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5화 〉OMAKE #016, 아담과 이브
10만의 민간인을 제물로 바쳐 무신을 부활시켜던 모택평의 음모는 많은 영웅들의 활약 덕분에 저지되었다. 모택평은 자신의 장원에 구금되었고, 사람들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희망을 품었다.
나는 그 땅에서 음모의 핵심이자 제물이었던 다크 레기온의 간부, 혼돈환룡을 일깨웠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이 인형처럼 있던 그는 금세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고, 나는 혼돈환룡을 옆에서 수발들다시피 챙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넌 왜 그렇게 나한테 잘 해주는 거야?"
언젠가 혼돈환룡이 내게 물었다.
"그야 잘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지. 평생동안."
나는 내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피. 거짓말. 네가 말하는 평생은 네가 수명이 다할 때 까지잖아."
나는 혼돈환룡의 말에서 쓸쓸함을 느꼈고, 그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할 수 있다면 영생을 살면서 네 곁에 있어주고 싶어. 아, 이거 고백인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좋아."
혼돈환룡은 나를 비웃었다.
"한 50년 지나면 죽겠지. 그 이후에는 또 죽어서 사라질테고."
혼돈환룡의 얼굴을 그 어느때보다도 쓸쓸해보였다. 나는 혼돈환룡을 위로하고자 그를 끌어안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혼돈환룡의 옆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필멸자인 인간은 불멸의 존재인 정령의 옆을 평생동안 지킬 수 없으므로.
"죽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퍽이나. 네가 진짜로 그렇게 된다면…."
환룡이 자신의 스커트를 슬쩍 들어올렸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줄게. 진짜 뭐든지."
그 때까지는 설마 창염의 피닉스가 내게 남기고 간 불꽃의 정수로 내가 불멸자가 되었다고는 나나 혼돈환룡이나 상상도 못했다.
***
<2025년 11월 30일, 데스디나스 호 함선.>
나는 그 누구도 모르게 내 개인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게걸음으로 걸었다. 배의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백희아는 지금 수면 중이라 함선은 자동 항법 상태였고, CCTV 또한 정해진 루틴에 따라 카메라가 돌아갔다.
'이러니 꼭 잠입 액션 하는 것 같네.'
나는 CCTV의 사각만 골라다니며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언니는 아쉽지 않음? 모처럼 바뀔 수 있는 기회였는데."
베이글이라고 불러도 될법한 외형의 흑발 미인이 캔맥주를 홀짝이며 복도를 걸었다. 그의 옆에는 흑발 미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몸매의 회색 머리칼 여인이 난감하게 웃고 있었다.
"그거야 지휘관 재량이니까.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겠어. 나는 적이었는데."
"그치만 언니는, 하아. 아니다. 다 오빠 잘못임. 아무리 유나 언니가 대단하더라도…. 쯧. 마음이 넓은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 그래. 우리 누리 암속성으로 신화 되더니 다 컸네, 다 컸어."
"히히. 언니. 나도 이 정도면 이제 큰 편이지? 언니랑 처음 싸울 때보다 지금 20cm 자랐는데…."
<야황> 김누리와 <백면> 천가을이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을 빙 돌아 내 목적지로 나아갔다.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 내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삑.
[해제되었습니다.]
"쉬잇!"
기계를 상대로 뭘하나 싶지만 소리가 너무 컸다. 나는 행여나 누군가 지나갈까 주변을 살핀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후우."
방안에 들어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문을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잠근 다음, 방 안의 전등을 켰다.
"......."
침대 위에 한 여인이 엎드려 누워있었다. 몸을 덮은 얇고 흰 이불은 여인의 뒷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여인의 머리칼은 탁한 갈색이었다.
새액, 새액.
여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자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까치발로 다가가 여인의 이불을 슬며시 들쳤다.
'대담…!'
나신이라니. 그것도 속옷조차 착용하지 않은 나신이라니. 도대체 이 아이는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내가 오기를 기다렸단 말인가.
"......꿀꺽."
입이 바짝 말랐다. 여인의 육체 원주인과는 합의가 되었지만, 그 몸에 딸린 식구 한 명은 아직 이 야습을 모르고 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이불을 걷어냈다.
"......역시."
'유나는 여신이야.'
마치 마사지를 받듯 엎드린 자세는 무방비하게 내게 노출되어 있었다. 봉긋한 가슴이 침대 시트에 눌려져 옆가슴이 살짝 튀어나있고, 허리는 군살없이 잘록하게 들어가 유선형을 그리고 있다. S자를 그리는 몸의 선은 항아리처럼 매끄러운 골반으로 이어져 있고, 두 개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하아."
신화에 이르면서 신체가 바뀌는 덕분에, 유나의 신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원래도 여신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여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몸매였다.
'유나는 알고 있는게 아쉽지만....'
나는 미리 약속한대로 유나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 최대한 신체에 닿지 않게 엎드린 뒤, 유나의 제안대로 그의 엉덩이에 코를 박았다.
"......흣."
회갈색 머리칼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행여나 유나의 속에 잠든 그가 깨어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직은 잠든 모양이었다.
습, 하, 습, 하.
내 숨결이 유나의 장골과 고간으로 흩어졌다. 나는 소위 '코박죽'을 하고 엉덩이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흐읏."
신음이 흘러나온다. 나는 행여나 들킬까봐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호흡은 아주 천천히 하며 숨을 내뱉었다.
하아아.
열기가 유나의 음부를 살포시 데웠다. 더이상 버틸 수 없었던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바지를 끌어내린 뒤, 하반신만 나체가 되어 유나의 엉덩이골에 내 성기를 비볐다.
"어...?"
"......."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나는 씩 웃으며 엉덩이 사이에 내 성기를 끼웠다.
"환룡아. 너 지금 깨어있지?"
"......."
유나, 아니 환룡은 침묵했다. 하지만 회갈색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귓등은 벌겋게 익어있었다.
"그래, 안 깨어있는 거야. 나는 자는 동안 너를 덮치는 거고."
"......."
"네가 유나한테 말한대로, 나는 네가 자고 있는 사이에 사정을 하는 거지. ......어디 언제까지 자고 있는지 보자고."
나는 환룡의 골반을 살짝 들어올려, 음부에 성기를 끼워넣었다.
"......흣."
엎드린 환룡의 몸이 살짝 비틀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위아래로 느긋히 움직이며 환룡을 탐했다.
"사랑해."
사랑 고백과 함께 등에 입술을 맞췄다. 환룡은 끝까지 아무 말 없이 자는 척을 했지만, 나는 그의 질이 내 사랑 고백을 듣자마자 강하게 조여오는 것으로 대답을 들었다.
"앞으로 평생 사랑할 거야. 영원히."
"......하으응."
환룡은 자는 척을 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신음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위에서 몸을 겹쳐,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흐아아."
그 뒤.
나는 깨어나지 않는 환룡을 상대로 수 차례 사정을 했고, 환룡과 성기를 결합한 채 그의 위에서 잠들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는 환룡과의 싱크로를 일시적으로 해제한 유나와 환룡이 복수전으로 3P를 하게 되었지만, 한창 둘을 샌드위치로 놓고 삽입하던 도중에 누리와 가을의 습격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 *
한 달이 지났다.
창염의 피닉스로부터 창염을 이어받은 나.
그리고 유나와 신화를 이룬 환룡.
그 외에 동료들의 힘을 모아 우리는 지구를 파멸시키려 했던 성주를 쓰러뜨리고 지구의 평화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우리에게는 이제 평화만이 남았고, 인류 문명은 더할 나위 없이 번영했다.
그리고 나는 유나의 육체에 깃든 환룡과 함께 인류 문명의 발전과 멸망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게 되었다.
* * *
<3976년 2월 22일, 버려진 쉘터.>
"안 돼. 여기도 망했어."
"끄응. 어쩔 수 없나...."
나는 환룡과 쉘터의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인류는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바탕으로 마도혁명을 일으켜 문명을 진일보시켰지만, 고작 천 년을 가지 못하고 결국 마법전쟁을 일으켜 멸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천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게 대단하지 않아? 2000년대 초기만 하더라도 핵전쟁이니 뭐니 멸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잖아."
"퍽이나. 너랑 나랑 3백년 넘게 인류 통치한 거 잊었어?"
환룡은 입꼬리를 비틀며 멸망한 인류를 비웃었다. 나는 환룡을 등 뒤에서 끌어안으며 정수리에 키스했다.
"하지마. 뭘 그런 데다가 키스를 해."
"그런 데라니. 여신의 몸에다가 무슨 그런 망발을."
"유나 몸이잖아. 내가 아니야."
"이제는 너지."
2999년 즈음인가. 유나는 정신적인 수명을 다하고 그만 영면에 들어버렸다.
환룡과 신화에 이르러 육체를 내어주는 대신 나와 환룡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겠다고 하던 유나는 천 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피로에 지쳐 잠들어버렸다.
"유나도 결국에는 떠나버렸네."
환룡은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떨었다. 유나의 정신은 아직 지극히 미약하게나마 환룡의 속에 잠들어있지만, 과연 스스로 정신적으로 소멸을 택한 유나가 다시 살아가기를 원할까.
"그리고 언젠가 너도 떠나버릴 거야. 그렇지?"
"환룡아."
나는 환룡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얘기했잖아. 나는 지구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네 옆을 지키겠다고."
"거짓말. 너는 인간이야. 결국에는 모두가 그랬던 것 처럼 지쳐서 떠나버릴 거라고."
"흐흐, 나도 이제는 신인데?"
나는 환룡의 몸을 뒤집어 내 가슴에 그의 얼굴을 비볐다. 내 심장에 자리잡은 창염은 2천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의 신이라고."
"그럼 나는?"
"여신."
"그건 유나잖아."
"......유나가 잠들었으니까 이제 네가 2대째 여신이지."
"뭐야 그게."
환룡은 나를 끌어안은 채로 한참을 울다가 겨우 진정했다. 환룡은 언제나 내가 살아가는데 지쳐서 쓰러질가봐 걱정했고, 나는 그런 환룡을 달래는 일상을 벌써 수 백년 째 이어나가고 있었다.
"환룡아. 그거 아니?"
"뭘?"
"너랑 나랑 그거 안 한지 벌써 백 년 넘었다?"
나는 환룡의 허리를 잡은 손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 언젠가 내가 코를 박았던 탐스러운 엉덩이는 2천년이 지나도 탄력이 변하지 않았다.
"하고 싶어? ......소용 없어. 우리 수 세기가 지나도록 해왔잖아. 횟수로 따지면 거의 백만을 넘길 걸?"
"에이, 백만까지는 아니지."
"......정정. 내가 가버린 횟수만 백만번하고도 훨씬 넘을 거야. 유나랑 같이 했던 횟수만 내가 기억하기로 만 번이 넘는 걸."
"......하루에 한 번씩 했다고 해도 100년이면 36500번이니까, 음.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환룡의 허리를 들어 쉘터에 망가진 협탁 위에 올렸다.
"이거 봐. 너 가벼워서 아직도 이렇게 들린다?"
"피, 네 레파토리 이제 다 파악됐거든? 이대로 끌어안고 박을 생각이지? 그거 벌써 사백년 전에, 흐읏...!"
나는 환룡의 얼굴을 붙잡고 짧게 키스했다.
"이번 세기 들어서 처음이니까, 동정이랑 처녀랑 하는 택이나 마찬가지지. 안 그래?"
"아, 흐아, 흐으.... 나 폐경인 줄 알았는데...."
"여신이 폐경은 무슨."
나는 환룡의 마력이 서서히 전신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따뜻해진 내 손으로 환룡의 하복부를 쓸었다. 우리는 서로 백년동안 행위를 하지 않았던 만큼, 서로서로 상당히 무뎌져 있었다.
"소용없어.... 우리끼리 자식 안 생기는 건 벌써 20세기에도 확인했잖아."
"그래도 또 모르지."
"싫어.... 또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좌절하고 싶지는 않아. 물론 네가 그냥 하고 싶다면 하겠지만, 그게 자식을 낳기 위한 거라면 나.... 또...."
환룡이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기대하게 된단 말이야.... 흑!"
"...한 번 다시 시도해보자. 인류가 멸망한 세계에서, 두 신이 어떻게 인류 문명을 재건하는 지 말이야. 이번에는 될 때 까지. 아, 예전처럼 아예 끼워넣고 사는 건 어때? 어차피 이제 우리 볼 수 있는 인류도 없는데."
"......안 될 거야. 또 언제나처럼 실패할 거라고."
"환룡아. 그거 아니?"
나는 환룡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나, 드디어 네 진짜 이름을 알아냈어."
"......!"
환룡, 아니 그가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백년만에 선 성기를 그의 안에 살포시 밀어넣었다.
* * *
3999년 12월 25일.
우리는 드디어 첫번째 자식을 낳는데 성공했다.
상공 100km에서 스카이다이빙 플레이를 하다가 착상한 아이로 추정되어, 우리는 첫번째 아이의 이름을 천자(天子)라고 칭했다.
4000년.
나와 환룡은 새로운 인류 문명을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신이 되었다.
그 뒤 우리는 태양이 수명이 다해 소멸할 때 까지, 인류를 보듬어 살폈다.
"태양이 수명이 다했으니 이제 우리 문명도 끝인가...."
"자기야. 자기 고향 사라졌으니까 이제 내 고향으로 가는 건 어때?"
"......당장 가자."
태양계를 벗어난 우리는 테라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나갔다. 우주 전체가 무너지기 전까지, 우리는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서로를 보듬어 살아갈 것이다.
영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