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0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4
뿌우우우.
레이더에 거대 괴수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퍼진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생겨난 붉은 점은 다른 점들을 압도할 정도로 짙고 거대했다.
괴수의 크기는 무려 S등급.
심지어 그 크기가 여느 마룡 못지 않은 크기라, 등장부터 아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정도였다.
마룡 하나가 나타나면 최소 1만은 죽는다.
그리고 마력 레이더에 나타난 반응은 새로 나온 괴수도 아니고, 이전에 한 번 반응을 보인 괴수였다.
“오키나와를 수장시킨 괴물이 나타났군요.”
S급 수마룡 제 2형태, 모비딕.
전장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 고래로, 거대한 동체로 막강한 물을 뿜어내며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실제로 일본의 오키나와 섬을 수몰시켜 지도에서 지워버린 전적을 가지고 있다.
궁극기는 해수스파이팅.
[바지락조개가 아니구요?]
'마구 해수를 뿜어내는데, 그게 폭격 급이긴 하지.'
막대한 마력으로 등에 열어둔 숨구멍을 통해 대량의 해수를 방출하는 능력을 가진 괴수다.
그리고 그런 괴수가 하필이면 지금 오키나와에서 북상하여 한국의 남해안으로 올라오고 있다. 널디 넓은 태평양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일본 열도를 향해 상륙하는 것도 아니라, 부산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아니 미친 일본놈들은 뭐하는 거야.]
[일본에서 나온 괴수 관리안하냐아아아]
[농담이 나오냐? 지금 S급 괴수가 북상하고 있는데?]
여론은 난리가 났다. 일본땅에 있는 괴수인데 왜 일본이 처리하지 않냐는 말부터 시작하여 온갖 비난이 이어졌으나, 당연히 이에 대한 반응은 하나였다.
[괴수를 우리가 조종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대처함ww]
"맞는 말이네요. 쳐맞을 말."
괴수는 조종할 수 없다. 괴수를 조종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다크 레기온 뿐이며, 지금은 다크 레기온이 개입한 사건이 아니다.
모비딕은 그저 맛있는 먹이의 냄새를 맡았을 뿐이다. 딸기향과 블루베리향이 섞인 농밀한 마력을 느꼈고, 그 힘이 자신이 한 입에 먹기 좋은 수준의 힘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모비딕을 유인한 방법은 하나.
'역시 먹이로 유인하는게 최고지.'
[피닉스랑 석하랑이 농밀하게 혀를 섞은 사탕으로.... 어우야.]
'그냥 마력인데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나는 그저 석하랑의 마력 일부와 내 마력 일부를 흘렷을 뿐이다.
끼이이익!!
하늘에 갑자기 괴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 방위선에서 히어로들이 뛰쳐나와 원거리 사격을 개시했다.
“벌써 남해안에 괴수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모든 괴수는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양생물들은 거대한 피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생존본능이 발달해있으며, 이는 근본이 포유류든 조류든 가리지 않는다.
괴수는 괴수일 뿐.
S급 괴수의 움직임을 피해 인간들이 있는 육지로 올라오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으어어어.
해안가에 괴수들이 벌써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수부처럼 생긴 어인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해안가에 상륙하여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부산이 이런 상황인데, 제주도는 지금...."
[좆됐죠?]
"......."
A급 괴수만 하더라도 부산 뿐만 아니라 부울경 일대 전체에 피해를 입힌다. A급 괴수가 그럴진데, S급 괴수가 부산으로 올라오면 부산만 피해를 볼까?
[오늘 제주도 멸망 각이냐ㅋㅋ]
[미친 놈이 웃음이 나오냐???]
[지금 한라산 정상ㅋㅋ….]
[아….]
거대 고래 괴수는 태풍과도 같은 존재다.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태풍이 한반도를 휘몰아치면 항상 제주도부터 타격을 입었다.
아무리 바람이 유명한 지역이라고 해도, 차라리 태풍을 맞이했지 괴수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냥 이대로 지역방위형태로 가면 제주도는 멸망이군.’
[제주도에는 S급 히어로가 없으니까요.]
제주도는 석하랑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대마도가 석하랑의 영향력을 더 잘 받는 곳이라, 제주도는 심심찮게 C~B급 괴수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제주 출신의 A급 히어로 서 너명이 팀을 짜서 동서남북으로 지역을 방어하고 있지만, S급 괴수는 역시 규격 외였다.
[본부! 지원바람! 괴수가 너무 많다!]
제주의 히어로들은 급히 지원을 요청했다. 아무리 반도에서 아래로 떨어져있는 섬이라고 한들, 인구가 40만에 이르는 도시면 상당히 큰 도시이자 구역이었다.
[그러길래 왜 진작 섬에서 탈출 안하고 버티고 있었나.]
[히어로들은 빨리 시민들을 데리고 탈출하라.]
[배를 보내겠다.]
하지만 섬에 남은 40만 인구에 대한 반응은 다소 험했다.
[제주도를 버릴 생각이냐!]
[괜히 제주를 지키려고 하다가 부산을 잃는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람도 아닌가?!]
[이미 오래전부터 피난 권고는 했었다. 괴수가 판을 치는 이런 시국에 섬에서 계속 지내기를 희망한다니...그러길래 진작에 신서울로 넘어올 것이지.]
뚝.
나는 감청하고 있던 히어로들간의 연락을 끊었다.
“혐오가 넘치네요.”
악의와 증오가 가득한 이 땅의 또다른 이름은 헬조선.
안 좋은 면을 더욱 부각하고 강조하여 만들어진 땅이기에, 국가에 대한 혐오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래서 더 히어로가 인기를 끌기 좋은 곳이지.’
[시대는 영웅을 원하고 있는 것이에요!]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세워 줄 영웅이 필요했다.
가령, 당장 제주도 육지에 상륙하는 괴수들을 퇴치하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북상해 올라오는 S급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의 힘을!
“근데 지금은 좀 그렇고.”
내가 원하는 모비딕 사냥의 위치는 제주도가 아니다. 나는 놈이 예정된 위치까지 올 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다렸다.
나 혼자서.
‘석하랑은 협회로 갔나.’
[하룻밤 잔 정도로 도와달라고 바로 말하기에는 민망한 거겠죠.]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멋대로 도와줄 생각이지만.’
모비딕.
놈은 나의 화려한 한국 데뷔를 위한 좋은 횃불이 될 것이다.
“고래기름이 그렇게 불에 잘 탄다던가.”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일단 싸우기 전에 최종 확인부터….”
나는 마도기어의 레이더를 다시금 살폈고, 또 한 번 더 살폈다.
“부산 앞바다에서 포경하는데 설마 자기네 땅에서 나온 괴수라고 뭐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겠지.”
나는 모비딕이 완전히 이 나라의 영해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 * *
"젠장! 미친 거 아이가!!"
석하랑은 손에 들고있던 마도 패드를 집어던졌다.
"자기네 땅으로 넘어오면 자기네들이 처리하겠다고? 지들 땅에서 넘어온 건 생각도 안 하나!"
"서, 설화공주 님! 진정하시고...!"
"뭐요!"
석하랑은 패드에 적혀있는 전문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
"대신 한국 영해 안에서 괴수를 잡으면 자기네들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우리가 저거 잡으면 바로 자기네도 피해 입었다고 껄떡일 거면서...!"
말에는 뉘앙스가 있다. 글로 적힌 언어에도 뉘앙스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공식석상에서 배려하는 듯한 언어라고는 하지만, 석하랑도 그렇고 전문에 적힌 진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우리 땅은 아니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잡아보라는 거 아이가...!"
괴수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것.
그게 한국으로 넘어왔다면, 한국에서 해결하는게 인지상정이다.
A급 괴수 정도면 쌍수들고 환영했겠지만, S급 괴수는 쌍수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을 흔들 것이다.
"젠장, 잡고 말고 문제를 떠나서 이래서야-"
[하랑?]
"......?"
마도기어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석하랑은 마도기어에 나온 번호를 보고 식겁했다.
"피, 피닉스?!"
"뭐여?!"
"와, 방금 이름으로 말한 거?!"
"역시 소문은 사실이었던 건가?!"
"이봐요!"
석하랑은 주변에서 들려온 소리에 기겁을 하며 마도기어를 조정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급히 이어폰을 꺼내 귀에 장착했다.
"지, 지금은 조금 곤란해요. 조금 뒤에 연락을-"
[제주도는 예쁜 곳이네요. 여기다가 집 짓고 살면 좋을 듯.]
"...네?"
[V.]
석하랑의 마도기어에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사진은 금방 부산 히어로 협회 비상대책반의 대형 스크린에 떠올랐다.
[피-스.]
사진이 아니었다. 실시간 스트리밍의 좌표였다. 가만히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히어로들은 피닉스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깨달았다.
"하, 한라산?!"
"뭐, 뭐야...!"
"어떻게...?"
[날고 있는데요. 위성 레이더 화면으로 안 보이세요?]
피닉스의 말에 협회는 급히 레이더를 조정했다.
"와...."
그곳에는 푸른 불꽃의 날개를 펼친 피닉스가 하늘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랑.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네, 네!"
[제가 잡은 거, 하랑이 잡은 거로 하죠.]
"......앗."
"설마!"
"......큥큥?"
"무슨 소리예요!"
석하랑은 빽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지금 제 실적으로 한다는 게 무슨!!"
[제가 잡으면 이중과세되어서 8할이 세금으로 떼인단 말이에요.]
"........"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메리카는 빌런들도 세-금을 무서워한다더니, 역시 S급 헌터 다운 판단이었다.
"하, 하지만 그건-"
[괜찮아요. 원래 연애할 때는 전부 퍼주고 그래야 하는 거니까.]
"여, 연...!!"
석하랑은 바들바들 떨며 이를 갈았고, 비상대책반에 모인 이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근데 세금부터 걱정한다고?"
피닉스는 자신이 모비딕을 잡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