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55화 (555/1,497)

〈 555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09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남성혐오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를 편애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피닉스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한 요소를 치운 것 뿐이다.

이 세계는 19금 미연시다.

심지어 심심찮게 '능욕'현상이 발생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세계의 히로인이 되었고, 죽는게 확정인 히로인이 되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 대비도 없이 순진하게 사람들 믿었다가 마력 방벽 꺼버리고 약에 취해서 간살당하거나, 다크 레기온 간부들한테 패배해서 괴인들에게 강간당하거나, 히로인들을 전부 괴인으로 만들어서 후타나리들이랑 윤간을 즐기거나, 선의철 육노예가 되거나!]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온갖 악의가 점철된 미래가 보인다. 주변에 남자가 득실대면 그런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말해서 남성혐오가, 아니 인간 혐오가 생기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나라는, 피닉스라는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독수공방이냐, 아니면 모든 큐브를 모아서 소원램프로 만든 뒤 창염(女)과 피닉스(男)로 분리하여 둘이서 함께 살아가냐.

[여자와 여자는 어때요? 백 번 양보해서 탈착이 가능한 것 정도는 봐드릴게요!]

'시끄러워.'

나는 머리 위에 있는 창염(미니 피닉스)의 몸통을 잡고 꾹꾹 눌렀다.

[우효오옷!]

창염은 정체불명의 괴성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나는 차가 동해안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바다를 구경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항간에서는 피닉스가 한국에 온 배경이 K-POP 아이돌 나백합 양의 팬이라는 이유로....]

"무슨 헛소릴."

음악은 듣지 않는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들의 노래는 듣지 않는다. 인간 세상의 노래는 이미 내 귀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내 귀는 창염 급의 노래소리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귀가 되어버렸다.

[...미국 협회만 아니었으면 머리를 코....]

[...비빔밥을 좋아한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맞게 몰아가고 있었다.

"...어휴."

짜증이 나지만, 어쩔 수 없다. 피닉스는 이제 진짜로 그런 이미지를 가져야하니까.

피닉스가 한국에 온 이유는 여러 가지로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으나, 피닉스가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건 또다른 일이다.

정식으로 입국 절차를 밟은 것도 아닌 피닉스가 장기 체류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이 삐뚤어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적용되는 순수한 의지.

[도착했습니다, 미스 피닉스.]

자율주행차량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조심스레 차에서 내렸다. 한복을 입고 있어 행여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정말 조심히 내렸다.

찰칵찰칵찰칵찰칵.

사방에서 터지는 셔터음, 카메라 플래시, 그리고 '보셨습니까! 지금 막 피닉스가 이곳 서면에 도착했습니다!'하는 흥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징하다.'

외국 유명 배우가 와도 이 정도로 열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파는 엄청나게 많았고, 여기서 광역기를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최소 일격에 만 단위는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호기심으로 모인 7할의 일반인 사이, 나를 향해 끈적하고 음습한 시선을 보내는 3할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피닉스를 상대로 '오우야'가 아니라 약물겁간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의 눈빛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정신 차려.'

[잡아봐야 경험치 없어요.]

'고맙다.'

나는 내 정신을 온전히 붙잡아주는 창염이 고마웠다. 그녀는 나를 성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을 뿐, 다른 방면으로는 내가 나를 유지하도록 열심히 도왔다.

저벅, 저벅.

인파의 사이로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나처럼 정갈한 한복을 입은 그녀는 하얀 머리에 비녀까지 꽂고 조신한 발걸음으로 내 앞에 멈춰섰다.

'슬리퍼 아니어서 어색해하는거 봐라.'

[표정, 표정.]

"......."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백발의 여인은 무표정한, 혹은 살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저벅, 저벅.

나는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단숨에 꼭 붙잡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름은?"

"......."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내가 설마 이렇게 사근사근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겠지.

웅성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장기 체류를 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기로 했다.

"...<설화공주>, 석하랑입니다. 미스 피닉스."

석하랑. 한국의 S급 히어로. 그리고 반인반령 히로인.

"석하랑...예쁜 이름이네요."

"그...손은...."

꾸욱, 꾸욱.

나는 손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미리 큥튜브를 통해 배웠던 그들만의 은밀한 신호로, 나는 은밀하고 끈적하게 손을 붙잡았다.

"그럼 갈까요?"

"안내하겠습니다."

석하랑은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안쪽을 가리켰다. 미리 동원된 히어로들이 인파를 갈랐고, 나와 석하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그...."

"예.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석하랑은 현타가 온 듯한 목소리로 나를 허름한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 맛집입니다."

내 손을 잡은 석하랑의 손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 * *

한식투어!

내가 한국에 온 이유이며, 내가 한국에 체류하고자 하는 대외적인 이유다.

[평소에 한식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한식당을 가기가 힘들었지만, 큥튜브를 보면서 한식을 직접 배우고는 했죠.]

[그러면 요리도 직접 하셨나요? 어떤 걸 주로 하셨나요?]

[여러 가지를 많이 해봤어요. 떡에 딸기를 넣어보기도 했고, 갈비찜을 할 때 배 대신에 딸기를 갈아서 넣어보기도 했고....]

[어, 음, 딸기를 좋아하시는군요.]

[네. 언제는 한국 커뮤니티에 한국어로 딸기랑 먹으면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딸기에 김치를 싸서 드셔보세요."

아직도 기억난다. 그 날의 수모를 잊지 않고, 나는 인터뷰터에서 한국인 전체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칼을 갈아왔다.

"그냥 배추김치는 좀 그렇고, 물김치는 제법 괜찮았는데."

검색어 순위는 지금 딸기로 도배되어있었다. 벌써 큥튜브 렉카 기사들은 K-딸기의 품종과 위대함, 그리고 딸기로 만들 수 있는 온갖 한식의 바리에이션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딸기.

그것은 창염 공략을 위한 필수 음식이다. 창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나 또한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음식이기도 하다.

무엇을 숨기랴.

창염의 보지는 딸기향-

[갓 피닉스!]

"......."

나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공격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나 혼자 호텔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심심하던 찰나에 그냥 커뮤니티나 조금 뒤지고 있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창염에게 혼이 나고 말았다.

'딸기맛이라고도 안 했는데.'

[딸기향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거든요? 흥, 그렇게 말해봐야 안 할 거면서.]

'네 고간에 얼굴 박으라고 하면 박을 수 있지.'

그건 가능하다. 남자든 여자든 혀로 빠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건 내가 성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창염이 느끼는 게 아닌가? 내가 느끼기 위해서는 나의 K-18 13.5mm 대구경 소총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피닉스에게는 그것이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나에게는 하등 쓸모 없는 기관 뿐.

[왜 쓸모가 없어요. 보비는데 쓰면 되지. 이 나라에도 지금 비비고 싶어서 안달난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히로인 다 버릴 거예요?]

'난 너만 있으면 되는데.'

[제가 다른 히로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면요?]

"......."

복잡한 문제다. 과연 창염에게 어디까지 허락할 것인가.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소는 다름 아닌 창염의 '거래'였다.

[히로인 1명당 1cm.]

"......."

과거 악마들이 사람들에게 영혼을 팔라고 했을 때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한 명이랑 보빌 때마다 1cm씩 허락해드릴게요. 16명이랑 하면...와! 16cm!]

'아니지.'

나는 눈앞에 마력을 펼쳐 숫자를 다시 카운트했다.

"인간 히로인 10명, 정령 히로인 6명, 정령으로 만들기 전에 있는 간부가 5명, 그리고 창염 1명. 총 22명."

[아, 정령 한 명 빼요.]

"누구?"

[절풍.]

절혐은 인정이지. 나는 22에서 절풍을 제외한 21을 적었다.

10명의 히로인과 보빈다. 창염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대신, 한 명당 나는 1cm씩 되찾게 될 수 있다.

[힘들게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큐브를 찾으려고 고생하는 것보다, 그냥 즐겁게 비비는 건 어떠세요?]

'그거야 상대가 원해야 하는 거지.'

강제로 비비면 괜히 나중에 배드 엔딩으로 나아갈 확률만 높아진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가 진심전력으로 다른 히로인들을 레즈로 만들어 백합타락시키는 쪽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물론 보벼서 자지를 되찾는 길은 자지만 되찾는 길이다. 이른바 '후타나리'가 되는 길이지만, 그래도 나의 페니스라도 되찾는 게 어디인가.

"......후우."

그걸 위해서라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나는 침대 위에서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례합니다."

똑똑.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바로 마도기어로 호텔의 방 문을 열었다.

"......미스 피닉스."

아름다운 한복을 입은 석하랑은 쭈뼛거리며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악질적인 소문이 돌아서 그것부터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오해?"

"당신이...."

석하랑은 정수리까지 시뻘게진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설화공주와 원나잇을 하면...한국에 1년간 체류하겠다는 그 소문...!"

아.

[소문 아닌데. 푸흐흐.]

어떤 파랑새가 히어로 커뮤니티에 뿌린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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