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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564화 (564/1,497)

〈 564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8

은유하.

그녀에 대해 말하자면-

[유성의 수장, X로이드의 사용자, 인형술사, 섹스 좋아함, 양쪽으로 다 가능, 하지만 몸은 처녀! 끝!]

창염의 시원시원한 설명과 함께, 나는 은유하를 상대로 곧장 그녀의 정체를 까발렸다.

이유?

창염이 하라고 했다. 정확히는 창염이 은유하와 길게 재고 따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유하가 다리 벌리게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잖아요?]

'뭔데.'

[피닉스.]

새삼스럽지만, 나는 이미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자본을 쌓았다. 불과 1년만에 유성이 공식적으로 내건 시가총액을 모두 내 통장에 넣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원작치트.

원작이 아무리 쓰레기같고 짜증난다고는 하지만, 원작에서 나오는 꿀사냥터나 코어밭은 안 챙기면 손해다.

그래서 나는 아메리카 전역에 퍼진 온갖 노다지 코어밭을 파냈고, 38선 이북에 있는 괴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코어를 수급했다.

은유하는 어려운 히로인이다.

하지만 은유하의 공략 난이도를 간략히 표현하자면, 그녀의 난이도는 자본과 반비례한다.

돈이 많을수록 쉬운 여자.

즉, 내게 있어서는 석하랑보다 공략하기가 더 쉽다는 말!

'근데 은유하 공략을 해야하나?'

[제가 원하는데요.]

'그럼 해야지.'

창염이 바라는데 내가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리고 나로서는 은유하가 오히려 편했다.

[당신도 은유하가 상대라면 좋잖아요. 그게 가능하니까.]

창염의 제안에 혹한 이유는 하나.

'유하라면 해주지 않을까?'

나는 아주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여자가 있다면, 당연히 은유하를 먼저 꼽을 수 있으리라.

[유하를 돈으로 사다니! 성매매 범죄자!]

'미연시도 돈주고 산 거니까 그렇게 따지면 히로인들은-'

[그만. 제가 졌어요.]

"뭘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죠?"

창염과의 뇌내 언쟁을 하던 사이, 드디어 은유하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불렀으면 대답을 하셔야죠."

"정체를 숨기지 않기로 한 건가요?"

"X로이드를 보자마자 은유하라고 말하는 분을 두고 무슨 변명을 해요?"

하긴 그렇다. 은유하 입장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자신을 불러낸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좋아요. 자본주의의 메카에서 온 피닉스씨. 저랑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대놓고 저를 부른 거죠?"

[섹스!]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나가보도록 하죠. 이번 모비딕 사냥을 통해 얻은 코어의 처분을 유성에서 맡았으면 해요."

내 말에 은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S급 코어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거라면 이미 유성에서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아니, 이 나라에서 유성 말고 다른 곳에서 그런 엄청난 걸 처분할 수 없거든요?"

"그래요? 잘 됐네요. 제 개인적으로도 유성이랑 거래를 트고 싶었는데."

"......."

머릿속에서 돈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헌터 길드 스트로베리? 드디어 아메리카의 자본이 이 나라로 들어오는 건가요? 세금 8할을 무시하고?"

"아뇨. 그럴 리 없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거는 이거예요."

나는 미리 촬영해둔 모비딕의 사체 안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S급 코어가 있었고, 은유하는 그걸 보자마자 입맛을 다셨다.

"보기만 해도 기쁘네요."

"아뇨, 그거 말고. 밑에."

"?"

"코어 밑에 코어 있어요."

나는 S급 코어가 반짝이는 곳 아래, 푸른 불꽃 사이에 감춰진 코어들을 가리켰다.

"A급 777개. 당신을 위한 선물이에요."

"......."

은유하는 표정이 굳었다.

"저기요?"

"피닉스 님. 저 엑스로이드라서 녹음이 다 되거든요?"

"네."

"방금, 선물이라고 하셨죠?"

앗.

[미연시뇌가 잘못했네요.]

항상 히로인을 상대로 선물을 주겠다고 말을 하는 바람에 선물이라고 말해버렸다.

"선물 주세요."

"...조금은 사양이라는 걸 해보는게?"

"A급 코어 777개를 준다는데 절이라도 해야죠."

은유하는 바로 물구나무를 섰다. 정확하게 삼각형을 그리는 그랜절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올바른 자세에요. 자본주의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갑이죠."

"을이 된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돈 벌어주시고자 하는 분께 어떻게 감히."

계산이 끝났다. 은유하는 내게 자본으로 굴복했다.

물론 '굴복'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면 은유하는 적이 된다. 그녀를 상대로 가장 적절한 표현은 다음이리라.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으면 해요. 한국은 너무 세금이 많아서.'

'협력'관계임을 주장함과 동시에 공감대를 산다. 은유하를 상대로 이보다 더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과연...제가 피닉스 님을 위한 절세의 수단이 되면 되겠군요."

"이그젝틀리."

탈세가 아니다. 나는 합법적으로 얻은 코어를 아주 적절한 가격으로 돈을 벌고자 할 뿐이다.

"좋아요. 피닉스 님을 위한 계좌도 하나 마련하고, 저 코어는 뒷쪽으로 계산을 하도록 하죠. ...그런데 저거, 다 처리된 코어인가요? 아니죠?"

"걱정마요. 다 정화 처리된 코어고, 코어번호만 붙여두면 전부 다 판매할 수 있어요."

A급 코어 수백개면 충분히 괴수대소동이 일어날 수 있는 물건이다. 돈 좀 벌자고 패가망신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좋아요.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A급 코어가 본론이 아니었어요?"

"당연하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짜로 중요한 건 따로 있답니다."

나는 은유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딸기 주세요. 지금 치사량 왔으니까."

"......?"

"딸기. 지금 끔딸 중이라 미치겠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그 딸이 이 딸이 아닌 것 같은데.... 좋아요. 일단 안으로 모실게요."

은유하는 나를 안으로 인도했다. 차마 갑판 위에서 딸기를 대접할 수는 없었는지, 그녀는 나를 배 안쪽으로 인도했다.

"씁-하-"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은 딸기향이 가득 울려퍼진다. 자연의 딸기향도 있고, 공산품 속에 섞인 딸기향도 있다. 창염은 무엇이든 좋아한다.

'이제 착유당할 일은 없겠지.'

폭주하는 창염에게 젖이 빨리는 일도 없을 것이며, 금연 상황처럼 사람이 조급해지고 조바심이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요."

"와."

은유하가 안쪽 문을 여니, 그곳에는 딸기만이 가득했다.

[은유하와의 큥큥을 허합니다.]

창염은 바로 은유하와의 관계를 인정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삼각형 모양의 딸기 케이크. 창염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동시에, 마침 당이 당기는 때였다.

"잘먹겠습니다."

"신서울에서 제법 좋아하는 곳의 케이크거든요."

[신서울로 가서 유하 본체랑 즐길까요?]

거지같은 원작 중에서도 몇 안 되는 나의 안식처에서 온 물건이었다. 특히, 창염이 없어서 못먹는 음식이기도 했다.

창염은 이미 아까부터 은유하와 그렇고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창염에게 착유를 당하며 쾌감에 몸을 떨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내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눈앞에 히로인이 있다.

손만 닿으면 코가 자빠질 곳에 히로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말하기가 두렵다.

괜히 말했다가 잘못되면 어쩌지싶기도 하고, 괜히 은유하와의 관계가 첫 단추부터 잘못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야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음습한 자아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속에 묵혀둔 질문을 꺼냈다.

"유하 씨. 저는 유하 씨에 대해 조금, 아니 잘 알고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은유하는 은근한 눈빛으로, 마치 내가 할 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사창가 처음 들어간 동정남처럼.]

'가본 적 없거든?'

[하지만 미연시 가상현실에서는 카사노바면서.]

'그건 게임이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경험으로 따지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왠지 말하기가 살짝 민망했다.

"제, 성적 취향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네. 당연하죠. 레즈잖아요."

"......."

들켰다. 제대로 들켰다. 레즈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석하랑과 벌려둔 일이 있어, 나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네, 맞아요. 그럼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비즈니스 파트너만 필요한게 아니라, 섹스 파트너도 필요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인정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린 만큼, 나는 은유하에게 방 안에 놓인 '침대'를 가리켰다.

"섹파, 할래요?"

"제게는 거부권이 없는데요. X로이드인 걸 알면서도 섹파를 하기를 바란다니. ...나 참, 이렇게 일이 쉽게 풀려도 되는 건가?"

[물론이죠!]

창염은 벌써부터 침대 위를 향해 날개를 뻗고 있다. 나는 은유하의 손을 맞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한 가지 부탁을 좀 해도 될까요? 침대 위에서는...제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세요."

"그거야 얼마든지. X로이드는 고객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설계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뭘 원하세요?"

"......하게 해주세요."

"응? 뭐라고요? 잘 안들리는데요?"

"그...딜도 차고 하고 싶은데, 돼요?"

"......."

은유하는 입을 맞추며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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