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05화 (505/1,497)

〈 505화 〉1부 NORMAL ENDING - 1

세계는 구원을 받았다.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지구는 이전과 똑같은-오히려 더 나은 상황이 되었고, 세계는 더욱더 평화로워졌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상황이 다른 것처럼, 사람들은 <명왕성의 주인>이 죽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계를 구한 일곱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은 진정한 신인가?

1999년 12월 25일.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갈 뻔한 '피의 일주일' 당시에도 마침 딱 일곱 마리의 <괴수>가 날뛰었다. 그리고 그 괴수는 마침 일곱 여신들이 보이는 특징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각 속성별로 하나씩 존재하는 최강자.

다크 레기온의 간부.

이름 또는 이명을 공유하고 있는 일부.

음모론을 만들기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었다.

- 사실은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

- 사실은 피의 일주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일곱 여신들이 아니냐?

- 사실은 간부의 인격과 여신의 인격이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니냐?

온갖 유언비어가 가짜뉴스처럼 세상에 떠다니는 가운데, 사람들은 일곱 여신들의 행방에 주의를 기울였다.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각각 보인 힘은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강대하고 막대한 힘이었다.

단독으로 대기권을 돌파하여, 지구에서 달까지 닿을 정도의 불기둥을 만들어내는 자.

태평양 바다 전체를 얼려버릴 수 있는 자.

광속에 가깝게 하늘을 달리는 자.

파괴된 달과 똑같은 사이즈의 위성을 만들어 낸 자.

가볍게 쏘는 화살 한 방이 핵폭탄 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자.

공간을 접고 다니며, 자신만의 또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

투명한 자.

세간에 널리 알려진 자도 있고, 여전히 정체가 베일에 꽁꽁 가려진 존재도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신경쓰지 않을수야 않을래가 없었다.

- 막말로, 설화령이 빡돌아서 지구 전체 물을 증발시키면 어쩌지?

- 막말로, 개천광이 지구 내핵에다가 화살을 한 방 쏴버리면 어쩌지?

- 막말로, 얄다바오트가 만들어낸 달을 지구에 떨어뜨리면 어쩌지?

상식적인 판단 불가능한 미치광이가 핵단추를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세계 평화에는 큰 위협이 된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세계 3차 대전을 넘어, 즉시 종말로 이끄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특히 그 중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창염의 피닉스>.

히어로 출신.

이미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보인 존재.

속에 꿍꿍이는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적어도 지구에 피해는 끼친 적이 없는 존재.

그에 비해 창염의 피닉스는 히어로도 아니고 스스로를 빌런이라 자처하며, 실제로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석하랑이 백영도에 결계를 만들어 가두어놓았으나, 실제로는 밖으로 내다니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불안해지는게 당연했다. 석하랑이 피닉스를 봐주고 있거나 실은 협력하고 있거나.

어떤 상황이든 간에, 두 가지는 확실해졌다.

하나.

청화. 석하랑. 이유나. 은유하. 백희아.

여신이라 칭송받는 일곱 명 중 무려 다섯 명이나 한국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것. 물론 그 중 정체를 숨긴 이도 있지만, 세상에는 완벽한 비밀은 없다.

따라서, 모든 이목은 한국에 쏠렸다. 안그래도 석하랑의 SS급 달성 이후로 주목도가 쏠린 한국은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된 셈이었다.

또다시 모두의 시선이 한국으로 쏠렸다. 이전보다도 더 심하게.

그에 따라 밀입국자들이 더더욱 많아진다거나, 일단 비행기부터 한반도에 들이밀려고 하는 자가 있다거나, 이능력을 이용해 국경을 넘어온다거나, 아예 옛 북한 땅에 눌러앉아 '한반도 통일'을 외치는 금발 외국인이 늘어난다거나, 인접한 영토를 이양해줄테니 국제적으로 사이가 돈독해졌으면 좋겠다는 러브콜이 빗발치거나 하는 문제는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당사자들을 건드리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심했다.

- 석하랑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 님 머저리임? 그러다 석하랑이 빡쳐서 태평양 물 싹다 증발시키면 어쩌려고?

-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둘.

세계는 '테라'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곱 여신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집행관> 백희아는 괴수의 존재에 대하여 이세계 <테라>에 대해 사실대로 밝혔다.

테라를 지키는 일곱 정령은 간악한 성주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것.

그 중 일부 각성한 존재들이 성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는 것.

'그 녀석들도 나름 좋은 녀석들이었어'를 시전한 백희아의 설명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다는 순간 심연 속으로 던져질 게 뻔했다.

만악의 근원은 성주다.

모든 건 성주가 나쁜 것이다.

피닉스가 미쳐 날뛴 것도, 아지다하카가 남정네들을 후리고 다닌 것도, 차원문이 열린 것도, 괴수들이 지구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성주가 원흉이다.

그런데 그 원흉이 사라졌다.

피닉스는 창염이 되어 더이상 미쳐 날뛰지 않게 되었다.

아지다하카는 애초에 피닉스가 죽여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차원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다.

괴수도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 어라? 그럼 코어는 이제 어디서 얻는 거지?

......

세계가 일곱 여신에게 구원을 받은지도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추위가 절정에 이르는 2020년 12월 24일.

시대는 바야흐로, 코어대기근의 시대를 맞이했다.

* * *

<2020년 12월 24일 오전 10시, 중국 북경 환룡의 장원.>

"코어 내놔요."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필요없어요."

나는 현재 유일하게 S급 코어를 정기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거래처에 들렸다. 이곳에서 언제나 그를 맞이했던 남자, <봉효> 백청영이 이번에는 '나'를 환대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창염 님."

"저 피닉스인데요."

"제가 눈치가 좀 좋은 사람이라서요. 거짓말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두 분이 다른 분이라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금방 간파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백청영은 내가 그와 다른 존재인 걸 인지하고 있었다.

"범인은 환룡이죠? 환룡한테 들었나요?"

"아뇨. 추측과 감입니다."

백청영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혼돈 님과 환룡 님을 곁에서 보좌하면서 두 분이 다르다는 것을 직접 체득했습니다. 모든 정령이 간부와 정령 인격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증거로...."

"그냥 감?"

"저를 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백청영은 쓰게 웃었다.

"지금 저를 보는 눈빛은 집 밖에 굴러다니는 송충이를 바라보는 눈빛이라면, 이전에는 확실히 달랐거든요."

"......호오, 재밌네요. 한 번 얘기해봐요. 그가 당신을 어떻게 봤는지."

"제가 느낀대로 말씀드려도 됩니까?"

"물론."

"대가리는 좋은데 그걸 변태적인 곳에 굴리는 미친 페도필리아 새끼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미묘하게 구체적인데요?"

"그야 그런 눈빛을 숨기지 않으셨으니까요. 물론 전 억울합니다. 전 페도필리아도 아니고 그냥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존재일 뿐입니다. 굳이 취향을 따지자면...샤오린 같은 타입이죠."

"근친충."

"이복동생이지만 정말 사랑스럽죠. 그 분이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복동생만 아니었으면 그 분과 연적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크으, 다음 생에는 피가 반은 커녕 아예 안 섞인 상태로 만났으면 할 뿐입니다. 제 여동생이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거든요."

"......진짜 대가리는 좋은데 그걸 변태적인 곳에 굴리는 미친 근친 새끼네요."

"오호."

백청영은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혹시 그런 말씀 아십니까?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군요."

"...저기요, 저랑 그랑 다른 존재기는 해도 결국에는 창염과 피닉스의 관계거든요?"

"에이, 그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피닉스 님, 피닉스가 아니었잖아요?"

"...진짜 방심하지를 못하겠네."

환룡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자라서 그런지,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럼 살인멸구라는 말도 알고 계시겠네요?"

"어이쿠, 수틀리면 죽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부군과 닮으셨습니다. 크으, 그분께서도 저를 몇 번이고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시다가 결국에는 저를 신뢰하셨죠. 창염 님도 저를 신뢰하시게 될 겁니다. 왜냐!"

"그라면 몰라도 저를 협박할 거리가 없잖아요. SR-6974."

"아, 그거 진짜로 지웠습니다. 그 분이 가지고 계신 것이 진짜 이 세상에 있는 마지막 영상입니다."

"당신 근친충이라면서요?"

"가족이 아니었으면 한 번 쯤은 생각해볼만큼 매력적이라는 여인이라는 얘기지, 여동생은 다르지 않습니까. 이복 여동생이긴 해도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녀석입니다. 저는 샤오린을 대상으로 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정상인입니다."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나는 경계를 풀었다. 마력에는 전혀 거짓이 없었다.

"흐흐, 그 분과 똑같이 저를 신뢰하시는 군요."

"......? 당신 혹시 SSS?"

"아뇨.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하셨기에."

"제가요?"

"예. 꼭 전여친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남자사람친구를 경계하는 전남친의 눈빛이었다가, 그 남자사람친구가 실은 전여친 오빠라는 걸 깨닫고 안도와 불안감을 내비치는 눈빛입니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백청영은 다 안다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씩 미소지었다.

"창염 님. 환룡 님과 샤오린과 합동결혼식을 하게 된다면...싱크로 상태로 결혼하실 겁니까, 아니면 셋이서 함께 하실 겁니까?"

"장난해요? 제가 왜 그 둘이랑 결혼을 해요."

"환룡 님과는 치정관계일지 몰라도 샤오린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들 모두와 연적이기는 하셨지만, 창염 님이라면-"

"저 여자인데요?"

"살아있는 신이기도 하죠. 동성 결혼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군신이 창염의 피닉스와 결혼한다고 하면 13억 중국인 중 그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흐흐."

"......참 당신도 속내를 잘 드러내는 편이네요."

"솔직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께 솔직하게 드러낼 뿐이죠. 물론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어느 줄을 잡아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짝짝짝.

백청영이 손바닥을 두어번 두드렸다. 그러자 책장이 비스듬히 열리기 시작하고, 안에서 흑발의 여인이 말로 하기 힘든 복장으로 나타났다.

"......이건 무슨 의도죠?"

"환룡 님 취향입니다."

"당장 폐기하세요."

"예. 흑사갈, 벗어라."

"네?! 저, 이거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요...!"

"허."

백청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내가 언제부터 네게 두 번이나 명령을 하게 되었지?"

"그, 그치만...!"

흑사갈은 내 눈치를 보더니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흑사갈은 마왕군 간부라고 생각될 법한, 노출면적이 심한 테라 특유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다크 레기온 간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어제 저한테 박았던 환룡단 단원한테 들었어요! 이제 너 말고는 코어 나올 곳이 없다고! 죽여봐요, 아니 죽여!"

"......못 볼 꼴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백청영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자가 내 앞에서 굴욕을 당했으니, 속이 천불처럼 끓을 것이다.

"흥! 죽여봐! 아니, 아예 소멸시켜봐! 달처럼! 신이라며! 깔깔깔!"

"완전한 사도로 만들어버리면 죽이더라도 다시 살릴 수 있는데."

"엑."

흑사갈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래도 반년 넘게 24시간 내내 박히는 생활만 하다보니 뇌수까지 정액이 차오른 모양이네요. 신이 그 정도도 못할 거 같아요?"

"히, 히익...!"

"...차원문이 더이상 열리지 않는다고 코어 수급할 곳이 당신만 있는 줄 알고 깝치는 거라면 오산이에요. 우리가 세계를 구할 때 이 정도도 예상 안 한 줄 알아요?"

마그마속에서 그와 함께 정신 속에서 살아온 햇수만 20년이다. 당연히 세계를 구하고 난 뒤의 플랜에 대해서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도록 메뉴얼을 마련해뒀다.

"호오. 그럼 흑사갈 말고 코어를 수급할 곳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죠. 물론 흑사갈만큼의 효율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수급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백청영은 손짓을 하며 누군가를 불러냈다. 밀실의 안에 있던 흑전갈 괴인은 나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숙인 뒤, 흑사갈의 젖을 손으로 비틀며 안으로 데려갔다.

"아하앙?!"

"잠깐 '교육' 좀 하고 오겠습니다."

백청영은 길쭉한 보석함을 집어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이가 60cm가량 되는 보석함이었으니, 무엇인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호록."

쌉싸름한 커피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혀는 살짝 텁텁하지만 나름 맛은 나쁘지 않다.

"......어디서 큥큥소리가 나는데."

나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백청영의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백청영은 금방 밖으로 나왔다.

"조루에요?"

"흑전갈에게 맡기고 나왔습니다. 흠흠."

아직도 얼굴이 시뻘게진 백청영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내게 안쪽을 가리켰다.

"...다시금 제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증거로 저걸 드리겠습니다. 아니, 돌려드린다는 표현이 맞겠죠."

"흑사갈?"

"아뇨. ...그것 말입니다. 창염님께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환룡이든 샤오린이든 창염님께서 박으시려면-"

"말했잖아요. 저는 그랑 다른 사람이라고."

나는 컵을 들어올리며 그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그는 박는 사람이지만...저는 박히는 사람인 걸요. 푸흐흐."

"......그분보다 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렴요. 아참, 미리 말하는데."

나는 잔을 내려놓고 엄지로 목을 그었다.

"저한테 박을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뿐이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마요."

중국을 떠나며 라스푸틴은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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