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70화 (570/1,497)

〈 570화 〉DLC 프롤로그, [The Pheonix]

"아, 이거 무리네요. 리겜 각인 것 같은데요?"

지휘관 복을 입은 여인은 스크린에 뜬 스쿼드를 보며 깊게 절망했다. 여인의 시선 아래 작게 뜬 채팅 창에도 모두 여인의 말에 동조하는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유나 말고 답이 없잖아요, 답이. 아니, 내가 석하랑한테 뭐 그렇게 잘못했어요? 폭주하면 곱게 부산만 날려버릴 것이지 왜 내가 키운 우리 S급 아가들까지 데리고 동귀어진 하냐고요."

여인의 말에 채팅창에 ?????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논란/인성'과 같은 채팅을 달고, 음성 도네이션으로 여인의 인성에 대해 극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뭐요? 사탄도 울고갈 여자라고? 에이, 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 석하랑 안 죽었거든요? 저희 애들 다 병원가있거든요? 단지...젠장."

여인은 캘린더를 확인했다. D-day, 11월 11일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고작 일주일. 그 안에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아니, S급 애들 전부다 병원에서 회복 중인데 걔들 부르자고요? 진심? 차라리 유나 올인 전략으로 1페만 깨고 어떻게든 버티는 게...하아. 미치겠네."

여인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망했다. 폭주 석하랑의 광분은 생각보다 대단했고, 여인이 지휘하는 히어로 부대는 큰 피해를 입고 석하랑을 잠재웠다.

[이게 다 국밥 먹여서 그런 거임.]

누군가가 음성 도네이션을 날리자 채팅창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국밥을 건드려?'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차라리 민트를 먹이고 말지 국밥을 먹이냐'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오, 씨.... 진정들 하세요. 괄괄하게 언니야 언니야 할 때만 하더라도 부산 가시나인 줄 알았지. 지 입맛 고급인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부르주아네! 삼시 세끼 호텔 뷔페에서 혼자 식사하고! 야발! 호텔조식 먹을 돈이면 국밥 서너그릇은 뜨끈하게 먹고 남겠네!"

여인의 급발진에 채팅창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행히 의 피해자는 여인 뿐만이 아니었다. DLC를 다운받은 대부분의 이들이 겪는 통과의례 같은 순례길이었다.

"아니...진짜 훈수 좀 해줘요. 이거 진짜 답이 없잖아. 이 스쿼드로 피닉스 못 이긴다니까? 1페도 못 넘겨요, 님들아."

여인은 이라는 문구마저 치워버리고 훈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불가능을 외쳤다.

[그냥 목 긋고 리트가자ㄱㄱㄱ]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지금까지 여기까지 해 온 노력이 얼마인데. 리트는 안 돼요. 차라리 게임오버를 당해도 피닉스한테 당하고 말지."

여인은 스스로의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스쿼드를 구성했다.

S급인 이유나를 제외하고 전부 육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B~C급 스쿼드였으나, 다행히 최근에 영입한 A급 동료들이 몇몇 남아있기는 했다.

"잠깐 시뮬 돌려볼게요."

여인은 외부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스쿼드 정보를 입력했다. 워낙에 1페이즈가 괴랄한 난이도를 자랑하기에, 스쿼드 정보를 입력하면 통계를 바탕으로 승률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까지도 생겨났다.

승률 1%.

"......혜잔데? 공주석방 0.3% 한정 캐릭터 가챠보다 세 배는 높잖아? 이거 이겼네요. 내가 이겼음."

여인의 논리에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뭔가 아닌 듯 하면서도 차마 부정하기 어려운 논리의 폭거였다.

"징징대지 말고 좀 도와줘봐요. 혹시 알아? 이 거지같은 스쿼드로 깨면 막힌 피닉스 루트 진입각 열릴지. 우리 방에서 피닉스 루트 열리면 내가 진짜 2천억 현상금 시청자들이랑 N분의 1빵 한다. 리얼."

여인의 말에 시청자들은 낄낄거리며 본격적으로 스쿼드 구성에 나섰다. 약 세시간동안 수 천명이 집단지성을 발휘한 스쿼드는 승률을 무려 2%P나 높인 3%승률이었다.

"피닉스 루트 가즈아아아아!!"

여인은 호기롭게 테이블 위, 홀로그램으로 반짝이는 버튼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 * *

여의도가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이미 서울은 쑥대밭이었으나, SS급 괴수와의 전투 여파로 여의도 전체가 푸른 불꽃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여기까진가...."

여인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군을 강화하여 전략 전술을 짜냈지만, 압도적인 화력 앞에는 도저히 답이 없었다.

"누가 승률 3%가 높다고 했어. 망할 년."

자학 아닌 자학에 모두가 침울해졌다. 여인이 이끄는 히어로 부대의 패배는 게임 내적으로 곧 인류의 패배나 마찬가지였고, 외적으로는 여인과 함께 싸워온 시청자들의 패배였다.

"하, 그래도 피닉스 님께 죽으니까 다행-"

[포기하는 건가?]

순간, 처음 듣는 목소리가 여인의 귀를 때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압적이고 중후한 목소리에 여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누, 누구...?"

[이대로 포기하고 끝낼 것인가?]

채팅창은 ?????로 다시 도배되기 시작했다. DLC 발매 이후, 전에서 이런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 찐 화권이다! 김철수 님께서 굽어살피시는 거야!

- 김철수 목소리 아닌데요? 저런 목소리 아무도 없음. 신캐 아닐까요?

- 미친 피닉스 전에서 누가 각성한다고? 피닉스 때려잡는 신캐? 신성모독임ㄹㅇ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인은 방송인이라는 것도 순간 잊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

여인은 몸이 무너져내리는 푸른 불사조와 시선이 맞닿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과 동료들을 쓰러뜨린 세계 최강의 괴수(2위)는 분명히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기하는 건가?]

괴수는 몸의 절반 가까이가 부서진 상태로 불씨를 퍼뜨리고 있었다. 마치 피처럼 흘리는 불꽃은 사방으로 흩어져 여의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남은 체력 48%.

여인은 기적의 컨트롤로 승률 3%의 평균전력 B-급 스쿼드로 무려 체력을 절반 이상이나 깎는 기염을 토해냈으나, 지휘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명확했다.

[이대로 끝낼 것인가?]

"......포기? 시끄러워! 내가 게임오버 당할 것 같아?! 태초마을 가더라도 너 죽이고 간다!"

여인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금속 배트를 집어들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배트는 D급 히어로 조차 한 손으로 뭉개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무기였으나, 여인은 씩씩거리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이틀만 더 늦게 오면 S급 여섯 명 회복 되는데 왜 오늘 오고 난리냐고!!"

여인은 금속배트와 함께 피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도 피닉스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싸우겠다는 의지와 함께, 여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피닉스의 발톱을 향해 배트를 후려쳤다.

[그 의지라면...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군.]

"어...?"

여인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괴수 피닉스의 거체가 불길이 되어 실체가 흩어졌다. 여인의 몸은 불길에 휩싸였으나, 이상하게도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나 통각은 전혀 없었다.

"이, 이건...?"

[부정을 태우는 정화의 불꽃이다. 나의 원래 힘이기도 하지. 푸른 불꽃으로서의 힘.]

"어, 잠깐만요. 이거 설마...?"

[성주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40일 정도 남았나.... 그동안 내가 옆에서 너희를 시험해보도록 하지.]

여인의 눈앞에는 검은 갑주의 괴인이 자신을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에는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불사조와 독수리가 섞인 듯한 투구의 눈 사이로 푸른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12월 25일, 성주가 도착하기 전까지 나를 쓰러뜨려라.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성주...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자도 이기지 못할 터.]

"예? 자, 잠깐만요! 이거 스포! 중계 끌게요!"

여인은 지휘관과 직업 방송인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아무리 발매된 지 1년이 지난 게임이라고는 해도 '이계신'에 관한 정보는 심각한 스포일러였다.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 건가? 뭐, 나야 나쁠 건 없지.]

"저,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당신...."

파--앗.

괴인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높이 치켜들며 몸으로 Y자를 표현하더니, 곧 괴인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영원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 창염개진.]

"예?"

[따라해라, 창염개진.]

"차, 창염개진?"

이건 도대체 무슨 괴이한 주문인가. 창염의 의미는 충분히 알겠지만, 개진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당장 안 켜?

- 지금 다시 스트리밍하면 백만원!

- 뭔데 뭔데 뭔데 피닉스임? 찐임? 설마 개드립치던 피닉스 동료 루트임?

- 살아스님이 피닉계신다!!!!!!

채팅방은 난리가 났다. 몇몇 급한 성질의 시청자는 당장 보여주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겠다고 협박까지 운운했다. 하지만 여인은 눈앞의 괴이한 동작을 하는 존재를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

[뭐...네 동료들에게 소개시켜줘도 딱히 상관은 없다만. 이미 절풍과 개천광을 동료로 만들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 이 상황, 어떤 건지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 자, 잠깐만요. 지, 진정 좀 하고요. 후우, 후우."

여인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 영상을 송출시켰다. 시청자들은 여인의 바로 눈앞에 팔짱을 낀 괴인을 보고 숨이 멎었다.

처음 보는 괴인이었지만 너무나도 낯이 익었다. 검은 갑주 사이로 타오르는 푸른 불꽃하며, 등 뒤로 펼쳐진 불꽃의 날개는 그들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존재였다.

"당신의 이름은...?"

[영원 불멸, 이 세상의 유일한 태양, 인류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주기 위해 스스로 주박에서 벗어난 정령.]

괴인은 여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명백한 '악수'의 제스쳐였다.

[인류는 나를 '피닉스'라고 부르지.]

"세상에."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괴인과 손을 맞잡았다. 날카로운 건틀릿은 닿으면 살이 벗겨질것 처럼 날카로웠으나, 여인이 붙잡은 괴인의 손은 햇볕같은 따스함마저 느껴졌다.

"지, 진짜에요?"

[...기껏 가능성이 보여서 도와주겠다고 하건만, 역시 죽여야 하는 건가.]

"아, 아녜요! 그, 주박을 풀었다는 것도 쉽게 믿기지 않고, 서로 죽이려고 싸우던 상대가 갑자기 도와주겠다고 하는 게 이상해서...."

[......나 또한 그렇지. 지금도 너에 대한 살의를 억누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너희와의 싸움에서 나는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

여인은 머릿속으로 전투를 빠르게 복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간부가 정령으로 자각할만한 계기는 없어보였다.

"그, 그럼 진짜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다른 정령들처럼?!"

[그래.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다른 녀석들과 사정이 다를 거다. 인간과 괴수 사이-괴인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자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저런."

여인은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닉스의 인간형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기는 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는 개방되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이게 어디랴. 여인은 스스로의 업적 아닌 업적에 눈물까지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피닉스."

[이런 말을 하기는 어색하지만...잘 부탁하마, 지휘관.]

[영입] 가 동료가 되었다!

전 세계 최초.

여인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괴인 피닉스를 동료로 맞이했다.

* * *

푸른 유성우가 떨어진다.

검은 우주를 뒤덮는 유성우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었으나, 그 대부분이 성주가 이끌고 온 명왕성의 파편들이었다. 피닉스는 모래사장에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엉망진창이 되셨네요."

흰 코트가 붉은 피로 범벅이 된 여인은 쓰게 웃으며 다가갔다. 여인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피닉스의 상태는 금방이라도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성주를 죽이고 의식을 막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요?"

[이미 간부가 되면서 나는 죽었다. 한참 전에 죽었던 망자가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시간이 된 거지.]

사아아--

어둠이 점차 사라지고,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태양빛이 닿은 피닉스의 몸이 서서히 연기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의도에서 만난 그 날부터 이미 나는 시한부였다. 애초에 진짜로 각성하지 못한 나는 성주가 죽으면 죽을 운명이었어.]

"......."

여인은 잠시 아래쪽에 요동치는 채팅의 물결을 가렸다. 자신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지금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피닉스...."

속에서 감정이 복받쳐오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제발 떠오르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지구는 돌고, 태양은 야속하게도 점차 고개를 들어올리고, 여인의 태양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남은 위협은 많을 것이다. 너를 노리는 자들도 있을 터.]

콰득.

피닉스는 자신의 심장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여인을 향해 건넨 손 위에는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정령들의 태양이었지. ...이제부터는 네가 인류의 태양이다. 세계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법.]

"그치만...!"

[인류를 잘 부탁한다. 너와 함께한 시간...썩 나쁘지 않았다.]

달칵.

피닉스가 투구를 살짝 들어올렸다. 푸른 불꽃이 살짝 사라지자, 그 아래에는 싱긋 미소를 짓고있는 청년의 하관이 있었다.

"짧지만 행복한 인생이었다, 유나팬티보라색."

"......!"

화륵.

피닉스는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여인은 손에 푸른 코어를 든 채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아버렸다.

"이, 이이...이...!"

여인은 코어를 쥐고 절규했다.

"지휘관 이름 이따위로 지은 년 누구야--------!!!"

그 날, 여인의 방송 영상은 전세계 1위를 찍었다.

"......흠, 과연. DLC에서 이러고 논단 말이죠?"

푸른 머리칼의 여인은 영상을 보며, 어둠속에서 씩 미소를 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