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1부 18장 12
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클럽은 언제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뿜어져나오는 곳이었고, 세계 멸망이 다가오면서 클럽을 찾는 이들도 점점 늘어만갔다.
"저 클럽은 처음인데요...."
"뉴비왔다---!!"
기존에 클럽을 단골처럼 드나들던 이들도, 클럽에 발을 들이지 않은 이들도 '죽기 전에는 꼭'이라는 심정으로 클럽을 찾기 시작했다.
"저, 여기 라이브 클럽이라고...."
"몰라! 일단 적셔!"
비단 클럽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그런 현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지만, 클럽은 확실히 인간이 정신을 놓고 춤과 멸망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마침 새로 오신 분이 계시네요, 오늘 들려드릴 노래는...방금 만들었습니다, 퍽 유, 플루토!!"
간드러진 재즈를 부를 것 같은 순박한 얼굴의 기타리스트는 도쿄 타워를 범할듯한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클래식을 즐길 것 같은 신사도, 헐벗다시피 입은 젊은 처자도, 심지어 클럽의 사장 마저도 함께 명왕성을 터뜨릴 기세로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퍽 유, 플루토!"
"""퍽 유!!"""
"퍽 유, 다크 레기온!!"
"""퍽 유!!"""
"퍽 유, 아지다하카!!!"
"""으악 씨발!! 저 새끼 아지다하카 한다아아!! 저 새끼 잡아!!"""
"으아악, 아니야!!"
술을 섞어 마시던 히어로들 헌터들이 기타리스트를 잡고 취조하는 등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기타리스트는 결국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낱낱이 까발리는 것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
"솔직히 양심선언합니다! 저는 아지다하카같은 여자는 할머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우우, 개쓰레기다아아아!!"
"하지만 저런 페도필리아를 상대로 아지다하카가 해줄 리가 없지. 아지다하카도 페도필리아는 거른다! 우우우!"
"닥쳐요! 제 아내가 138cm일 뿐입니다! 작아서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작았을 뿐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제 연상 아내에게 바칩니다. 당신은 작지 않아!"
기타리스트는 다시 도쿄 타워를 범하기 시작했다.
22세기 사이버 펑크 시대의 클럽 문화가 이럴까. 혼돈과 혼란이 섞여있는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광란의 해드뱅잉을 시작했다.
"저기요, 이 노래 끝?!"
"끝이 어디있어! 이제 싹다 한 달 밖에 못 사는데! 꺼져, 나 춤춰야 해!"
잘개 쪼개진 비트가 날뛰고, 덩달아 사람들도 정신을 놓고 본능에 이끌려 춤을 추는 가운데, 클럽의 문이 좌우로 열렸다.
끼이익.
오늘따라 유독 낡은 경첩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고, 기타를 연주하던 기타리스트가 피크를 멈췄다.
"뭐야, 뭔-"
음악에 춤추던 사람들이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터키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동양인은 껌을 짝짝 씹으며 클럽 안을 가로질렀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그의 정체와 그에 얽힌 일화를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가 이런 곳에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바텐더."
남자는 아무 말없이 바텐더의 앞에 앉았다. 마침 바텐더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치 주인공을 위한 자리였다는 듯 자리가 비어있었다.
"제일 센 걸로 한 잔."
"......크흡."
바텐더는 묵묵히 이능력자 전용 96도 짜리 독한 스피리터스를 건넸다. 남자는 글라스에 채워지는 투명한 알코올을 보며 헤실거렸다.
"흐흐, 흐흐흐흐. 바텐더?"
남자는 글라스에 반도 채워지지 않은 잔을 가리켰다.
"첫 잔은 원샷. 모릅니까?"
"아니, 이거 96도인데."
"96도면 뭐 사람이 못 마십니까? 96, 96.... 크흡, 가루라가 96이었는데, 크흡."
남자는 잠시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순식간에 클럽은 장례식장을 방불케할만큼 울적해졌다. 남자는 노래가 끊긴 것을 금방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났습니까?"
"그래, 이능력자지? 한 잔 마셔, 잘 찾아왔어, 청년."
바텐더는 술이 흘러 넘치기 직전까지 스피리터스를 따랐다. 남자는 잔을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글라스의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청백의 불꽃이 글라스 위에서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은 묘기에 가까운 그의 행동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권이 이능력을 저렇게 사사로이 쓰다니. 괴수와 괴인들을 불태우던 청백의 불꽃은 글라스 위에서 밝게 타올랐다.
"후후후...."
남자, 화권 이승형은 쓰게 웃으며 불꽃 째로 입에 털어넣었다. 심지어 원샷으로.
탕!
"크흐-."
이승형은 잔을 거칠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첫 잔은 원샷이라는 그의 엄포에 걸맞게, 글라스에는 단 한방울도 남지 않았다.
"다음."
"그게 제일 독한 술이었습니다만...."
"그러면 병 째 주십시오."
이승형은 바텐더로부터 병을 받아 병나발을 불었다.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에 입술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에 사람들은 위로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와아아아아아!!
이 박수가 부디 그의 힘이 될 수 있기를. 하지만 이승형은 또다시 병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콰앙!
다시금 클럽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승형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허리를 살짝 뒤로 늘어뜨리며 팔짱을 꼈다.
"무, 무슨 문제라도...?"
"감질나는 군요."
이승형은 전혀 취하지 않은 얼굴로 손목을 두드렸다.
"오늘 밤, 이 카페를 사겠습니다."
"클럽인데요.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아닐테고."
"......크흠, 말 실수입니다."
통. 이승형은 홀로그램으로 된 돈뭉치를 바텐더에게 던졌다. 바텐더는 자신의 스마트 워치에 입금된 금액에 새된 비명을 질렀다.
2억 유로.
자동 환전되어 입금된 금액에 바텐더는 떨어서는 안 될 손이 부르르 떨렸고, 이승형은 두 팔을 벌리며 전시된 모든 술을 가리켰다.
"이걸로 부족합니까? 혹시 인플레? 팁을 더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그...."
"오늘 밤, 저희 클럽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히어로 <화권>. 이렇게 제 눈을 뜨게 해주신 짜릿한 감각은 처음입니다만...."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사장이 난감한 얼굴로 이승형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른 손님들께서도 마지막을 즐겨야 하시기에, 부디 조금은 남겨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분들도 즐길 수 있게끔-"
"골든벨."
이승형은 빈 병을 뒤집으며 허공에 빙빙 돌렸다.
"마음껏 주문하세요. 오늘 여기 있는 술, 내가 다 삽니다. 대신...."
이승형은 빈병을 들어올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오늘 밤, 저와 함께 술을 좀 마셔주겠습니까...?"
대량의 친구비가 입금되었다.
이승형은 돈으로 술친구를 샀다.
* * *
사람마다 일탈의 정도나 기준이 다른 걸 경시했다. 나는 그리고 이승형이 잠시동안 연예인으로서 활동했다는 걸 무시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타고난 성품을 과소평가했다.
"청자켓을 어깨 뒤로 벗으면서 파-앗! 해야하는데. 저러면 찐따가 아니라 인싸잖아요."
"...차라리 저렇게 어울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이승형이 '블레이즈 댄서 리'가 되었으면 하는 나.
이승형이 한국의 간판 얼굴이자 동방예의지국의 영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백희아.
이승형에 대하여 의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는 이승형의 일탈에 자유를 맡겼고, 이승형은 정말로 열심히 일탈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거나, 근황을 이야기 한다거나, 술에 청백염을 붙여 묘기를 부린다거나. 처음 오더를 받아 한 행동은 조금 찐따같았지만, 이후에 골든벨을 울리고 나서부터 본색을 드러낸 순간부터는 그냥 인싸였다.
"저희같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백희아 아가씨, 저는 중도입니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기 있어요?"
백희아는 얼척없는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지만, 적어도 나는 남들 다 배 안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동안 홀로 함장석에서 독수공방하지는 않는다.
"저는 아싸보다는 인싸를 좋아해서."
"......그거 저한테 하는 말씀은 아니시죠?"
"어라, 이해못하셨네. 그럼 됐어요."
백희아는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고, 나는 다시 이승형이 보내는 광란의 파티에 집중했다. 다들 스마트 워치로 화권의 행태를 낱낱이 생중계했고, 이승형은 전세계에 자신이 괜찮다며 제정신임을 어필했다.
"수렁에 빠졌네요."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동정론이라니. ...피닉스 님, 이러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도 그런 말이 나오면 어떻게 하죠? 왜, 아내가 잠깐 외도를 했어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보듬어 준다거나, 아니면 화권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쪽으로 눈을 뜬다거나…."
"그거야 본인들 취향이 그러니 제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고. 솔직히 당신도 미래에서는…. 취소."
"......예?"
백희아는 진심으로 당황했지만 나는 그저 딸기 아이스크림을 퍼먹은 걸로 뒷말을 삼켰다.
"잠시만요, 피닉스 님? 저기요? 제가 혹시 그 쪽으로…?"
"남자 빼앗는 쪽이니까 걱정마요. 당신이 빼앗으면 빼앗았죠. 아무튼 우리는 클럽에 집중합시다."
백희아가 얼굴을 붉히건 말건 나는 다시 스크린에 집중했다. 이승형의 마도기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클럽의 상황은 우리의 마도기어에 의해 실시간 홀로그램으로 구현되었다. 덕분에 나는 클럽 곳곳을 살필 수 있었다.
"괴인이 둘 있네요."
"......진짜요?"
나는 홀로그램 속 마도기어의 마력 스캔이 튕겨나가는 두 명을 가리켰다.
버니 모자에 선글라스, 가죽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홀로 마시고 있는 남자.
그리고 나시 크롭탑에 치골이 보이는 짧은 핫팬츠를 입고 격렬히 춤을 추는 여자.
둘 다 이승형이 한 번씩 잔을 주고받으면서 마력을 살짝 흘린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승형은 보드카에 자신의 불을 붙이는 장난을 쳤지만, 그 불씨는 주변에 퍼져나가 사람과 괴인을 구분하는 탐지기가 되었다.
"피닉스 님, 당장 잡으러 가죠."
"음…. 쟤들은 냅둬도 될 것 같은데."
그냥 욜로를 즐기러 온 자연발생체 같았다. 이승형에게 쫄아서 나가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술을 마시거나 즐겁게 춤을 추는 걸로 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피닉스 님, 이렇게 해서 진짜 아지다하카가 나올까요?"
"후후, 백희아 아가씨. 아지다하카가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홀려온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세뇌와 패티시 만족을 통한 육탄 공격?"
"이럴 때는 노골적이네요. 맞아요. 근데 그건 최종 단계고, 그 단계를 거쳐가는 과정이 있어요."
내가 히드라를 낚기 위해 수작을 부렸듯, 아지다하카 또한 잘생긴 남자를 낚는 취미를 단순히 세뇌빔을 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아주 간교한 혀로 매혹을 걸죠."
"딥키스로 유혹한다는 건가요?"
"백희아 아가씨, 이제 제가 한 아싸 인싸 드립을 이해해서 성희롱을 하는 거라면 제가 미안해요. 사과하죠."
"...다음부터는 그런 저질 농담은 사양해주세요."
역시 백희아다웠다. 나는 다시금 내 섹드립을 사과한 뒤, 직원용 통로로 나오는 흑발 여성에 입이 바짝 말랐다.
"역시. 선수입장."
"......저 사람이에요?"
백희아는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아지다하카와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아지다하카와는 전혀 딴 판인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왜 아지다하카가 지금까지 발견 안 됐는지 아시겠죠?"
"세상에."
이승형의 앞에는 흑발 스트레이트 머리칼의 바텐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장을 갖춰입은 검은 여인은 눈가에 눈물점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정숙하고 세련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진짜에요?"
"푸흐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승형 조차도 자신의 앞에 쉐이커 보틀을 들고 나온 단아한 여성에 당황했다. 술집 마담같은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수녀원에서나 느낄 법한 경건한 분위기 까지도 아니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사립고등학교 여선생님?"
"...저도 그 생각 했는데."
근엄함과 인자함을 동시에 갖춘 얼굴로, 아지다하카는 이승형의 글라스에 자신이 섞은 칵테일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어버렸다.
[서비스.]
아지다하카는 그 말만 남기고 다른 술을 섞기 시작했다. 타깃이 미끼를 던졌다. 나는 이승형에게 지시를 내렸다.
"물어요! 지금 당장!"
"화권이 개도 아니고…."
"원래 술 먹으면 다 개가 되는 법이에요. 알코올 치트키 치고 있는데 당연한 거죠."
이승형은 온갖 칵테일부터 보드카를 섭렵하고 있었지만, 살짝 피부가 붉어졌을 뿐 전혀 취하지 않았다. 나는 엄지로 심장을 가리켰다.
"화속성 S급 달고 삼매진화 못하면 어디가서 화속성 명함도 못 내밀죠. 푸흐흐."
술에 취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취하게 만들 것인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참으며 상황을 주시했다. 이승형은 진작에 내 지시에 따라 아지다하카를 불렀다.
[한 잔 더?]
그리고 나는 아지다하카의 행동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아지다하카는 무심한 얼굴로 자신의 컵을 들고 두 개의 잔에 칵테일을 채웠다. 핸드쉐이크도 없이 꺼내들었다는 건, 미리 준비해놓은 칵테일이라는 말.
[...가는 길 심심한데 어디 그쪽 얘기나 들어봅시다. 오늘 이거 마시고 힘든 일 전부 잊어버리시길. 블랙 러시안, 맛처럼 달콤한 밤이 될 겁니다.]
"저, 저저 저 거...!"
이 타이밍에 마암룡 연기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