 아니었으면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유하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하도록 하지. 이만 가보시게. ...아참, 유하 얘기를 하다보니까 생각난 건데."

회장은 조금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 물건'은 확보가 끝났나?"

"아직 경매중입니다. 지금 두 명 정도가 계속 달라붙었는데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15억까지 올라간 상황입니다."

"...무조건 확보하시게. 이쯤되면 물건의 진위는 차치하고 자존심 싸움이야. 30억까지는...허용하겠네."

"예. 반드시 확보하겠습니다."

비서는 서재를 떠났다. 회장은 커피를 홀짝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떤 년들이 내 걸 건드리는 거야...?"

제법 신경질적인 회장의 목소리는 분명 젊은 여인의 육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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