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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96화 (496/1,497)

〈 496화 〉1부 21장 28

히드라, 지륜의 경우와는 다르다. 둘에게는 아직 성주가 코어에 씌워놓은 각인이 남아있고, 싱크로 대상이 유나라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습군. 이유나를 그렇게 아끼면서 이유나를 써먹을 생각을 안 하다니."

"유나랑 싱크로 했으면 달라졌을까요?"

"물론. 너와 창염은 살아남겠지. 그래, 파란머리 이유나가 되어서. 흐흐흐."

만약 내가 유나와 싱크로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유나의 몸에 창염이 깃들고, 창염의 몸을 내가 차지하는 걸로 함께 지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건 싫네요. 유나 죽으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나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 유나는 소멸한다. 유나의 본질은 결국 이계신으로부 비롯된 바람(風)이니까. 불은 바람을 집어삼키기 마련이다.

"이유나를 죽이기 싫어? 흐흐, 그래서 네가 죽는 것이다. 피닉스여. 너는 나를 죽였지만, 나를 죽인 것이 아니야."

성주는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나 또한 아직 완전한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쓰러뜨린 것은 무신의 육체. 그 뇌에 기생하고 있는 내가 아니지!"

콰드득!

성주의 뒷통수에서 피분수가 치솟았다. 코 윗부분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육편이 튀었고, 나는 전면에 불길을 만들어 파편을 태워버렸다.

"흐하하! 어리석구나, 피닉스여! 뇌를 노리지 않다니!"

중력을 거스르고 돋아나는 피분수는 마치 그물망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괴하고 역겨워서 구토감이 치밀어올랐지만 참았다. 지금은 창염의 육체니까.

"써먹을 대로 써먹고 육체를 버리다니."

"원래 그러려고 복제를 만들었으니까!"

성주의 본모습이 무신의 머리통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동충하초처럼 튀어나온 성주는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까지 펼치며 본체를 드러냈다.

"그 몰골로 유나를 범하려 하다니. 으으."

[닥치거라. 뇌를 강간당하고 싶으냐?]

성주는 품에 혈액이 굳어 만들어진 빈 병을 들고 나를 겁박했다. 무신의 육체에 깃들어 있으면서 젠체를 하긴 했지만, 저게 원래 성주의 본모습이었다.

"뭐라고 불러요? 다크 위스퍼?"

[본좌의 이름은 MIGO이니라. 함부로 부르지 말거라, 이 년.]

"마이고? 푸흐흐. 뭐래. 자기 주인한테 이름 한 번 불려보고 싶은 관종 벌레 주제에."

[이 년이!]

성주는 입을 쩍 벌리며 나를 위협했다. 하지만 위협만 할 뿐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뒤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요. 나랑 당신은 죽어도 창염은 살아남으니까. 푸흐흐."

빅장이라고 하던가.

나는 손가락을 까딱만 하더라도 성주를 태울 수 있으나, 마력을 조금이라도 일으키는 순간 소멸해버린다.

성주는 나를 공격하여 세뇌시킬 수 있지만, 나를 세뇌시키더라도 나는 소멸하기에 아무 효과가 없다.

누가 죽든,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창염은 살아남는다.

"창염 대승리! 라는 거죠."

양파망처럼 생긴 버섯 괴물 주제에 표정이 일그러지는게 아주 일품이다. 테라에서는 성주가 창염에게 이겼을 지언정, 지구에서는 창염이 성주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이 미친 녀석! 창염을 살리기 위해 죽는다고?!]

"당연하죠. 내가 그냥 피닉스인 줄 알아요? 당신이 말했잖아요. 창염'의' 피닉스라고. 당연히 창염을 위해 죽고 살지."

[......으아아아아악!!!]

성주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달의 겉면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최후의 창염개진을 견뎌내지 못한 달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따위, 이해하지 않겠다! 더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다!]

"누가 그러길래 봐주랬나. 아참. 그거 알아요?"

나는 이제 전부다 흩어져버린 깃털을 가리켰다.

"아가리 놀리면서 시간 끄는 거, 당신만 하는 거 아니라는 거."

[뭣.]

"등신. 가만히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가 소멸하는 거 뻔히 아는데, 내가 뭐하러 당신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겠어요? 머저린가."

사람이 죽기 일보직전이라서 그런가. 창염의 몸인 걸 알면서도 자꾸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대상이 성주니까 창염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저기요, 코가 없어서 모를 수도 있는데.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나는 우주공간을 빙둘러 오는 푸른 궤적을 가리켰다.

"우주선 연료 타는 냄새가."

끼요오오옷-----!!

드디어.

여섯 정령을 실은 우주선이 달에 도착했-

"헐."

디자인 누구냐.

***

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모두가 달에서 격전이 일어난 것은 알고 있었다.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피닉스가 달로 떠났고, 그 뒤로여신들이라 불리우는 여섯 이능력자가 피닉스 모습을 본딴 우주선을 타고 달로 향했다.

그리고 달이 터졌다.

비록 실시간으로 지켜보지는 못했으나, 사람들은 위성을 통해 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적의 수괴-명왕성의 주인과 피닉스는 달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달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고 황색 폭풍이 일었다. 사람들은 위성을 통해 보는 달의 모습을 보며 승패를 점쳤다.

황색 폭풍이 거세지며 불길이 사그라든다. 인류의 멸망이 가까워졌다.

불길이 황색 폭풍을 집어먹고 더욱 크기를 키운다. 인류의 평화가 가까워졌다.

지구의 운명이 한 명의 이능력자에게 맡겨진 상황에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응원을 하거나 분석을 하거나 하며 피닉스의 승리를 바랐다.

...비록 달은 반파되어 더이상 위성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졌을 지언정, 일단 지구를 향해 명왕성을 떨어뜨리고 달까지 떨어뜨리려는 미친 외계인의 횡포는 막아야했다.

그리고 우주선이 달에 닿기 직전, 인류는 보고말았다.

푸른 불꽃의 폭풍이 우주의 저편으로 날아가는 것을. 인류는 달에서 치솟은 거대한 불기둥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

그 불기둥이 계속 불타지 않고 사그라들었다는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하늘을 날고 있던 푸른 불사조가 땅에 안착했다. 불사조는 마치 나를 호위하듯 내 뒤에 착지했고, 벌려진 가슴에서 인영이 튀어나왔다.

"야!"

가장 먼저 뛰쳐나온 이는 성질급한 석하랑. 그 뒤로 카르나가, 김펜릴이, 백희아가, 환룡이, 그리고 유나가 뛰쳐나왔다.

"니 미친나! 혼자서 무슨 개짓거리를 하는데!"

"막타 먹으라고 아껴뒀어요. 잘했죠?"

"......."

나는 우주선의 메인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며 웃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지구인들은 이제 '나'를 창염으로 인식해야했다. 나는 최대한 창염스럽게 연기하며 폭주하는 성주를 가리켰다.

"저게 저 놈의 본체입니다. 보기 흉하죠? 저는 할 일 다했으니까 막타쳐주세요."

"......."

다들 기가 막혀 하는 가운데, 환룡이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영계에 적을 두고 있는 녀석이니 내 상황을 알 것이다.

"......미안."

환룡은 순순히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마음같아선 어디 앉혀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도 그렇고 시간도 부족했다.

"제가 미안하죠."

"역시 너희 둘이 싸웠나?"

"환룡한테 혹시 단독으로 달까지 날아갈 방법이 없냐 이야기하다가 그만. 푸흐흐."

"그럼 니가 잘못했네. 왜 혼자 가고 지랄인데, 지랄은."

석하랑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따지고 싶었지만, 뒤에서 느껴진 살기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싹 다 모였구나! 으하하, 재미있어! 네 년들 만큼 뇌를 주물럭거리는 맛이 있는...오오오오!!]

성주는 날개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성주의 시선은 우리의 가장 끝에 있는 갈색 머리칼의 여인, 이유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르익었구나! 농익었어! 비록 더러운 땅뱀을 몸에 담았으나, 그런 터럭조차도 아름답구나! 그 분의 옥체가 되기에 충분하다! 잘 성장했구나, 그노시스여!]

"저는 이유나에요."

유나는 표정을 굳히며 스태프를 바닥에 찍었다. 달의 땅이 손처럼 튀어나와 성주를 집어삼켰다.

[이, 이런-]

콰득!

성주는 빠져나갈 새도 없이 유나가 뻗은 손길에 잡아먹혔다. 흙으로 된 손은 피 한 방울 새어나오지 않았으나, 안의 빈 공간은 서서히 땅으로 채워질게 분명했다.

꾸드득, 꾸드득!

손 안에서 무언가가 눌리고 찌그러지는 소리가 여실히 들려왔다. 나는 예상대로 진행되는 상황에 안도했다.

'싱크로 한 명만 있어도 성주는 밥이지.'

로브를 입고 있었다면 아무런 피해도 끼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신의 육체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어퍼컷으로 뚫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로브는 불타버렸고, 무신의 육체도 폐기되었다. 성주의 본래 육체인 외계인의 몸은 정신과 세뇌를 메인으로 하는 환술전에 특화되어 있다.

아군을 세뇌하여 싸우는 자. 많은 동료를 데려갈 수록 많이 세뇌를 당해, 결국 세뇌에 면역이거나 저항력이 있는 동료들이 필요했다.

세뇌에 저항력을 갖춘 정령.

세뇌에 완전 면역인 신.

이곳에는 싱크로에 성공한 신들 뿐이다. 나는 스태프를 만지작거리는 유나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고, 유나는 곧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어요."

"...이걸로 끝이란 말이오?"

김펜릴이 자기 말투조차 까먹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이었다. 나로서는 익숙하지만, 내가 그리도 걱정하고 주의를 줬던 성주가 이리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유나야, 혹시 아직 남아있는데 그러는 건 아니지?"

"아뇨. 성주는 확실하게 죽었어요. 보여드릴까요?"

유나는 한손을 들어 쥐락펴락했다.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어 정령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범한 인간이 찌그러진 모습도 구토감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성주의 본모습이 찌그러졌으니 그것도 오죽하겠는가.

"그럼 다 뭐꼬. 이걸로 끝이라는 기가?"

"그럴 리가요."

1페이즈. 내가 성주의 로브를 벗기는 걸로 끝났다.

이벤트전. 내가 성주가 임시 육체로 꺼낸 무신을 죽이는 걸로 끝났다.

2페이즈. 유나가 성주를 찌그러뜨렸다.

"3페이즈 아직 남은 걸요. 이제 진짜 최종보스전인데."

구구구구.

성주가 찌그러진 덕분인지 달의 붕괴가 더욱 심해졌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궁금한 눈치였고, 나는 좌중을 쓱 훑었다.

"당황하지 마요. 뉴클리언 전 기억해요? '해치웠나'같은 말 하니까 바로 2페이즈 시작됐잖아요."

"크흠, 흠."

석하랑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고, 지진은 더욱 심해졌다. 흙먼지가 일어날 정도였고, 땅에 안착한 우주선이 흔들릴 정도였다.

"유나."

"네."

유나가 스태프를 들어 땅에 깊숙히 박아넣었다. 유나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달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파지지직!!

달의 땅이 유나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붕괴되고 있던 달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미 천장에 난 구멍이나 새롭게 생긴 크레이터는 그대로 남았지만, 적어도 더이상 붕괴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전장 안정화. 남은 시간은...이런."

유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달의 붕괴는 막았지만 억지로 붙잡고 있는 셈이었다. 달의 내핵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붕괴를 피할 수 없었다.

"피닉스 님. 지금 내핵에서...."

"알아요. 성주가 개수작을 부린 거. 유나, 필드를 넓게 만들어줄래요?"

나는 유나에게 새로운 전장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유나는 스태프를 두어번 두드리는 것으로 달의 지면을 끌어당겼다.

구구구구.

우주선을 중심으로 달의 대지가 떨어져나왔다. 유나는 내 요구대로 달로부터 떼어낸 대지를 차크람과도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거 뭐하는 거냥?!"

"전장이죠."

폭은 10m, 내부 빈 공간의 지름은 무려 1km. 바야흐로 최종전에 어울리는 전장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지금 마력이 다해서 더이상 싸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모두 제 지시대로 움직여줄래요?"

나는 메카피닉스와 비슷한 우주선의 머리에 올랐다. 마도기어도 없고 마력도 최소한이었지만, 다행히 우주공간 안에서 정령들은 내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곧 달은 변할 거에요."

3페이즈.

진최종보스, 대 이계신 전.

"......준비는?"

"충분해요."

유나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내가 기억하던 유나와 똑같은 얼굴로, 언제나 같은 상황에서 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희생을 강요해서."

"희생하는게 저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피닉스 님과 다른 언니들이 저를 살려주실 거라고 믿고 있어요."

유나는 밝은 미소로 활짝 웃었다.

"싸우는 건 저보다 히드라가 더 잘 할테니까요. 이거 그 말로만 듣던 붙잡힌 히로인이란느 거죠? 후훗, 왕자님은 일곱 명이나 되는데 누가 구해주시려나."

"......농담은."

이계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유나가 잠시 희생을 해야했다. 일곱 정령들이 모두 싱크로하여 균형이 맞춰졌기에, 성주는 이제 유나의 몸을 강탈하여 이계의 여신을 불러낼....

"어라?"

나는 잠시 뇌가 정지되었다.

유나가 이계의 여신으로 각성하는 경우는 피닉스 루트다.

일곱 정령들이 모두 싱크로를 갖추고 있어, 오히려 역설적으로 마력의 조화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 지금 망가지지 않았나...?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변수가 너무 많다. 폭주하는 이계신의 화신체를 상대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창염이 있으니 안정되어있다고 판정되어 유나의 몸에 이계신이 깃드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

구구구구.

"어라?"

"어?"

나와 유나가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나는 직감을, 유나는 유나라 금방 알아챈 것이다.

"...피닉스! 달의 안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냥!"

그리고 다음으로 이상현상을 알아챈 이는 김펜릴. 풍속성이라 그런지 바람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이계신의 흔적을 빠르게 느낀 듯 했다.

"이거...설마?"

두근, 두근.

달이 외곽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빠져나온 원판 모양의 전장은 달로부터 진즉에 떼어졌기에, 달 전체를 뒤덮는 기이한 핏빛 그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욱."

백희아가 달을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SSS급마저도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달이 변화하는 모습은 흉측했다.

"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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