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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77화 (477/1,497)

〈 477화 〉1부 20장 9

11월은 어느덧 겨울에 접어드는 시기다. 아무리 명왕성이 날아와 공전궤도가 살짝 어긋났다고는 해도, 절기상 그 특징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5시가 막 지나간 때인데도 불구하고 석양이 지기 시작했으며, 점차 세상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꼭 멸망이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아요?"

"진짜로 다가오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유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따지고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나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나로서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기억 속 유나와 달리, 지금의 유나는 히드라가 들어간 덕분인지 상대적으로 조금 더 까칠했다. 사실 까칠한 이유가 있었다.

"역시 이유나, 수능은 포기할 수 없죠?"

"당연하죠. 수능 만점 받고 히어로 관련 학과 수석으로 들어가는 게 제 목표인데. 죽어도 수능은 쳐보고 죽을 거예요."

히드라와 싱크로를 한 이후, 유나는 과감하게 이번 년도에 수능을 보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수능 시험을 치를 수도 없기는 하지만, 나와 합의를 도출한 이후 모의고사까지 보는 걸 포기하면서 인류 평화를 위해 힘을 썼다. 나로서는 너무나도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뭐 다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그건 나중에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뭔데요. 당신이 히드라랑 만나자마자 싱크로한 거랑 관련이 있어요?"

"네. 아마 들으면 깜짝 놀라실텐데, 지금은 말 안 할래요."

"저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불확실한 가정을 하면 안 되죠. 궁금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제가 뭐라고 히드라를 설득했길래, 다크 레기온의 간부인 히드라가 제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식으로 싱크로가 이루어졌는지."

".......흠."

그러고보니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아무리 유나가 유나라고는 해도, 나는 둘이 싱크로를 하게 되면 히드라가 겉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러가지 의미에서 유나가 훨씬 더 우수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콧대 높은 지저여왕께서 마냥 여신이라고 힘을 넘겨줬을 리는 없었다.

"음...나중에 저 남성체 먹으려 드는 걸 돕겠다고 했어요?"

"엇비슷하죠. 후후. 기대하세요. 저는 히드라 편이니까요."

"그거 엄청 무서운 말이네요."

게임 오버가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항상 내 편이 되어주었던 유나가 히드라의 편을 들다니. 나는 배신감 같은 게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나와 싱크로를 한 건 히드라니까.

"어쨌든 당신과 히드라가 이야기를 나눈 걸 듣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라.... 점점 끝까지 살아야 할 이유는 늘어나고 있네요. 좋아요. 이렇게 플래그 하나 둘 쌓아가다가, 최종적으로 다 박살내버리고 살아남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약속 하나 할까요?"

나는 유나에게 손을 건넸다. 청화로 변신한 천가을이 카메라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들고 약속을 한 것 처럼, 나는 유나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당신 수능 보는 날 꼭 응원 갈게요. 당신이 진짜로 바라는 대학으로 가는 날, 입학식에도 따라가고 졸업식에도 함께할게요."

"끈덕지게 살아남으시겠다는 거죠? 좋아요."

유나는 웃으며 나와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다른 여신들이 한창 가족과, 동료와, 부하와,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나는 굳이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랐다. 덕분에 반드시 살아남을 이유가 하나 생긴 만큼, 내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지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흠흠, 유나 양 하나 제 소원 좀 들어주시겠어요?"

"뭔데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승리의 주문을 부탁해요. 이렇게."

나는 직접 멘트를 적어서 유나에게 보여줬다. 유나는 그 문구를 한참동안 쳐다보기만 했고, 나는 뭔가 잘못 적었나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왜, 왜요?"

"......아뇨, 피닉스 님이 쓰신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요."

유나는 내가 적은 문장의 문구 하나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나는 항상 뒤에 부끄러워하던 문구보다, '나'를 지칭하는 단어에 더 신경을 쓰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흠흠. ...지휘관 님."

유나는, 여신은 다소곳한 자세로 나를 향해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희는 승리할 거예요. 승리의 여신이 눈앞에 있잖아요?"

"물론. 무조건 이기지."

"어머."

유나는 내가 말을 하자마자 바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 또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차싶었다.

"그 얼굴로 그런 목소리를 내시다니. 그러면 어떻게 해요. 지금 안에 있는 히드라가 좋아 죽으려고 하는데. 지금 싱크로 풀릴 뻔 한 거 아세요?"

"습관이라. 미안해요."

실수로 백청화의, 남자 목소리를 내버렸다. 다행히 나와 유나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예정된 시각이 다섯 시간 넘게 남아있는 만큼, 다들 최종전에 대한 준비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저 멀리 내가 자리를 비운 펜트하우스에서 앙그와 싱크로 한 백희아가 최종 브리핑을 하는게 눈에 보였다.

"피닉스 님. 하나만 여쭤볼 게요."

"얼마든지요."

"...만약에 당신은 살아남는 길이 있는데, 저를 희생해야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때 말씀하셨잖아요. 이계의 여신 이유나. 창염과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여신으로 각성한 저를 쓰러뜨렸다고."

"그랬었죠."

피닉스 루트는 진엔딩답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엔딩이었다. 창염과 함께 손을 잡고, 폭주하는 이계의 여신 이유나를 제압하여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어라?'

"당신도, 창염도 살아남겠지만 이유나는 죽게되는 그런 길이 있다면 말이에요."

"자, 잠깐만요. 잠깐, 유나야. 지금 뭔가 머리가...."

쿵, 쿵쿵쿵.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코어의 맥박이 분명하겠지만, 코어가 이렇게 요동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나는 시야가 푸르게 물드는 것에 의아해졌다. 창염이 갑자기 왜 이 타이밍에 나를 호출하려고 하는 것인가?

- 늦었다.

철컹, 철컹!!

자주색으로 뒤덮인 안개가 나와 유나의 주변을 휘감았다. 단지 '느꼈을' 뿐인데, 손발이 벌벌 떨리고 입이 바싹 말랐다.

-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당첨이군.

"어, 어떻게 여기에...?"

- 어떻게 왔냐고?

자주색 안개 속에서 나타난 노란 로브의 남자는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방주에서 뛰어내렸다."

성주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나버렸다.

* * *

원작의 기출 범위는 항상 나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큼은 벗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눈앞에 노란 로브를 입은 거구의 사내에 절로 전신이 떨렸다.

"방주에서 뛰어내렸다니...그 무슨...?"

"몸이 달아올라서 더는 못 견디겠더라고."

성주는 아무렇지 않게 로브를 좌우로 펼쳤다. 그에 나와 유나의 표정은 절로 찌푸려졌다. 이미 육성을 내뱉을 때부터 성주가 인간의 몸을 갖추고 있다고는 직감했지만, 이리도 적나라하게 인간의 육체를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성주로 알고 있는데, 눈앞의 성주는 성주인 것 같았다.

"인간이 되어보니까 알겠구나. 그래, 이것이 '인간'인 것인가."

성주가 무슨 말을 지껄이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주가 자신의 것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장 세뇌당할 수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걸까. 어느쪽이든 내가 성주에게 '겁을 먹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싱크로 할 타이밍이 없어.'

싱크로를 하기도 전에 성주의 세뇌빔을 맞을 것이다. 성주가 방주를 버리고 맨몸으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상상할 수가 없었다. 성주가 방주에서 떠난 이상, 명왕성이라는 방주는 그저 큰 돌덩이에 불과했다. 일곱가지 무지개빛 보호막은 발동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지상에서 쏘아올린 핵미사일을 전부 퍼부으면 산산조각을 만들 것이다.

지구를 멸망시키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야했을 성주가 방주를 버리고 여기까지 찾아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성주의 도착 예정 시각은 단순히 내 기억을 더듬어 낸 통계가 아니다. 오라클의 예언, 히카리의 연구 등이 총집합 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10시는 커녕 해가 이제 지기 시작하는 석양을 등지고 나타났다. 노란 로브가 붉게 물든 태양을 등지고 있으니 더 색이 도드라졌고, 그 안에 있는 식스팩 근육질의 몸은 정신을 아뜩하게 만들었다.

"성주는 바바리맨이었나요?"

"아."

어깨에서 따스하고 포근한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유나가 내 어깨를 잡아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유나가 도와준다면 아주 짧은 순간은 싱크로를 할 틈이 있었다.

"노란 로브만 입고 옷은 입지 않은 변태라...조금 충격인데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고요."

성주가 누구인가. 폭주하는 이계신을 조종하려고 든 흑막 중의 흑막이며,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이 되는 존재다. 비록 외형은 그로테스크한 균사체 머리를 가진 동충하초이나, 히카리를 뛰어넘는 두뇌나 백희아를 뛰어넘는 전술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애초에 혼자서 테라를 집어삼켰던 존재가 성주였다. 그런 성주가 본래의 모습-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육체에 들어가 샤오린 마냥 누드쇼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거 좀 충격적인데.'

이게 만약 나의 진엔딩이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탈출 스위치를 누를 것이다. 만약 전우주적 재앙을 쓰러뜨릴 방법이 댄스 배틀이라고 한다면 인류를 위해 싸워온 히어로들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심지어 7080의 오래된 팝 음악을 틀고 '누가 더 춤을 잘 추나'로 승부를 가려 지구의 생존과 멸망을 겨룬다면, 그건 정말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라.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성주는 팔짱까지 끼고 당당히 말했다. 그 목소리에 거짓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게 소름돋았다. 원래 성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였으나, 그걸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목소리로 하는게 얼척없었다.

"나는 명왕성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지구를 관측했다. 피닉스여."

"......이 관음증 변태가."

"창염의 피닉스. 내가 쓰러뜨리지 않고 스스로 항복했기에, 세뇌를 하기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존재. 정령으로 격하시키기까지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결국 다른 간부들과 달리 불안정한 세뇌만 하는 걸로 끝나버렸었지."

"이게 불안정한 세뇌라고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계기만 있다면 스스로 정령임을 자각할 수 있는 틈이 있었지만...예상대로군. 정령이 깨어나고 말았고, 본래의 '격'을 알아채고 말았어."

성주의 말에 나는 성주가 아직 착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온 몸을 비틀어서 '불안정하게 각성한 정령'임을 전세계에 퍼뜨린 씨앗은 성주의 착각이라는 열매로 다가왔다.

"다시 세뇌를 하려면 동귀어진이 필요할 것이며...다른 정령들도 알아챈 모양이군. 이거, 내가 싸우면 지겠는 걸."

성주는 패배를 시인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사나웠고, 나는 그제서야 성주의 외형이 누구를 닮았는지 깨달았다.

"무신...."

"거기까지 알아낸 모양이군. 그래야 나의 호적수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 나를 개처럼 물어뜯었던 그 미친 인간, 그 인간의 DNA가 내 몸에 남아있었지. 그걸 바탕으로 한 번 만들어봤다."

"왜 하필이면 인간을?"

"너 때문에."

성주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분명 멀리서 관찰할 때는 정령을 각성한 것 같은데, 같은 정령끼리도 하찮게 여기던 네가 어째서 인간들은 그리도 감싸고 도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어. 내가 아는 너라면 바로 전세계의 지도자들의 모가지를 자르고 네가 인류의 정점에 서게 될 것이며, 우주 함대라도 만들어서 나를 공격하려고 드는게 아닐까 싶었거든."

"......."

내 코어가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겁을 먹었다기 보다는 적반하장으로 안에서 역정을 내는 신의 분노였다. 나는 심장부근을 손으로 다독이며 성주의 말에 반박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렇지는 않아."

"그런가? 많이 순해졌군. 그래...인간들의 말로 '사람이 다 됐어'. 아니, '철을 들었다'라고 해야하나? 얼마나 인간들에 동화가 되었길래 그 성질을 다 죽이며 인간처럼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달에 있으면서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지."

촤---악! 성주는 다시 로브를 좌우로 펼쳤다. 노란 로브는 성주의 알몸을 드러냈다가 다시 전신을 가렸다. 육체미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오히려 좋은-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딱딱하게 선 버섯 대가리를 적나라하게 들어올리는 건 정말 죽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 나는 인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성주는 광기어린 얼굴로 달뜬 숨을 내뱉으며 헉헉대기 시작했다.

"가지고 싶은 것을 취하는 것! 그것이 욕망! 그것이 같은 인간이 된다면, 사랑! 그것이 인간의 욕구! 그게 성욕!"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보다 유나가 더 먼저 반박했다. 점점 성주의 눈빛이 유나를 향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내가 유나의 앞에서 유나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사랑하니까 가지고 싶고! 사랑하니까 원하고! 아아, 그래! 이게 '사랑'이다! 나는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야!"

"이런 미친."

유나가 정색하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욕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성주가 사랑하는 '그분'이라 함은 당연히 이유나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계신'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님을 이 땅에 모시기 위해 너를 만들었다! 나의 그노시스여! 너는 나의 빛과 소금이니라! 너는 스스로를 바쳐 내 사랑하는 님의, 그 분의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

유나가 빡쳤다. 63빌딩의 옥상은 눈 깜짝할 새 성주의 몸을 움켜쥐는 콘크리트의 감옥이 되었다. 유나의 마력까지 섞인 콘크리트는 세상 그 어느 물질보다도 단단했으나-

꾸드득! 꾸드드득!

성주가 입은 노란 로브에서 풍겨나오는 황색 폭풍에 콘크리트는 두부마냥 바스라졌다. 풍속성이 지속성을 상대로 속성적으로 하드 카운터기는 했지만, 애초에 '이유나'는 성주에게 터럭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넌 내가 만든 피조물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그 분을 담기 위해 만들어낸 완벽한 조형물이지! 네 자아는 그저 너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육성하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일 뿐이다! 창조주인 나를 건드릴 수 있을 성 싶으냐!!"

"저게 진짜!"

"유나, 진정해. 원래 저런 말을 하는 놈이야. ...변태가 되었지만."

버섯벌레였을 때는 좀 더...아니 인간 시절의 광검보다도 더 근엄하고 위엄이 넘쳐서 카리스마 그자체였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카리스마 넘치는 변태일 뿐이었다.

"창염 때문에라도 안 되겠네. 유나야, 뒤로 물러서. 네 덕분에...상황은 50 대 50이야."

내가 싱크로해서 성주를 먼저 태우거나, 성주가 내게 세뇌빔을 날리거나. 나 혼자라면 아마 그대로 세뇌당했겠지만, 유나가 뒤에서 내게 안정감을 주는 이상 승패는 간단했다.

건곤일척.

나는 손가락을 튕길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싱크로를 위한 '트리거'를 발동시키려던 순간-

"거래를 하지."

성주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테라를 점령한 그 간교한 머리를 사용하여,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그노시스-이유나를 내게 양도하라. 그러면 이대로 지구를 떠나마. 그 안에 있는 히드라도 두고가주지. ...어떠냐?"

창염 이외에는 모두 잘라버릴 생각까지 했었던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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