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45화 (545/1,497)

〈 545화 〉OMAKE #015, 어둠보다 짙은 다크

타다닥, 타닥.

언제나처럼 여인은 어두운 공간에서 마도기어의 홀로그램 속에 파묻혀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U튜브 영상들이 흘러다니고 있었고, 여인은 그 중 재미있어 보이는 영상을 아무거나 챙겨보며 헤실거렸다.

[텐시 라이브, 화속성과 풍속성의 상하관계에 대하여.]

[여신님 귀가길에 개초딩 습격?!?!]

[아동성추행 범 신관을 고발합니다.]

"......응?"

여인은 탄산수를 마시다가 이상한 제목의 영상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신관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 뿐이건만, 도대체 상습 성희롱범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볼까."

어그로가 안 끌릴래야 안 끌릴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영상을 틀자마자 쓰레기같은 유성의 히어로 슈트 광고가 나왔다. 신관을 고발한다고 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신관의 팀원 중 하나가 유성의 히어로 슈트를 광고하고 있었다.

"자본에 패배한 쓰레기."

여인은 신관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맨날 유성 저질이라면서 욕하더니."

유성 제품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유성의 광고비에는 넙죽 절하던 그의 모습은 여인에게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물론 그 넙죽 받은 광고비가 여인을 구하는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게 아이러니였지만.

[저도 사용합니다. 유성의 슈트.]

화면에는 금발의 서양남이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싱긋 웃었다. 여인은 탄산수의 페트병 입구를 이로 오물오물 씹다가 정신을 차렸다. 첫번째 광고가 신관이 나오지 않았다면 바로 스킵했을 것이다. 마침 두번째 광고가 나왔다.

"스킵."

5초가 지나기가 무섭게 여인은 광고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팀, <데스디나스>와는 악연 깊은 존재가 정장을 입고 똥폼을 잡고 있었다.

-저희 풍마 TV 사무실에 어느날, 수십 장의 사진이 배송되었습니다.

"별꼴...."

-영상을 본 저, 풍마 김규민은 경악을 금치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상 속 내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선정적이며,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한 명의 영웅이 가진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는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랄.... ...어?"

여인은 탄산수를 마시다가 화들작 놀랐다. 영상 속 장소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장소였으니까.

"저기.... 나랑 그저께...?"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놀이공원. 아버지와 딸처럼 다니는 이 둘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무슨 일을 했던 걸까요.

"......헉."

여인은 숨이 멎을 뻔 했다.

그곳에는 금발의 남성이 한여름임에도 코트를 입은 채 벽을 짚고 서있고, 여인과 똑 닮은 어린 아이가 코트 아래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빨고 있었다. 소시지 같기도 하고, 아이스바 같기도 한 물건의 정체는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망."

여인은 눈앞이 아뜩해졌다.

아직도 달콤쌉싸름하면서도 그 꾸덕꾸덕한 커스터드 크림치즈 맛이 잊어지지 않아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건만, 그 장면이하필이면 놀이공원에서 구형 필름 카메라로 찍힌 것이 화근이었다.

"어떻게 하지...."

여인은 영상을 배속으로 재생하며 끝까지 확인했다. 수십 장의 파일은 얼굴이 모자이크가 되어있었지만, 대한민국 신서울에 오른팔이 빈 백색의 코트를 고집하는 남자는 신관 한 명 뿐이었다.

- 와 미친 리얼 페도 새끼였네 사형이 답이다

ㄴ 아무리 그래도 신관이 지금까지 한게 뭔데 사형이 뭐냐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해야지.

ㄴ 왜 그러냐 왜소증 걸린 어른일 수도 있지ㅋㅋㅋ근데 교복이네? 사형.

- 저건 미국도 거른다

ㄴ 본국 커뮤 반응 가져왔다. 여기 오라클 스튜디오에 기자들 들이닥치고 난리도 아님ㅋㅋ

ㄴ 아동성추행이 아니라 아동.... 어우, 더러워서 진짜 말이 안 나오네요. 실망입니다.

- 신관 님이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분명 풍마 TV의 조작일 겁니다. 유성의 모략입니다.

ㄴ 라온이니?

등록된 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은 영상은 벌써 조회수가 10만 건을 넘길 정도로 불타올랐다. 여인 또한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 지 난감해서 속이 끓었다.

삑, 삐비빅.

문이 열렸다. 여인은 황급히 영상을 내렸다.

"뭐 보고 있었어?"

청발청안의 청년은 여인이 좋아하는 온갖 주전부리를 들고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윽."

따사로운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어둠을 걷어냈다. 여인은 주변에 마력을 일으켜 암막을 만들어냈고, 청년은 피식 웃으며 침대로 다가와 여인을 끌어당겼다.

"일광건조 해야돼, 앙그."

"그,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여인, 앙그는 청년에게 안기는 바람에 말할 것들을 까먹어버렸다. 아니, 따사로운 햇살같은 그의 살냄새에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몸이 두둥실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청년은 앙그의 볼에 짧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보던 건 재미있었어?"

"...응."

하지만 청년의 말에 앙그는 바로 현실로 추락했다. 앙그는 백허그로 끌어안은 청년의 손을 붙잡으며 난감하게 웃었다.

"우, 우리...."

"응."

"...야외플 걸린 듯...."

"......."

청년, 신관의 표정이 굳었다.

* * *

"문제의 소지가 있는 영상이라고 차단했어요. 물론 다시 음모니 뭐니 떠들면서 다시 새로운 영상을 찍어올리겠지만, 적어도 그 때 까지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예요."

집행관 백희아는 함장실에 두 명을 호출하여 나긋나긋하게 상황을 수습했음을 알렸다. 신관과 앙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분."

"예...."

"제가 변장을 하라고 했지, 변신을 하라고는 안 했잖아요."

"면목이 없습니다...."

신관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백희아의 지침이나 제안, 그리고 주의를 깡그리 무시하고 밖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하다가 걸린 건 사실이었기에, 신관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저...."

"다하캉으로 말해도 됩니다."

"잠시...."

앙그는 마도기어를 두드리고 눈을 감았다. 마도기어에서는 앙그와 똑같이 생긴 홀로그램 여인이 새침데기같은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한 게 뭐가 나빠! 잘못이 있다면 몰카 찍은 파파라치가 나쁜 거지!]

"그렇죠. 풍마 TV에는 협조를 구해서 사진을 찍은 범인을 색출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들이 밖에서 하는 걸 두고 나무랄 생각은 없어요. 함선의 방 안이 답답하다고 밤에 몰래 야외 갑판에서 하던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VR 아지다하카, 줄여서 다하캉은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를 질렀다. 홀로그램임에도 본체인 앙그-마암룡보다 더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그래서 불만있어?! 어떤 여동생도 중간에 좋다고 끼어든 걸로 아는데!!]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백희아가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부끄러움의 표현이었고, 다하캉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럼 뭐야?! 서, 설마 내가 어제 하루 독차지 했다고 질투하는 건 아, 아니겠지?!]

"그런 걸로 질투를 왜 합니까. 신관님.... 아뇨, 오라버님의 연인은 당신인데. 다만."

백희아의 목소리는 서슬프러워 함장실에 에어컨이라도 킨 것만 같았다.

"왜 하필이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하셨냐 이겁니다. 오라버님이 졸지에 롤리타, 막말로 페도필리아가 되셨잖아요. 차라리 기본 상태에서 검은 마스크 끼고 가셨어야죠."

[그, 그치만 그걸로 얼굴을 가려도 이것 때문에 걸리는 걸!! 그래서 변신했잖아!]

다하캉은 앙그의 눈가 눈물점을 가리켞다. 왼쪽 눈동자 눈꼬리에서 15도 각도만큼 쳐진 눈물점은 앙그의 깊은 매력을 더욱 돞보이고 농염하게 만들었다.

"예. 140cm 단신으로 변신하시어 누리 교복을 훔쳐다가 입으셔가지고 그 짓을 하셨죠."

백희아가 꼬집은 것은 신관의 이미지 실추였다.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킨 신관 본인은 두 말 할 거리도 없었고, 그 범행을 일으킨 당사자인 앙그 또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김누리 플레이를 하자고 한 건 다름아닌 앙그 본인이었으니까.

"그...희아야.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오라버님은 괜히 앙그 감싸려다가 덤터기 쓰지 마세요. 제가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미안."

신관은 우울한 낯빛으로 씁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도토리 빼앗긴 다람쥐 마냥 처량한 모습에 백희아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점점 앙그의 폐품같은 성향에 물들기 시작한 사랑하는 오라버님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흠흠. 그래서 이제 오라버님의 소아성애자 프레임을 타개할 계책을 마련해야 해요. 풍마가 또 새로운 영상을 제작해서 유언비어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기 전에."

"......희아야. 앙그. 어쩔 수 없지. 최후의 수단이다."

신관은 앙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굳은 얼굴로 자신의 작전을 밝혔다. 앙그는 문제의 스캔들 영상과 마찬가지로 작아진 상태였다.

"기자들 불러줘.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해명할게."

"...오라버님,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시죠?"

"당연하지. 걱정마. 모든 논란을 잠재울 마법의 단어를 알고 있으니까."

신관은 결연한 의지를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선언이 끝나고 나면, 분명 이 논란은 가라앉을 거야."

신관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저는 소아성애자가 아닙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교복은...한 번 교복입고 데이트해보고 싶었습니다! 야외 섹스는 송구합니다!!"

신관은 정면 돌파를 시전했다.

* * *

"오빠, 뇌절함? 머갈 텅텅?"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 당당하게 얘기한 거 안 부끄럽냐고."

체구가 작은 소녀, 올해 나이로 20세가 된 김누리는 자신과 쏙 빼닮은 외모와 체구의 소녀, 앙그를 안고 툴툴거렸다. 좋은 말을 해주려고 해도 험한 말이 자동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제 끝난 거 인정? 지구 전체를 지킬 히어로에서 전세계 페도들의 대표가 된 거 축하드림."

"...끝났지. 완전히 뿌리를 박아버렸으니."

신관은 김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평 불만이 많아보이는 누리는 입술을 댓발 내밀 뿐 더이상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책임질게. 누리야."

"...내가 꼽사리 끼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누리는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큰 앙그의 가슴을 잡고 비틀었다. 앙그는 얼굴을 붉힐 뿐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남의 혼삿길 가로막았으니 둘이서 나 먹여 살리도 책임져야 하는 거임. 그러길래 남의 교복은 왜 훔쳐 입어가지고 그럼? 신서울 여고생 중에 중딩 사이즈 교복 나밖에 없는데."

"그, 훔쳐간게 아니고 잠깐 빌려간 거...."

"본인 허락 안 받고 빌려간 거면 훔쳐간 거지 뭘. 어쩔 거임? 나 이제 교복 입지도 못하게 된 거."

누리는 도끼눈을 뜨며 앙그의 가슴을 쥐어 뜯었다. 체구는 엄청 낮게 만들었으면서 가슴은 또 그대로 유지하는 바람에, 셔츠부터 마이까지 안 늘어난 곳이 없었다.

"암튼 오빠, 이걸로 앙그가 누구랑 할 지 빼박이네."

"누리야?"

"앙그 싱크로. 사람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나랑 싱크로 안 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그...본인 의사는?"

"앙그?"

누리가 앙그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허튼 소리를 하면 찔러버리겠다는 장난스러운 협박이었고, 앙그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숨을 헐떡였다.

"그, 싱크로를 하려면 진심으로 같은 조건이...."

"너도 오빠 좋아하고 나도 오빠 좋아하네. 그럼 끝난 거지. 내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님?"

누리가 진심으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만난 순간부터 무급 인턴으로 존나게 뭐빠지게 들이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에 박힌 돌 빠진 거 아니야. 그리고 둘이 이어준 거 누구 덕? 남들 오해하지 않도록 가끔씩 몸 빌려줘서 아무렇지 않게 데이트하는 거 누구 덕?"

"...김누리 님 덕분입니다."

신관과 앙그는 진심으로 누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앙그의 얼굴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팔려버린 바람에 내놓고 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데이트를 즐기려면 앙그는 누군가의 몸에 깃들어야했다.

"세간에는 신관이랑 김누리가 데이트 즐기는 거로 되어있지. 하지만 그제 걸로 이제 빼박처럼 되어버렸잖아."

누리는 앙그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줬다. 결과적으로 최종 선택은 신관이 하게 되겠지만, 앙그가 싱크로를 할 대상의 지분을 높이기 위해 누리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밀었다. 경쟁자로부터 앙그와 싱크로 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누리는 앙그의 옆에 얼굴을 붙이고 신관을 올려다봤다.

"막말로 두 처녀를 동시에 먹었으면 확실하게 책임져야하는 거 아님?"

"...그건 네가 무섭다고 해서 앙그가 대신...."

"그래서 내 처녀 누가 먹음?"

"...접니다."

신관은 목에 올가미가 씌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누리를 관련한 안 좋은 소문들이 러시아에서부터 시작하여 돌고 있건만, 신관과 앙그 때문에 악성 루머가 사실처럼 되어버리는 현상은 좋지 않았다. 특별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럼 오빠, 앙그. 내가 여태까지 생각을 해봤는데, 좋은 방법이 있음."

"뭔데?"

"나랑 싱크로 하잖아? 그럼 앙그랑 같이 쌍둥이 여동생 플레이 가능."

"......누리야."

앙그가 멎쩍은 얼굴로 헤실거렸다.

"그거 이미 희아랑...."

"와, 그 개꼰대 얌전한 척 하더니 할 거 다 하네?"

누리는 진심으로 상처받은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 플레이가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금방 깨닫기도 했다.

"어디야? 함장실? 오빠 방일 리는 없고."

"...그, 그게."

[누리야. 내가 설명할게.]

신관 개인실의 스피커가 울렸다. 데스디나스 호의 함선 안이었으므로, 그들의 대화는 이미 함장실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던 백희아에게도 전해졌다.

"희아 언니, 설명 제대로 안하면 나 진짜 화낸다. 언니가 뭐라고 하든 내 멋대로 할 거야. 오빠 따라서 미국 국적으로 넘어가버릴 거라고."

[누리야. 한국에서 유이한 암속성 S급 히어로 중 한 사람이 국외로 가버리면 이 언니가 상당히 난처해진단다.]

"더 난처한 상황이 되기 전에 이쪽으로 와. 도대체 어디서 한 거임?"

"......저기."

가만히 있던 앙그가 변신을 풀고 손을 들었다.

"......나의 '영지(領地)'에서 했어."

"그건 뭔데."

"그게...."

앙그는 허공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허공에 균열이 생겼고, 누리는 칠흑같은 어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리의 눈동자에 서린 검은 마력이 어둠을 꿰뚫고 그 너머를 살피고 있었다.

"성?"

"그래. 성."

[같이 가자. ...앙그의 영지로. 이세계, 검은 성지로.]

결국 신관, 암속성 정령, 그리고 그 암속성 정령과 싱크로 하기 위한 후보 둘은 정령이 가진 이계에서 4자 대면을 하게 되었다.

* * *

[이건 사자대면이 아니라 싸자대면 아니야?]

"......할 말은 없네."

신관은 배개에 머리를 눕히며 숨을 골랐다. 흑발의 세 여인은 신관의 품에 저마다의 위치에서 안겨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김누리와 백희아는 각각 신관의 양 옆에 팔을 베고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오직 앙그만이 정신을 유지하며 신관을 상대로 기승위로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질펀하게 저질러 놓으셨어. 누리한테, 희아한테 각각 세 번씩. 어휴, 저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콘돔 쓰지 말라고 한 건 너잖아. 배려해준 거지?"

[그, 그건 네 힘을 받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한 거야! 착각하지 말라고! 저, 절대로 나만 안에 받는게 미안해서 콘돔 다 뜯어버린 건 아니니까!]

홀로그램 속 아지다하카가 빽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붉어진 앙그는 두 인간 여인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양 옆의 둘에게 여섯 번을 싸고도 아직까지 딱딱한 신관의 물건이 앙그의 속을 헤집어놓았다.

"하으으...."

[두, 둘 다 나 각성시키는 데 많이 도와준 답례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래! 그냥 이건 정실의 아량이야!]

"본체는 느끼면서 홀로그램 분신으로 그렇게 얘기하니까 새롭네, 크윽...."

앙그가 강하게 조여대는 통에 신관은 인상을 찡그렸다.

[흐흥, 좋지? 둘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그래, 그래서 말인데."

신관은 눈으로 양 옆을 흘겼다. 성지의 주인인 앙그가 완전히 재워놓은 덕분에, 둘은 S급 이능력자 임에도 정령의 홈그라운드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둘 중에 누구랑 할 지 선택했어?"

"......선택 못 해."

앙그는 허리를 멈추고 울먹거렸다. 딸꾹질을 하며 말을 하지도 못하여, 마도기어를 통한 홀로그램 분신 인격인 아지다하카가 앙그의 의사를 대변했다.

[둘 다 내 친구야. 한 명을 선택하는 건 너무 가혹한 짓이라고. 누리도 희아도 나랑 싱크로가 가능한데 한 명과 하면 다른 쪽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말은 괜찮다고 해도 분명 슬퍼할 거야. 이미 난 둘에게서 너를 빼앗았는데, 싱크로를 통해 계속 함께 살아갈 기회마저 빼앗을 수는 없어. 너무 미안하단 말이야.]

아지다하카를 통해 쏟아지는 앙그의 진심에 신관은 살포시 웃었다.

"둘이 깨서 들었으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걸."

"왜...?"

"그야 나의 연인은 너니까."

신관의 말에 앙그는 손톱을 세워 신관의 허리를 쥐어뜯었다. 로맨틱한 발언이었지만, 양 옆에 있는 두 여자를 상대로 얼마나 열심히 허리를 놀렸던가.

"그게 연인이 정해지고 나서도 할 얘기...?"

"앙그, 이제와서 두 말 하면 그래. 누리나 희아나 예전부터 나랑 관계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나는 너를 선택하면서 다른 모든 여자와의 관계를 끊었어. 심지어 유나마저도."

오는 여자 가리지 않던 신관은 팀 내의 모든 여자들에게 한 번은 손을 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창염의 피닉스에게서 힘을 건네받은 이후, 마암룡 앙그와 연인이 되면서 그 모든 관계를 청산했다.

"이제 아무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내게 이 둘 만큼은 허락해 달라고 했던 건 너였지. 내가 허락을 구한 것도 아니고, 네가 직접 내게. 네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둘 만큼은 계속 사랑하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누리나 희아나 이해심이 넘치는 애들이라 그렇지, 아니었으면 너 완전 유세 떠는 거냐고 사이 틀어질 뻔 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단 말이야."

앙그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흐느꼈다.

"싱크로라는게, 한 명만 할 수 있는 거였으면 이러지 않았다고...!"

앙그가 진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홀로그램 분신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얘들한테 너를 빼앗은 것도 미안한데, 거기서 또 한 번 빼앗으면 나는...!"

"와, 완전 복겨운 소리 대박."

"아무래도 잔소리 안 하면 안 되겠네요."

신관의 양 옆에 있던 여인들이 바로 몸을 일으켜 앙그를 덮쳤다. 몸을 일으키려던 앙그는 신관에게 골반이 잡혀 빠져나가지 못했다.

"원래 가진 놈들이 더하다니 정령도 마찬가지네. 앙그, 오빠 가져놓고 그런 말 하기 있음?"

"저는 나중에 따로 말하기로 하고...앙그."

희아는 앙그를 끌어안았다. 아래에 신관의 물건을 삼키고 있지만 않았다면, 정말 감동적인 포옹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전력적으로 누리와 싱크로하는게 맞아요. 당신도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절 신경써서 아직 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요. 저는 그걸로 절대 삐치거나 할 사람이 아니니까."

"그치만...."

"그럼 이렇게 해주시겠어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은 오라버님도 쉬셔야 할 테니, 토요일은 희아의 날로 해주시는 거예요."

"......."

앙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선택을 내리면 되는 상황임에도, 이번에는 누리를 신경쓰느라 대답을 머뭇거렸다.

"빨리 안정하면 나랑 희아 언니 진심으로 절교하고 오빠 빼앗아 버릴 거임."

짝!

결국 누리가 앙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나서야, 앙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 미안...!"

"에휴. 아지다하카 때는 새침데기였어도 똑부러지게 말하더니. 그게 다 연기였어, 연기. 오빠, 아무래도 안 되겠다."

누리가 희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두 여인은 앙그를 양옆에서 어깨를 잡고 지긋이 짓눌렀다.

"셋이서 보내버리는 거임. 앙그가 오빠랑 연인일 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 친구인데...이 정도는 괜찮겠죠?"

"......흐끅!"

앙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신관은 상체를 일으켜 셋을 한 번에 끌어안았다.

"미안해."

"오빠가 미안할 게 뭐있음."

"정 미안하면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신관은 앙그와 입술을 맞추며, 두 손을 누리와 희아에게로 뻗었다. 누리와 희아는 양 옆에서 앙그의 귀를 핥거나 어깨를 핥으며 애무했다.

"아, 하으, 흐아...!"

앙그는 세 명의 인간에게 동시에 사랑을 받으며 기쁨에 벅차올랐다.

"정말...행복해...!"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조차 두려워하던 소심한 정령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세 명의 인간에게 가슴이 벅차올라 꺼이꺼이 울었다.

* * *

"...결국 최종 승리자는 오빠 아님?"

"아니지, 누리야. 16명 중에 세 명밖에 못 건졌으니 오라버님이 이겼다고 하기에는 그렇고, 최종 승리자는 우리지. 우린 그래도 오라버님이랑 살을 섞잖아. 사랑도 받고."

"...그렇네. 그럼 언니, 일주일 중에 하루는 오빠 쉬는 날, 사흘은 앙그. 그리고 이틀 먹는 건 싱크로 하는 대상으로 콜?"

"콜."

신관과 앙그가 듣지못하는 곳에서, 흑발의 자매같은 둘이 아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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