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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524화 (524/1,497)

〈 524화 〉OMAKE # 006, 軍神不敗

파앙!??

대나무로 된 봉이 파공성을 내며 바람을 갈랐다. 남자는 제 눈을 찌르러 들어오는 죽창을 고개를 돌려 간신히 피했다. 남자는 그대로 바닥을 굴러 넘어졌다.

흑발의 여인은 묵묵히 죽창을 세웠다. 골반 아래까지 닿는 긴 흑발은 가지런하게 늘어졌다. 남자가 성질을 부리며 몸을 일으켰다.

"야! 너 미쳤어?! 나 죽이려고 하는 거야?!"???

"실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다 나 다치면? 눈 찔려서 실명되면 어쩌려고 그래?"

"각막 앞에서 정확히 멈출 수 있어요. ...신관께서는 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시네요."

여인이 죽창 끝을 발로 차고는 그대로 앞으로 찔렀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끝은 남자의 목젖에 종이 한 장 들어갈 위치에 멈추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전신을 긴장한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꿀꺽. "커헉?!"

왜 하필 침을 삼켰을까. 침을 삼키는 바람에 목젖이 움직였고, 남자의 목젖은 그대로 죽창 끝에 찔렸다. 여인은 재빨리 창을 회수하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건 제 잘못 아녜요."

"이게 네 잘못이 아니면...하아. 됐다. 오늘도 진 내 잘못이지."

남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인이 손을 뻗었고, 남자는 그 손을 붙잡았다. 딱딱하게 굳은 여인의 손에 비해 남자의 손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인의 손...."

"부끄럽습니다. 유나 아씨나 다른 분들에 비교하면...."

"걔들은 다 원거리잖아. 너는 다르지. 어려서부터 무기를 잡고 자랐잖아? 그리고 말이야."

남자는 여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여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네가 이렇게 강해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항상 고마워."

"......훈련의 반성을 하도록 하죠."

여인이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남자도 여인을 따라 마주 앉았다. 창호지에 비친 햇살이 마룻바닥 위로 따스하게 비쳤다. 여인이 죽창을 제 옆에 두고 머리를 가지런히 모아 쇄골앞으로 쓸었다.

남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 습관, 아직도 못 고쳤네."

여인이 흠칫 놀라 제 무릎에 닿은 머리칼에 손을 올렸다. 반평생을 살아온 습관은 불과 한 달여 만에 쉽사리 고치기는 어려웠다.

여인, 샤오린은 잠시 눈을 감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전 더는 아버님의 새장 안에 갇혀있던 새가 아닙니다. 예전처럼 운장이라는 타인의 이명에 구속되어있던 사람이 아니지요."

샤오린은 제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살포시 포개며 웃었다.

"저는 당신의 군신(軍神). 당신의 명령을 가장 앞서서 따르는 최강의 히어로입니다."

"스스로 최강이라고 부르는 거, 낯부끄럽지 않아?"

샤오린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사실이니까요. 또 박라온 양이 그러덥니까? 자기가 더 강하다고요?"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남자는 등에 흐르는 식은땀에 생긋 웃었다. 괜히 장난이나 한번 쳐보려고 자극했다가 승부욕만 자극하고 말았다. 샤오린은 난감해하는 남자의 태도에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아이 같다니까요, 지휘관님은."

"...애 같다고 놀리는 거지?"

"아뇨. 귀여우셔서. 하지만 다른 분들한테는 그러지 마세요. 오해할 테니까. 특히 이유나."

"유나가 왜?"

샤오린이 웃는 얼굴로 굳었다. 남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샤오린은 제 왼손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화를 삭인 후, 화제를 돌렸다.

"오늘 훈련의 반성을 하도록 하죠. 이걸로 몇 번째 패배인지 기억하십니까?"

"...33전 33패."

남자가 침울해졌다. 샤오린은 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33패. 이건 지휘관님이 제게 33번 살해당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두고 봐. 내가 언젠가 일격에 너를 기절시켜 줄 테니."

"그럴 수 있다면요."

샤오린이 빛처럼 죽창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때렸다. 남자는 두 손으로 맞은 정수리를 누르며 억울한 눈빛으로 샤오린를 쏘아봤다.

"매번 할 때마다 궁금한 건데, 이렇게 해도 효과가 있어?"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경지는 D급 정도라고밖에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심장에 제 코어를 주고 세상을 떠난 피닉스를 위해서라도."

"그거야 알지. 그러니까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남자가 본격적으로 반항을 시작했다. 샤오린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마력만 쏟아부으면 괴수든 괴인이든 다 때려잡는데, 굳이 형(形)이니 무술이니 하며 육체를 단련할 필요가 있을까?"

"갈(喝)!"

군신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남자는 움찔하며 주눅이 들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나 샤오린도 속이 찔렸지만, 이 기회에 확실히 기강을 다잡고자 마음먹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아십니까? 마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마력만 많은 자가 승리를 거둔다면, 제가 어떻게 야황과 설화공주를 상대로 승리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남자가 샤오린의 말에 수긍했다. 팀 내 최강자를 가리자는 농담으로 시작된 무투대회에서 우승을 거두고 최강의 자리에 오른 샤오린은 분명 마력의 용량 자체는 하위권이었다.

"결국에는 마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그것이 승리의 골자입니다. 마력이 바다와 같이 넘쳐흐른다고 해도, 겨우 컵라면 끓이는데 물탱크 물을 끌어다 쓸 필요는 없지요."

"......응."

무언가 심히 걸리기는 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남자는 묵묵히 샤오린의 말을 긍정했다.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지휘관님의 안에 있는 힘을 100%에 가깝게 끌어내려면, 지휘관님 스스로 강해지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만약에...."

샤오린이 고개를 떨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앞으로의 싸움에서 살해당한다면 지휘관님 스스로-"

"그럴 일은 없어. 절대로."

남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움츠려있던 어깨가 쫙 펴지고, 반쯤 감겨있던 눈이 부릅떠졌다.

"난 너를 절대로 죽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남자가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 세계를 리셋시켜버리겠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포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 각오로 앞으로의 훈련도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샤오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일어서려다 눈살을 찌푸렸다.

"...쥐난 것 같아."

"......마력 두르는 거 잊으셨죠?"

샤오린이 남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올려 훌쩍 들어 올렸다. 남자의 몸이 고양이처럼 쓱 일으켜 세워졌고, 남자는 무안한 듯 웃었다가 황급히 엉덩이를 뒤로 뺐다. 샤오린은 슬쩍 부풀어 오른 남자의 바지 앞섶에 얼굴을 붉히며 남자를 내려놓았다.

"......어흐흠, 크흠!"

"......지휘관님?"

"이, 이건 생리현상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남자는 무안해져 역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샤오린은 다 이해한다는 듯 슬며시 웃다가 손뼉을 쳤다.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내고, 그럼 정리운동을 할까요?"

"어, 응. 평소처럼 스트레칭-"

샤오린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시침은 8시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샤, 샤오린 양? 우리 아직 아침도 안 먹었고, 9시면 정기회의 시작할 시간-"

"지휘관님."

샤오린이 머리카락으로 가린 제 앞섶을 슬쩍 풀어헤쳤다.

"지휘관님은 전장을 앞에 두고 도망치는 분이셨나요? 후후, 만약에 지휘관님이 지시면...."

샤오린이 까치발을 들어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저 휴가 반납하고 이번 주 훈련 풀코스로 돌릴 거예요?"

"샤오린 양."

남자는 결연한 의지로 샤오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난 결코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아."

마룻바닥에 새로운 전장이 펼쳐졌다.

* * *

드르륵. 함교의 문이 열리고, 지휘관이 검은 제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늦잖아!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누, 누리야. 너무 그렇게 쏘아붙이면...."

야황이 난동을 부리고, 성녀가 그를 타이른다. 어색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남자의 행색에 청운이 굳은 얼굴로 둘에게 속삭였다.

"...야한 냄새가 납니다."

"뭐?!"

야황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에 함교의 사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봤지만, 성녀 또한 음울한 얼굴로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모처럼 지휘관님 좋아하시는 디저트 구워놨었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유나야."

남자가 이름을 부르자, 성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네 덕분에 이겼다."

남자는 성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함장석에 주저앉았다.

승전을 치르고 온 장수라 하기에는 사람이 얼이 빠져있다. 세 사람은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궁하기로 잠정 합의를 하고는 정기 회의를 시작했다. 남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능수능란하게 회의를 이끌었다.

"지휘관님, 여기 커피요."

"고마워."

남자는 성녀에게서 커피를 받아 그대로 들이켰다. 잠시 회의가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 남자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유나 덕에 이겼네. 군신은 강적이었어......."

임시 부관, 성녀 이유나는 남자의 곁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에 실실 웃었다. 갑자기 과거의 일을 왜 언급하는지 몰라도 제 덕분에 군신을 이겼다니 절로 기운이 솟아올랐다.

마침 성녀의 플랜에 가장 걸림돌인 군신 샤오린은 이 자리에 없었다. 요주의 인물의 스케줄을 훤히 꿰고 있는 성녀는 샤오린이 오늘부터 휴가를 떠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성녀는 남자의 곁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야 이 발정 난 또라이들아! 훈련실에서 떡을 쳤으면 환기를 시켜야 할 거 아니냐!"

설화공주의 등장에 함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내가 자자고 할 때는 면박을 줬으면서?!"

"으, 흐흐, 흐아아아아앙!!!"

야황은 기어코 남자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성녀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청운은 함교 구석에 있던 제 창을 움켜쥐었다. 오퍼레이터가 시급히 청운에게 달려가 말렸다.

"처, 청운님! 전투는 안 됩니다!"

"놓으십시오. 오늘에야말로 군신과 사생결단을 내겠습니다."

"내도 가자! 내 이제 더는 몬봐주겄다!"

정작 그 군신은 전함을 떠나 휴가를 떠났다. 남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

참새 한 마리가 난간에 걸터앉았다. 남자는 손을 뻗어 참새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손이 없었다.

팔꿈치 부근부터 잘려나간 팔로 겨우 참새를 내쫓은 남자는 퀭한 얼굴로 휠체어를 밀었다. 뒤에서 누구 하나 밀어주는 이 없이, 일인 지상 만인 지하의 권력자는 홀로 휠체어를 밀어야 했다.

저벅, 저벅. 정원의 맞은편에서 녹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남자가 그리도 강요했던 전통복을 벗고, 간악한 서양의 의복을 멋들어지게 입고 있었다.

"저 왔어요, 아버지."

"...난 너같은 딸 둔 적 없다."

"제가 아니면 이 땅에서 살아계시겠어요? 온 인민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데."

샤오린이 입술을 비틀며 비꼬자, 남자-모택평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 망할 놈들만 아니었어도 대계(大計)는 성공했어! 네가 그 양놈에게 가랑이만 벌리지 않았어도-"

"아버지, 저를 욕하시는 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샤오린의 몸이 모택평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택평의 뒤에서 휠체어를 잡았다. 손짓 한 번으로 제 목을 두 동강 낼 수 있는 자가 제 뒤를 점했다는 것에 모택평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 사람을 욕하시는 건 저도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럼 나를 죽여라! 이따위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혀를 깨물 용기도 없으시잖아요?"

모택평이 침을 삼켰다. 샤오린의 말은 비수가 되어 모택평의 심장에 꽂혔다.

"...마음같아서는 제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 사람이 그걸 원하지 않으니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아버지를 이 정원에 살게 해드리는 건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이며, 키워주신 정에 대한 마지막 자식 된 도리입니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냐? 내가 너에게 운장으로서의 삶을 강요해서? 내가 적토와 백만 인민을 제물로 바쳐서? 내가 주석을 죽이고 천자를 칭해서? 대체 왜!!"

"...바람이 차갑습니다.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샤오린은 휠체어에서 손을 떼고 정원을 떠났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평야를 무작정 걸으며 우울해졌던 기분도 조금은 가셨다. 생에 마지막 남은 혈육과 사실상 결별한 순간, 문득 생에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가 보고 싶었다.

"어?"

호출이 들어왔다. 남자였다.

[샤오린! 미안해! 지금 그쪽으로-]

"말 안 해도 알아요. 후후, 고마워요. 알려줘서."

바람을 타고 오는 흉흉한 마력이 느껴진다. 검고, 습하고, 차가운 마력이 샤오린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마침 야황의 호출이 들어왔다.

[야 이 도둑고양이야! 너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당장 청운이랑 설화공주 데리고 가서, 네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놓겠어!]

"안 그래도 우울했는데 스트레스 해소에는 딱 좋겠어요."

샤오린이 길가의 나뭇가지를 꺾었다.

"이참에 서열 정리 다시 한번 더 할까요? 누가 그분의 옆에 어울리는지. 어디 저 이겨보세요. 그러면...."

샤오린은 왼손을 들어 올려 손을 앞뒤로 뒤집었다. 왼손 약지의 반지가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이거, 드릴게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질투심 덩어리 셋을 바라보며 웃던 샤오린은 나뭇가지를 역수로 쥐고 하늘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약 한 시진 뒤.

평원에서 하늘을 향해 치켜든 군신의 손가락에는 여전히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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