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9화 〉1부 20장 21
팬텀이 화염거인의 어깨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뒤로 흑발의 이능력자가 어깨를 디디고 뛰어올랐다.
"하아앗!"
흑염룡이 검은 불꽃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등에 함께 승천하던 검은 용은 흑염룡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렸고, 흑염룡은 공중에 떠있는 복제 피닉스를 향해 날라차기 자세를 취했다.
"창염으로 불타올라라, 나!"
캬오오오오!!
검은 불꽃의 용이 입에서 창염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흑염룡은 불꽃의 브레스와 함께 복제 피닉스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크윽?!]
복제 피닉스는 황급히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어 보호막을 만들었다. 반구형의 자색 실드는 순식간에 수십 장이 겹쳐지듯 흑염룡의 킥 경로에 나타났다.
파바바박!!
흑염룡의 킥은 실드를 무참히 박살내기 시작했다. 브레스는 끊이지 않고, 흑염룡 또한 추진력을 잃지 않았다.
와장창!
마지막 실드가 부서짐과 동시에, 흑염룡은 다리를 살짝 접어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흑염룡의 발에는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끝이다!!"
[이 놈!]
카가가각! 복제 피닉스는 두 팔을 교차하듯 들어올려 흑염룡의 킥을 막았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킥의 여파로 복제 피닉스는 수 m를 뒤로 물러나야했다.
[고작 이 정도로!!]
덥썩! 복제 피닉스가 흑염룡의 종아리를 붙잡았다. 청색이 아닌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부분. 복제 피닉스로부터 흘러들어간 자색의 불꽃이 흑염룡의 다리를 집어삼켰고, 복제 피닉스는 흑염룡을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부웅, 부웅--!!
흑염룡은 수 바퀴를 회전하며 벽으로 날아갔다. 내장처럼 꿈틀거리는 벽에는 테라리스트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흑염룡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사람을 벽에다가 처박아!!"
흑염룡이 벽에 닿기 직전, 흙으로 된 손길이 올라와 흑염룡을 움켜쥐었다. 흑염룡은 흙으로 된 손바닥 안에서 마력을 가다듬었다.
"아키택트! 다시 던져다오!"
"말 안 해도!"
흙벽을 만들어낸 아키택트는 흑염룡을 쥐고 다시 집어던졌다. 복제 피닉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흑염룡을 향해 스태프를 겨눴다.
콰광--!!
그리고 그 순간, 복제 피닉스의 오른쪽 날개가 폭발했다.
[뭐, 뭐냐?!]
복제 피닉스는 휘청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화염거인도, 팬텀도, 터뷸러스도, 흑염룡도 자신을 견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거 미안하네."
화염거인의 뒤. 중절모를 쓴 하늘성은 양 어깨에 박격포를 든 채 껄껄 웃었다. 하나에 족히 수십 kg은 넘어보였지만, 마력을 활성화하여 근육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하늘성에게는 장난감 수준의 무게였다.
"나는 괴인이 아니라서 마력에 힘이 안 담겨있어. 이런 식으로밖에 지원이 불가능 하지."
"그걸 얘기하면 안 되지!"
"뭐 어떤가! 이제 다 끝나가는데!"
콰광---!! 하늘성이 다시 박격포를 쐈다. 박격포의 안에도 당연히 정제된 마탄이 장전되어 있었고, 복제 피닉스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자신을 중심으로 보호막을 쳤다.
포탄이 터지며 푸른 불꽃을 플레어마냥 뿌려댄다. 실드가 약해졌다.
터뷸러스의 화살이 실드를 관통했다. 복제 피닉스는 다리의 마력을 풀어 실드를 강화했다.
아키택트의 도움으로 다시 날아온 흑염룡이 실드를 다리로 내리찍었다. 복제 피닉스는 스태프를 휘둘러 흑염룡을 밀어냈다.
팬텀은 금발갸루의 가루라로 변신해 날개를 펄럭였다. 푸른 깃털이 비수처럼 날아가 실드에 꽂혔다.
마지막. 화염거인은 실드를 통째로 양손으로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 놈들이--!!]
복제 피닉스는 코어의 마력을 전부 끌어올리며 실드를 거두어들였다. 더이상 레이드 당하는 괴수마냥 농락당할 수 없고, 더이상 저 약한 무뢰배들에게 능욕당할 수 없었다.
[나는 피닉스로부터 태어난 존재다! 질 수 없어!!]
"여기 인간 두 명 빼고 다 똑같은데?"
울부짖는 복제 피닉스의 앞에 선 팬텀이 촉수를 휘둘러 복제 피닉스를 무릎꿇렸다. 촉수는 회백색이 아닌 푸른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들 걔가 만든 괴인이야. 안 그래?"
"뭘 이야기를 하고 있어. 빨리 죽이자."
화염거인은 주먹을 높이 들어올렸다. 앞을 가로막는 팬텀까지 찌그러뜨릴 기세였다.
"어이, 조씨. 원래대로 돌아올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아키택트가 흙천장을 만들어 화염거인의 주먹을 막아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이 시건방진, 커흑?!]
복제 피닉스의 등에 드롭킥이 꽂혔다. 흑염룡은 복제 피닉스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은 다음, 옆으로 슬쩍 떨어져 발을 들어올렸다.
"팬텀, 잘 잡고 있어라!"
"얼마든지."
푸부북--!!
팬텀의 꼬리가 복제 피닉스의 사지를 눌러 제압했다. 여전히 거인이 된 화염거인을 제외한 모든 침투조가 바닥에 제압된 복제 피닉스의 옆에 섰다.
[놓아라--! 나는 이런 바닥에서 굴욕을 겪을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저렇게 말하니까 원본이랑 좀 다른 것 같기는 하네. 하늘성, 몇 분 남았지?"
"최종 카운트까지 넉넉잡아 5분 남았군."
"5분이면 충분해."
[우오오오---!!]
복제 피닉스가 남은 마력을 쥐어짜내 등 뒤의 날개를 펄럭였다. 자신의 주변에 달라붙은 어리석은 자들을 불태우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타이밍과 상대가 안 좋았다.
콰득-!
"어디서 개수작이니? 후훗."
팬텀이 구둣발로 복제 피닉스의 날갯죽지를 짓밟았다. 구두굽에 흐르는 푸른 마력은 깃털을 좀먹어들어가기 시작했고, 복제 피닉스의 마지막 발악은 실패로 끝났다.
"그럼 각자 하나씩~"
"나는 왼팔을 하겠네."
"그럼 나는 오른다리."
간부들은 하나둘 자신이 맡은 곳에 서서 다리를 들어올렸다. 발바닥에는 스파이크라도 박아넣은 것마냥 푸른 불꽃이 날카롭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너, 너희들 그만둬라!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한 마디로 말할게."
팬텀은 구두 뒷굽으로 복제 피닉스의 정수리를 찍었다.
"밟아!!!"
간부들은 그야말로 신명나게, 복제 피닉스를 밟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나는?!"
거인형이 되어 변신이 풀리지 않는 화염거인을 제외하고.
"나, 나도 밟을 거야!!"
"넌 나중에 따로 해!"
"으아아아악!!"
결국 화염거인만 빼고, 나머지 인원은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복제 피닉스를 밟고 또 밟았다.
* * *
콰득.
복제 피닉스의 마무리는 결국 팬텀의 촉수가 결정지었다.
원본과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인 복제 피닉스는 코어의 위치까지 원본과 같은 곳에 있었다.
꾸득, 꾸드득!
복제 피닉스는 결정화된 촉수 꼬리에 의해 코어가 짖이겨지며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전신이 청화단의 간부들에게 짓밟혀 몸이 성한 곳 하나 없었지만, 그보다 고작 S급 이능력자들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자존심이 짓밟혔다.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자신이 한낱 인간들 따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어째서?]
복제 피닉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 이유가 없었다. 마력은 자신이 더 많았고, 분명 상대는 약했다.
"어째서긴 어째서겠는가. 우리에게는 다 너를 견제할 힘이 있기 때문이지."
하늘성이 대표로 복제 피닉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어깨에 견착했던 두 정의 바주카포는 바닥에 내던지고 온 그는 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들었다.
발터 PPK. 한 때 피닉스가 사용했던 것으로, 히카리가 회수하여 다시 수리한 권총이 하늘성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 안에는 그의 마력이 깃든 탄환이 들어있지. 자네의 패인은 하나다. 우리가 네 원본의 힘을 빌려왔다는 것."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에이, 시끄럽네."
콰득.
팬텀은 구두를 들어올려 뒷굽으로 복제 피닉스의 코어를 짓밟았다. 복제 피닉스는 아무 말도 없이 전신을 떨며 보라색 재가 되어 흩어졌다. 하늘성은 중절모를 다시 쓰며 난감한 듯 웃었다.
"거 가는 길에 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줘도 되지 않은가?"
"유언같은 거 멋드러지게 해봐야 개쪽만 당하던 걸. 적이잖아. 필요없어. 알려줄 이유도 없잖아?"
"보스의 마력이 있으면 무조건 승리. 없으면 무조건 패배. 이유 한 번 간단하네."
아키택트는 자신의 허리춤에 들린 부채를 흔들었다. 대나무 부채살에 반달모양으로 붙여진 한지에는 푸른 불꽃 무늬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모두. 준비는 됐습니까?"
터뷸러스가 가장 먼저 품에서 코어 하나를 꺼냈다. 검은빛으로 반짝이는 S급 코어는 흑사갈의 코어였으며, 터뷸러스는 코어를 바라보며 계속 입맛을 다셨으나 눈물을 머금고 코어를 뻗었다.
"마력을 회복하십시오, 흑염룡."
"실례하지."
흑염룡은 코어를 낼름 입에 삼켜버렸다. 그가 알사탕을 녹여먹듯 입에서 오물거리는 사이, 다른 간부들은 전투가 벌어진 주변을 살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되지 않았어?"
"언제 올 지 모르니까 준비하라고 했...바로 오는 군."
구구구구.
내장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화명왕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S급 괴수인 테라리스트들이 내장의 틈바구니 사이로 스리슬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흑염룡, 준비 끝나면 바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시게."
"흐흐흐, 물론이지. 아주 멋지게 하늘을 날아서 탈출하는 모습을 만들어주도록 하지. 이 흑염룡, 어둠속에 갇혀있다가 태양빛을 만난 자로서-"
키에에에엑!!
테라리스트들이 간부들을 덮쳤다. 간부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의지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기다렸다.
"단장님, 제발 빨리---!!"
밖에서 화명왕을 향해 폭격을 날릴 시간까지, 그들은 테라리스틀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 * *
"아. 끝난 것 같은데요."
배의 아래에서 튀어나온 테라리스트를 향해 마탄을 쏘던 창염이 눈을 반짝이며 화명왕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창염의 뒤에서 깃털로 적을 쳐내던 나또한 창염이 말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복제가 제압당한 것이다."
"잘 됐네요. 조잡하게 당신 똑같이 따라해서 영 별로였는데."
"...내가 복제가 되면 싫은 건가?"
"그건 아녜요. 단지 따라할 거면 완벽하게 따라하지, 애매하게 따라한 게 열받을 뿐이에요."
창염은 경쾌한 걸음으로 갑판의 정중앙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청화단 단원들은 김지화의 지시에 따라 창염이 걸어갈 길을 잘 닦아놓았다.
"단장님 위에 떨어지는 테라리스트 조심해!!"
"으아악! 시간 없어요!!"
단원들은 하늘의 테라리스트를 견제하랴 시간을 확인하느랴 정신이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10분이면 화명왕이 한국 영해를 완전히 빠져나가는 시점이었다.
'이제는 더 느리게 움직이겠지만.'
화명왕의 기반이 된 SS+급 코어-복제 피닉스는 이제 마력이 다 달해 소멸했다. 따라서 화명왕은 천천히 공략해도 되지만, 그 잠깐을 참지 못하느 사람이 수두룩했다.
"단장님! 제발 공격 명령을!"
"안 돼요."
부하들은 자신이 나서서 화명왕의 숨통을 끊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화명왕의 생을 마감시킬 의무가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화명왕을 날리고 싶어하는 한 여인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할 의무가 있었다. 여인-창염은 손에 거북선의 머리 뒤에 다시 자신의 총을 들고 총구를 겨눴다.
"내가 한 방 먹일 거예요."
".......하아."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창염의 총열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두근, 두근.
"......."
갑자기 마력의 반응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창염은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불사조로서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마력적 연결에 이상이 생겼음을.
"단장님...?"
등대가 미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창염은 여전히 TAT를 화명왕에게 겨누고 있었고, 나는 등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눈치를 줬다.
"......단장님께서 2격을 날릴 것이다! 모두 충격에 대비!!"
다행히 등대는 알아서 눈치껏 말을 돌렸다. 창염이 화명왕을 통째로 날려버린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우우웅---!!
"그럼 크게 갑니다---!!"
타이밍은 이제 딱 1분 남은 시각.
창염은 일부러 시간까지 감질나게 헤아리며 TAT의 방아쇠를 당겼다.
"창염, 개지-----인!!"
총구가 불을 뿜었다. 정제된 마탄은 거북선의 용머리 안으로 들어가 막대한 마력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이제 1초면 화명왕을 덮칠 시각.
캬오오오오!!
화명왕의 외벽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며 검은 드래곤 하나가 뛰쳐나왔다. 등에 간부들을 태운 흑염룡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화명왕을 뛰쳐나왔다. 창염은 활짝 웃으며 마력을 폭발시켰다.
"창염신포----!!"
2격째.
화명왕은 창염이 쏜 포격에 전부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외벽부터 바스라지기 시작한 화명왕은 그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바다를 향해 아주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삭, 파사삭!!
화명왕은 보라색 재를 날리며 점점 더 사그라들었다. 나와 창염은 화명왕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올려다보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정말 아름답게 부서지네요."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창염이 마도기어를 통해 다른 명왕들의 공략작전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정령들은 여섯 명왕을 완벽하게 요격했고, 마지막 남은 화명왕도 이제 그 명을 달리할 때.
구구구구----
거대한 질량 덩어리나 다름없는 화명왕은 동해 바다 한 가운데에 수장되었다. 그 위치는 정확히 독도로부터 11km 가량 떨어진 지점.
백희아가 그리도 울부짖던 동해 바다, 대한민국의 영해였다.
"퍼-펙-트."
이보다 더 완벽한 작전이 있을 수 있을까. 창염은 동쪽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나 또한 창염을 따라 날개를 하늘 높이 펼쳐올렸다.
수평선 너머에는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 6시 6분 6초.
일곱 명왕은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 * *
"......."
히카리는 진지한 얼굴로 일곱 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각각의 전장에서 명왕의 동력원은 완벽히 파괴되었고, 명왕은 행성병기로서의 힘을 완벽하게 잃었다.
하지만 히카리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꺼풀 조차 감지 않을 정도로 히카리는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설마?"
히카리는 화명왕 공략이 한창 진행중이던 거북선 갑판을 예의주시했다. 테라리스트를 상대하는 히어로들 사이, 창염의 뒤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푸른 불사조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질 못했다.
"역시 예상대로...."
사락.
현장에 있던 등대는 본 걸까. 영상을 아무리 되돌려봐도 자신의 촬영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니, 히카리는 몹시 난감했다.
"저러면 플랜 S8로 가야하는데...."
히카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상담을 통해 정했던 계획을 상기했다. 피닉스가 싱크로를 성공함으로써 폐기되었던 계획.
"...그 때까지 버텨주시겠지?"
히카리는 카페인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시간 싸움이 되겠네."
* * *
"끝났군."
성주는 신호가 모두 두절된 것에 혀를 찼다. 모처럼 야심차게 준비한 일곱 말뚝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전부다 요격당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분명 달까지 올라오겠지."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추진력만 있다면 바로 달로 올라와 자신과 맞서 싸우려 하리라. 성주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 벌이에 딱 좋은 손님들을 보내야겠어."
성주는 손목에 채워놓은 팔찌에서 이형의 큐브를 하나 빼냈다. 지구에 흩뿌려진 큐브와는 다른 열화판이었으나, 성주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자...그러면 지금부터 전쟁이다."
성주는 큐브를 든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차원문 전 개방. 테라의 모든 괴수들, 마룡들, 그리고 날틀들이여. ...가서 죽어라. 시간을 벌어라."
우우웅-----!!
지구 곳곳에 검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