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화 〉1부 18장 16
"지, 옥, 염!!"
"쓰읍, 쓰읍."
결국 불편을 참지 못한 집행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화권은 전방을 향해 날아오르며 두손을 모아 불타는 주먹을 내리찍으며 온갖 기술명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집행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불타면 지는 거예요. 진지해지면 지는 거라고요."
"압니다. 아는데. 하아…."
매사 진지한 입장이어야하는 집행관으로서는 여러모로 분을 삭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화권이 기술명을 외치며 괴수를 잡는 일련의 행위들에 대하여, 당연히 불편해하는 이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야, 괴수 잡는게 장난이야!' 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괴수한테 살해당한 분들도 계신데 저런 식으로 장난 치는 건 조금 불쾌하네요'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그야 당연한 거잖아요."
집행관이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쪽이었다. 집행관은 전문가처럼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걸 원하지, 괴수를 잡는 걸 마치 예능 프로그램마냥 진행하는 걸 상당히 꺼려했다. 그로 인해 잘못하다가는 따라하는 이들이 생겨, 충분히 인명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하아, 정말 아지다하카 문제만 아니었어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 불편함의 차이야말로 아지다하카 공략의 핵심이에요."
나는 드디어 집행관이 중요한 지점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선을 넘고 안 넘고. 지금 화권은 명백히 선을 넘고 있죠. 실연의 아픔으로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을 넘었다 싶으면 사람이 지적을 하고 싶어지고, 화딱지가 나서 참견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지다하카를 공략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집행관에게 마지막 퍼즐을 알렸다.
"즐기는 것도 적당히 즐겨야 되겠다 싶지만, 과하면 그만하라고 참견하고 싶어 지잖아요? 물론 그게 정론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남들은 다 괜찮다고 넘어가는 부분인데 불편하다면? 특히 그게 자기가 아는 거랑 저--언혀 다른 거라면."
"무슨 말씀이세요?"
"참견하는 부분이 다르다. 집행관처럼 진지한 걸로 지적하는 분이 계시다면, 세상에는 별 희안한 걸로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어요."
마침 화권은 지하로 향하는 마지막 괴수를 쓰러뜨렸다.
"승룡권!"
"봐봐요."
나는 하늘 높이 양 팔을 뻗어올리는 화권을 가리켰다. 하늘 높이 주먹을 쳐올리며 한 바퀴 몸이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중계방에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ㅋㅋㅋ'의 향연을 가리켰다.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뭐 하나는 걸릴 걸요? 푸흐흐."
* * *
"저거 귀신 태우기인데...?"
아지다하카는 허리를 흔드는 것 조차 멈췄다.
"승룡권? 어떤 멍청이가 승룡권이래? 당연히 불 붙이면서 제자리에서 올라가는 건 귀신 태우기인데...."
아지다하카는 아래에 깔아놓은 딜도에게서 몸을 들어올려 모니터를 붙잡았다. 소파는 구속된 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아까부터 뭐하는 거야?! 하나 둘 씩 다 틀려먹었잖아!!"
아지다하카는 스크린 속 이승형을 향해 으르렁 거렸다.
"저거 꼭 잡아야 해! 일단 자빠뜨린 다음, 철저하게 가르쳐 놓겠어!!"
아지다하카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제발 하나라도 걸리라는 마음으로 광역 어그로를 끌고 가기도 어언 한 시간.
키프로스 섬의 내륙 안쪽까지 도착한 우리는 화권과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아 지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갔다. 비록 키프로스 섬은 화산섬이 아니기는 하지만, 지하로 계속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숨이 쉬기 어려워지고 답답해지기 마련이었다.
"도착했어요."
일행의 선두에 선 나는 미니피닉스의 인도에 따라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신전 앞에 멈춰섰다.
"지하에 이런 신전이...?"
"이럴수가. 이곳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곳입니다. 어떻게?"
사실은 히드라가 알려준 길을 따라 미니피닉스를 움직였을 뿐이지만, 내 뒤를 따르는 히어로들과 그걸 영상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마치 내가 어떤 신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내려온 걸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제복을 살짝 들어올려 무릎을 숙였다.
"태양의 인도죠."
원작의 인도였다. 키프로스 섬의 지하에 위치할 S급 괴수를 히드라가 쫓아내고 거기에 마그마 드래곤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히드라가 그리도 닥달을 해도 내가 간부가 아닌 존재라는 걸 도저히 믿지 않던 그 의심병 환자를.
"흠흠,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신전의 제단 위에 홀로 올라섰다. 열심히 기술명을 외치며 오던 화권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원작의 기억을 더듬어 되는대로 지껄여야 하는 나로서는 등만 보이고 싶었다. 차마 부끄러움에 일그러질 것만 같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일기(日氣)가 좋은 날, 진흙같이 어두운 이 땅의 아래. 청화가 인사 드리옵니다."
[나다.]
나의 목소리가 신전을 울렸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푸른 마력이 신전 전체를 휘감아,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실제로는 내 마력을 거대 괴수-<마그마 드래곤>에게 전하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당신이 내려주시는 햇살은 그 어떤 죄인도 피해가실 수 없으실지니."
[히드라가 한 말은 진짜니까 슬슬 머리 들이밀고 나와라.]
구구구.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히어로들이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의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성간을 넘어온 이계의 괴물을 따르는 자들이여, 보라."
[대가리 박아.]
콰아앙!
마그마 드래곤이 신전 한가운데에 거대한 머리를 들어밀었다. 몸 전체가 마그마로 이루어진 거대 웜은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조아렸다. 대가리를 박았다.
"태양의 빛을 두려워하라!"
나는 두 손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뒤에서 나를 따라 두 팔을 치켜드는 자들이 슬쩍 보였지만, 나는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창염개진!"
파아아앗.
푸른 불꽃이 마그마 드래곤을 감싸안았다. 동시에 마그마 드래곤의 거체가 푸른 마력의 알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꾸드득, 꾸드득.
땅이 메워지고, 알은 가루라 때와 마찬가지로 그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는 하늘 높이 치켜든 두 팔을 내려 좌우로 벌렸다.
"함께 태양의 아래로 나아갑시다, 마그마 드래곤."
쩌적, 쩍. 불꽃의 알이 깨지며, 알비노같은 백발 적안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나보다 훨씬 키가 커서 내가 올려다 보아야 할 정도였다. 여인-마그마 드래곤은 알몸으로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마그마 드래곤에게 내가 목에 휘감아둔 베일을 벗어 입혔다.
"다시 한 번 만나서 반가워요, <샐러맨더>."
"......진짜로 당신이시군요."
마그마 드래곤, 본명-샐러맨더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키프로스 섬에서 가루라에 이은 진정한 두번째 사도를 맞이하였다.
* * *
마그마 드래곤, 샐러맨더를 사도화한 우리는 조용히 숙소로 돌아왔다. 터키의 테이엔 총리는 샐러맨더라도 명명한 사도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샐러맨더를 데리고 곧장 특실로 돌아왔다.
"음…."
"주, 주인님?"
"성숙하게 되면 이런 모습이려나."
가루라가 개천광의 부하가 화속성이 되었다면, 샐러맨더는 지륜의 부하가 화속성이 된 케이스였다. 길이만 무려 1km가 넘는 거대 샌드웜이 끝까지 살아남아 창염의 비호 아래에 들어갔고, 전신에 마그마의 갑옷을 받아 지하 방어의 중추 역할을 했다.
"하늘의 가루라, 땅의 샐러맨더."
"...그 이름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그런데 주인님, 그, 히드라...님이 하신 말씀이 진짜입니까?"
"네. 피닉스라고 불러요. 성주 이기기 전까지는 피닉스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힘이 약해서."
샐러맨더는 고개를 떨구었다.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었지만, 샐러맨더는 우주 방어의 패배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괜찮아요. 여기서부터 이제 힘을 쓰면 되니까. 그러면 샐러맨더, 당신의 역할은 뭐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여성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샐러맨더는 옆에 앉은 백희아를 향해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희아 또한 샐러맨더에게 손을 뻗으며 악수를 했다.
"그래요.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집행관을 지켜주세요. 저는 지금부터 잠입작전을 시작해야하니까."
"...조심하세요, 피닉스 님. 아무리 상대가 약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방심이라, 저랑 몇 억 광년은 거리가 먼 말이네요.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나는 둘의 어깨를 토닥인 뒤, 코트를 챙겨 특실의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또다시 청청 패션을 한 이승형이 벽에 기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요?"
"사람들 반응을 잠깐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승형이 내민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이승형이 키프로스 섬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들에 대하여 소위 전문가들이 조목조목 분석을 달아놓은 글이 화수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이게 아지다하카를 공략하는 길입니까?"
"그럼요. 만약에 누가 당신보고 선의철 아들이라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저 방금 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에 이해한 것 같습니다. 족보라도 까서 인증할 겁니다."
"그런 셈이에요. 아지다하카도 적어도 취미 생활 하나는 가지고 있을테니. 기껏해야 격겜을 해도 맨날 CPU 상대로 스토리모드나 진행하겠지만. 그럼 이제 명함 줘봐요. 공략하러 가야지."
나는 이승형으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았다. 아지다하카의 키스 마크가 박힌 명함은 일종의 카드키였다.
"이건 블랙 바이블로 들어가는 열쇠예요."
회차마다 입구의 위치가 랜덤하게 바뀌는 아지다하카의 성지는 아지다하카가 큐브를 통해 만들어낸 이계다. 아지다하카는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마암룡을 이계에 숨겼고, 오직 분신으로만 움직이며 대외 활동을 벌였다.
"블랙 바이블로 들어가는 이계의 문으로 들어가면, 이 명함을 통해 이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때문에 아지다하카만이 알고 있는 입구가 아니면 블랙 바이블, 검은 성지로 넘어가는 방법은 없다. 심지어 그 입구도 아지다하카의 초대를 받은 초대남만이 입장이 가능하다.
"저를 두고 초대남이라고 하니까 뭔가 이상한데요."
"초대를 받은 남자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이승형은 블랙바이블로의 초대 명함을 받았다. 그것의 의미는 단 하나.
"이거, 이승형 당신을 몸으로 유혹하겠다는 거네요. 축하해요, 아지다하카의 섹프로 선정된 것에."
"싫습니다. 결국에는 타락시켜서 제 시체로 차원문을 열려는 거 아닙니까.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걱정마요. 나도 당신보고 가루라 놔두고 바람 피우라고는 말하지 않을테니. 대신 형사가 잠복근무 하는 거라 생각하세요. 당신, 저랑 일 하나 하는 거예요."
나는 이승형에게 명함을 돌려줬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이승형의 뒤를 철저히 추적하는 것. 검은 성지의 위치는 예상이 가지만, 결국 아지다하카가 직접 열어주는 순간이 아니면 찾아도 의미가 없었다.
"잊지마요. 오늘 저녁부터 당신이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그곳으로 가자고 하는 놈이 있을 거예요. 그 놈이 범인입니다. 알겠어요?"
"예. 전혀 당황하지 않을테니 걱정마십시오, 스승님."
나와 이승형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작전을 시작했다. 서로 외투를 챙겨 특실의 복도를 빠져나갔다.
"이보시오."
나가기 직전, 등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가 우리를 불렀다.
"내 한 가지 제안이 있어서 왔소만."
"...무슨 부탁이에요?"
"아, 청화 양. 내 부탁은 화권에게 있소. 다름이 아니라."
원탁의 일원, <살라딘>은 어색한 얼굴로 밖을 가리켰다.
"그대가 좋다면, 잠시 여흥을 즐기러 가겠는가? 장소는...일세."
"......."
나와 이승형은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믿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상황을 우리는 수용해야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그건 곤란한데. 그곳은 여인에게는 금지인지라."
"왜요?"
"율법이 그러하다네. 부디 선처해주시게. 남자끼리 다녀와야하니. 그럼 화권, 생각이 있다면 나와 함께 가겠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원탁의 히어로이자 S급 히어로인 <살라딘>이 이승형에게 제안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검은 성지로 통하는 바로 그곳을.
"아무래도 자네에게는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일세. 내가 좋은 곳으로 모셔다 드리지."
...어그로를 끌어도 너무 제대로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