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54화 (554/1,497)

〈 554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08

[순대국밥에, 겉절이 추가. 깍두기는 석박지로.]

단 한 문장이었지만, 피닉스에 대한 여론을 순식간에 반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S+급 헌터가 한식에 미쳐있다더라! 곧 내가 기거하기로 한 강원도 강릉의 히어로 협회 식단은 순식간에 한식 위주로 바뀌었다.

양식을 전문으로 하는 쉐프는 문자로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연락을 받았고, 강릉 모처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한식 전문가가 급히 호출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양념게장에 밥 몇 공기 먹었죠?]

'두 공기는 예의지.'

미슐랭 점수를 메겨도 최소 2성은 달 법한 한식 전문가의 양념게장이다. 어디 치즈와 밀가루가 넘쳐나는 미국에서 게장을 먹을 수 있겠는가?

'한국인은 밥심이지, 밥심.'

[미국에서는 한 끼도 한식 안 먹었으면서.]

'현지에서는 현지 음식 즐기고. 집에서 요리할 때는 한식으로 만들어 먹었지 않나?'

[네, 네. 덕분에 잘 먹었네요.]

미국에 있는 1년간, 남들에게 대접하지 않고 혼자서 먹을 때는 가끔 한식을 요리해 먹기도 했다. 물론 그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햄버거나 피자를 더 많이 먹었지만.

[한식은 딸기랑 잘 안 어룰리는 것 같은데.]

'후식으로 먹으면 되지.'

국밥에 딸기.

나는 원하던 한식을 배부르게 먹고, 창염은 입가심으로 딸기를 먹는다. 나는 든든하게 에너지를 얻고, 창염은 기름진 입을 싹 닦아줄 달콤한 딸기의 맛을 극대화한다.

이게 바로 섹스가 아닐까. 나는 딸기 에이드를 홀짝이며 네트워크를 한창 달구고 있는 여러 가지 가십 거리를 훑었다.

1 피닉스

2 피닉스 표류

3 피닉스 랭킹

4 헌터 피닉스

5 큥큥

6 광검

7 설화공주

8 피닉스 일본 반응

9 국밥

....

검색 순위만 봐도 지금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한국에 상륙한 것 자체가 이슈고, 내가 한국에 방문하기로 한 것도 이슈고, 내가 국밥에 깍두기 국물 부어서 말아먹은 것도 이슈가 되었다.

어딜 가든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이슈는 따르기 마련.

나라는 존재, 피닉스는 현재 이 세계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주인공의 역할을 해야하니까.

[슬슬 피닉스랑 경쟁 붙이기 시작하네요.]

'자존심이 있지, 외국의 헌터랑 자국에 있는 이능력자랑 비교했는데 아무도 못 이기면 꿇리잖아.'

나는 커뮤니티에서 분탕을 치는 이들의 댓글을 살폈다.

- K-HERO? 응, 피닉스 미만잡ㅋㅋ

- 갓직히 피닉스 여기 있는 것보다 일본 있는게 돈 더 벌듯ㅋㅋ

ㄴ 히메지 개새끼 해봐!

ㄴㄴ 갑자기 왜 개새기라고 하는 거지? 논리가 통하지 않으니 욕부터 박는 건 누구한테 배웠나?

- 섹스

자국에 대한 비관과 악의가 점철된 자들. 이곳에 있는 헬조선의 인간들은 나라가 언제 망하는지, 세계가 언제 망하는지만 기다리고 있는 자들 뿐이다.

특히 네트워크 상에서는 더욱 심하다. 오죽하면 네트워크의 인지도 상황에 따라 텐션이 크게 바뀌는 히로인이 있겠는가.

'근데 이 정도로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

미국은 더 심하더라. 각종 파파라치를 비롯하여 유명인에 대해서 쫓아다니는 이들은 지구 어디를 가도 똑같았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좋은 것만 보고 살 수는 없는 법이지만, 굳이 나쁜 걸 볼 필요는 없지.'

[그런 의미에서 딸기 먹방 영상은 어때요?]

'창염 먹방이라면 얼마든지 보고 싶은데.'

콕!

"...아야."

나는 정수리 위에 앉아있던 창염의 공격을 받았다. 본심을 말했을 뿐인데 왜 공격을 당하는 걸까.

"왜 그러세요?"

"아뇨. 그냥 마력 컨트롤에 잠시 이상이 생겨서."

"헉.... 뭐 잘못 드신 건 아니죠?"

"걱정마세요. 밥은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너무 많이 먹어서 일부러 안에서 마력으로 태워야 했을 정도였다. 과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먹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특히 함께 먹어주는 사람 둘이 여자라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여자 둘을 데리고 셋이서 국밥을 먹으러 간다?

남들이 들으면 쌍욕을 먹고 한 소리 듣겠지만, 그렇다고 남정네들과 함께 가서 뜨-끈하게 한 그릇 말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

"한국, 좋네요."

"그렇죠?! 여기가 정말 살기 좋은 동네인데요, 어, 그러니까...."

히어로는 애써 한국의 좋은 점을 설파하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없는 애국심을 강제로 끌어올리기란 정말 죽을 맛이리라.

'공무원이 애국심으로 일하나. 철밥통이라서 일하지.'

[히어로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 여자가 히어로는 아니잖아.'

협회의 사람이지만 히어로는 아니다. 이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남들의 앞에서 당당히 히어로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니다.

'선의철의 괴뢰.'

아마 목 뒤에는 문장사의 낙인이 찍혀 있을 터. 굳이 분류하자면, 눈앞의 여인은 빌런이었다가 문장사에 의해 선의철의 꼭두각시가 된 존재에 가까웠다.

"어, 그러니까...금수강산이 푸르고...."

국가가 목줄을 쥐고 있는데, 과연 애국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오겠는가?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요."

[헤이, 피닉스! 살아있었어?!]

"줄리, 당연히 살아있죠. 제가 죽을 것 같았어요?"

[오, 나는 네가 영락없이 다크 레기온의 간부에게 당하는 줄만 알았어! 어디 정조의 위협은 없었어?!]

"......."

미국 이능력자 협회, 그 중에서도 헌터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여인이었다. 내가 헌터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나를 여러모로 신경써주는 편이었다.

"혹시...."

"와, [세인트 어클레어]...!"

그리고 제법 유명한, 한국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좋은 인상을 가진 이능력자였다. 한국에 열린 게이트를 닫을 때 제법 저렴한 가격으로 지원을 나와 크게 활약하고 갔으니까.

아무리 나라가 쇄국으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19세기도 아니고 최소한의 교류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선의철은 해외, 미국과 주로 연계했다. 외국에 대한 반감은 국가간 거리가 짧을수록 컸고, 그런 의미에서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미국은 그나마 양옆의 국가들보다는 훨씬 신사적이었다.

돈만 주면 일단 대화가 통하는 양키들.

그게 선의철이 퍼뜨린 아메리카에 대한 인식이었다.

'하지만 피닉스를 돈으로 영입할 수는 없지.'

피닉스는 고작 돈 따위에 움직이지 않는다. 창염이 원래 그렇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여자의 처녀와 2천억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내 여자의 처녀를 선택할 것이다!

푸욱!

"...큽."

"혹시 뭐 잘못되었나요...?"

"아뇨. 갑자기 등허리에 오한이 들어서."

창염은 현재 정수리에 결계를 친 채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내 머리 위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가 톡톡 때리는 걸 묵묵히 감내하며, 미국에서의 연락을 적당히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원래 계획대로 한국에 좀 머무를 거예요."

[오, 피닉스! 나는 너무 걱정이 돼. 거기는 너무 위험한 곳이야.]

"뭐 어때요? 이북에서 넘어오는 괴수들, 싹다 잡아서 코어로 바꿔먹으면 돼죠."

[세금이 퍽킹, 6할이라고! 그냥 6할로 끝나는 게 아니야! 그걸 해외로 송금하려고 하면 수수료도 어-썸하다니까? 네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위험해! 너 지난 번에도 세금이 너무 많다고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뚝.

"세상에는 유언비어가 너무 많아요. 그쵸?"

"...네."

더이상 나를 찾는 연락은 없었다. 마도기어의 반응을 끊은 순간부터, 나는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그런데 피닉스. 한국에서 활동하신다는 건...."

"아,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세금 문제만 적당히 해결되면, 당분간 한국에서 코어 좀 수급해보려구요."

이게 일차적인 대외적 이유.

"그...혹시 소문만 무성하던 그건 아니죠? 피닉스 님이 가는 곳마다 다크 레기온이 있다고 하던데...."

"하하, 설마요. 가는 곳마다 정말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에요. 설마 한국에 다크 레기온이 있겠어요? 이미 다섯 간부들이 다 드러났는데."

물타입이 한 명 있다.

"그...피닉스 님. 비록 저희가 곁에서 모시게 되었지만, 그, 밤일 까지는...?"

"와, 이건 진짜 심각한 루머네요."

세번째 이유를 말하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히 정정.

"저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예요."

"앗...그렇다면...!"

"그래요, 저는-"

"페미니스트군요! 아, 역시! 피닉스 님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국적을 불문하고 XY염색체를 모두 기피하시는 궁극의 페미...!"

"......."

확 머리를 태워버릴까. 나는 나를 향한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난감했다.

페미냐, 레즈냐.

"...그런 말 하면,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히익...!"

"......."

나는 레즈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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