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83화 (483/1,497)

〈 483화 〉1부 20장 15

"결국 예언대로 되고 말았네요. 창염이 전세계를 덮어서 지구를 멸망시킬 거라는 거."

"그게 인생의 묘미지. 그래도 현실은 아니지 않냐. 그럼 된 거야."

세상이 타들어가고 있다. 나와 창염은 서로를 마주보며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싱크로.

나와 창염이 순수하게 하나가 되는 과정.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창염와 나는 정신세계가 아니라 이제 온전히 둘이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어디까지나 내가 싱크로의 힘을 버텨낼 때의 얘기지만.'

창염이 가진 신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창염과 하나가 됨으로써 내가 나라는 자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인 것 같은데.'

히어로로 움직였을 때도, 빌런으로 움직였을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창염과의 싱크로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싱크로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온 적은 몇 번 있을지 몰라도, 싱크로를 성공했다면 아마 나는 진작에 창염과 신혼 여행을 갔을 것이다.

"그러면 역시 싱크로 하려면…."

"퓨전 안 해요. 주문도 안 외워요. 그냥 소프트하게 의식을 치르는 걸로 하죠."

"의식?"

창염은 베시시 웃으며 뒷꿈치를 다시 들어올렸다. 나는 바로 허리를 숙여 창염과 눈높이를 맞췄다. 이런 의식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밖에서 꼭 다시 보기를."

"둘이 현실에서 다시 만나기를."

창염은 눈을 감았고, 나는 한 번 더 창염과 입을 맞췄다.

혀는 사용하지 않는, 그저 입술과 입술을 붙일 뿐인 가벼운 키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섞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창염과 하나가 되었다.

* * *

세계는 부서졌다.

온 세상이 푸르게 불타올랐고, 막대한 열기를 견디지 못한 지구는 폭발했다. 살아남은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고, 지구의 모든 수분은 증발은 커녕 소멸했으며, 녹아내려 용암이 된 대지는 우주 전체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쉽군."

우주 공간 한 가운데, 성주는 팔짱을 낀 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얼굴로 혀를 찼다. 나는-청화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성주의 앞에 서서 다시 TAT를 겨눴다.

"뭐가 아쉽다는 거죠?"

"마지막에 조금 더 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남의 운우지정을 보고있었다니, 관음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좋은 교보재였으니 참고할 수밖에. 그쪽은 나는 전혀 모르는 부분이거든.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고맙군. ...피닉스."

성주는 나를 피닉스라고 지칭했다. 만들어진 미래에서 나와 창염의 관계를 직접 눈으로 봤으니, 나와 창염의 관계에 대해서는 비단 성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걸 알아냈을 것이다. 마치 환룡처럼.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성주님?"

"할 말이 뭐가 필요할까. 네가 생각하는 외계의 존재들이 그분들이라면, 이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것을."

성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쓰게 웃었다. 성주니 싱크로니 뭐니 해도, 결국 한 단계 낮은 격에 속한 '우리'는 이계신을 비롯한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설 수 없는 무대 위의 인형들이었다.

"하지만 피닉스여, 네가 협조해주기만 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네가, 그리고 네 안의 창염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더이상 이 세계는 반복되지 않아."

"...테라의 신들을 정령으로 격하시킨 것처럼, 이계신도 격을 떨어뜨리겠다? 유나에게 집어넣어서?"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지. 나는 그분을 직접 곁에 두고 모시게 될 것이다. 그분께 나의 사랑을 직접 보여줄 것이야."

"그럼 거절하도록 하죠."

나는 성주가 더이상 시끄럽게 지껄이기 전에 TAT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미래 세계에서 모든 마력을 다 소모했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의식 세계. 현실의 나는 미래 세계로 잡혀들어가기 전처럼, 성주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마음을 다잡던 풀컨디션 상태였다.

"당신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게 있어요."

나는 한쪽 손을 들어 내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창염을 가장 먼저 생각하기는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창염의 행복을 바라기는 하지만, 창염이 그런 미래를 바란다면 얼마든지 따르겠지만...."

철컥.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유나를 버린 걸 평생동안 후회하게 될 창염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단 말이죠."

천둥이 울렸다. 총구에서 빠져나간 마탄은 성주의 심장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내 마력으로 코팅된 마탄의 겉에는 창염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성주가 입은 로브.

오로지 창염만이, '신의 불'이라는 힘이 담긴 마력만이 태울 수 있는 이계신의 노란색 로브. 마탄이 조금만 스쳐도 로브는 전부 불타오를 것이다. 예고도 없이 날린 기습이 제발 통하기를 바라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맞기를. 내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을까, 성주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새애애액!!

마탄이 성주의 로브에 닿기 직전.

"흐읍!"

성주는 기합과 함께 손을 휘둘렀다. 마탄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고, 성주는 파리를 낚아챈 것 마냥 손을 꽉 움켜쥐었다.

"유감이로군. 완전히 교섭은 결렬이다."

"...젠장."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마탄은 성주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창염은 마력의 흐름을 끊고 마력을 태워버릴지 몰라도, 순수하게 마력을 견뎌내는 미친 육체까지는 뚫어내지 못했다.

"손바닥이 따가운데. 그게 싱크로인가?"

"...시한부 싱크로에 제약도 많기는 하지만."

창염과 하나가 된 덕분에 말투는 바꿀 수 없다. 육체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성주가 실시간으로 날리고 있는 '세뇌빔'만큼은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었다.

"창염이 나를 보호하고 있는 동안에는 당신, 나를 건드릴 수 없어요."

"이상하군. 설령 네가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할지라도, 나는 바로 네 코어를 세뇌할 수 있을 것인데?"

"그거야 간단해요."

나는 허공에 불꽃의 구를 만들어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핵, 내핵을 감싸는 흑자색의 안개, 그리고 겉에 떠도는 방대한 마력. 그게 신화에 이르기 전의 내 상태였다.

"나와 창염이 안밖에서 간부 피닉스의 흔적을 온전히 태워버렸으니까."

화륵.

내핵을 감싼 흑자색 안개가 불꽃에 사그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안에서부터 영롱한 청백색의 불꽃이 주변에 자신의 색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색이 연해진, 흰색이 섞이기 시작한 청백색은 거의 하늘색에 가까웠다.

"나와 창염, 두 마력을 섞어버렸어요. 이제 돌이킬 수 없죠."

회색으로 멈춰있던 세계에 조금씩 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성주에 의해 멈춰진 세계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하며, 성주와의 최종전을 장식할 내 동료들이 다시 전장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피닉스 님?"

가장 먼저 유나가 깨어났다. 유나는 나와 성주가 여전히 대치중인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이건 대체-"

"아쉽구나, 아쉬워.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었거늘."

성주는 하나 둘 의식을 되찾기 시작하는 정령들을 훑고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TAT의 마탄을, 유나는 콘크리트 빔을, 그리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석하랑이 얼음창을 날렸으나, 성주가 펼친 방어막에 전부 막히고 말았다.

"어떻게?!"

"...큐브네요."

내 마탄을 잡았던 순간, 성주는 큐브를 마치 비즈팔찌마냥 손목에 채워놓고 가지고 있었다. 그 수가 얼핏봐도 열 개는 넘어보였고, 나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한 성주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저, 저거 뭐꼬?! 벌써 점마 저렇게 다 모아삤나?!"

"진짜 큐브는 아니에요. 그건 지구상에 퍼져있을 거고, 우리도 아직 전부 다 못 찾았으니까. 저건...자기 동료들이에요."

"다들 나의 대계에 참가해준 고마운 이들이지. 그저 하나하나가 너희들의 말로 치면 SS급 코어 수준이기는 하지만...."

성주가 팔을 높이 들어올리자, 로브에서 황색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수가 100, 아니 1000을 넘는다면 어떨까. 그것들이 모두 괴수가 되어 지구를 덮친다면 어떨까? 너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성주는 비릿하게 웃었다.

"지구가 파괴된다면 그 때도 지금처럼 있을 수 있을까?"

사락.

성주의 몸이 사라졌다. 성주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고, 우리는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 볼수밖에 없었다.

"...피닉스여, 성주의 공격은 저걸로 끝인가?"

"아뇨. 저게 시작이죠. 첫 인사."

우리는 드릴 모양으로 변해 떨어지는 방주를 올려다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저거 떨어지면 내핵까지 바로 꿰뚫리니까, 무조건 막아요."

성주의 행성파괴병기, 명왕성 드릴이 오존층을 뚫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향해.

* * *

"그 분의 옷을 더럽힐 수는 없지."

성주는 금방 달까지 올라와 지구를 내려다봤다. 전세계는 혼란이 가득했고, 성주는 사람들의 비명을 음악소리처럼 즐기며 손을 뻗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결전을 시작해보자."

성주는 자신의 방에서 지팡이 하나를 들어올렸다. 보라색 안개가 흘러나오는 해골 지팡이는 보기만해도 요사스러워보였다.

"열려라, 테라."

성주는 전 지구에 차원문을 열어버렸다.

* * *

성주가 지구를 상대로 승부를 걸어왔다.

가장 먼저 성주가 보인 공격은 방주를 냅다 지구에 '꼴아박는 것'.

그 형태가 드릴의 형태가 되어 있으며, 지표에 닿는 즉시 내핵까지 다이렉트로 내려갈 것이다.

"다들 급발진하지 마요.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

나는 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김펜릴을 잡아끌었다. 진작에 아르엘과 싱크로하여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려던 김펜릴은 내게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냥?!"

"절풍도 시작하자마자 자기과신하면서 뛰더니, 당신도 마찬가지네요."

본래의 성향이라는게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는 김펜릴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뒤, 마도기어를 조정해 히카리를 호출했다.

"히카리. 실드 패턴 분석 중이죠?"

[척하면 척이죠. 우려대로 7겹을 쌓아놨어요. 순서 틀리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가도록 재생되는, 악랄한 패턴이네요.]

"들었죠?"

내 말에 다른 정령들의 표정이 굳었다. 이미 성주의 방주에 대한 정보는 예고해둔 만큼, 방주에 걸려있는 실드에 대한 것도 다들 숙지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김펜릴이 바로 선두로 날아올랐다.

"피닉스, 제일 먼저 풍속성이라고 하지 않았냥?"

"그랬죠. 그런데 성주가 가만히 있겠어요? 난수조정하고, 실드패턴 바꾸겠죠. 그러다 마지막에 있는 방주 본체도 날려야하고. 히카리가 분석이 끝날 때까지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분석 끝났어요.]

"벌써?"

[진작에 끝냈죠. 단장님 설명 기다리는 것보다 제가 간략히 설명할게요.]

나는 설명할 기회를 빼앗겼다. 히카리가 정말 많은 걸 알아내기는 했지만, 적어도 인류 멸망을 앞둔 순간이라도 내가 조금 더 이야기를 했으면 했는데 아쉬움이 들었다.

[최외곽부터 수-환-광-지-암-풍-화 패턴이네요.]

"...노렸네요."

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주는 분명 명왕성 궤도에서 지구로 날아오면서 지구를 관측한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순서가 저 모양이 아니겠는가.

"머꼬. 이거 또 내보고 최약체라 카는 거 아이가?"

자신의 순서가 가장 처음으로 정해진 석하랑이 진심으로 짜증을 부렸다. 뉴클리언 때도 자신이 최약체라고 인증을 받았던 만큼 절치부심하며 힘을 길러왔으나, 지금도 가장 먼저 실드를 깎아야 한다는 것에 울컥한 모양이다.

"아니죠. 그 반대죠. 가장 무서워하는 거예요."

"뭔 소리고?"

"온전한 정령으로 각성한 순서대로 실드가 쳐진 거잖아요. 성주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녀석이라, 애초에 실드를 깨지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성주가 생각하기를, 정령이 각성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더 힘을 잘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한마디로 제일 강한 사람의 공격만 막으면 나머지는 쉽다 이 말씀.]

또 당했다. 확실히 히카리의 말이 한 번에 정리하는 셈이 되기는 하겠으나, 조금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석하랑 당신이 가장 강할 거라고 생각해서 보호막을 만들어 놓은거죠."

"...그카면 지속성을 제일 겉에 나둬야 하는 거 아이가?"

"상성 공략하는 건 기본이기는 한데, 성주가 마냥 멍청이는 아니라서요. 약점 속성에 찔리지 않도록 성주는 실드를 개량했어요. 간부들의 인격을 만들어내면서 뽑아낸 마력을 실드에 일부 사용한 만큼, 지금은 순수한 힘싸움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같은 속성끼리 싸워야 한다는 거죠.]

...그냥 포기할까. 다들 내 설명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하다가 히카리가 결론만 얘기하니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로 보아, 히카리에게 아예 설명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구구구!!

어느새 명왕성 드릴은 빙빙 회전까지 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드릴은 가까워졌고, 그 기세는 어마무시했다.

"그러면 슬슬 시작할-"

[잠깐만요! 방주에서 이상 반응!!]

히카리가 말하기가 무섭게 우리 모두가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지 읽은 건지, 성주는 즉석에서 방주의 형태를 바꾸어버렸다.

딸칵, 딸칵.

접합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방주가 여덟 개로 나뉘어졌다.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에 나는 얼척이 없었다.

"...맙소사."

성주는, 방주를 쪼개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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