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화 〉1부 18장 15
아침이 되었다.
자고 일어난 사이, 이승형이 부른 노래는 전세계로 퍼져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본래는 개똥벌레라는 이름에 대하여, 번역기가 열일을 한 덕분에 '반딧불이(Firefly)'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알려져버렸다.
덕분에 전세계에는 의도치 않게 올드 K-POP 열풍이 불게 되었지만, 당장 나와 화권, 집행관이 할 일은 키프로스 섬으로 가서 <마그마 드래곤>을 비롯한 괴수들을 쓰러뜨리는 일이었다.
위이잉.
모터가 도는 쪽배에 앉은 나는 화권의 운전에 따라 몸을 맡겼다. 내가 운전을 직접 하려고 했지만, 집행관은 운전을 화권에게 맡겼다.
"제가 운전해도 되는데."
"과속 밟으실 거잖아요. 안 됩니다. 화권, 정속주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운전대를 빼앗겼다. 집행관은 이미 백나로 호와 동기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다른 탈 것과는 동기화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나 다음으로 운전 실력이 좋은 화권이 키를 잡았다.
"청화 님, 간단하게 브리핑을."
"어느쪽이요? 낮? 아니면 밤?"
"낮이요."
집행관은 귀를 톡톡 건드렸다. 듣는 귀가 많다는 의미였고, 실제로 우리 보트 주변에는 함께 호위함으로 나선 보트들이 육각형의 진을 그리고 있었다.
"<마그마 드래곤>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는 거죠? 그런데 설명이라고 할 만한게 없어요."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키프로스 섬을 가리켰다. 터키에서 바로 남쪽으로 직행으로 내려와 키프로스 섬으로 가는 루트는 생각보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가루라 때처럼 날뛸 건 아니니까."
"...휴우."
집행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한숨에 괜히 장난기가 돋아났다. 남들이 듣지 못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그마 드라군으로 해드릴까요? 아, 정확히는 마그마 용기병. 이번에는 사족 보행의 기계가 되어서 가운데에서 화염구를 쏴대는 건데...."
"그러지 마세요. 제발."
"쳇."
그래도 이번에는 잡기 쉽게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기회는 날아갈 것 같았다. 화권은 이미 내가 간밤에 언급한 것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를 높였다.
"지저의 여왕님, 케레스 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마그마 드래곤은 성격이 온순해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본인이 날뛸 일은 없다고. 그러면 주변의 괴수들만 적당히 치워주면 그 다음에는."
나는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하늘을 향해, 태양을 향해 두 팔을 쩍 벌렸다.
"창염개진! 하는 거죠."
"그거 이제는 안 부끄러워하시나요?"
"부끄러워도 어쩔 수 있나요. 이미 온세상에 다 선언을 해버렸는데. 괜찮아요. 햇빛이 내리쬐는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나마 극히 일부나마 이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에 다행으로 여겨야할까. 나는 보트 맞은 편에서 나를 향해 두 팔을 하늘높이 치켜든 히어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예를 표했다.
"창염개진!"
"Praise The Sun!!"
태양교단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었다. 한자로 된 네 음절 단어를 발음하기 힘든 외국인들은 그냥 '태양만세'를 외쳤고, 나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다. 원래 그런 의도니까.
청화가 창염이며 창염이 곧 태양이니, 태양에 대한 찬양은 곧 창염에 대한 찬양이었다. 창염 만세.
"정말."
물론 그런 내 기행에 가까운 행동에 대해서, 집행관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가다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 행동만 골라서 하신다니까요."
"집행관.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세계 평화를 위함이랍니다. 잘 들어봐요."
나는 집행관의 옆에 붙어앉아 낮게 속삭였다.
"원래 아싸들은 인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죠."
"제가 아무리 전자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청화 님의 창염개진이 인싸 문화가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요."
"그러니까 집행관이 아싸인 거예요. 화권!"
척!
화권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팔을 45도로 치켜들었다. 운전을 해야하니 한 팔만 하기는 한게 유감이었지만, 그래도 화권 또한 태양 교단의 일원이었다.
"누구든 태양을 찬양하면 태양 교단의 일원인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따지는 순간 아싸가 되는 거예요. 그냥 즐겁게 무언가를 같이 하고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행관, 하늘을 향해 외치세요. 창염개진!"
"......창염개진."
집행관은 목덜미까지 시뻘게진 상태로 병아리가 날개짓하는 것처럼 손을 살짝만 들어올렸다. 나는 백희아마저도 피폭시킨 것에 속으로 자긍심까지 들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나의 풀영창을 들어야 하는 입장들이었고, 나는 그를 위해 미리 그들의 정신적 내성을 길러주고 있었다.
구구구.
갑자기 바다 아래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괴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집행관을 보트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청화님!"
"위험하니까 안으로."
"지금은 청화님이 위험한 상태거든요?!"
"아. 참. ...에이, 몰라요."
나는 한 손으로는 집행관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보트의 키를 잡았다. 이미 화권은 내게 운전대를 맡기고 보트 앞으로 뛰어넘었다.
"하아아---"
"아니, 설마."
캬오오오오!!
바다 아래에서 거대한 괴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나타났다. 뒤틀린 이빨을 가진 괴수는 심해에서 올라온 것 마냥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타올라라, 나의 불꽃이여! 창, 염, 개, 진!"
화권이 보트 위에서 뛰어올랐다. 나는 키를 돌려 보트가 나아가는 방향을 옆으로 비틀었다. 화권의 오른손에 깃든 하늘색 불꽃이 심해어 괴수의 초롱을 불태웠다.
"오."
나는 화권의 불꽃 색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괴수의 대가리에 하늘색 불꽃이 번쩍였고, 괴수는 화권의 일격에 전신이 타올랐다. 화권은 괴수의 등위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번쩍!
나는 키를 다시 돌려 원래의 코스로 보트를 돌렸다. 화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괴수의 시체에서 점프하여 보트에 착지했다.
"성공했습니다. 청화 님. ...그런데 이거 진짜로 계속해야합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지다하카와 마암룡을 낚기 위한 수단인 거예요."
아지다하카의 성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아지다하카의 환심을 더욱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으로 마암룡이 극혐하지만 아지다하카는 좋아서 미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지다하카같은 패션 인싸나 마암룡같은 찐아싸가 타인과 진심으로 친해지는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같은 주제를 두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때죠."
"혹시 그게-"
"맞아요. 손발과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그렇고 그런 행위들. 마암룡은 속으로만 생각하지만, 아지다하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겉으로 대놓고 소리치고 다니는 행위들."
정령 감수성의 극대화를 통한 심리적 거리 좁히기. 이를 통해 마암룡은 숨겨왔던 자신의 수줍음 마음을 모두 토해내리라.
"속성적으로나 이미지 적으로, 중2병이라는 거 암속성이랑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집행관의 표정이 제대로 굳었지만, 나는 조용히 진실을 감췄다.
히로인 10명 중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자는 두 명이었고, 그 둘은 각각 고등학생 때 한 손에 붕대를 휘감고 다니거나, 또 다른 이는 중학생 때부터 입으라는 교복은 안 입고 매일같이 한복만을 입고다녔다.
누가 누구인지, 진실은 저 너머에. 오직 창염만이 답을 알고 있다.
* * *
그 시각.
아지다하카는 타깃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모처럼 소파에 누워, 화권 이승형의 활약 영상을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요동친다, 하트! 불타라, 주먹!]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아지다하카는 포테이토칩을 씹어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승형의 기합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울리는 소리는 좋았다. 아지다하카는 발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콜라를 홀짝였다.
"아이디어가 신선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괜찮네. 나중에 쟤로 차원문 열 때는 풀영창으로 읊어줘야지. 음, 어떻게 할까...."
아지다하카는 발가락 사이에 끼워넣은 스틱을 빙빙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과연 어떤 영창을 읊어야 피닉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까."
"네 제자 쩔더라? ...음, 이건 기각.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음, 아! 한국인이라고 했지? 흐흐, 어디 한 번 제대로 엿먹여봐야겠네."
아지다하카는 이승형의 국적인 한국의 역사를 훑으며, 스틱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어느쪽을 선택할 지는 순전히 아지다하카의 선택에 달린 일이었다.
"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둘 중에 골라봐. 네가 이제 쟤를 직접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친해져야지."
찌걱, 찌걱.
스틱에서 투명하고 끈적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발바닥에 옅게 펴바르며 발톱으로 스틱의 위를 살살 긁었다.
"'위대하신 령도자 아지다하카 님께 충성!'이 나을 것 같아, 아니면 '아지다하카 여왕폐하 반자이!'가 나을 것 같아? 어느쪽이든 사람들 충격 주기에는 충분한 것 같은데. 뭐? 흐음, 그래. 그게 좋겠다."
아지다하카는 머릿속에 떠오른 자신의 아이디어에 꺄르르 웃었다.
"'창염개병진!' 그냥 가운데에 그냥 한 글자 병만 넣었어. 어때?"
아지다하카의 아래에 깔린 소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지다하카는 열심히 괴수들을 때려잡는 이승형을 보며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쪽 빨아먹었다.
"후훗. 빨리 밤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기름 한 방울 안 나올 때까지 쥐어짜버리게."
아지다하카는 괴수를 쓰러뜨리고 환하게 웃는 이승형의 얼굴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친구가 없어? 뒤질라고. 후후, 지금 당장 내 밑에만 하더라도 있잖아. 안 그래?"
아지다하카는 아래에 깔고 누운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여전히 침대 위의 본체인 마암룡은 몸을 비틀며 쾌감에 괴로워했다.
"그래.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흐읏."
아지다하카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몸은 아래에 깔고 있는 자신의 괴인과 섞지만, 눈은 여전히 이승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도 결국엔 나한테 빠지게 되는 거야.... 후후."
* * *
"어디서 상당히 불쾌한 말이 들린 것 같은데요."
나는 오한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하는 욕이야 그냥 웃고 넘어가 줄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엄청나게 기분이 더러웠다.
"피닉스 욕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에요."
"아녜요. 이건 그보다도 원초적인 불쾌감이라고요."
"청화 님, 혹시 사람들 반응 때문에 그러십니까?"
내가 자꾸 인상을 쓰자 화권은 난감한 얼굴로 손목을 가렸다.
마도기어에는 히어로들의 활약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고, 화권은 마치 V로그를 찍는 것 마냥 실시간으로 중계방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혀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는 다시 이쪽에 집중하겠습니다. 아아, 크흠, 죄송합니다. 잠깐 오프 더 레코드 얘기를 하느라. 어떡하죠? 청화 님이 조금 쑥쓰러워하시는 것 같은데. 청화 님이 영창을 준비하시느라 머리가 아프신 것 같습니다!"
"아니거든요."
V로그까지 켜서 괴수 잡는 촬영을 하는 화권은 지금 제대로 신이났다. 누가 연예인 아니랄까봐 사람 대하는게 정말로 능숙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네, 다시 괴수 잡으러 갈게요. 그럼 여러분, 다음 공격은 뭘로 하면 될까요? 킥은 안 받습니다. 저는 권사입니다. 예? '불붙었다, 어디 한 번 덤벼봐라' 외치면서 주먹질이요?"
현재, 화권은 시청자들과 기술명을 가지고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말하는 기술명에 따라, 실제로 소리를 내지르며 공격하는 이벤트. 그 주먹의 대상은 괴수였고, 실제로 화권은 괴수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온갖 기술명을 외쳐야 했다.
키에엑!!
"그럼 갑니다, 괴멸의 일격!"
화권은 전방으로 높게 뛰어올라 괴수를 처치했다. 괴수들에게 재앙의 주먹이 내려앉았지만, 나는 그보다 확연히 갈린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게 더 재미있었다.
"오글거려서 보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아주 난리에요."
"아아, 화권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플레임 드라이브!!"
집행관은 핼쓱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리 사랑의 쓴맛으로 방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날뛰는 것은 집행관이 생각하는 진중하고 무게감있는 히어로 이미지에 큰 타격이었다.
"작열하라, 타오르는 태양! 버닝 ㅆ-"
"아, 그건 NG."
나는 이승형이 괜히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그의 심장 속 창염을 쥐어짰다.
"...쓰러스트!!"
이승형은 간신히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말을 돌렸다. 나는 이승형의 순발력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승형의 심장에 창염을 박아넣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안 그러면 여러모로 문제가-
"썬! 키스ㅌ-"
"창염개진."
나는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아주 조용히, 이승형의 심장을 향해 창염개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