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화 〉1부 18장 21
그 시각,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
"꺄아아악!!"
케이프타운 파견된 L팀의 팀장, 템페스트 레이디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지마룡의 석화 브레스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아, 하아!"
머리칼을 급히 바람의 칼날로 잘라내지 않았다면, 아마 머리끝뿌터 서서히 굳어버렸을 터. 지마룡의 브레스는 닿은 대상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석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원은, 큭!"
[버텨라, 춘자야! 30초만! 아래로 피해!]
"30초 전에 죽게 생겼, 끼아악?!"
양춘자는 비명과 함께 바람에 몸을 싣고 아래로 훅 꺼졌다. 지마룡의 브레스를 피했더니, 이번에는 암마룡이 템페스트 레이디를 날개로 후려치려고 했다.
"허억, 허억!"
[23초!]
"일일이 말하지, 으아악!"
템페스트 레이디가 바람을 모아 아래로 내질렀다. 막대한 흙먼지가 일어남과 동시에, 지마룡이 토해낸 숨결이 풍속성 마력과 상쇄되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이, 미친, 마룡들이...!"
A급인 자신이 S급 괴수인 마룡을 두 마리나 상대해야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지만, 템페스트 레이디는 영혼을 쥐어 짜내어 두 마룡의 어그로를 끌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격을 피하고, 지마룡의 석화 브레스나 암마룡의 독성 브레스가 도시를 습격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누가 좀 도와줘라, 제발!'
"모두 제가 시선을 끄는 동안 피신을!!"
겉과 속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양선우는 이악물고 공격을 피했다. 다행히 마룡들은 철저히 자신에게 시선이 꽂혀있었고, 패턴화된 공격은 이미 피하기가 수월했다.
'훈련 프로그램 덕에 목숨 10번은 아꼈다.'
은하 대학교의 가상 훈련기. 당연히 최종 난이도라고 할 수 있는 마룡들도 존재했고, 양선우는 가상의 마룡들을 상대하며 경험을 쌓았다.
■■■■■!!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A급에 불과한 자신은 금방 곤죽이 되었으리라. 양선우는 마도기어의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3초-
"아."
암마룡과 지마룡이 동시에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마지막 순간, 왜 하필 소지의 반지가 반짝인 걸까.
"나 결혼-"
"실례."
누군가가 양선우의 허리를 휘감았다.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의 여인은 지팡이를 전방으로 내세우며 나지막하게 읊었다.
"리버스 그래비티."
지팡이의 끝에 달린 황갈색 코어가 반짝임과 동시에, 바닥에 거북이처럼 네 발로 디디고있던 지마룡이 순식간에 하늘로 떠올랐다. S급 괴수의 거체를 순식간에 뒤집고 하늘로 띄워버린 존재에 양선우는 숨이 멎었다.
"이유나?!"
"물러날게요."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유나는 양선우를 잡고 몸을 내뺐다. 하늘로 던져진 지마룡은 암마룡과 부딪혔고, 둘의 브레스는 서로 맞부딪혀 폭발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주변 대기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유나는 양선우를 안전한 바닥에 내려놓고 지팡이를 땅에 찧었다.
"원군입니다. 여기는 제가 맡을게요."
"너, 너 진짜 유나야?!"
"네."
유나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솟아난 수 십 가닥의 손이 튀어나와 두 마리의 마룡을 휘감았다.
키에에엑!!
마룡들은 몸부림을 치며 발악을 했지만, 진흙으로 된 손은 마룡들의 몸부림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쿵."
유나는 무심히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바로 손들이 두 마리의 마룡을 잡고 지평선까지 끌어다내렸다. 지마룡과 암마룡은 서로 뒤집힌 채 손들에게 쥐어짜이듯 짓이겨졌다.
"아아. 여기는 <얄다바오트>. 케이프타운 끝났어요."
"......네가 설마?"
양선우는 유나의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청화단 사이에 은연중에 돌던 썰이 생각났다. 프로페서가 언급하기를, 분명 피닉스나 설야만큼 강한 존재가 세계에 다섯은 더 있다고 했었다.
그 중 하나, 얄다바오트가 유나라니. 양선우는 머리가 갈색으로 물든 유나의 모습이 새삼 생경했다.
"저, 저기...유나 씨? 아니 유나 님?"
"평소대로 말하셔도 돼요. ......흐음."
유나는 진흙의 손에 찌그러지는 두 마리의 마룡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룡들의 몸이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여기는 얄다바오트. 마룡들에게서 이상반응 확인. ...다른 곳도요? 2체 이상의 지역에서.... 아, 네. 맞는 것 같아요."
"저기, 나도 이해하기 쉽게...."
"합체합니다. 마룡들."
"네?"
■■■■■■■■!!!
진흙의 손을 부수고 포효하는 두 마리, 아니 한 마리의 마룡은 보랏빛 안광을 흩뿌리며 으르렁거렸다. 괴수 레이더에 찍힌 반응은 족히 S+급에 준하는 위험도였다.
"이, 이런 미친...!"
"네. 가능해요. 일단 여기다가 가둬둘게요."
유나가 지팡이를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았다. 마치 땅이 유나의 손처럼 움직이듯, 땅 전체가 뒤집히며 흙더미가 합체한 마룡을 감싸쥐었다.
주물. 주물.
유나는 찰흙을 빚듯 손 사이의 마력을 이리저리 주물렀고, 그에 따라 합체한 마룡도 흙더미에 주물러졌다.
우두둑, 투툭, 푸아악!!
흙더미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으깨지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양선우는 그 그로테스크한 소리에 침을 꼴깍 삼켰고, 유나는 빚어낸 공을 허공에 가볍게 띄웠다.
"<하데스의 관>. 집행관, 생포 완료 했습니다."
"...생포?"
"네. 프로페서가 연구용으로 하나 잡아달라고 해서요."
유나는 무심하게 자신이 만든 구체를 가리켰다. 구체는 마치 핵 폐기물을 감싼 콘크리트마냥 고요했다. 안에 S+급 괴수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에서 튀어나오면 어떡해?"
"그럴 리 없어요. 저거 뚫고 나오려면 적어도 피.... 아녜요."
유나는 뒷말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은은하게 웃는게 양선우는 소름이 돋았다.
"그.... 방금 저거 말이야, S+급 괴수 아니야?"
"맞아요. 놔뒀으면 아프리카 절반이 날아갔을 걸요?"
"그,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잡아?"
"음...."
유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히 미소지었다.
"제가 더 강해서요. 아, 지원들어왔다. 다음에 기숙사에서 봬요."
퉁!
유나가 지팡이를 내려찍자 바닥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다. 유나는 손을 흔들며 싱크홀로 뛰어내렸고, 아래에서 거친 엔진소리가 울렸다.
"하, 하하, 하...."
양선우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 * *
레기온(Legion).
군단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령이기도 하다.
다크 레기온이라는 조직명은 성주의 아래에 모여든 일곱 간부의 연합이라는 말도 있지만, 동시에 또다른 '괴수'를 명명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마룡.
여신 이유나를 만들기 위해 정령의 핵을 복제하여 만들어낸 실패작들. 그 모든 마룡들은 하나의 객체로서 존재하지만, 원래부터가 일곱 속성의 복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상정한 것들이었다.
원본이자 완성품인 유나가 가진 코어 그노시스가 일곱 정령의 핵이 합쳐진 것이 듯, 마룡 또한 코어가 하나로 융합되어 합체가 가능하다.
그 마룡들에 대한 관리를 맡은 이가 아지다하카였다. 그렇기에 아지다하카는 분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일곱 마룡들을 소환했고, 그 일곱 마룡들을 하나로 합체시켰다.
[다크 레기온.]
일곱의 실패작을 하나로 모아 만들어낸 괴수. 그리고 그 괴수의 핵이자 코어는 당연히 아지다하카였다.
아하하하!!
목소리가 7겹으로 울린다. 남자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여자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노인이나 어린아이, 짐승, 전자음, 심지어 유령같은 목소리가 겹쳤다.
결코 살려 보내지 않겠다--!!
아지다하카, 이제는 아지다하카라고 부르기도 힘든 존재가 된 다크 레기온은 형체마저도 흉측했다.
[다크 레기온이라기 보다는 그냥 칠두룡이구만.]
속성별로 머리가 하나씩 달려있기는 했지만, 정말 온갖 곳에 머리가 달려있구나 싶었다.
뱀장어처럼 긴 몸뚱아리인 암마룡을 중심으로 하여, 칠지도 마냥 여섯 머리가 옆으로 솟아나 있었다. 몸통의 길이가 수십 미터가 아니었다면, 정말 꼴보기 싫은 괴수가 되지 않았을까.
[이러니까 원작에서 폐기 설정으로 짤렸지.]
아하하하! 죽어라, 피닉스!!
암마룡의 머리 위에 상체만 솟아난 아지다하카가 내게 삿대질을 했다. 가장 위에 있는 지마룡과 풍마룡의 입이 나를 향해 쩍 벌어졌다.
[패턴이라고 해봐야 고작 마룡들의 브레스 뿐일테고.]
지마룡이 석화 브레스를 내뿜었다. 전방으로 마탄을 쏘아 브레스를 폭파시켰다. 뒤이어 풍마룡이 쏘아낸 브레스가 칼바람을 일으키며 나를 덮쳤다.
카가가강!!
[풍마룡은 그냥 안 쓰는게 어떠냐. 역상성인데.]
나는 풍마룡의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차라리 아지다하카가 손톱으로 긁었을 때가 더 깊게 긁혔을 정도였다. 풍속성의 공격은 내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야!!
아지다하카가 세 개의 머리를 동시에 들어올렸다. 수마룡, 광마룡, 환마룡. 세 개의 드래곤 헤드는 브레스를 가운데에서 하나로 합쳤다.
■■■■■■■!!
청색, 금색, 회색의 브레스가 하나로 뭉쳐져 탁한 보라색의 브레스가 되었다. 특수한 이능이 담겨있지 않은, 오직 마력만을 담아 쏘아낸 브레스는 가히 카르나가 전력으로 쏜 브라흐마스트라에 맞먹을 정도였다.
[피하면 그만이지.]
나는 허공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날개를 다시 펼쳐 수직으로 날아올랐고, 브레스는 애석하게도 내 발끝을 스치며 빗겨나갔다.
이 개새끼가!!
[피닉스는 조류다, 멍청한 놈.]
아아아악!!
아지다하카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하반신이 잠겨있던 암마룡이 입을 쩍 벌리며 마력을 모았다. 나는 벌써부터 암마룡의 입을 여는 것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화마룡은 왜 안 쓰나? 장식인가? 제일 멋지군.]
입 좀 다물어---!!
[꼬우면 입 닥치게 하던가.]
암마룡, 다크 레기온이 내게 브레스를 쏘았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애초에 브레스의 면적은 블랙 바이블의 영지 전체를 아우를 크기였으므로.
[내가 피한다고 해서 맞받아치지 못하는 건 아니지.]
나는 전방으로 마력을 둘렀다. 푸른 날개가 보호막처럼 전방에 놓여 단단한 방패가 되었다. 다크 레기온의 브레스가 깃털 방패 위를 덮쳤다.
쩌저적!
방패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깃털들이 하나하나 뜯겨져 나갔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암마룡의 브레스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호호호! 그런 빈약한 방패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내 전신이 불꽃으로 타올랐고, 깃털 방패가 산산조각났다. 나는 발을 들어올려 아지다하카의 뒷통수를 툭툭 건드렸다.
[그래서 피했다. 피하는 김에 이쪽으로 전이했지.]
이미 암마룡의 주변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푸른 솔개들-전투형 미니 피닉스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불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전이는 너만의 고유 능력이 아니다.]
너, 너 이!!
[2스테이지 보스가 최종보스인 것처럼 깝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아지다하카의 머리를 디디고 뒤로 뛰어올랐다. 길쭉히 돋아난 지마룡의 입이 내가 있던 곳을 덥썩 물려고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갑주에 금강석처럼 단단한 이빨이 박힐 뻔 했다.
[미꾸라지처럼 생겨먹었으니 잘 빠져나가겠지?]
나는 양 손을 튕기며 아래로 떨어졌다. 허공에는 수백 개의 화염구가 생겨났다. 하나 하나의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아지다하카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스칠 만큼 배치는 뒤죽박죽이었다.
[랜덤 탄막이다. 스치면 잔불 붙는 거 알지?]
짝!
나는 합장하듯 손뼉을 쳤다. 화염구들이 타오르기 시작하며 점점 더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다크 레기온이 내뿜는 장기는 수백의 창염에 의해 타들어갔다.
[만약 여기가 지구였으면 주변 인간들이 바로 괴인이 되었을테지. 하지만 여긴 네 성지, 인간도 괴인도 네 친구도 없는 곳이다. 어찌할테냐?]
이 개새끼가 끝까지!!
[새라니까.]
아무래도 끝까지 발악할 듯 하다. 나는 땅에 처박히기 직전에 날개를 펼쳤다. 아지다하카는 결국 사용하지 않던 화마룡까지 동원하여 팔방으로 브레스를 뿜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일곱 속성의 브레스와 히스테리 브레스. 허공에 풍선처럼 띄워둔 화염구들이 브레스의 여파에 휩쓸려 파괴되었으나, 파괴되며 튀어오른 잔불이 일부나마 남아 허공에 남았다.
[직화는 싫어하나? 굳이 쪄죽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나는 직화 쪽을 더 좋아해서 말이야.]
불꽃의 솔개 한 마리가 내 손등 위에 올랐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맹금류들이 날카로운 부리를 다크 레기온에 겨눴다.
[미리 하나 알려주마. 이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나는 팔을 높이 들어올려 솔개를 날렸다. 작은 피닉스들이 다크 레기온, 아지다하카를 향해 부리와 발톱을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아지다하카에게 두 손을 쭉 뻗었다. 손과 손 사이에는 푸른 불꽃이, 창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프렌드 실드.]
아.
[너, 친구가 없지? 그럼 맞아야지.]
프렌드 실드가 있었으면 진짜로 막을 수 있었을텐데.
[전력을 담아 날리는 공격이다.]
나는 아지다하카를 향해, 다크 레기온을 향해 모든 마력을 담은 창염을.
[창염개진!!]
최대 화력으로 방사했다.
하늘이, 파랗게 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