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61화 (561/1,497)

〈 561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5

[깨달은 것 같네요. 그럼 시작할까요?]

'물론.'

나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이미 마도기어를 통한 스트리밍은 한국, 아니 전세계로 이어졌다.

'오늘부로 피닉스에 대한 히어로 위키가 전부 갈아엎어질 것이다.'

피닉스.

종합 전투력 S+.

속도가 엄청 빠르고, 화염술사에, 하늘을 날아다니고, 마탄을 사용하는 것을 주특기로 하는 히트-앤-런 타입의 헌터.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위주의 전투를 벌이며,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한 일점사격에 특화되어있는 존재.

그래서 다들 놀라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제주도 상공에서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과연 피닉스가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총으로 바다 긁는 거임?]

[화력이 되나?]

[모비딕한테 바지락조개 맞고 큥큥거리는 거 아닌가요?]

'저거 너지?'

[으앙 들킴.]

나는 내 머리 위에 올라서있던 파랑새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화르륵.

푸른 불꽃이 내 손 위에서 퍼져나가며,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스태프와도 같고, 석장과도 같은 물건은 과거 고대 시절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생긴 지팡이였다. 길쭉한 지팡이 끝에는 태양을 형상화 한 장식이 마력으로 떠있었다.

[오늘 여기서 데뷔하는 건가요?]

'그래.'

1년동안 미국에서 신나게 '빌런 피닉스'답게 총질을 했으면, 이제는 진정한 '정령'의 힘을 보여줄 때.

뿌우우우-----

마침 머리서 경적소리가 울려퍼진다. 상대는 엄청난 소음과 파도를 몰고 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해안가를 지키기 위해 서있던 히어로들과 시민들은 기겁을 하며 결국 해안선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용감하다고 한들, 파도가 20m 넘게 높이 치솟은 상황에서 그걸 타고 달려오는 거대 고래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 직접 들이받으려고 하네요?"

뿌우우우-----!!

놈은, 모비딕은 나의 힘을 읽고 전력을 다하려고 했다. 내가 방출하는, 창염과 함께 사용하는 정령의 힘을 확인하고 목숨을 다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2페이즈까지 사용할 각오로.'

캬아아악!!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왔다. 해수를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놈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려고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

[촉수물도 정도가 있죠. 히로인한테 난 촉수는 봐줄 수 있어도, 촉수형 회충들은 사양이에요.]

'물론.'

나는 스태프를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가볍게 바닥을 찧듯, 위로 들었다 내렸다.

"창염, 개진."

화르르륵-----!!

해안선을 따라, 30m는 훌쩍 넘는 불의 장벽이 펼쳐졌다. 푸른 불꽃은 해안선 전체를 뒤덮으며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되었다.

그 길이만 무려 20km.

인간이 보여줄 수 없는 압도적인 마력의 향연에 세계가 멈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악, 공포, 전율.

'이 정도면 엄청 화려한 데뷔지.'

[이게 반신의 힘이죠.]

S+급 괴수의 영향력을 일거에 지워버리는, 그야말로 모비딕을 '압도'하는 힘에 나를 보는 모두가 내 진정한 정체를 알아챌 것이다.

누구보다도 신에 가까운 자.

"릭트쇼!"

나는 스트리밍 창을 열어, 창염과 함께 세상을 향해 윙크했다.

"지금까지 힘숨찐이었다 이거예요. 푸흐흐."

나는 내 몸의 주도권을 창염에게 넘겼다. 나는 창염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었다.

"라, 피닉스."

캬아아아아아-------!!

바다보다 푸른 불꽃이 파도를 뒤덮고, 하늘 높이 불기둥으로 치솟았다.

나와 창염은 의연한 얼굴로, 팬서비스에 나섰다.

쪽.

검지와 중지를 가볍게 입술에 붙이며, 스크린을 향해 한 번 슥.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나야 자명했지만, 일부러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날.

제주도 주민들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 *

화르르륵.

영상에는 온통 푸른색이 가득했다. 스크린 너머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 아지랑이가 가득했고, 남자는 해안선을 뒤덮는 푸른 장벽에 눈에 이채를 띄었다.

화륵.

불꽃이 터진다. 파도를 타고 달려오던 괴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청새치처럼 물 위로 날아올랐으나, 정면에서 터진 거대한 폭발에 관성조차 무시하며 바닥으로 처박혔다.

"라, 피닉스...."

의미는 알 수 없다. 자신의 이명을 말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뭔가 시동어라도 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뭔가 앞에 '휘몰아쳐라'와 같은 영창을 한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른다.

"강하군."

이미 각국의 정보기관에서는 피닉스가 사용한 마력량에 대해 충분히 데이터를 수집했고, 그 힘이 어느정도 수준인가에 대한 분석만 남아있었다.

대부분 전제조건은 똑같았다.

- 피닉스, 실은 SS급 아닌가?

그리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

- 과연 SS급 중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정말로 탐이 나는 존재야...."

남자는 손가락 키스를 날리는 피닉스의 얼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임신시켜서 아이를 낳게 하면...분명 우수한 자식이 나오겠지."

남자의 뒤.

단아한 흑발의 여인은 묵묵히 남자의 뒤를 지키며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준비해라, 소령아."

"...예."

어두운 방.

그곳에는 피닉스의 온갖 브로마이드와 사진으로 도배되어있었다.

* * *

모비딕 격퇴 이후.

나는 미국에서 오는 수많은 연락들을 무시한 채, 제주도 남쪽 서귀포의 호텔에서 무위도식 안락한 삶을 지내고 있었다.

"딸기."

"감귤드릴까요?"

"딸기."

"천해향 드리겠습니다."

"딸기."

"레드향 드셔보시겠습니까?"

"......."

[딸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나에게 있어서, 정확히는 창염에게 제주도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니, 어떻게 40만 인구가 사는 농가에 귤밖에 없어요?! 이 사람들은 맨날 귤만 먹고 사나?!]

'지역차별이다.'

[딸기가 없는 지역은 그래도 괜찮아요!]

내 의견이 아니다. 과격한 스트로베리스트의 의견일 뿐이다.

"죄송합니다. 육지와의 연결은 거의 끊어진지 오래라...."

"교류가 거의 없나요?"

"비행기는 거의 뜨지 않고, 화물선도 하루에 아주 조금 들어올 뿐입니다. 관광은...아예 죽어버렸죠."

대 괴수시대.

제주도는 더이상 관광 자원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이곳은 괴수 시대에 사람들이 더이상 살아갈 환경이 되지 않는 죽어가는 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제주도를 떠나도 신서울이나 부산에 정착한 뒤의 미래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육지로 떠날 생각은?"

"...이곳을 떠나면 그 동네에서 난민이 될 겁니다. 차라리 이곳은 집이라도 있으니, 있던 귤농사라도 지으면서 연명해야죠."

이 시대의 대부분 섬이 그렇듯, 특히 제주도는 상황이 심각했다.

"그래도 덕분에 목숨은 건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피닉스 님."

"감사는 설화공주에게 하세요. 그녀가 저를 이곳에 보냈으니까."

"암요, 암요. 그런데 피닉스 님.... 그, 혹시...."

"아니요."

나는 나를 향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여는 이들을 향해 단호히 손을 들었다.

"저는 부산에서 지낼 거예요. 거기에 설화공주가 있으니까."

"역시...."

"대신, 앞으로 제주도는 안전할 거예요."

"...예?"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5분이면 날아오거든요."

300km 가량 되는 거리를 고작 5분만에 날아온다? 믿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간을 접어 지구 반대편으로 텔레포트하는 이능력자도 있는데, 마력과 이능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뭐가 안 되겠는가.

"당장 제가 부산에서 날아올 수 있다는 게 제주도가 안전하다는 거구요, 이곳에서 모비딕이 죽은게 또다른 안전의 증거예요."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아직까지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고래의 시체를 가리켰다.

주변에는 멀리서 태극기를 건 군함들이 언제든지 포격을 날릴 수 있도록 예의주시하고 있고, 협회에서 파견된 듯한 히어로들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혹시나 모를 여러가지 사태에 대비하여, 그들은 유사시 대처를 위해 모여있었다.

하나. 괴수가 혹시나 부활할까봐.

둘. 혹시나 괴수에게서 흘러나온 코어가 유실될까봐.

셋. 제주도에 있는 모 외국인 이능력자가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난리를 칠까봐.

'외국인이 사고를 치면 그것만큼 민감한 문제가 되는게 또 없지.'

특히 제주도처럼 나라의 손이 닿지 않게 된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나는 현재 제주도에서 폭주 직전인 누군가를 진정시키느라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딸기를 안 주면 몸을 빼앗아서 자위를 해버리겠다는 것이야.]

"혹시 딸기 아이스크림 같은 거라도 없어요? 아니면 딸기맛 사탕이라도 좋은데."

"...지, 지금 백방으로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제주도민들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을 뒤지며 딸기가 함유된 음식들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들여오는 것도 거의 없는데다가 먹는 것이라고는 감귤밖에 없는데, 딸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저기...혹시 딸기가 피닉스 님께 어느 정도입니까?"

"담배 대신 딸기를 피워요. 지금 금딸 3일차."

"앗...!"

나를 보좌하던 히어로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피닉스 님께서 금딸 3일차래!"

"......."

말을 실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머리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뒹구는 창염의 난동은 금연 3일차에 준하는 정도였다.

[그냥 저기 가까운 곳 가서 쮸쮸바라도 하나 빨고 오는 건 어때요?]

'조금만 참아봐. 이제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되었으니.'

나는 묵묵히 감귤을 까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부산에 가거나 올라가면 모든게 어그러져.'

내가 제주도에 알박기를 시전한 건 일종의 시위다.

누구에 대한 시위냐? 원작에 대한 시위.

나는 제주도에 거점을 두고 살 것이다.

신서울에 있는 그가 내려오지 못하는 곳에서.

'육로가 연결되지 않은 섬'을 내 기반으로 마련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리라.

[저, 저기요! 피닉스!]

"아, 하랑."

나는 당황하는 하랑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그래서 마음은 굳혔나요?"

[이, 일말의 여지도 없나요?]

"네, 없어요."

나는 석하랑에게 최후 통첩을 날렸다.

"저랑 혼인신고 하는 게 아니면, 모비딕에서 나온 코어들 전부 다 바다에 가라앉혀 버릴 거예요."

나는 S급 코어를 두고 협박했다.

석하랑을 인질로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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