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8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02
2022년.
원작과는 다소 동떨어진 애매한 시기.
나는 현재 미국에서 나름 유명한 헌터 길드, <스트로베리>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을 했냐고?
- 이봐, 거기 새끈한 누님, 우리랑 같이 약빨고 한 판?
화륵.
불로 지졌다. 감히 창염의 몸을 두고 음란성 발언을 하는 자들을 향해 불로써 다스렸다. 물론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죽을 만큼 아프게 하거나, 죽기 직전까지 몰고갔다.
- 항복, 항복! 살려줘! 씨발, 너 빌런이지!
- 아뇨. 헌터인데요.
이름하야, 바운티 헌터.
아무리 무비자 무국적 무자본인 사람이 미국 넓은 땅떵어리에 떨어졌다고 해도, 내게는 피닉스로서 가진 무한한 마력이 있다.
SS+급의 화속성 이능력자가 어디 할렘가를 전전하며 마약에 쩔어있는 삶을 살까, 아니면 누구 하나를 족쳐서라도 빌런 조직을 털어먹어 자본을 마련할까.
[동네 조폭 습격은 회빙환 전생의 국룰이죠. 푸흐흐.]
창염의 말대로, 나는 내가 상륙한 지역의 빌런들을 몰래 털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상대로 협박하여 가짜 신분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적당한 바지사장을 내세워 헌터 길드를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관련자들을 협박했다.
- 헤이, 유, 메이크 미 어 헌터.
- What the Fu.... 버, 번역기 켜!!
- 순순히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아메리카를 반반치킨으로 만들어버리겠어요.
원작의 피닉스가 했던 것처럼 나는 아메리카를 두고 협박했다. 물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아닌 USA를 두고 협박했다. 다행히 여러 친절한 아메리칸들은 머리가 불타기 전에 내 협박에 순응했고, 나는 그들과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었다.
- 헤이, 피닉스. 이번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 제가 당신들한테 벌어주는 코어가 얼마인데 그런 소리가 나와요?
- 하지만 피닉스, 코어 판 돈으로 딸기 모종을 사들여서 딸기밭을 만들라는 건....
- 에잇, 창염 맛 좀 볼래요?
마력으로 협박하니 다들 처신을 잘 하더라. 왜 사람들이 먼치킨을 좋아하고, 왜 사람들이 사이다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 대통령까지 협박할 수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날뛸 생각은 없고.'
미국에서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기반의 마련일 뿐. 정확히는 합법적인 자금 치트를 위해 미국에서 조금 대규모로 활동을 했을 뿐이다.
"3년 동안 벌고 25년 1월에 한국으로 입국하면 되겠죠?"
[막 산다고 해놓고 너무 막 사는 건?]
'돈지랄 할 수 있는 삶이면 돈지랄 해야지.'
현재.
끼요오오옷.
나는 한 대 수 억에 이르는 스포츠카를 이끌고 도로를 질주하는 중이다. 포장된 도로는 나를 위한 아우토반이었다.
[어차피 살 거 수백억 하는 거 사지, 왜 수 억 짜리 중고로?]
'원래 중고차로 연습하고 다니는 거야.'
설령 박아도 마음 아프지 않게. 소시민 겜창의 삶을 살았던 내가 아무리 미대륙을 대표하는 헌터 길드의 수장이 되었다고 한들, 대외적으로 너무 부를 과시하는 건 K-유교인 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기회의 땅에서 돈 좀 모아서 금의환향하는 거지.'
[그러기에는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젠장."
삐이이익.
뒤에서 거친 경적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아는 대로 대충 기어를 최대로 밟았지만, 마도공학의 결정체인 마도차량의 속도에는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거기 서라, [피닉스]! 오늘이야말로 너를 히어로로 만들고 말겠다!"
"저는 헌터할 건데요!"
"안 돼! 너를 헌터로 두는 건 전국가적 손실이야!"
"제 금전적 손실은 어떻게 보상할 거죠?!"
"국가와 국민,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과 뿌듯함이 너를 채워줄 것이다!"
삐뽀삐뽀.
나를 쫓는 마도차량들은 유유자적한 속도로 내 스포츠카를 포위했다.
"고작 구시대의 유물로 도망을 치려고 하다니!"
"낭만도 몰라요?!"
아무리 시대가 대 마도시대라고 한들, 고전의 감수성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가솔린 스포츠카를 두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용서할 수 없다. 전생, 소시민 시절 나의 워너비 차량을 향해 유물이라고 한 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
"아 씨, 남자면 차에 불붙여서 터뜨리려고 했는데."
나를 포위한 차량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다. 하나같이 미인들이었고,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오우야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몸매의 소유자들이었다.
"흥! 네가 여자만 좋아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너를 위해 그런 플레이도 가능하다고 하는 여성 히어로도 준비해뒀지!"
"아, 진짜! 누구를 레즈로 알아요?!"
내 외침에 나를 포위한 히어로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즈 아니야?"
"그럼 바이인가?"
"남자는 더럽게 싫어하니까 레즈 맞는데."
"아, 진짜!!"
부아아아앙.
"자유의 아메리카라면서요! 왜 자꾸 나를 자유롭게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건데?!"
"강한 자에게는 그만큼 강한 책임이 따른다!"
"그런 책임지려고 강해진 거 아니거든요!!"
억울하다.
2022년, 12월.
최초로 상륙했던 1월 이후, 나는 불과 1년 사이에 미국을 대표하는 이능력자가 되어있었다.
레즈비언인.
* * *
"충격. 피닉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야.""
이능력자 가십지 1면을 장식하는 문구였다.
"어처구니가 없네요. 내가 왜 동성애자죠?"
"그거야 길드장께서 주변에 여자만 두고 계시니까 그렇죠."
나의 비서, 미스 <롱고메리>는 내 앞에 딸기쉐이크를 내어놓으며 이죽거렸다.
"당장 이 길드에 있는 헌터들 중에서도 길드장 노리는 여자가 엄청나게 많답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1인 길드로 나대는 건데."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저구요."
"......."
나는 눈앞의 금발벽안 비서를 위아래로 훑었다. 정말 잘 빠진 몸매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침대에서도 화끈하게 벗어줄 수 있는-
[쟤, 얘전에 딜도 스트랩 구매한 이력이 있다는 것이야.]
"!!"
박힌다. 나는 내 몸을 보호하듯 두 팔을 슬쩍 들어올렸다. 미스 롱고메리, 나의 개인비서이자 A급 헌터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왜 제가 길드장을 범할 것처럼 쳐다보십니까?"
"꼭 약 태워놓고 범할 것처럼 생겨서?"
"유감입니다. 저는 약 같은 건 사용하지 않습니다."
"약 말고 도구를 사용하는 편이군요?"
"......."
롱고메리는 대답이 없었다.
"하아, 진짜 주변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게 너무 슬프네요."
"길드장님께서 편이라고 하다니, 그런 존재가 누가 있죠?"
[내가 있다는 거시야.]
파닥, 파닥.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내 머리 위에 자리잡았다.
"피닉스군요."
[창염인데요.]
"창염이에요."
"귀여우니까 미니 피닉스라고 하죠. 아니면 삐약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울음소리가 특이하니까, 큥큥이?"
"......."
갑자기 속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하아. 됐어요. 어서 보고나 하세요. 오늘 히어로 애들, 왜 또 히어로 하라고 난리를 친 거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대표 선정전에서 길드장님이 압도적인 힘으로 <라이트닝>을 이겼다는 것."
"S급 히어로를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뿐이에요. 대외적으로는 저, S+급 히어로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 전에 저희 <스트로베리>에서 해외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혹시 길드장님이 해외로 가려고 하는게 아니냐 하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죠."
"앗."
걸렸다.
"남들 모르게 했는데...어떻게?"
"길드장님이 자금 보내는 곳이 죄다 결국에는 그곳으로 흐르도록 되어있는데 제가 모를 것 같나요?"
"으으, 설마 눈치를 챘을 줄이야."
비자금이 들킨 것 같은 느낌에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마도기어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거기 북쪽, 코어밭인데."
"저희 길드야 좋지만, 세금 문제가 이중으로 과세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길드장님 몰래 알아봤는데, 외국계 헌터 길드에 대해서는 코어 판매 대금의 6할을 세금으로 거둔다고 하더군요."
"......."
빌런 마렵다. 격하게 빌런으로 활동하면서 암시장에 코어를 팔아버리고 싶다. 피땀흘려 번 돈을 국가에 6할이나 세금으로 바치느니, 차라리 코어를 녹여다가 마력으로 원샷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외국계 헌터 길드라면 그렇다는 거죠?"
"네. 지사는 그렇습니다. 우회 법인이라도 만드시게요?"
"그럼 롱고메리. 그쪽에서 정식으로 파견 요청을 할 경우는?"
"네? 차원문이라도 열리지 않는 이상, 방법이 있습니까?"
"네. 아주 훌륭한 해결책이 있죠."
한국인 깽판물에서 빠지면 섭섭한 일.
[일본을 공격하는 것이야.]
동해 근처에 괴수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