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56화 (556/1,497)

〈 556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0

이 나라의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모든 곳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국가가 어려울수록 백마탄 초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리고 그를 우리는 위인, 또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디 영웅에게 찬사와 존경을 보내는 이들 뿐이랴?

이 세계의 사람들은 영웅에 대해 질투와 시기를 보내는 자들이 차고 넘친다.

사람이 다섯 명 모이면 쓰레기가 한 명은 있다는 모 대현자의 말씀처럼, 지구촌 60억 인구 중 12억은 빌런이나 괴인과 같은 악인이 될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영웅이면 당연히 이런 건 해야하는게 아닌가? 히어로에게 인권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희생이 뭔지나 알기나 해요? 큥큐류삥뽕

-영웅이면 그냥 알아서 사람들 구하고 다녀야지 으딜 세금을 꼬박꼬박 쳐먹고 말이야. 나때는 나라에서 좆까라고 하면 없던 좆도 까고 그랬어!

당연히 이런 극단주의자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이들이며, 이들이 극성을 부리게 되어 히어로들이 소위 '탈조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히어로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의 비율이 특히 많았다.

그러던 찰나.

[피닉스가 석하랑이랑 원나잇하려고 한국옴. ㅇㄱㄹㅇ.]

단문을 전문으로 하는 SNS 중, 제법 공신력 있는 찌라시 메이커가 던진 작은 돌멩이는 거친 파문을 일으켰다.

[피닉스 레즈 맞음ㅇㅇ]

[S+급 여자랑 한 번 해보려고 지금 껄떡거리는 중]

[아님 말고 큥큥]

아님 말고.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두지만, 찌라시를 퍼뜨린 장본인 [딸레기즈]의 정보는 언제나 99% 일치했다.

사실을 퍼뜨려놓고 마치 고소를 피하기 위함이라는 듯, 지금까지 딸레기즈가 퍼뜨린 정보는 피닉스의 행보와 99% 똑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도 일치할 것인가? 사람들의 의견은 갈리기 시작했다.

-석하랑이랑 원나잇하러 한국 왔다고? 미친 거 아님?

-아무리 그래도 여자끼리인데 조금....

-내가 2D는 인정해도 3D는 인정못한다.

다소 사회적 통념에 따른 발언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석하랑이 한 번만 대주면 S+ 헌터 1년 대여 쌉가능.

-히어로면 대국적으로 판단해야하는 거 아니냐?

-내가 석하랑이었으면 키스부터 박았다.

...오직 손해를 보는 사람이 석하랑 개인으로 몰리자, 석하랑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이 차고 넘치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을 해봐. 처녀 닳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비고 즐기면 되는데?

-동성 히어로끼리 하면 히어로 자식 안나오는 거 쌉손해지만, 두명이서 한다고 하면 인정입니다.

-피닉스 석하랑 백합에 난입하는 쥬지가 필요하다면 내가 하겠다.

그리고 점차 여론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헌터 피닉스, 존재가치만으로 한 달에 2천억!

피닉스의 가치와 이점, 그리고 전략적인 효과까지 모두 곁들여 S+헌터가 있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파하는 칼럼과 논평이 생겨났으며.

-영동, 호남의 안보는 이대로 괜찮은가?

신서울과 부산의 두 히어로가 커버할 수 없는 지역에 대한 우려도 갑자기 불현듯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심상치않은 이북 괴수들의 준동, 또다시 괴수 웨이브가 시작된다?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노골적인 기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피닉스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이거 선가놈이 피닉스 한국인 만들려고 개수작 부리는 거임ㅗㅗ

이라는 문구가 스쳐지나갔지만,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만에 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과열된 머리를 진정시키며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멍청이들아. 찌라시가 진짜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야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누가?

-어, 음, 석하랑이?

그리하여.

석하랑에게는 국가 단위에서 임무가 전해지고 말았다.

-피닉스가 정말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라.

-아니, 장난해요? 만약에 진짜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뭐라꼬? 마! 니 관등성명 대라! 으딜 S+급 히어로한테.... 끊었어?!

석하랑의 분노는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거치고 거쳐서 당사자에게 'BH의 간곡한 부탁'이라는 말까지 전달되었으니, 당사자는 죽을 맛이었다.

-한국 뜰까....

-에이, 하랑아. 설마 피닉스가 진짜로 그러겠어?

-그래. 악의적인 소문이야. 그냥 남혐이라서 그래.

-설화공주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극진적 페미니스트인 편이 더 좋겠군.

석하랑은 꿈을 꿨다.

차라리 피닉스가 모든 남성들은 유전적으로 XY라는 작대기 하나 없는 결함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주변에 여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는 쪽이기를 바랐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피닉스의 앞에서-

"키스부터 시작할까요?"

석하랑은 좌절했다.

* * *

"어, 저기, 그러니까 저는 말이죠…."

"괜찮아요. 처음은 다 어색하고 그런 거예요."

나는 석하랑을 침대로 끌어들였다.

"역시 하랑 씨도 이쪽이었군요."

"네?"

"어머, 그래서 바로 눈치채신 거 아니었어요? 제가 보낸 그 신호들...일부러 한국에서 제법 사용하는 수신호로 보낸 건데."

"아, 아하, 하하하…."

석하랑은 고장난 인형처럼 고개를 돌리며 멎쩍게 웃었다.

일단 내가 진짜 레즈-아니지만!-라는 것에 놀랐을테고, 나의 속도전에 놀랐을테고, 자신은 이제 꼼짝없이 뷰벼야 한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그...저기."

"네, 하랑 씨."

"...저는 말이에요,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하겠다고 했어요. 그, 나라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어...설마."

나는 한발자국 물러나며 여지를 줬다.

"나라에서 시킨 건가요? 퍼-킹!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피, 피닉스?"

"개인에게 어떻게 애국심을 강요할 수 있죠? 어떻게! 감히, 감히 나를 성에 혹해서 국가와의 거래를 하는 성매수자로 보다니! 이건 용서할 수 없어요!"

"자, 잠깐! 피닉스 씨!"

"하랑 씨!"

나는 석하랑의 어깨를 붙잡았다. 한복 너머로 긴장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저랑 같이 이능력자의 권익과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의 땅으로 가요!"

"...그건 안 돼요."

석하랑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고, 이곳에 뼈를 묻기로 했어요. 제가 이곳을 떠나면 분명 이 도시에 모인 5백만 사람들이 큰 위험에 빠질 거예요."

"윽…."

히어로가 히어로다운 이유로 제안을 거절하는데 어찌 강요를 할 수 있을까.

"하랑 씨…."

나는 석하랑을 향해 슬며시 걸터앉았다. 두 다리를 석하랑의 엉덩이 양옆으로 무릎 꿇으며, 석하랑의 위에 얼굴을 마주보며 석하랑의 허벅지에 앉았다.

"불쌍한 사람."

"피, 피닉스 씨…? 지금 조금 가까운 것 같은…."

"위로해드릴게요."

나는 석하랑을 내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석하랑은 움찔거리며 당혹스러워했고, 나도 내 가슴에 본격적으로 히로인을 안아본 건 처음이라 긴장되었다.

"이런 시국에 당신같은 참된 히어로가 있다니…. 이 나라가 여전히 굳건하게 살아남는 이유를 알겠어요."

"......그, 한 가지 오해를 하셨는데."

"하랑 씨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대신, 오늘 제가 하랑 씨를 정말 잘 위로해드릴게요."

준비는 끝났다.

"절대 이 나라를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하랑 씨의 마음을 얻기 위한 1년의 봉사일 뿐이니까."

나는 손가락을 튕겨 결계를 만들었고, 굳은 표정의 석하랑에게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하랑 씨…."

"......."

입술을 향해 내가 얼굴을 뻗자, 석하랑은 눈을 질끈 감으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저, 저 처음인데-"

"느그 아빠 광검 허윤환."

"......네?"

"느그 엄마, 설야의 루살카."

"그, 그게 무슨-"

순간.

석하랑의 눈동자 색에서 보라색 기운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석하랑의 입술을 막고, 그녀의 두 손을 깍지끼며 침대에 눕혔다.

"우, 우웁?!"

[뒷 일은 저한테 맡겨주는 거예요. 푸흐흐.]

내 의식이 서서히 어딘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창염이 주도권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는 하얀 설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역시 이쪽이 차라리 나아.]

괴인폼. 2m에 이르는 묵빛 갑주에 푸른 불꽃을 전신에 뿜어내는 괴인.

남성형이라 부담감도 없다.

[밖은….]

쮸으읍.

창염이 열심히 석하랑(폭주)를 상대로 키스하며 폭주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 뿐.

심층제거.

석하랑에게 잠재되어있는 폭주 석하랑의 흔적-괴인 루살카의 잔재를 제거한다. 설령 광검이 폭주하더라도 석하랑이 정령 설야임을 알아채지 못하게.

쩌적, 쩌적.

얼어붙은 설원.

그 한 가운데,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뭐니?]

생긴대로의 말투.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창염의 피닉스.]

[...이런 미친.]

[널 죽이겠다.]

나는 루살카(석하랑)을 덮쳤다.

"하랑 씨 가슴 맛있네요."

"아, 아으...!"

...나(창염)도 석하랑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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