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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553화 (553/1,497)

〈 553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07

놀랍게도, 아직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경찰 조사에 협력하거나 도움을 주면 줬지, 취조를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생에는 선량한 소시민 A에 불과했고, 빙의한 현생도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한 헌터 P에 불과했다.

"바른대로 말해. 무슨 목적으로 한국에 온 거지?"

그래서 나는 나를 상대로 책상을 '탕' 치면서 윽박을 지르는 수사관이 몹시 낯설었다.

만약 내가 피닉스가 아니었다면, 헌터가 아니었다면 머리채를 붙잡히고 책상에 이마를 박았을 것이다. 그만큼 수사관은고압적인 태도로 나를 노려봤다.

"당신이랑 이야기할 것 없고, 당신보다 높은 사람 부르세요."

나는 당당히 내 권리를 요구했다. 비록 히어로는 아니지만, 국제헌터기구가 나름 존재는 하는 만큼 헌터의 권리도 있지 않겠는가?

레이드를 뛰다가 타국에 불시착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크 레기온의 간부를 상대하다가 태평양에 처박혀 해류를 타고 동해안에 상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 내가 일부러 바다 속에서 헤엄을 쳐서 떠내려왔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시베리아 사이에서 바다에 처박히면 동해안에 상륙하더라.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루살카가 그렇게 속초에 다다르지 않았던가!

"닥쳐! 분명 너는 빨갱이들의 잔당이 분명해! 말해, 어느 부대 출신이지?!"

"한국 특수부대 출신인데요."

"뭐...? 지금 나를 놀리는 거냐?! 복무신조 읊어봐!"

"으이으 으어아 으어에 우으으 아아으 우이이아."

"...맞는데?"

수사관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북에서 내려온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푸른 머리의 이능력자 여인'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이 제발 대화가 통하는 높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기만을 바랐다.

'푸대접이 심하네.'

미국의 헌터라고 해도 S+급 미인인데 어떻게 이리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히어로 위키에 '피'만 쳐도 제일 먼저 나오는게 나다.

"저기요, 두유 노우 피닉스?"

"팀장님, 아무래도 진짜 한국인 맞는 것 같습니다."

"정신차려. 한국어를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나는 나의 이 나라에 대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마도기어의 자동 번역을 끄고 대화를 하는 중이다.

내가 한국에 대해 딱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고 있었다.

"고도로 훈련된 사이버 전사야...!"

"아니, 검색해보라니까요?"

"머리칼은 염색했겠지? 얼굴은...강남에 있던 성형수술 전문 의사들을 납치해서 시술했겠지! 크윽, 이 더러운 북괴놈들. 이제는 괴수가 된 것으로도 모자라 사람을 사칭하다니...!"

"혹시 평소에 음모론을 신봉하시는 건 아니죠? 남한 전체에 땅굴이 이어져 있다거나 하는 말을 믿으시나요?"

나의 말에 수사관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땅굴! 북쪽의 괴수들은 언제든지 남한을 점령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과민반응이네요."

어떻게 알았지.

"분명 지하 깊숙한 곳, 인간의 지식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특별한 방법으로 레이더를 속이고 있을테지! 너는 그걸 파악하기 위해 내려온 공작원이고! 맞지!"

"망상도 이 정도면 수준급인데,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다 되셨답니다."

짝.

내가 손뼉을 치기 무섭게, 밖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나타나 수사관을 붙잡았다.

"뭐야?! 이거 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BH 지시입니다."

요원들이 뭔가를 꺼내 수사관에게 보이자, 수사관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방에 들어온 요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좀 대화가 통하게 되겠군요."

"...미스 피닉스."

내 앞에 앉은 두 명의 '여자' 요원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수사관의 무례를 용서하여주십시오. 파면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파면이라뇨. 고작 이런 일로 사람을 자르라 마라 하는 인색한 사람 아니에요."

단지 남자와 좁은 공간에서 단 둘이 있다는 것에 질색을 했을 뿐이다. 담배를 태우고 믹스커피까지 마신 쩐내를 풀풀 풍기며 말하니, 그게 불쾌했을 따름.

'한 숨 돌렸다.'

나를 취조하는 남자가 떠나고, 여자가 왔다.

이것은 즉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드디어 위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말. 최초의 발견 시점으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났지만, 이정도면 제법 양호한 텀이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헌터가 바다를 표류해서 속초에 떠내려왔는데."

"그...떠내려오신 배경은?"

"마력탈진."

속초까지 오는 동안 심해에 있는 괴수들을 잡으며 파밍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다.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의식을 잃고 기절.... 과연. 알겠습니다. 미국에는 잘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그런데...혹시."

다른 히어로가 나를 향해 상당히, 몹시 조심스러운, 마치 헐리우드 스타를 향해 묻는 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도쿄로...가실 건가요?"

"네? 왜요?"

"그야 일본행 비행기를...."

"아, 그거...."

지금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일격. 나는 걱정어린 눈빛의 두 여인을 안도시키기 위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직항이 없어서 환승하려고 했거든요. 결과적으로 한국에 도착했으니까, 올 라잇?"

"...네?"

"제가 있는 도시에서 김해까지 가는 항공편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일본을 거쳐서 가려고 했어요. 여기 비행기표."

나는 미리 준비한, 대충 아무거나 준비해둔 비즈니스 티켓을 꺼내들었다. 당연히 미리 준비한대로 피닉스라는 이름은 일본까지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고, 거기서 따로 또 이동하는 동선이 하나 더 있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일본에 가려고 하셨던게...아니었나요?"

"네? 제가 왜요?"

"그, 그럼 한국에는 도대체 왜...?"

"아...."

나는 마음속에 품어둔, 준비한 한 마디를 꺼냈다.

"여기 북쪽에 괴수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던데, 코어 좀 벌어 보려구요."

헌터가 돈 벌러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 * *

피닉스의 한국 표류!

다크 레기온의 습격을 받은 피닉스가 동해까지 표류했다는 소식은 금방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졸지에 피닉스를 보호하게 된 한국의 히어로 협회는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어떻게 하죠?"

"몰라! 외교부 장관 어디있어?! 이럴 때 일본 놈들 들이받으라고 앉혀놓은 거잖아!"

9 "지금 미국 외교부에서 연락 들어온 거 받느라 정신이 없대요!"

"차관은?!"

"차관 얼마전에 서울행 티켓 끊었어요!"

"아...젠장."

히어로 협회의 간부, 는 진심으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거 진짜야? 피닉스가 원래 한국으로 오려고 했다던게."

"네. 항공사 예약이랑 시간대가 달라서 다들 놓쳤어요. 아마 이틀 정도만 일본에서 체류하고 바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미치겠네…."

K-K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피닉스에 대한 정보가 담긴 보고서-히어로 위키를 읽었다.

"진짜 레즈야?"

"몰라요. 적어도 성적 추문은 없지만,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 수사관들 상대로도 남자 상대로는 질색하다가 여자 들어가니까 바로 표정 바뀌었잖아요."

"그건 그 놈이 그럴만한 놈이니까 그러지. 으으, 미치겠네. 우리나라에 피닉스가 좋아할 만한 여자가 있나? 아이돌이라도 부를까?"

"미쳤어요? 그랬다가 괜히 성상납 추문 걸려서 협회가 개망신을 당할 거예요."

"그럼 어떡해? 부를 만한 사람이 없는데!"

유교 의식이 강하고 성적으로도 보수적인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은 이 땅에서 한국은 대 피닉스 영입 전선에서 최약체나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레즈 아니라고 하는데 왜 자꾸 미인계로 여자를 보내는 거냐? 그냥 내버려둬라.

-그치만...피닉스와 다른 여자 히어로가 키스하는 걸 보고 싶은 걸!

-키스하는 것 까지만 두고 좀 내버려둬라!

성적으로 개방되어있는 미국에서도 피닉스를 동성의 사람들로 공략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은 어떠하겠는가!

"젠장. 빨리 찾아내봐. 뭔가 피닉스가 한국에 긍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까 한국어도 배우고 여기로 왔을 거 아니냐!"

"없어요. 아무리 긁어봐도 여자랑 딸기 좋아하는 거 말고는 없단 말이에요!"

"젠장, 미국에서 한식당을 방문했다거나 그런 건 없어?!"

"있었으면 좆좆좆이 진작에 그거 가지고 언론에서 떠들었겠죠! 피닉스조차 좋아하는 비빔밥! 아니, 보빔밥인가?"

"씨발, 역겨운 개소리하지말고 좀 그럴듯한 정보를 가져와!"

삐비빅.

K-K의 마도기어에 연락이 들어왔다. 피닉스를 데리고 다니기로 한 두 여인으로부터 들어온 긴급 보고였다.

"뭔데?!"

[어, 음, 대장. 강릉 출신이라고 했죠? 강릉에 혹시 순대국밥 잘 마는 곳 알아요?]

"야! 씨발, 너희들이 임무 뛰러 갔지 국밥 쳐먹으러 갔냐!!"

[......피닉스 님이 국밥이 먹고 싶다는데요....]

"......생긴 건 파스타샐러드에 스테이크 썰게 생겨놓고는."

K-K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거기는 유성국밥만 아니면 다 돼."

잠시 뒤.

푸른 머리 미녀가 깍두기국물을 국밥에 넣는 모습이 전세계에 사진으로 널리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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