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35화 (435/1,497)

〈 435화 〉1부 18장 17

원탁의 히어로. 살라딘.

지속성의 이능력자로 S+급까지 성장 가능한 그는 원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원탁'의 히어로였다. 그런 그가 이승형을 블랙 바이블이 위치한 곳으로 초대를 한다?

살라딘, 원탁의 히어로가 아지다하카의 괴인이다?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아.'

애초에 원작은 비틀렸다. 펜릴이 캐트시 경이니 뭐니 하여 20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아지다하카도 그에 준하는 활동을 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내가 아직 조우하지 않은 원탁들. 굳이 만날 필요가 없던 원탁들이 아지다하카의 괴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예루살렘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살라딘인 것에 마음이 걸렸다.

'얘 성지 지키는 수호자인데….'

미래의 지식인가, 아니면 현재의 정황인가. 어느쪽이든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승형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저희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한 시간 정도 뒤에 가시죠?"

"한 시간이나? 도대체 무얼 하길래."

"누구 선물 사려구요. 그…."

"가루라."

이승형의 말에 살라딘은 안색을 굳혔다. 선물공세로 사람의 마음을 잡겠다는데 당장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코트를 여미고 특실 안쪽을 가리켰다.

"뭐...남자분들 그쪽으로 잠깐 즐시시겠다면야 어쩔 수 없죠. 화권, 다녀와요. 살라딘 님께서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실 거예요."

"청화 님? 좋은 곳이라니…."

"마음을 되돌리는 건 되돌리는 거고, 당신도 때로는 마음놓고 일탈을 즐길 때가 필요한 법이죠. 잘 다녀와요. 아 참, 가는 길에 이건 선물."

나는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물건 하나를 꺼냈다. 살라딘 안 보이게 안에 집어넣은 물건에 이승형은 화들짝 놀랐다.

"청화 님?!"

"이게 꼭 필요할 거예요."

나는 이승형의 허리를 탕 두드리고 몸을 돌렸다. 살라딘의 미묘한 시선이 내 뒤에서 따갑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걸 무시하고 바로 백희아가 기다리고 있을 특실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쑥과 마늘을…. 청화 님? 뭐 두고 가셨어요?"

"살라딘이 아지다하카의 괴인인 것 같아요."

"그게 무슨 개뼈다귀같은 소리...흠흠."

"의혹이에요. 그냥 정황이죠. 하지만 최악의 경우, 만에 하나라는게 있잖아요?"

나는 특실에 결계를 쳤다. 이제 그 누구도 이 특실을 들어올 수 없을 것이며, 백희아의 옆에는 샐러맨더가 지키고 있으니 더욱 안전할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반나절 내에 모든게 끝날 거예요. 집행관은 여기서 모든 팀의 지휘를 맡아주세요."

가부터 파팀, A팀부터 M팀까지. 13개의 팀은 집행관의 지휘에 따라 제각기 대처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백희아의 마도기어에서 지휘용 다중 콘솔을 꺼냈다. 백희아를 중심으로 뜬 13개의 스크린은 각국에 퍼진 청화단의 움직임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백나로 호가 아니더라도 지휘가 가능하도록 만든 시스템이에요. 제가 중간부터는 직접 쳐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직접이요?"

"네. 직접."

나는 품에 넣어둔 코어를 꺼내 덕배트를 만들었다.

"깽판은 직접 쳐야죠?"

이승형의 심장에 박아둔 폭탄을 드디어 터트릴 때가 되었다.

***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원탁의 히어로들은 으레 다들 전용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승형은 살라딘과 서로의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제법 친해졌다.

"하하. 서울 게이트에서 그대가 화마룡을 쓰러뜨리던 장면은 이곳 중동에서고…."

"과찬이십니다. 살라딘 님이시야말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온 S급 괴수를 1:1로 쓰러뜨리지 않으셨습니까? 괴수의 목을 베던 다마스커스 검이…."

이승형은 살라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예의주시했다. 괴인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아도 그는 전혀 괴인같지 않았다. 어쩌면 피닉스가 오해를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 원탁이잖아.'

원탁의 히어로가 실은 아지다하카의 괴인이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는가. 당장 한국에 있는 일이랑 비교를 해보자면, 석하랑이 실은 피닉스와 연인 사이라는 것일 터.

"그럴 리가."

"무엇이 그리 우스운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승형은 아차 싶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둔 물건이 도드라졌다. 피닉스가 떠나기 전에 급히 이승형의 안주머니에 찔러넣은 물건이었다.

"그건 무엇인가?"

"저도 잘…."

여기서 숨기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이승형은 살라딘을 예의주시했다. 그는 피닉스가 찔러넣은 물건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혹시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십니까?"

"물론. 성지에 들고 들어가서는 안 될 물건이라면 두고가야지."

"...알겠습니다."

이승형은 침을 꼴깍 삼키며 작은 상자같은 물건을 꺼냈다. 설마 초소형으로 제작된 폭탄은 아니겠지. 조마조마한 속내를 숨기고 물건을 꺼낸 이승형의 손바닥에는 푸른색으로 코팅이 된 철제 케이스가 들어있었다.

"......."

살라딘이 엄한 눈으로 옆에 놓아둔 칼집에 손을 올렸다. 이승형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케이스를 열었다. 설마 폭탄이라도 될-

툭.

뭔가 형태가 익숙한 비닐 포장 아래, 오백원 동전보다 살짝 큰 알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이승형의 얼굴이 시뻘게졌고, 안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피임!

"......거 자네."

살라딘은 음흉한 얼굴로 웃었다.

"크구만! 으허허!

"......."

이승형은 종이를 다시 케이스에 집어넣어 속에 집어넣었다. 붉어진 얼굴로 케이스 안을 본 그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혹시 이거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닐세. 흐허허, 안그래도 내가 챙겨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청화 양은 배려심이 넘치는 분이구만. 하아,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살라딘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이승형은 할 말은 많았지만 속으로 삼켰다. 괜히 입안이 말라왔고, 이승형은 마실 것을 찾았다.

"혹시…."

"기다려보시게. 내 한 잔 드릴테니. 여보시오. 한 잔 가져와주시게."

살라딘이 손가락을 튕겼다. 여승무원이 나와 허리를 숙여 술병과 잔을 내려놓았다. 칵테일을 섞어 오기라도 한 듯, 이미 잔은 술로 차있었다.

"건배."

살라딘은 잔을 들어올렸다. 이승형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잔을 부딪혔다. 칵테일의 맛은 우유처럼 달콤했다.

"후훗."

"......?"

칵테일을 반쯤 마시던 이승형은 낯익은 승무원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물든 여인은 분명 어디선가 본-

"후훗."

트레이를 가슴에 안고있던 승무원 여인이 슬쩍 트레이를 옆으로 밀었다. 가슴에 걸린 명찰이 이승형의 눈에 들어왔다.

ANG.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인, 앙그는 은은한 미소로 고개를 숙였다. 이승형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기를 탈출하려고 했으나-

사락.

이승형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온몸이 검은 안개로 칭칭 휘감겼고, 수면제라도 먹은 것 마냥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되는...."

풀썩.

이승형은 가까이 다가온 앙그의 품에 쓰러졌다.

* * *

그 시각.

백희아의 지시와 별개로, 각지에서 움직이고 있던 N to R팀 중 일각인 O팀-카르나와 은유하 콤비는 가루라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워싱턴으로 이동했다.

한창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키 이스탄불에서 혹시나 모를 사태가 일어날까봐, 그들은 본래 상주하고 있던 로스 앤젤레스에서 미대륙을 가로질러 워싱턴으로 숙소를 옮겼다.

"가루라가 정말 지극정성이네요. 욕은 자기가 다 먹고 있는데 자기 때문에 화권이 먹을 욕을 걱정하다니."

"훗."

"뭘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계셔요. 지금 제일 많이 욕을 먹는 당사자는 당신인데."

"욕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지 않나. 이게 다 아지다하카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거지."

"말이 나온 김에 묻는 건데요, 왜 그렇게 아지다하카를 싫어해요? 단순히 싫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런데."

"......."

카르나는 처음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커피를 홀짝이던 은유하는 잽싸게 달려가 카르나의 뒤에서 몸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쳤다.

"알려줘요. 왜 싫어해요?"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흐윽. 싱크로 한 이후로 약점을 아주 잘 알아버렸군 그래."

카르나는 은유하의 손목을 잡아당겨 침대로 던졌다. 싱크로 이후 마력이 한층 더 상승한 은유하는 카르나의 메치기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성주의 간계 때문이야. 애초에 성격도 잘 맞지 않고. 마력의 상성이 괜히 상성이 아니다. 서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단적으로, 성격차이다."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성주의 간계니, 성격이니 하는 건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요?"

"그거야 그렇겠지.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하나만 얘기해주자면.... 그래."

카르나는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자꾸 방 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노는 거,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령이든 간부든 햇빛 보면서 놀아야지, 혼자서 음침하게 신전에 틀어박혀서 말이야."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X로이드를 판매하는 입장으로서, 은유하는 주 고객층의 성향이 어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일반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X로이드 주요 구매층이 카르나가 말한 음습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었다.

"간부가 된 아지다하카는 더하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어. 아랫도리를 놀려서 몸으로 사귄 친구가 어찌 친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그렇죠. 그렇게 따지면 저는 X로이드 판매한 사람들 모두와 친구가 되겠는 걸요. 와, 전세계에 1억명의 친구들이!"

은유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그렇게 친구 만드는 방법 덕분에 세계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잖아요. 후후."

"어디까지나 화권이 작전을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N To R 팀은 현재 피닉스의 보고에 따라 언제든지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피닉스는 이승형이 블랙 바이블로의 티켓을 받은 이후, 곧장 정령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작전의 결행을 알렸다.

아지다하카의 제거, 마암룡의 탈환. 그 역할을 맡은 건 피닉스 1명.

나머지 모든 정령들과 관계자들은 바깥에서 열릴 수도 있는 수많은 차원문과 날뛰게 될 괴인들을 대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것이 전세계 각지로 퍼진 청화단과 정령들의 임무였다.

"진짜로 이번 전장이 고객님 말씀대로 될까요?"

"아마도 높은 확률로. 계획을 짤 때 최악을 가정하고 하지 않나. 혹시 모르지.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서 아지다하카가 피닉스를 잡을지. 흐흐."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고객님이 좀 걱정되는데요."

"걱정말라, 유하. 여차하면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금방 날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카르나와 은유하는 현재 미국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빛처럼 태평양을 가로질러 중동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빛속성 콤비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맡아야 했으므로.

"...그래도 사실상 우리는 여기 묶인 셈이지. 우리가 맡은 지역이 이 대륙 전체이니."

"그렇네요. 저희는 저희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 하기로 하죠. ...가루라 또 연락왔어요. 혹시나 무슨 일이 있다면 화권을 꼭 지켜달라고."

은유하는 가루라의 집착에 가까운 문자에 질색을 했다. 화권과의 연결은 피닉스가 전부 차단을 해버리니,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카르나와 은유하에게 계속 연락을 넣고 있는 것이다. 카르나는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카르나가 연락을 씹고 있어서 가루라는 은유하에게 문자폭탄을 날렸다

"뭘 그리 걱정하는가. 설마 피닉스가 화권과 가루라의 사이를 뻔히 알면서 화권을 그렇고 그런 일에 쓰겠는가? 흐흐, 그럴 리가 없지."

"......고객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은데요."

둘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카르나와 은유하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심도깊은 토론을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화권은 가루라의 짝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런 짝을 카르나 님에게 빼앗긴 것처럼 만들었잖아요. 잊으셨어요? 원래 고객님 계획이 뭐였는지."

"진짜 내가 가루라를 상대로 하는 거였지. 그게 여러 사람들의 철퇴를 얻어맞고 네 가루다를 사용하는 걸로 대체되었고."

"그렇죠. 더군다나 고객님, 예전에는 화권 엄청 싫어했잖아요? 만약 그 때의 앙금이 지금도 남아있다면? 그래서...."

은유하는 목소리를 낮췄다.

"...화권을 진짜로 아지다하카와 하게 해서, 제물로 바치게 한다면?"

카르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 한 번 전화해볼까?"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승형에게 전화를 건 순간.

<대상이 통화권 외에 들어가있습니다.>

"......."

마도기어를 통한 전화가 닿지 않았다. 카르나와 은유하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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