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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53화 (453/1,497)

〈 453화 〉1부 19장 9

나는 펜릴의 얼굴에 처박힌 무릎을 제자리로 돌렸다. 펜릴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건-"

첫 번째 방심. 나는 회수한 발로 TAT를 차올려 허공에서 쥐었다. 펜릴의 이마를 정확히 겨누는 총구에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화르르륵!

마탄과는 달리, 이번에는 총신을 타고 흘러간 마력이 불꽃으로 방사되었다. 펜릴의 안면부터 태워나가는 불꽃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갔고, 나는 펜릴을 불꽃으로 샤워시킨 뒤 바로 땅을 박차고 뒤로 뛰어올랐다.

고고고고!!

바닥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용오름쳤다. 칼바람들은 자갈 더미와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고, 용오름의 아래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깊은 구덩이가 보였다.

자갈, 모래. 돌멩이보다 작은 입자들을 칼바람에 회전시키는 풍속성과 지속성의 연계기. 초당 수십-수백번 가량 회전하는 자갈들에 나는 바닥에서 주운 돌멩이 하나를 집어던졌다.

파사삭!

돌멩이는 용오름에 들어가자마자 회전하는 자갈들에 의해 구멍이 송송 뚫렸다. 나는 마력으로 바닥에서 폭발한 TAT를 회수했다.

"......."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펜릴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나름 싱크로를 한 덕분에 창염에 의한 불꽃 공격은 원래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너, 말 좀 해봐."

펜릴은 내게 말하기를 종용했다.

"어떻게 나를 공격한 거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펜릴의 속도는 가히 최강이며, 아무리 나라도 최고속력에서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 그런데도 내가 펜릴에게 공격을 여러 차례 성공한 이유는 하나 뿐이다.

"찍었는데."

"뭐?"

"그냥, 찍기야."

패턴의 분석, 수많은 통계, 뇌내 시뮬레이션, 플레이 경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펜릴의 행동을 예상하고 그 중 가장 정답에 가까운 행동을 유추했을 뿐이다.

"찍기라니,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니까 지금 네가 나한테 얻어맞은 거 아니겠어? 보호막 때문에 코뼈를 부러뜨리지는 못했지만...네가 워낙 종이장갑이잖아."

풍속성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건 아무리 지속성인 아르엘과 준싱크로를 했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방어력이 조금 보정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풍속성은 '스피드'에 중점을 둔 이들이라 체력과 방어력 자체는 약하다.

"싱크로, 신화를 하면 분명 신에 가깝게 강해지는 건 맞아. 그런데 그냥 싱크로만 한다고 해서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내 손에 들린 한 정의 TAT에 남은 잔여 마력을 방출했다. 푸른 불꽃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펜릴이 대화를 유도하면서 몰래 날린 바람의 가시가 창염에 불타올랐다.

"싱크로하면 나를 이길 수 있어? 그러면 말이야, 지금 나는 나 노리고 있는 여자들한테 깔려서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을 걸."

"......자랑이냐?"

"사실인데 어쩌겠어. 내가 그만큼 강한 건데."

나는 총구를 다시 펜릴에게 겨눴다. 펜릴은 이미 몸을 날려 사라졌고, 나는 펜릴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마탄을 쏴야했다. 보고 쏘는 건 늦는다. 예측을 위해 미리 보려고 하더라도 펜릴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래서 그냥 펜릴의 움직임을 보지 않고, 마력의 흐름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순수하게 펜릴의 행동을 내 머릿속으로 예상하여 직접 대처해야했다. 공격은 찰나의 순간마다 들어왔고, 일부러라도 변칙적으로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카앙!!

뒤에서 어깨를 노리고 휘두르는 손톱은 TAT를 들어 맞받아쳤다. 펜릴은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바로 내 총을 손으로 잡고 다리를 휘둘렀다.

부웅--!!

날카로운 발길질이 옆구리를 베려고 했다. 하지만 어깨를 막는 순간부터 나는 몸을 옆으로 빙글 돌렸고, 아슬아슬하게 펜릴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코트에 마력을 불어넣어 방어력을 끌어올렸다.

카가강!!

펜릴의 발길질에 담겨있던 응축된 칼바람이 사방으로 폭발했다.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고, 코트에 두른 마력을 믿고 몸으로 받아냈다. 칼바람은 코트 전체를 타격하며 튕겨나갔고, 겉면의 실오라기 정도를 잘라내는 선에서 공격이 끝나버렸다.

"이게!!"

펜릴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바닥을 굴렀다. 아르엘의 힘을 가진 덕분에 펜릴은 대기뿐만 아니라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느정도 자유자재였다. 땅속에 난 수많은 구멍을 통해 나를 기습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건 분명히 패착이었다.

"그런 거 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바닥을 크게 굴렀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내 마력은 도화선에 붙은 불꽃마냥 흩날리기 시작했고,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뻗어나가며 구덩이들을 불길의 막으로 덮어씌웠다.

화르륵!!

대지가 창염에 타오르고 있다. 직접 몸에 불꽃을 달고 뛰어드는게 아닌 이상, 펜릴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그리고 조금 화딱지가 난 펜릴이 선택할 행동은 하나 뿐이다.

화륵.

나는 등 뒤로 불꽃의 날개를 펼친 뒤, 바닥을 박차고 살짝 뛰어올랐다. 내가 날아오르기가 무섭게 펜릴의 손이 내가 디디고 있던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펜릴은 낭패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거 이미 써먹은 공격이다?"

펜릴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펜릴과 싸우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펜릴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간부들이 그렇지만, 펜릴은 그 정도가 가장 심했다.

"7회차였나.... 아무튼 그랬지 싶은데."

너무 데이터가 방대하다보니 몇회차에 이런 기술을 썼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창염을 구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게임오버를 당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펜릴이 사용하던 기술과 테크닉은 싫어도 패턴으로 내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 지금까지 다 본 기술이라."

나는 바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 *

피닉스의 반응이 사라진지 어언 3시간 째.

이미 약속된 11월 11일은 자정을 훌쩍 넘겼고, 서울에 모인 청화단 간부들은 비상이 떨어졌다.

"혼자 싸우러 갔다에 S급 코어."

등대 김지화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언제나처럼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팅을 하던 그가 모처럼 크게 걸었다. 그리고 그 도박은 약 99%로 돈을 따낼만큼 확정에 가까운 예상이었다.

"거 뭔가 준비를 하러갔다가거나 하지는 않을까?"

"그럼 그쪽에 걸어야죠."

"끙.... 좋아, 지금 폐관수련 중이다에 내가 이번에 받은 A급 코어 다섯 개를 걸지."

아키택트는 코어 다섯을 테이블 위로 밀어넣었다. 테이블에는 이미 영롱한 빛깔의 코어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흐흐, 자네들 모두 아직은 어리구만."

류천성은 음흉한 눈빛으로 안주머니에서 코어를 꺼냈다. 직접 사냥한 것과 모아둔 것까지, S급 코어 하나와 A급 코어 셋을 테이블에 꺼내놓으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웃었다.

"원래 결전의 날 밤에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법이지. 자네들은 그런 영화도 못 봤나? 전쟁터 나가기 전에 사랑하는 연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는 걸."

"......죽을래?"

천가을이 입술을 깨물며 성질을 부렸다. 류천성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선택받지 못한 존재'나 다름없다는 말이었기에, 정작 말을 꺼낸 류천성조차 어색한 눈빛으로 슬며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미안하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저는 설야와 하룻밤을 보내고 있다에 걸겠습니다."

"야!!"

유이신의 배팅에 천가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다소 무례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유이신은 천가을과 같은 경지인 S급일 뿐더러 이미 서로 볼장 다 본 사이었다.

"아무리 가을이 옆에서 많이 보좌해왔다고는 하지만, 역시 사람은 반대가 끌리는 법 아니겠습니까? 속성적으로 말이죠."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겠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걸고 얘기하지 않겠나? 끌끌."

"......하늘성, 알면서 그러깁니까?"

유이신은 품안의 코어를 끌어안으며 인상을 썼다. 괴인들 중에서도 가장 코어 욕심이 많아진 유이신은 당장에라도 저 코어들을 챙겨 먹어치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안그래도 요즘 코어 수급하는데 힘들어 죽겠는데 이것까지 걸면 저 아사합니다."

"글쎄, 대신 다른 걸 먹고 있지 않은가?"

"......크흠."

김지화는 선글라스를 조정하며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따갑기야 했지만, 유이신의 시선이 가장 따가웠다. 테이블에 배팅을 한답시고 올려진 S급 코어는 유이신이 선물로 받기로 한 물건이었다.

"그, 거, 뭐시냐. 하늘성이 자꾸 그쪽으로 얘기하는데.... 물론 단장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분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저는 지금 뉴클리언 전투 때처럼 저희의 인신 범위 밖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에 다 걸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확신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조덕배."

김지화는 손가락으로 눈을 톡톡 건드리며 씩 웃었다. 선글라스 아래 그의 눈동자는 흰 부분 없이 온통 검게 물들어있었다.

"지금, 조덕배도 서울에 없습니다."

"......이건 사기야!!"

류천성의 절규가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유이신은 김지화의 눈짓에 움츠러든 상태로 발그레 웃었고, 아키택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아, 젠장. 또 그냥 안 나오고 어디서 쳐자는 줄 알았더니."

"혹시나 죽기라도 한다면 자기도 사라질텐데 아무렴. ......천가을?"

"......."

천가을은 침묵했다. 그저 묵묵히 쪼르르 캬라멜 마키아토를 마시며 침묵할 뿐이었다. 류천성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자네, 설마.... 알고 있었나?"

"...풋."

피닉스의 성격상 자신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분명히 언질을 주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천가을이라면 더더욱. 천가을은 하품을 하며 류천성을 비웃었다.

"사람 놀린 벌이야. 코어 잘 먹을게."

"뭐...라고?"

"아니, 김지화가 묻더라고. 조덕배가 지금 서울에 있냐. 어차피 아저씨들 내기할 거 아니까, 내기에서 따내면 절반은 나한테 넘기는 조건으로 알려줬어. 조덕배 서울에 지금 없다고."

"후훗."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류천성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또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하는 건가...?"

"어쩔 수 없어. 걔가 떠나기 전에 그 얘기 하던 걸."

천가을은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블에 올려진 사과 한쪽을 아삭 베어물었다.

"펜릴이랑 제대로 붙으면 지구 반쪽 날 거라고."

"......."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이기고 돌아오는 걸 기다리면 돼."

간부들은 태연하게 말하는 가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가을은 흔들림없는 얼굴로 창밖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설마 지겠어?"

* * *

펜릴은 암살에 있어서 실패한 적이 없는 스페셜리스트다.

공기 중을 걸어다니고, 자연 바람에 몸을 숨겨 이동하기에 누군가의 스캔에 걸릴 일도 없으며, 무풍지대나 진공상태가 아닌 이상 펜릴 이상의 경지가 아니면 그 누구도 펜릴을 눈치챌 수 없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펜릴의 특성 때문에, 펜릴의 약점은 다름 아닌 '대인전'이다.

자신과 대등하거나 강자와 싸워본 적이 극히 드물기 때문. 행여나 암살 대상이 자신보다 약간 약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펜릴은 피격시 1초 스턴이라는 성능을 가진 절풍의 소유자기에 그리 힘들지 않게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따라서 펜릴은 강약약강의 전형이었고, 그것이 간부들 중에서도 첫번째 상대로 배치된 이유기도 했다.

약자를 상대로 손대중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자.

강자를 상대로 지혜를 짜내어 승리를 쟁취하는 방법을 모르는 자.

자기보다 강한 적을 만날 일이 극히 드물었기에, 일단 적이라고 판단하면 가지고 놀거나 하는 일 없이 죽이고 보는 자.

그래서 친해지는 바람에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한없이 약했던 주인공 일행들에 대해서 항복해버렸다. 설령 마음이 바뀌더라도, 나중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정작 나중에 가면 주인공 일행들이 펜릴보다 훨씬 강해져버렸고, 펜릴이 절풍으로 각성하는 전투에서는 따로 개인적 훈련을 하지 않는 이상 S+급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임무 성공률 99.9%의 암살자.

거기에 특유의 여유와 자만심이 하나로 합쳐진 걸로도 모자라, 절풍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의 육체-아르엘까지 손에 넣었으니 그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만약, 펜릴이 아주 조금만 나와의 전투를 신경썼다면 전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펜릴이 나를 상대로 조금만 훈련을 했다면 전투는 백중세를 이루었을 것이다.

만약.

펜릴이 방심하지 않고 나를 진심으로 쓰러뜨릴 각오로 싸웠다면, 카르나와 은유하 콤비보다 더 강한 적으로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승패를 갈랐을 뿐이다.

나는 방심하지 않았고, 펜릴은 자신의 힘을 믿고 방심했다.

"나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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