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46화 (546/1,497)

〈 546화 〉IF Route, Bad Ending # 15X

IF Route는 본편과는 관계없는, 본편에서 파생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 불쾌감이 들 수 있으니, 본편을 보실 분은 다음 장으로 바로 넘어가셔도 내용 이해에 문제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캐릭터 붕괴도 있을 수 있으니, 유념하여 주십시오.

* * *

피닉스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최악의 조건을 상정하고 움직인다. 그래서 최대한 변수를 줄이고자 과격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때때로 그 과격한 수단 자체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변인들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 적절한 상황으로 이끌어나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한 순간에 벌어진 작은 상황이 온갖 형태로 안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오라클은 꿈을 통해 그 수많은 '있을 지도 모르는 실패한 미래'를 관측했고, 자신이 본 그 모든 과정을 기억나는대로 자신의 노트에 적었다.

이것은 오라클의 수많은 노트 구석에 파묻혀 오라클에게도 잊혀진 관측 정보 중 일부이다.

* * *

# Case 153.

아지다하카는 미남을 좋아한다. 그 미남이 자신의 어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즐기는 여왕벌이 되는 상황을 좋아한다.

"히드라 때랑 똑같이 하면 되겠네."

피닉스는 마음을 놓았다. 조심성 깊은 히드라를 유나에게 싱크로까지 시켰으니 더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히드라를 공략하는 것보다 아지다하카를 공략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수월했다.

"남들 시킬 필요 없이 내가 어그로 끌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피닉스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비록 케레스의 연인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 때문에 얼굴이 조금 팔리기는 했지만, 적당히 변장을 하고 돌아다니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피닉스는 소말리아의 한 이름없는 선술집에서 바텐더인 앙그와 만났다. 둘은 아무도 없는 선술집에서 조용히 잔을 부딪히며 담소를 나누었다.

"선호하는 칵테일 있어?"

"스트로베리 진 스매시."

확고한 피닉스의 특이 취향에도 앙그, 아지다하카는 멋드러진 솜씨로 칵테일을 섞었다.

"자, 여기."

"...그런데 나 돈 없는데?"

"돈 대신 몸으로 갚던가."

"그거라면 얼마든지."

알코올 향이 거의 나지 않는 딸기 칵테일을 내어놓은 아지다하카의 솜씨에 피닉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굉장한 걸. 잘 마실게."

꿀꺽. 꿀꺽.

피닉스는 아무 망설임없이 아지다하카가 내민 칵테일을 들이켰다. 안에 약이 태워져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진인 검은 성지에 직접 잠입하기 위해 약효에 따라 의식을 잃었다.

"오호호호! 멍청한 피닉스."

그리고 피닉스는 <앙그와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에서 정신을 차렸다.

"여긴…."

셰라자드가 왕에게 천일동안 이야기를 읊었던 왕의 침실이 이러할까. 피닉스는 어느새 여체가 되어 벨벳 드레스로 갈아입혀진 자신의 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연히 내 성지 안이지! 오호호, 너는 이제 도망칠 수 없어."

아지다하카는 백청화의 모습을 한 시안을 침대에 구속해놓고 전신 거울 앞에서 쌈바를 추고 있었다. 아지다하카의 얼굴에는 피닉스를 능욕할 생각에 희열로 가득차있었다.

"멍청한 것이에요."

피닉스는 아지다하카를 비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지에 묶인 쇠사슬 따위는 금방 벗겨낼 수 있-

"는데…?"

절그럭. 절그럭.

벗겨지지 않는다. 피닉스는 마력이 중간부터 사라지고 있음을, 정확히는 아지다하카에게 빼앗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제 손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의 재질을 깨달았다.

"큐브…?!"

"오호호, 조심성 없기는. 맞아. 전세계 모든 괴인들을 총동원해서 간신히 구했지. 남은 걸 탈탈 털었다고."

아지다하카는 피닉스의 배 위를 손으로 쓸었다. 손톱을 세워 긁어올라감에도, 피닉스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아, 아흐, 흐아아…?!"

아지다하카의 손길이 닿은 곳은 마치 성감대라도 되는 것 마냥 몸이 달아올랐다. 큐브가 모여든 방안은 은은한 주홍빛이 감돌았고, 아지다하카는 입술을 핥으며 피닉스의 피부를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아…. 새장안에 갇힌 새가 왜 이리 예쁜 걸까?"

"미, 미쳤어요?!"

"미쳐버릴 것 같네. 나 이런 쪽으로 취향 없는데…. 그물에 걸리는게 꼭 물고기만 걸리라는 법은 없지. 응, 맞아. 이 성지에서는 내가 곧 법이고 주인인 걸."

아지다하카는 상의를 벗어던졌다. 피닉스만큼은 아니지만 봉긋한 가슴이 분명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고, 아지다하카는 마저 치마를 벗어던졌다. 검은 팬티스타킹만이 아지다하카에게 입혀진 옷의 끝이었다.

"흐흥. 어떤게 좋을까…. 아, 이건 어때?"

아지다하카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큐브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가차없이 피닉스의 음부 아래로 쿡 찔러넣었다. 바지를 찢고, 팬티를 찢은 손톱 너머로 큐브가 생으로 피닉스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악!!"

큐브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피닉스는 칼에 심장이 찔린 것 마냥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질속을 탐험하듯 넘어간 큐브의 마력이 피닉스의 몸 전체로 범람하기 시작했고, 피닉스의 찢어진 속옷이 점점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거 아니? 여기는 말이야, 남성기나 여성기나 비슷한 역할을 한대."

아지다하카의 손길이 피닉스의 음핵을 스쳤다. 속옷을 옆으로 밀어내고 점점 부풀어오르는 피닉스의 음핵은 남성기와 같은 형태로 변했다.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아랫배를 피닉스의 남성기에 딱 붙이며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너, 자랑스러워 해라? 내가 살면서 본 남성기 중에 이게 최고란 말이지...흐흐."

부욱.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스타킹의 고간 부분을 좌우로 벌렸다. 커다란 구멍이 생겨남과 동시에 아지다하카의 음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그만둬요...! 제발!"

"싫은데? 하아, 진짜 잘생겼네.... 맛있겠지?"

아지다하카가 몸을 들어올렸다.

"잘 먹겠습니다."

찌걱.

피닉스의 불기둥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닉스는 검은 영지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 * *

Case. 157.

"화권 더 블레이즈 댄서 리, 클럽으로 입장합니다."

[꼭 그렇게 장난을 치셔야겠어요?]

백희아는 피닉스의 브리핑에 핀잔을 줬다. 아지다하카를 낚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화권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작전을 피닉스는 아무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장난이라뇨. 제가 얼마나 진지한데. 이 작전이라면 충분히 아지다하카를 낚을 수 있다고요."

[하아, 제발 낚여줬으면 좋겠네요.]

"백희아 아가씨, 지금 보면...오, 벌써 낚았네요."

[맙소사.]

화권은 스스로를 앙그라고 자처하는 여인과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칵테일을 주고받고, 자연스레 애프터를 청하며 번호를 따내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다.

"...쟤는 진짜로 꼬시려고 드는 건가?"

[그냥 자연스레 행동하는 것 같은데요. 아, 노래 부른다.]

화권이 피아노에 앉았다. 재즈 클럽에는 제법 울림이 좋은 최고급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고, 화권은 그 피아노에 앉아 앙그를 바라보며 피아노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라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라라 라, 라라라.

어딘가 구슬픈 것 같기도 하고, 애절한 것 같기도 한 피아노 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화권이 입을 열었다.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없나, 가만히 놔뒀다간 끊임없이 덧나-]

피아노 소리가 급격하게 빨라짐과 동시에, 화권의 입에서 속사포와도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

아지다하카는 유리컵을 헝겊으로 닦으며 노래 가사를 음미했다. 조금 빠른 것 같기도 한 화권의 노래 가사는 어찌나 귀에 쏙쏙 들이박히는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건 아지다하카 뿐만 아니라, 아지다하카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암룡 앙그에게까지 전해지는 울림이었다. 언제나 남에게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하여 언제나 혼자가 되는, 외톨이가 되는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같았다.

"...씨발."

아지다하카는 절로 입에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안그래도 우울했던 마음이 더욱더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화권의 노래는 가루라에게 차이고 난 자신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마치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 같은 말 같기도 했다.

언제나 홀로 상처를 입고,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어둠속으로 파묻히는 자.

누가 봐도 마암룡이었고, 누가 들어도 아지다하카였다. 아지다하카는 유리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깨질듯이 흔들림에도 자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저거 설마 나한테 부르는 노랜가? 맞겠지? 나 지금 외톨이라고 놀리는 거지?'

아지다하카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노래의 가사는 자신을 저격하는 의도였다.

'에이, 설마. 그냥 화권이 미친놈이라서 그렇겠지.'

만약 화권이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저런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아지다하카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지다하카는 속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마실 칵테일을 섞었다. 어느새 노래는 끝이 났고, 화권은 충격에 빠진 클럽 분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야아아아아아!!!!"

아지다하카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아지다하카는 섞던 칵테일을 화권에게 전속력으로 집어던졌다.

"정체를 드러냈구나, 아지다하카!"

화권은 씩 웃으며 하늘색 불꽃을-

"아."

화르르르르르르륵!!!!

클럽이 전소했다.

그 날, 클럽 안에 가득 차있던 사람들은 모두 화상을 입었다. 비록 수속성 히어로가 급히 달려와 불을 끄기는 했지만, 기꺼이 실연의 아픔을 다독이려던 이승형을 위해 친구가 되어준 이들은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그 환자들 중에는 전신이 불에 탄 웨이터 한 명도 있었다. 병원에 실려간 아지다하카는 멍하니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다 죽여버리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음 속 마암룡 또한 동감했다. 친구가 없는 외톨이를 놀리는 것은 머리가 벗겨진 이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아지다하카와 마암룡은 극적인 화합을 맺었고, 아싸를 놀려대는 세계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내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 세계, 다 박살내버리겠어.'

아지다하카의 생각은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지다하카의 브레이크가 되어주지 않았다. 아지다하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모든 괴인들은 아지다하카의 몸만을 탐할 뿐이었지, 그 누구도 아지다하카의 고뇌를 알아주지 않았다.

'다 망가뜨려 버리자. 성주고 뭐고.'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은 아지다하카는 테라와 지구 사이의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테라에서 수 억 단위의 괴수들이 지구로 넘어와 대지를 휩쓸었다.

지구는 마하의 속도로 멸망했다.

* * *

# Case 159

"창염개진--!!"

피닉스는 푸르게 타오르는 주먹을 내질렀다. 땅을 향해 뻗어나가는 창염은 수백의 아지다하카를 태워 소멸시켰다.

"후후, 아무리 당신들이 많아도 저를 이길 수는 없...."

쩌적.

피닉스가 날린 창염개진이 검은 성지의 포털을 건드렸다. 피닉스는 표정이 굳었고, 검은 성지의 포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 좆됐다."

"우오오오! 창염개진!"

화권의 불주먹이 살라딘의 코어를 찔렀다. 살라딘은 다마스커스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피식 웃었다.

"...괴인이 되었기 때문인가. 결국 히어로에게는 이길 수 없군. 후후."

파사삭!

코어가 깨진 살라딘은 그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검은 안개가 되어 소멸했다. 화권의 손에는 살라딘이 남기고 간 터번만이 덜렁 남아버렸다.

"......스승님은?"

화권은 급히 컨테이너 박스를 박차고 나가 이스라엘로 달렸다. 살라딘은 자신이 쓰러뜨렸으나, 역시 스승의 위험을 두고 제자가 외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마력 스캔 반응...어?"

이스라엘의 이름없는 사원.

세계에 균열이 생기며 틈이 벌어짐과 동시에.

푸화아아아아아악!!!

수천, 아니 수억 명에 이르는 아지다하카들이 튀어나와 온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60억 아지다하카는 전 지구인을 상대로 1:1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 * *

드디어.

이계신은 멍하니 성간 우주를 방황했다.

끝이 도래하고 있다.

이계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성주가 열심히 이계신을 부르고 있었지만 이계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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