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59화 (559/1,497)

〈 559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3

부산으로 돌아온 뒤.

나는 협회에서 준비해준 한복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환복한 뒤, 석하랑이 마도기어를 통해 찍어준 좌표로 향했다.

'유리창 깨고 들어갈까.'

[안그래도 개판일텐데 유리창 깨고 들어가면 엄청 화낼 걸요?]

내가 오키나와에 있는 모 괴수를 상대로 어그로를 끄는 사이, 석하랑은 집안에 가득 쌓인 쓰레기 괴수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어찌 석하랑이 그 막강하고 흉악한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나라는 도우미의 지원이 없다면, 생활력 D-급 자취러인 석하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음식은 귀찮아서 해먹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처 호텔에 따로 마련된 특별실에서 해결을 하고, 그게 어려울 때는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일쑤.

'괴수는 기깔나게 죽여도 플라스틱은 더럽게 안 치우지.'

[분리수거는 잘 하지만 집안 곳곳에 보면 플라스틱이 그대로 남아있을 걸요? 푸흐흐.]

따라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놔뒹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취미 생활이라고는 빈백에 누워서 TV나 영화 보기 뿐이다.

문제는 그냥 보는게 아니고 주전부리나 음료 따위도 함께 먹고 방치하니, 그것들이 방 안에 뒹굴 가능성이 높았다.

옷?

말할 필요도 없다. 공식석상에 나서는 복장은 히어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아는 지인이 많이 도와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남해안에 나타난 괴수들을 물리친게 설화공주가 아닌 샌달공주가 되었을 것이다.

흔히들 석하랑을 상대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석하랑은 DLC에 진심으로 고마워해야한다고.

'안 그러면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리게 되었을테니.'

[대충 입어도 예쁘기는 하지만, 그 대충 입은게 너무 화딱지가 나는 거잖아요. 세상에, 긴팔 후드티에 핫팬츠 삼선 샌달이라니. 너무한 거 아녜요?]

"......."

좋은 거 아닌가?

"크흠."

아무튼 나는 석하랑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석하랑의 집으로 대량의 옷들을 주문했다.

유성 계열의 의류매장에서 주문을 하는 만큼, 분명 '그녀'도 내가 기거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될 터.

"슬슬 시간이 됐-"

끼이익.

나는 현관문을 여는 백발의 여인, 석하랑을 향해 활짝 웃었다.

"너무 열심히 청소하시는 거 아녜요?"

"아, 그, 그게...."

"앞으로 같이 지낼 곳이니까, 저도 거들게요."

나는 석하랑이 당황하는 사이 발을 현관문 사이로 밀어넣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

[우욱.]

안에는 처참한 전장이 펼쳐져있었다. 급히 사온 듯한 쓰레기 봉투는 바닥에 겹겹이 쌓인 채 흩날리고 있었고,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쌓여있었다.

혼돈.

파괴.

그리고 망가.

'도망갈까.'

[그냥 새집을 사서 거기에 신혼집 차리는 건?]

오죽하면 창염조차 질색을 할 정도. 내가 한참 말이 없자 석하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그...치운다고 치우긴 치웠는데...."

[.......]

내가 말문이 막힌게 아니다. 창염이 먼저 말문이 막혔다. 이런 여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심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무리 원작 시점보다 약 몇년 전이라고 해도, 나이로 치면 거의 대학교 3~4학년의 여성인데 이런 생활상이라니.

"괜찮아요."

나는 외투를 벗었다. 일부러 활동하기 쉽게 코트 안에는 민소매에 숏팬츠로 복장을 갖춰왔다.

"어...."

석하랑은 코트를 받아들고 나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하나로 모은 다음, 석하랑에게 손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하랑 씨, 머리끈 하나 만들어줄래요?"

"머리끈이요?"

"네. 얼음으로 하나 그냥 묶어주세요."

"아.... 네, 네!"

석하랑은 바로 나를 향해 마력의 끈을 만들었다. 하얀 고무줄같은 얼음줄이 손에 바로 생겨났고, 석하랑은 의아함에 눈을 깜빡거렸다.

"어...?"

놀랍겠지. 평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졌으니. 마력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각성의 징조인 것 같기도 하니, 얼마나 놀랍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능력의 경지가 오를만한 일은 나와의 하룻밤 밖에 없는데!

"어...설마...아냐, 내가 그런 거 때문에...?"

석하랑이 혼자 착각하든 말든-오히려 착각하는 쪽이 내게는 더 편했다-, 나는 석하랑이 한곳에 모아둔 쓰레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메잇."

화륵.

갑자기 방 안에서 불꽃을 일으키자 석하랑은 기겁을 했지만, 바로 마력의 반응을 느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잔재주예요."

쓰레기를 마력으로 태우는 능력. 그냥 쓰레기를 재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버릴 뿐이다. 아주 미세한 먼지 정도는 남겠지만, 그건 나중에 한번에 모아서 버리면 그만이다.

"여기 봉지에 있는 거, 다 태워버리면 되죠?"

"어, 화재가...."

"마력으로 태워버리면 스프링클러 반응 안 하더라고요."

나는 석하랑의 집 곳곳에 있는 모든 쓰레기들을 전부 태워버렸다.

"저기 검은 봉지는-"

"아아악!!"

도중에 석하랑이 비명을 지르며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모두 다 태워버렸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모두 다 태워서 소각.

싱크대에는 푸른 불꽃을 두른 수세미로 싱크대 전체를 닦아내며 멸균.

그리고 방 전체 향초를 피우기 위해....

"하랑, 얼음을 양초처럼 몇 개 만들어줄래요?"

"이, 이렇게요?"

"완벽해요."

석하랑이 만든 얼음 양초 위에 아주 약한 창염을 일으켜, 주변에 향초를 피우듯 냄새를 제거했다. 방 안에는 점차 딸기와 블루베리가 섞인 듯한 달콤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향초 피우고 보빈다니, 완벽해요. 너무 낭만적이야. ...하나 빼고.]

"하랑. 침대는 어디에 있어요?"

"...치, 침대요?"

석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사색이 된 얼굴로 작은 방 안을 가리켰다. 나는 석하랑이 은근히 사수하고 있던 방문을, 아니 지옥문을 열었다.

"......옷방이네요."

옷밖에 없다. 옷 뿐이다. 다만 내가 알기로 수십,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의류들이 싸구려 티셔츠마냥 바닥에 입었다 벗은 채로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속이 좋지 않았다.

'여기 있는 옷만 다 합쳐도 2억 넘겠는데.'

화륵.

나는 옷방에 불을 붙였다.

"피, 피닉스 씨?!"

"하랑 씨. 옷갑은 나중에 변상해드릴게요. 하지만 이것 좀 보실래요?"

스르륵.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셔츠의 윗부분을 살짝 잡아당겼다. 당황과 분노로 가득했던 석하랑은 내 손짓에 의해 껌처럼 늘어나는 셔츠에 놀라 굳었다.

"이, 이게 도대체...?"

"마력으로 만든 옷이에요. 이능력자 개인의 마력을 겉에 보호막 두르듯, 가벼운 디자인의 옷으로 입는 거죠. 보시다시피...."

나는 손을 앞으로 뻗어, 순식간에 마력을 엮었다.

"짠. 설화공주 님 배틀슈트. 시안(Cyan) 타입."

"......."

석하랑은 내가 그녀를 위해 만든 푸른색 날개옷에 입술을 뻐끔거렸다.

너무 예뻐서.

"...어떻게 한 거예요?"

"푸흐흐, 가르쳐드릴게요. 이거면 옷은 필요 없어요. ...물론 저기 있는 옷들, 전부 다 새로 사드릴게요. 저 방은...음...여러모로 정화가 필요했어요."

옷 속에 숨어있는, S급 히어로의 기감마저도 피해 숨은 지구 최강의 괴수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굳이 진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으리라.

"이거...미국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 건가요?"

"아뇨. 저만의 비전 기술이죠. 미국에서도 이거 아는 사람은 제 지인 포함해서 몇 안 되거든요."

"그걸 저한테...? 왜?"

"왜긴요."

나는 석하랑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뒷걸음질치다 빈백에 넘어졌고, 나는 어젯밤처럼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석하랑의 볼을 쓰다듬었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재촉하지 않아도 할 생각이었다. 나도 키스 정도라면 얼마든지 히로인들과 할 의향이 있었고, 언젠가 창염과의 그 날을 위해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근육을 풀어줘야했다.

[역시 피닉스! 제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니까요! 하아아, 왜 당신은 남자로 태어나서!]

"...하랑 씨."

나는 내 머리 위에서 날개를 떠는 파랑새를 무시하고, 석하랑의 손을 내 셔츠 사이로 슬며시 밀어넣었다.

"제가 입은 옷은...어디까지 마력으로 이루어져있을까요?"

"!!"

붉어진 석하랑의 눈에 당황이 스쳤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속삭이듯이 고개를 숙였다. 후드티를 지긋이 가슴으로 누르며, 빈백에 몸을 묻으며 신체를 밀착했다.

"맞춰보세요. 그러면 가르쳐드릴게요. 이거...화이트 하우스에서도 국가 기밀로 하자고 탐낸 기술이랍니다?"

"그, 그게...."

스륵, 스륵.

나는 석하랑이 알아챌 수 있게끔 몸을 비볐다. 다리 사이에 다리를 집어넣으며, 완전히 빈백에 몸을 묻고 석하랑과 숨결이 닿을 거리만큼 고개를 가까이했다.

"소, 속옷은...아니시죠...?"

"......."

쪽.

나는 그녀의 볼을 향해 가볍게 입을 맞췄다.

"후후, 하랑 씨. 좀 더 잘 느껴보셔야 할 것 같네요."

"그럼...여기서...."

끄덕. 석하랑은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제처럼 상냥하게 해주세요."

밖은 아직 대낮? 역사는 흔히들 밤에 쓰인다고 하지만, 알게 뭐냐. 본인이 이렇게 하기를 원한다는데.

'슬슬 시간이 됐는데.'

내가 석하랑의 후드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그녀를 벗기려던 순간.

에에에에에에엥-

괴수의 습격을 알리는 긴급 경보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씨발! 아, 보비려고 하는데. 미치겠네요.]

"씹...."

"......."

정령들의 욕설에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참고로 정답은 노브라에 노팬티라는 것이야. 푸흐흐.]

여성형 속옷을 입을 바에는 안 입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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