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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87화 (487/1,497)

〈 487화 〉1부 20장 19

세상을 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목숨을 초개와도 같이 내던지는 결의를.

혹자는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겪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끈기를.

혹자는 어떤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의지를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지금 이 장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야, 1조! 오른쪽에서 오는 테라리스트 막아!"

"왼쪽에 두 마리 더 온다! 강습 저지해!"

검은 제복을 입은 이능력자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테라리스트들을 향해 K2를 겨눴다. 총구가 회색이 아닌 푸른색으로 칠해진 K2는 가스조절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스 대신 마력이 튀어나가기 때문.

두두두두!!

"씨발!! 선의철 때문에 이능력자 되고도 예비군 면제 못 받은 설움을 받아라!"

"개소리 할 시간 있으면 한 발이라도 더 맞춰!!"

K2를 든 이능력자들-청화단의 단원들은 상공을 날아다니는 테라리스트들을 향해 화망을 펼쳤다. 다들 스스로를 하나의 장기말이라고 생각하며, 머리에 씌워진 홀로그램 스코프를 통해 전달되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마탄을 발사했다.

두두두!

날카로운 마탄은 날아다니는 테라리스트의 실드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테라리스트들이 빠르다고는 해도, 100여명의 훈련된 단원들이 펼치는 화망에 완벽하게 피해낼 수는 없었다.

키히힉!!

대신, 단원들의 마탄 또한 테라리스트의 실드를 벗겨내지 못했다.

"드럽게 단단하네!"

"S급이라고! 땅개가 좀 긁는 거 가지고 S급 괴수가 죽을 것 같냐?!"

"꺄아악! 한 놈 화망 뚫었어요!!"

테라리스트 하나가 좌측의 화망을 뚫고 거북선 갑판 위에 떨어졌다. 근방에 있던 히어로들은 즉시 K2를 내동댕이치고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아직 총 버릴 때 아닐텐데."

퍼--억!

갑판에 상륙한 테라리스트는 포효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무언가에 차여 바다에 떨어졌다. 단원들은 테라리스트가 있던 자리에 서있는 존재-창염을 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오오! 역시 찐단장님!"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지만 괴수에게는 가차없지!"

"누가 내 여자에게 따뜻해요, 누가."

창염은 용머리 위에 올라선 나를 흘기며 쑥쓰러워했다. 역시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셨는지, 아니면 청화단 단원들이 테라리스트들에게 휘둘리는 걸 보기 싫었는 지, 창염은 몸을 슬슬 풀기 시작하며 육탄전을 준비했다.

"단장님! 연약한 괴수 조종사 코스프레는 안 해도 됩니까?!"

유일하게 갑판에 남은 간부이자 지휘관, 는 날뛰기 시작한 창염에게 소리쳤다. 창염이 청화의 모습으로 날뛴 이상, 청화가 S급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세상에 광고하는 셈이었다.

"뭘 이제와서요."

끼에엑!!

창염은 어깨를 으쓱였고, 창염의 위로 테라리스트 한 마리가 강습했다. 창염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콰득.

나는 날개를 펼쳐 테라리스트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모가지가 270도 돌아간 테라리스트는 창염에게 꼬리를 찌르지도 못하고 바다로 풍덩 빠져버렸다.

"이제 숨길 이유가 없어졌는데 굳이 힘을 아낄 필요가 뭐있어요?"

"그거야 그렇지만...그럼 지휘도 함께 하시겠습니까?"

"아뇨? 일일이 화망 펼치고 단원들 움직이는 건 당신이 하세요. 그러라고 완장 채워준 거 아녜요. 당장 단원들 한 곳에 모아봐요. 마력 퍼뜨려줄테니까."

내가 하던 걸 안에서 계속 지켜본 덕분일까, 창염은 김지화를 자연스럽게 다루면서도 은근슬쩍 제 입맛대로 지시를 내렸다. 나는 창염의 뒤로 돌아가 사방을 향해 마력을 흩뿌렸다.

"탄창이 채워지는 것이다."

두근, 두근.

창염으로부터 전해진 마력이 나를 거쳐 단원들의 K2로 스며들었다. 나와 창염이 TAT에 마탄을 불어넣듯, 나는 창염의 마력을 마탄으로 정제하여 단원들의 K2에 흩뿌렸다.

"그냥 방아쇠만 당기라는 것이다. 탄피 따위는 없으니 신경쓰지말고 쏴버리라는 것이다."

"우오오! 무한탄창!"

"예쓰!! 단장님 역시 군필여고생인게 분명해!"

"......시끄러워요."

창염은 나를 눈으로 흘기며 짜증을 부렸다. 나는 그저 단원들의 편의성을 위해 코어탄환이 아닌 마탄으로 정제해줬을 뿐인데, 창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나?'

'빨리 밀어버리고 싶거든요.'

창염의 눈은 초격을 날려 실드를 벗긴 용머리에 꽂혀있었다. 히카리가 명명하고 창염이 승인한 를 날렸던 용머리는 여전히 화명왕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나는 창염의 마도기어에 흐르는 스탑워치를 확인했다.

[50:30:29.]

현재 공략까지 남은 시각은 대략 50분. 전부다 A~S급으로 구성된 침투조가 화명왕을 공략하지 못하면 화명왕은 한국 영해를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일본 영해로 진입하게 된다.'

완전히 한국 영해에서 싸울 수 있는 카운트 다운이 바로 50분. 50분이 지나면 한국은 화명왕 공략의 우선권을 일본쪽으로 넘긴다는 조건을 가지고 공략을 시작했다.

'공략을 무조건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안에서 분당 백여마리의 S급 괴수가 화수분처럼 쏟아져나오는 화명왕을 공략한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힘들어보이는 걸 넘어서 불가능에 가까워보이지만, 실상은 전제가 변하지 않는 지고불변의 진리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씁."

창염은 마도기어의 스탑워치를 불러냈다. 화명왕 공략 작전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 위에 작게 홀로그램으로 된 모래시계가 흐르기 시작했다.

[창염신포의 쿨타임으로 59분이 좋을 것 같아요!]

"힝...."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히카리의 주문에 따라, 창염은 일격에 화명왕을 불태워버릴 수 있는 창염신포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적당히 기다리다가 바로 쏴버리고 싶은데...."

창염은 양손에 든 TAT를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쿨타임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어둠을 헤치며 푸른 불사조를 쏴 화명왕을 소각시킬 수 있지만, 집행관 백희아의 요청과 청화단의 영웅적 업적을 위해 우리는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다른 부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니, 참으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화명왕을 마지막에 공략해서 세계에 이슈로 알리겠다니.... 참 백희아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래야 사람들의 뇌리에 더 잘 박힐 테니까."

이미 화명왕뿐만 아니라 다른 명왕들 또한 공략이 시작되었고, 전세계 사람들의 이목은 제각기 명왕 공략을 '생중계'하는 영상에 집중되었다.

'S급들이 직접 전투를 하는 걸 간접 체험하고 있는 거지.'

인류에게 희망을.

마도기어를 통해 전해지는 히어로들의 고군분투는 실시간으로 전 지구인들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저마다 각자 근처에 있는 전장을 바라보거나, 관계가 있는 히어로를 지켜보거나, 아니면 가장 강한 히어로의 모습을 살펴보거나 하며 명왕 공략 작전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카르나가 최전방에서 테라리스트들을 활로 패죽이며 아우토반처럼 질주하는 장면이라거나.

석하랑이 수명왕을 통째로 얼려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라거나.

환룡이 투명언월도를 휘두르며 외곽부터 차근차근 테라리스트들을 지워버리는 광경이라거나.

...청화단 단원들이 엎드려쏴 자세로 상공을 향해 K2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모습이라거나.

"전방 45도 상공을 향해 발사!!"

"짬내 풍기지 마라!! 그냥 등대가 쏘라는 대로 갈겨!!"

두두두두.

이전보다 더욱 강화한 마탄은 테라리스트의 실드를 더욱 빠르게 깎아나갔다. 마탄의 소비는 훨씬 더 빨라 원래 K2 연발의 탄환 소비 속도에 비슷해질 정도였지만, 그만큼 강화된 화력과 일점사는 테라리스트에게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끼에에엑!!

테라리스트 한 마리의 박쥐 날개에 푸른 불꽃이 일었다. 실드가 완전히 벗겨진 테라리스트의 날개에 푸른 불꽃이 붙었고, 테라리스트는 괴성을 지르며 바다를 향해 고꾸라졌다.

"EMP! EMP 들고와!!"

"그딴 게 있을 리가 없...."

"쓰읍."

모두의 시선이 창염에게로 돌아갔다. 창염은 고개를 긁적이며 마도기어를 꾹 눌렀다.

"집행관, 해도 될까요?"

[안 돼요! 그러면 전혀 역경을 이겨내는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그거 금지!]

"안 된다고 하네요."

창염의 말에 모두가 아쉬워했다. 실드만 벗겨내면 한 발의 탄환으로도 죽일 수 있는 적들이건만, 백희아는 인류사에 남을 전투를 마력 EMP 한 방으로 끝내는 걸 몹시 꺼려했다.

[힘겹게 독도를 지켜내는 모양새가 되어야 저것들이 찍소리도 못하죠!]

"쉽게 이기면 자기들 가지고 놀았다는 것처럼 되니까?"

[물론이죠! 아, 저희들도 이제 코어층에 돌입합니다! 제발 잘 참아주세요!!]

백희아는 신신당부하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창염은 TAT의 방아쇠에 검지를 건 채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참는 건 저어어엉말 잘 하는데, 이건 되게 참기 어렵네요."

끼에에엑!!

하늘은 여전히 테라리스트로 뒤덮여있고, 단원들은 마력이 비어버린 탄창이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렸다. 창염은 별빛조차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다 태워버리고 싶은데요."

"조금만 더 참는 것이다."

"다 쏴 죽여버리고 싶은데요."

"어차피 시간 다 지나면 다 죽게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창염의 뒤에서 창염을 끌어안으며 다독여야했다. 근방에 있던 등대는 '단장님이 드디어 1인 2역을 하면서 자기 최면을 한다'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와 창염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염, 우리 신혼집이 자리를 잡을 나라를 위해서라도 참아라.'

'...그렇게 얘기하면 어쩔 수 없죠.'

엄밀히 따지자면 창염에게 있어서 국적은 그닥 의미가 없으니, 창염에게 이 미묘한 심정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나의 임무는 당장이라도 테라리스트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창염을 어르고 달래는 것이었다. 겸사겸사 마탄도 리필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이 탄환을 넣은 것이다. 등대, 모기들에게 에프킬라 뿌린 것처럼 테라리스트들을 다 격추시키라는 것이다."

"흠흠. 알겠습니다. 청화단 단원, 모두 잘 들어라!!"

등대는 화명왕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간부들이 직접 화명왕의 코어를 파괴하러 들어갔다! 그러니 우리들은 우리의 역할을 하면 된다! 수능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한 시간만 버텨!"

"그게 제일 힘든데요!!"

"닥쳐!! 이 싸움이 끝나면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데 버티라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다, 씨발!"

등대는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이 싸움에서 멋지게 이겨야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확실히 세계에 알리는 거라고!!"

"......."

세계를 구하는 것.

결의도 끈기도 의지도 아닌, 어쩌면 국뽕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선의철이 깔아놓은 걸 떠나서, 기본적으로 다들 어느정도 반감은 가지고 있으니까. 정령 감수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니까.'

'일본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화명왕이랑 일본 열도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그 정도 화력이 없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모른 척 날려버리면 안 되나?'

"......하아."

나의 임무는.

창염을 어르고 다독이는 것이다.

흑염룡을 위시한 침투조가 화명왕 속에 있을 '복제 피닉스'를 상대하는 것과 달리.

* * *

"타올라라!!"

인간형이 된 흑염룡이 왼팔에서 검은 불꽃을 뿜어내며 테라리스트들을 불태웠다.

"이 불꽃은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지...크큭."

흑염룡은 왼팔로 한쪽 눈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피닉스가 본다면 참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평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흑염룡의 겉모습은 여전히 청화 페이스였다.

"너 그 얼굴로 그런 말 안하면 안 되겠니?"

얼굴에 구미호 가면을 쓴 팬텀은 부정형의 꼬리를 이용해 테라리스트의 목을 잡고 바닥에 꽂아버렸다. 아는 사람은 꼬리의 정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팬텀은 한사코 자신의 이미지를 구미호로 만들고자 손톱까지 가늘게 만들었다.

"이해해주십시오. 흑염룡도...푸흡, 누가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저렇게 됬겠습니까."

이전 궁성, 터뷸러스 또한 존댓말을 하며 화살을 쏘았다. 마력을 뜯어먹는 성질을 가진 화살은 테라리스트의 실드에 닿자마자 실드의 마력을 먹어치우며 테라리스트의 대가리를 관통했다.

"헤이! 이것들아! 잡담하지마!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보스룸 찾았다!"

화명왕의 바닥에 손을 대고있던 아키택트가 복도의 끝을 가리켰다. 침투조는 뒤따라오는 테라리스트들을 따돌리고 두터운 철문의 앞에 섰다.

"...조금 열기 그런데?"

"더럽게 무섭게 생겼구만."

간부들은 뒤틀린 이형의 물체를 바위처럼 굳혀만든 철문에 기가 질렸다. 문 너머에 화명왕의 코어 역할을 하는 적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다.

"보스가 한 말이 맞았네. 이 문, 쉽게 못 열 거라고 하더니...."

"그럼 안 돼!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을 거야?! 종료 1분전에 피닉스 궁극기 날아온다고! 멋진 장면을 빼앗기고 싶어?!"

"거 드럽게 시끄럽구만."

묵묵히 있던 화염거인이 앞으로 나서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문고리는 사람의 내장처럼 물컹거렸지만, 화염거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으랏차---!!"

화염거인이 문을 좌우로 활짝 엶과 동시에, 간부들은 안으로 몸을 날렸다. 벽 전체가 장기로 꿈틀거리는 화명왕의 심장에는 익숙한 갑주의 괴인이 의자에 홀로 앉아있었다.

[오리지널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와, 소름. 진짜 복제라고?"

[성주님이 그정도도 못할까.]

독수리를 닮은 투구의 갑주 괴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검은 갑주의 사이사이로 보라색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갑주 괴인-은 손을 들어올려 까딱거렸다.

[선수는 양보해주지. 와라. 내가 죽으면 화명왕도 멈춘다.]

"너 이 새애애기!! 잘 만났다!!"

화염거인이 가장 먼저 머리를 반짝이며 달려드는 것을 시작으로, 괴인 공략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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