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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91화 (491/1,497)

〈 491화 〉1부 20장 23

"괜찮으세요?"

유나는 한쪽 팔이 부서진 히어로의 팔에 흙으로 된 붕대를 만들었다. 막대한 마력이 불어넣어짐과 동시에, 붕대는 깁스가 되어 히어로의 팔을 고정시켰다.

"괜찮아...졌습니다."

"다행이네요."

히어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테라리스트에게 박살이 나다못해 잘라내야하지 않을까 싶었던 팔은 유나가 마력을 불어넣자마자 원상복구되었고 서서히 고통이 잦아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마침 당신이 지속성이라서."

유나의 옆에 함께 있는 갈색 머리의 여인, 지륜의 히드라는 바닥을 굴러 히어로가 쉴 수 있는 흙침대를 만들어냈다. 푹신한 감촉이 히어로를 감싸안았고, 히어로는 자신이 전장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는 것도 잊고 안도감을 가졌다.

"무식하게 마력을 불어넣어서 신체의 재생력을 높인다...누구한테 배운 거야?"

"스승님이요."

"피닉스? 하아."

히드라는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주 제멋대로라니까.... 내가 어쩌다가 그런 놈팽이에게. 하아."

"그래서 싫으세요?"

유나는 건수를 잡았다는 것마냥 싱글벙글 웃었다. 히드라는 손사레를 치면서 유나에게 다가가 허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누가 할 소리?"

"후훗. 그러면 히드라 님도 가실래요? '저'라면 어떻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유나는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거의 지구 반대편이기는 하지만, 유나의 말대로 '유나라면' 혹시 그를 쫓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 저기. 여신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 별 거 아니에요. 성질 급한 분이 먼저 명왕성의 주인을 잡으러 갔거든요."

유나는 마도기어를 두드려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불과 3분 전. 인공위성을 통해 관측된 영상에는 한반도 상공에서 로켓처럼 푸른 불사조가 우주공간을-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짙은 어둠을 가르며 달로 날아가는 불사조의 푸른 빛에 히어로는 넋을 잃었다.

"이건 도대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 가버린 거예요."

"자기 혼자서 독박 쓰겠다 이거지. ...죽을 지도 모르면서."

히드라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지가 히어로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사람이 쉽게 변하나요. 태생이 그런...아차. 이런."

삐빅. 유나의 마도기어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유나는 난감한 얼굴로 마도기어를 두드려 호출에 응답했다.

"여기는 . 현재 분리중이에요."

[분리중이라고 할 때가 아닙니다!!]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집행관 백희아는 산발이 된 채 호통을 쳤다. 눈에는 다크서클이 짙에 내려앉아있었고, 탈수 증상이라도 일으킨 듯 상태가 몹시 심각해보였다.

"집행관, 혹시 지금 무리하고 계신 건...?"

[무리해야죠! 피닉스 님 혼자서 지금 올라갔는데!]

"어...? 혹시 집행관 님도 분리하셨어요?"

[앙그가 지금 사람들 데리러 갔어요! 당신들도 여력이 있으면 빨리 여의도로 복귀하세요!]

집행관의 명령에 유나가 주변을 살폈다. 번역기를 통해 집행관의 명령을 들은 현지의 히어로들이 하나같이 유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여, 여신님?"

"...죄송해요. 아무래도 저희는 저희의 전장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

"그런?!"

현지의 히어로들은 절망에 빠졌다. 유나와 히드라가 없었다면 지명왕도, 지명왕에서 터져나온 괴수들도, 차원문에서 쏟아져나오는 괴수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 유나가 여의도로 돌아간다?

"저희들을 버리시는 겁니까?!"

"당신의 나라만 살아남으려고...?!"

"이것들이 도와줘도 말뽄새가-"

"설마요. 그런 게 아니라...명왕성의 주인을 잡으러 가는 거예요."

유나는 울컥하려는 히드라를 제지하고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명왕성의 주인, 성주를 잡기 위해 달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지금 한국, 여의도 지하에 있다는 것. 자신들은 결코 도망치려는 게 아니라는 것.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조금만 참아주세요. 금방 결착을 내고 올게요."

"그동안은 얘들이 도와줄 거야."

짝! 짝!

히드라가 박수를 쳤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구구구.

바닥에서 수백에 이르는 캡슐 모양의 흙이 솟아났다. 마치 관과도 같은 캡슐의 앞에서 문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으아악!!"

캡슐 하나하나마다 흉측한 괴인들이 갈색 안광을 터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히어로들은 공포에 질렸으나, 이어진 괴인들의 행동에 바로 아연실색했다.

쿵.

괴인들은 일제히 유나와 히드라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괴인들은 모두 목에 히드라의 머리색과 똑같은 갈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지저왕국의 괴인들이야.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B급 히어로 수준이지."

"괴인 분들도 지구인이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분들은 이계의 장기에 '오염'될 수 없어요. 가호가 있으니까."

괴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지저괴인은 유나와 히드라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에서 히어로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격오지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 믿을 수 없습니다! 어찌 괴인들이-"

"그럼 이렇게 하면 믿으시겠어요?"

유나가 히드라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히드라가 유나의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유나는 다시 얄다바오트로서 하나가 되었다.

"전세계의 지저괴인들에게 명합니다. 지구를 지키세요."

쿵!

유나가 석장을 바닥에 찧자, 괴인들은 포효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괴인에 대한 '절대명령권'이 발동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 빈 자리는 어느정도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여의도로 갑니다."

유나의 몸은 땅속으로 훅 꺼져버렸다. 전장 근처에 남아있는 히어로들은 날뛰기 시작하는 괴인들의 모습에 탄식했다.

"이것이 진정 종말인가...."

우오오오---!

갈색 스카프의 괴인들은 인류가 아닌, 테라리스트와 괴수들에게 달려들었다. 히어로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가장 거대한 체구를 가진 괴인이 히어로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여신의 이름으로. 유-나."

지저괴인들이 모두 유-나를 외치며, 지구의 습격자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 * *

.

나는 열심히 하늘을 날았다. 불꽃의 날개를 위아래로 펄럭이며, 중력이 나를 잡아당길 때마다 마력을 아래로 분사하며 더욱 더 높게 날아올랐다.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마도기어조차 벗고 왔으니, 그 누구도 내게 연락을 넣을 수 없었다.

[야! 너 지금 뭐하는데!!]

"와. 대박."

나는 내 옆에 따라붙은 얼음 나비에 식겁했다. 슬슬 대류권을 벗어나 성층권으로 접어든다 싶었는데 내 속도와 거의 비슷하게 분령을 날렸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역시 가장 먼저 싱크로한 녀석 답게 신기에 가까운 이능을 보였다.

"지금 구름 수증기에다가 의지를 심은 거? 이제 좀 신 답네요. 얼음과 물의 신. 빙수-신."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혼자서 미친 게 아니고서야 왜 혼자 올라가고 지랄인데!!]

농담도 통하지 않았다. 얼음나비를 통해 전해진 석하랑의 감정은 명백한 분노와 당혹감. 당연히 그럴 법 했다. 급발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나는 아무 예고도 없이 단독으로 하늘로 날아올랐으니까.

"시간이 없거든요."

나는 허공에 멈춰 얼음나비를 쥐었다. 서로의 마력이 접촉한 덕분에 나는 석하랑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석하랑도 내 위치를 확인했다.

"태평양 바다속을 헤엄쳐서 오는 속도가 거의 김펜릴 달리는 급이네요?"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디까지 올라가는 건데?!]

수명왕을 물리친 석하랑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으로,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단독으로 달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 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는 무언가 탈 것이 필요했다.

'아마도 그걸 타려고 하는 거겠지.'

석하랑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바다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 손가락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달 까지. 성주랑 붙으러 가는 거죠."

[그러니까 왜 혼자서 가냐고!!]

석하랑이 빽빽 소리를 지르는게 바로 옆에서 귀에다가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석하랑의 분노에는 나에 대한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얼음나비를 쓰다듬고 허공에 내려놓았다.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거든요."

[뭐? 너 설마-]

"잘 챙겨줘요. 지금은 오빠같은 존재라고 해도...나중에는 언니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테니."

[너-]

화륵.

나는 가차없이 얼음나비를 녹여버렸다. 석하랑과의 연결은 끊겼고, 나는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괜찮아요?'

속에서 창염이 나를 달래주었다.

"괜찮죠. 괜찮지. 예전부터 서로 각오했던 바인데."

'그래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말이었는데 그렇게는 조금.'

"이 정도가 딱 좋아."

제자이며 동생이며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석하랑과의 대화를 단호하게 잘라내는 셈이었지만, 내게 연락을 건 석하랑은 그저 단순한 한 명의 인간이 아니었다.

모든 정령들. 모든 청화단 단원들. 그리고 나와 지금까지 관계되어있던 모든 이들.

모두에게 지구를 맡기고, 나는 창염과 단둘이서 싸우러 가는 것이다. 성주와.

"대화? 하고싶지.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나는 마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으로 더욱 빠르게 솟아올랐다.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고 숨은 가파왔으나, 애초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신체인 만큼 호흡은 필요없었다.

호흡조차 그만두고 마력을 방출하기만 수 분. 하늘을 뒤덮은 구름을 뚫고 중력을 이겨내며 날아오른 나는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공간에 다다랐다.

우주.

'단독으로 우주에 올라오다니. 역시 피닉스.'

고오오-----

그 어떤 소리도 없는 우주공간 한 가운데, 나는 날개를 펼치며 멈춰섰다. 미련은 더이상 없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구 한 번쯤은 봐도 되지 않을까.

'어우, 개판이네. 차원문 때문에 육지건 바다건 할 것 없이 전부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전세계는 나선의 보라색 소용돌이가 전체를 덮고 있었다. 환공포증이 있다면 아마 영영 지구를 관찰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차원문의 수는 많았다. 아지다하카 게이트 당시보다 훨씬 많은 건 기본이고, 마치 1인 1차원문이라도 만들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멸망을 앞둔 세계. 나는 지구에서 달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막상 떠나오기는 했지만 역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아직 하지 못한 말도 많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다 하지 못했다. 창염을 살리기 위해 모든 시간을 오늘을 위해 바쳤던 나로서, 이왕 승리할 거 확실하게 승리하고 뒤를 즐기고 싶었다.

"아아. 아아."

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가다듬었다. 소리를 전할 매질은 없지만, 그 정도는 마력과 기합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신혼 여행지 미리 확인한다고 생각하고, 여행지에 있는 이상한 놈 처리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살아서 지구로 돌아간다. 함께.]

'우주로 신혼여행을 가시겠다?'

[성주 잡고, 지구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단독으로 날아오는 게 아니라 우주선 타고 달 기지를 산책하는 것이다. 완벽하군.]

나는 천천히 달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우주공간을 활강하며 나아간 목적지는 달의 뒷면.

성주가 설치해둔 방주의 입구.

끼이익.

기억대로, 달의 뒷편 한켠에서 거대한 쉘터의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달은 이미 성주에 의해 테라포밍이 끝나있었다. 심지어 성주는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듯, 쉘터의 입구를 스스로 열어버렸다.

끼이익, 철컥.

내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셔터가 닫혔다. 안쪽에는 21세기보다 훨씬 더 먼 미래 시대의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꼭 별들의 전쟁 함선에 들어온 것처럼 생겼네.'

광선검이라도 꺼내들어야하나. 나는 호흡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에는 마치 레드카펫과도 같은 홀로그램의 길이 나를 안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기나긴 통로를 지나, 달 기지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안에서 창염이 난동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마력이 역류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히 내가 긴장이 되어 몸이 떨리고 있었다.

"창염개진, 창염개진."

나는 속을 달래며 통로의 끝, 거대한 철문의 앞에 섰다. 소용돌이처럼 비틀린 문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벽 사이로 들어갔고, 안은 온통 하얀색만 가득한 넓은 공간이었다. 나는 그 공동 한 가운데에 선 노란 로브의 남자와 눈이 맞았다.

"성주."

"어서오시게, 피닉스여."

성주는 무신의 얼굴로 내게 활짝 웃었다. 로브 아래의 몸 상태를 보니, 이미 성주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듯 보였다.

"의외네요. 시간을 벌려고 하거나 아니면 또 세뇌빔이나 환상빔을 날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뭐라고 해야하나...이 육체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어. 이것이 인간이라는 건가. 흐흐."

성주는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데이터상으로만 보던 의 전투 자세가 고스란히 성주에 의해 재현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네 반쪽, 창염을 진정으로 이긴 것이 아니지. 그런 의미에서...오늘 진정으로 이겨보겠다. 너를 이기는 것이 곧 창염을 이기는 것이겠지?"

"물론. 그런데 미안하다. 하나 반칙을 하도록 하지."

나는 마력으로 만들어낸 건틀릿을 앞으로 겨눴다. 괴인 피닉스의 것과 형태는 비슷했지만, 그 색은 창염의 색과 똑같은 푸른 빛깔이었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우리'다."

마지막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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