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49화 (549/1,497)

〈 549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03

<피닉스>.

혜성처럼 나타난 미국의 히어로. 맑고 푸른 영창...이 아니고 투명한 푸른 색의 머리칼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전세계 유일 화속성 S+급 이능력자!

S급인 자들은 많다. 물론 많다고 해봐야 전세계에 500명은 커녕 100명이 채 되지 않지만, 한 국가에 S급이 3명이 있다고 하면 충분히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처럼 땅덩어리가 좁고 삼면이 바다, 한쪽 면이 괴수로 둘러쌓인 곳일 수록 S급의 가치는 높아진다. 실제로 한국은 두 명의 S급으로 한반도의 9할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어-뭬리카는 다르다.

아무리 넓은 대륙에 인구가 퍼져있다고 해도, 내륙 지방이 사람이 아예 안 사는 것도 아닌 만큼 괴수가 나타나면 이에 대처해야했다.

대 괴수 시대,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면 히어로 한 명이 커버해야하는 지역이 엄청 넓다는게 넓다는 점.

아무리 전세기를 이용해도, 아무리 빠르게 대처하려고 해도, 고작 4~5명의 S급 히어로들로는 미대륙 전체를 커버하기 어려웠다. 물론 헌터까지 포함하면 S급은 10명 가량 되지만, 그 수가 많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피닉스>는 미 대륙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 영웅? 헌터 아니냐?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히어로보다 빨리 와서 괴수를 죽이고 가잖아? 그녀는 여신이야.

- 미스 캐피탈리즘. 자본의 논리가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야.

괴수가 나타나는 곳에 항상 피닉스가 있나니.

괴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곳에 항상 피닉스가 있나니.

차원문이 생겨났다는 소식에 항상 피닉스가 있나니.

- 제가 S급 괴수 해치웠죠? 돈 내놔요.

- 어, 미스 피닉스. 이렇게 말끔하게 죽인 괴수에 대한 정산이 이루어지는 건 처음이라.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 2000억?

-......미스 피닉스, 혹시 국가를 상대로 고소를 할 예정이십니까? 우리는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 아, 미안해요. 농담. 저스트 키딩. 세금 떼고 2억 달러면 되나요? 그냥 펜트하우스 하나 빌릴 돈만 있으면 되는데.

- 여신이시여.

조 단위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괴수 사체와 코어에 대해서도 검소(?)하고 합리적으로 돈을 부르는 자본의 여신!

누구보다도 열심히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노력하지만, 누구보다도 흑우스럽게 코어와 사체를 팔아치우는 존재!

- 그녀는 돈을 쓰는 법을 모른다. 내가 그녀에게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

자고로 돈 냄새가 보이는 곳에 파리가 꼬이기 마련. 얼핏 흑우스럽고 순진해보이는 이 여인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흑우일지 언정, 마냥 호구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흑우스러움을 채워줄 길드를 만들었고, <스트로베리>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딸기 길드는 만들어진지 불과 반 년 만에 미국 5대 헌터 클럽이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여인'들이 스트로베리 드림을 꿈꾸며 길드원이 되기를 바랐다.

피닉스의 눈독에 드는 여자는 대부분 높은 확률로 고등급의 이능력자더라.

스트로베리에 있는 마력 스캐너가 협회의 것보다 더 정확하다더라.

본인이 화속성 S+라서 그런지, 화속성에 잠재능력이 깊은 사람들을 많이 찾아낸다더라!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품고 많은 이들이 길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들 중 모두가 건전한 생각을 품고 길드 문을 두드리는 건 아니었다.

피닉스가 가진 능력과 재산을 탐내며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고, 피닉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다른 미국의 S급 헌터가 산업 스파이처럼 보낸 경우도 있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이 사용한 계략은 미인계.

그렇다.

화속성 S+급 헌터, 피닉스.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만'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며, 전미는 파랑새를 유인하기 위한 허니트랩으로 가득 넘쳐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미국의 국가대표 이능력자로 선정되기도 한 피닉스가.

갑자기 '일본'으로 출장을 떠난다고 하는 소식에 전미가 들끓기 시작했다.

* * *

[동양의 과도한 정치권 로비…P"나는 그쪽과 관계 없어."]

[미국 내 혐오 분위기 과열, "진주만을 기억하라"]

[불사조는 동양에 새로운 둥지를 트려는 것인가?]

"일본 출장 아닌데."

나는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말에 질려버렸다. 나의 마도기어는 현재 '일본 가냐?'라는 요지의 질문이 수도 없이 쏟아져서 잠시 결계 속에 처박혀있었고, 나는 블랙커피와 딸기케이크로 입가심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일본이 아니라 한국으로 가는 건데."

일본에는 딱히 갈 이유가 없다. 게임 속 세상에 빠지기 전, 내 몸에는 K-Imchi 유전자가 영혼 깊숙히 새겨져 있었다.

농담삼아 일본을 공격한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마력핵폭탄을 투하한다거나 궁극기를 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당신 혹시 피닉스를 코스프레한 AV 배우물 봤어요?]

"......."

왠지 모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 때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잘 참아왔다.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고, 나름 조절하며 S+급으로 알려지도록 열심히 애를 썼다.

'그거 레즈물인가?'

[어떻게 알았죠?]

'척하면 척이지.'

이 세계는 나에 대한 악의(백합)으로 가득차있다. 창염부터가 나를 백합으로 물들이려고 하는 것처럼.

'억울해.'

남자보다 여자를 더 중용했을 뿐이다. 당연히 여자보다 남자가 편했고, 나는 초기에는 남자를 친구마냥 중용했었다.

- 브로,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없어!

- 그보다 마약 섹스나 하자고! 자궁이 큥큥거려서 견디지 못할 걸!

나름 아껴줬던 흑인 이능력자 둘이 나를 상대로 마약을 쓰려고 한 순간 이후로, 나는 내 주변에 여자만 두게 되었다.

- 언니, 여자 사이에도 친구만 있을 것 같아요?

- 미스 피닉스가 상대라면 내가 바텀할 수도 있어.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만인의 진히로인이라는 말은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말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름 분별력 있는 여성들조차 나를 상대로 은근한 성적 농담을 하며 떠보고 있었다.

얼굴과 몸매는 여신인데 행동은 상남자.

창염에 의해 디폴트로 고정된 말투 문제만 아니었으면, 나는 내 본성대로 행동하려고 했다. 드레스보다 청바지를 입고, 브라는 당연히 차지 않았다.

- 청바지 골반 라인 봤냐? 저게 '임최몸'이라고 하는 거야.

- 노브라 오우야....

그 뒤로 나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종교인들이 입는 사제복으로 내 몸을 가려야했다. 나를 상대로 보는 수많은 시간을 버틸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남들의 앞에서는 아무리 답답해도 사시사철 사제복을 입고다녀야했다.

[초기 활동 시절에 사복 입었던 거, 도촬 사진이 지금 화보집으로 팔리는 거 알아요?]

'역시 이 인류는 글러먹었다.'

철컥.

나는 데저트 이글의 몸체를 당겼다. 총탄이 들어가지 않는, 나의 마력으로 격발되는 마도권총은 영롱하게 빛나며 나의 분노를 들끓게 만들었다.

'다 죽일까?'

[참아요, 피닉스. 저들 모두가 우리의 결혼을 축하할 하객들이니까요.]

'누가 신랑인데?'

[당연히 제가 턱시도를 입고, 당신이 웨딩 드레스를 입는 거죠! 푸흐흐.]

탕.

나는 내 머리에 대고 마탄을 쏘았다. 하지만 마탄은 내 피부에 닿자마자 흡수되었다.

화르륵.

대신 푸른 뱁새가 내 머리 위에서 날개를 펼치며 통통 튀어올랐다. 이렇게 창염을 '외부'로 꺼낸 순간, 나는 언어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 가도 여자들이 가득하겠지?"

"여기도 지금 여자 천지인데 한국이라고 다르겠어요? 일본은 지금 한 술 더 떴어요."

창염은 마도기어를 내게 건넸다. 그리고는 능숙한 손길로 화상을 넘기며 내게 일본에서 준비중인 대 피닉스 전용 마탄을 꺼내들었다.

"씨발."

"그거 알아요? 조선시대 때 일본으로 가는 사신들을 위해서, 일본 조정에서는 남색을 즐겨보라고 츄라이 했다네요."

"그래서 지금 여장남자에 남장여자까지 다 동원했다고?"

"이른바, 네가 뭘 좋아할 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푸흐흐."

남장여자는 나를 레즈로 여기는 것 같아서 좆같고, 여장남자는 그냥 좆이다. 나는 창염을 사랑하고 좋아할 뿐, 절대 '여자로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남자다."

"응, 님 얼굴."

"......너, 내 기억을 읽었다고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당신의 얼굴이 곧 제 얼굴인데 왜요. 예쁘다고요. 화났어요? 화났어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날갯짓을 하는 푸른 뱁새는 다시 내 머리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래서 계획은? 일단 공식적으로 비행기는 '일본'에 도착하는 거로 되어있는데."

"항공 일정이야 그렇지. 하지만 뭐...."

나는 내 앞에 놓인 붉고 영롱한 구슬을 들어올렸다.

"S급 괴수가 일본 열도 위에서 날뛰면 불시착이라도 해야지."

작전명, <후지산 대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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