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24화 (424/1,497)

〈 424화 〉1부 18장 6

수속성, <설야>.

지속성, <얄다바오트>.

광속성, <개천광>.

환속성, 투명환룡...아니<군신환룡>.

나는 무조건 2음절 이명을 만들던 유영호에게 그럴듯한 이명이 없겠느냐고 물어봤고, 두 명이 하나가 되는 경우이니 단순히 둘을 붙여서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

원작의 그라면 <군룡>이나 <환신>등을 고집했겠지만, 청송의 마수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덕분에 그도 여러모로 개안한 듯 했다. 어차피 이명이란 원로원에서 정하게 될 테니 따를 수 밖에 없을 터.

따라서, 나는 원로원에도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유영호를 통해 많은 이능력자들의 이명을 스포일러하였고, 원로원은 유영호의 작명 실력을 인정하고 자신들과 같은 반열의 존재로 두었다.

더욱이 추기경이 진작에 아지다하카의 괴인이었다는게 밝혀진 지금, 집정관은 원로원에서 중역을 맡게 되었다.

추기경이 히드라의 괴인?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린단 말인가.

피닉스가 청화를 사랑하게 되어 반기를 든 것처럼, 히드라도 지저 여왕 <케레스>로서 쌓아올린 기반을 잃고싶지 않아 반기를 든 거로 대중들은 이해했다. 케레스는 직접 지상에 나와서 집정관과 단독으로 만나 일단은 인류의 아군임을 천명했다.

그리하여 모든 변수는 차단.

이제 문제는 아지다하카의 소재만 파악하면 될 일.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아지다하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아지다하카는 내가 날뛴다고 하여 히드라처럼 지저로 숨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

도발을 하면 오히려 그 도발에 응해 상대할 관종이지, 결코 도발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나는 아지다하카가 홀릴만한 함정을 파기로 했다. 순하고 착한 청년을 홀려 제 주변에서 알랑거리는 벌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치명적인 꽃이 발정나고는 못 참을 대상으로.

화권 이승형.

잘생김. 바른 생활 청년. 스캔들을 이겨낸 정신력. 그리고 가루라 조차도 제압해버린 정력.

그 모든 조건이 아지다하카가 건드리기에 딱 적당했다. 이승형을 괴인으로 만들어 차원문을 일으켜버리면 그 충격과 공포는 배가 될 것이며, 그건 인류에게 있어서 큰 타격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이승형을 미끼로 쓰기로.

"오랜만이에요?"

"아."

나는 이승형이 양치를 위해 들어간 남자화장실을 급습했다. 이승형은 화장실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내 모습에 제대로 당황했다.

"그, 스승님?"

"정령은 성별 없으니까 괜찮아요."

"아뇨, 그, 남성체가 있으셔도 지금은 여성체지 않으십니까?"

"불만있으면 신고하라고 하던가."

뒤에서 막 남자화장실로 들어오려던 청년 하나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대편으로 들어가려다, 여자화장실인 걸 보고 기함하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야!!"

"잠깐 이야기하려고 들어왔는데요."

"설마 가루라랑 공공화장실 플...은 아니네. 청화 양이십니까? ...청화 양이 남자화장실에는 왜?"

"이 남자랑 얘기할 게 있어서요. 양치 중이라."

"아...."

청년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로 돌아갔다. 내가 워낙에 당당하게 나가니 제대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원작보다 제법 어린 얼굴이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나가면서 바로 마도기어를 두드리는 걸 보니 그 놈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규민이 뭐 잘못했습니까?"

"굳이 지금 잘못을 따지자면 제가 잘못한 거고, 나중에 크게 잘못하게 될 사람은 쟤고요."

아지다하카 못지 않은 관종 빌런이 지금은 은하대학교의 학생이라. 역시 본인 말마따나 운이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내 행동 덕분에 미래가 완벽하게 바뀌어버린 남자.

"양치 끝났어요? 그럼 잠깐 이야기를 좀 하죠."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혹시 대련? 그도 아니면 가루라?"

"별 건 아니고요."

나는 마도기어에서 꺼낸 안경을 중지로 치켜올렸다.

"당신, 나랑 일 하나 같이 합시다."

현재, 세계 그 어느곳에서도 아지다하카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케레스와 지저 왕국의 등장 이후, 아지다하카는 그에 겁을 먹기라도 한 듯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히 불안감에 빠졌다. 수많은 히어로들, 헌터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서 세상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지만, 숨어있던 괴수나빌런이 나올 뿐 아지다하카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 아지다하카를 쓰러뜨리면 세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아지다하카가 명왕성을 부르고 있는 거라더라.

- 아지다하카에게 행성파괴병기의 스위치가 있다더라.

온갖 유언비어와 낭설이 세상을 뒤덮었고, 세계는 혼란스러웠다. 히어로의 역할은 그 혼란을 잠재우는 것이며, 나는 뼛속까지 정의감 넘치는 히어로인 이승형을 제물로 바치고자 했다.

"당신이 아지다하카의 괴인이 되어주셔야겠어요."

"......잘못들었습니다?"

"정정. 당신, 아지다하카가 당신을 괴인으로 만들도록 위험에 노출되어줘야겠어요."

"제가 미끼가 되는 거군요."

이승형은 다행히 금방 이해를 했다. 인도 상공의 5중 차원문 때도 그러했고, 멕시코 시티에서의 활약도 살펴보니 그러했다. 아지다하카는 이승형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네. 당신이 미끼에요. 잘생기고 착하고 호구같고 이능력 재능도 뛰어나고 정력도 좋은 남자. 아지다하카가 뻑 가지 않고는 못 견딜 남자죠."

"그걸 스승님께 칭찬받으니 참 남사스럽습니다."

"가루라랑 어떻게 지내는지 온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무슨. 그래서 당신, 연기를 좀 해줘야겠어요."

"연기요?"

이승형은 히어로이면서 배우를 겸했었다. 그리고 그 연기 실력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천가을을 압도할 정도로 빼어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 연기. 시나리오는 이쪽으로 전문가가 쓰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가을 누님입니까?"

"오, 장르 바로 파악하시네."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서요."

이승형은 팔짱을 낀 채 공포에 떨었다. 내가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후려치는 시늉을 하니, 그게 꼭 자신이 맞는 것처럼 두려워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위험한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네요. 까딱 잘못하면 진짜로 아지다하카 할 수 있는 상황이 될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히어로는 원래 위험을 감수하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이들이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가루라와 제 팬 여러분들에게는 상당히 미안하지만, 제 한 몸 희생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이승형의 미소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누구는 살아남으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저리도 초연하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인류를 구하겠다고 하는 저 영웅의 모습에 허탈한 감정까지 들었다.

"정말 당신의 그 영웅심 하나는 본받을 만 하네요."

"칭찬입니까? 칭찬이시죠?"

"네.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당신의 그 영웅심과 스캔들을 좀 이용해보려고 하는데요."

나는 거울에다가 물기로 알파벳 세 음절을 적었다. 이승형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졌다.

"남자가 가장 심하게 무너지는 순간이 될 때, 불여시같은 년이 접근하면 홀리기 정말로 쉽겠죠?"

아지다하카 공략을 위한 최적의 포지션.

"NTR 당하는 남자가 되어주셔야겠어요."

남주인공, 이승형.

여주인공, 가루라.

그리고 금발 태닝 양아치….

***

공식적으로는 이승형과 가루라의 불법 촬영 영상이 내려가기는 했지만, 네트워크 특성상 어딘가에는 하나의 자료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뭇 많은 이들이 이승형과 가루라의 행위를 부러워했다. 그에 대한 관심은 전세계에 아지다하카하는 자들이 넘쳐날수록 더해졌다.

비록 불법 촬영물이라고 할지라도, 서로의 사랑이 넘쳐나는 순애물은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인기도 끌었다.

물론, 대부분은 남성들이었지만.

"하아…."

기우는 모처럼 새롭게 구매한 1세대 마도기어를 통해 자신의 밤을 책임져 줄 영상을 찾아 나섰다.

3차원 스캔 기능이 달린 특수 카메라를 통해 제작된 영상물은 기우의 바로 앞에서 홀로그램으로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했기에, 적당히 속된말로 '꼴리는' 영상만 찾으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어디 뭐 좋은 거 없...응?"

기우는 영상의 스샷, 이른바 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제목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네 가루■ 쩔더라? ㅋㅋㅋㅋ]

"...에이, 설마?"

기우는 궁금증이 생겼고, 조심스레 문을 걸어잠궜다. 영상의 짤에는 금빛 머리칼의 갈색 피부 소녀가 마치 같은 지역 사람이라도 되는것처럼 금발에 갈색으로 태닝한 양아치에게 안겨 두 손으로 조그맣게 V자를 그리고 있었다.

표지사기가 아닐까. 하지만 업로드 된지 10분도 지나지 않은 영상에는 벌써부터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고 있었다.

-내가 영상 다 받기 전에 짤리지 마라, 제발!!

"......일단 받고 지워야지."

정말로 그런 영상인지 아닌지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기우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영상을 다운받았다. 바지는 여전히 벗어놓은 상태였다.

우우웅!

마도기어에서 빛이 뿜어져나와 방 안에서 홀로그램으로 된 두 명의 인영을 만들어냈다. 공간이 겹치는 곳은 어쩔 수 없이 지나칠 정도였고, 기우는 잽싸게 영상의 설정을 자신의 침대 위로 설정했다.

"......어우야."

중간부터 시작되는 영상에 기우는 마도기어에 연동된 헤드셋을 꼈다. 후배위로 두 팔이 잡힌 채 격하게 박히는 금발의 여인은 분명 가루라를 닮아 있었다.

'진짜 본인인가?'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100명이 보면 99명이 다 본인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기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헤드셋의 소리에 집중했다.

-슬슬 누구 물건이 더 큰지 깨달았을텐데?

-아학, 하으윽! 이, 이 정도는…! 하아악!

"씨발. 미쳤다."

수없이 들었던 그 목소리가 아닌가. 기우는 소름이 돋아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도대체 저 가루라의 뒤에서 마구잡이로 쑤시는 금발의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기우는 궁금증에 슬쩍 침대로 다가갔다.

-그 놈의 거랑 비교도 되지 않지?

-모, 몰라요…!

".......화권보다 더 큰 것 같은데?"

화권도 굳이 따지자면 구렁이였지만, 가루라의 뒤를 탐하고 있는 저 금발 태닝 양아치의 것은 구렁이 수준을 넘어 아나콘다의 수준이었다. 일부러 모형을 만들어도 이 정도의 길이는 아닐텐데, 양아치의 것은 거의 기네스에 올려도 될 만큼 흉측했다.

족히 40cm는 되어보였다. 그리고 누가 원 괴수 아니랄까봐, 가루라는 명치까지 찌르는 물건을 뿌리 깊숙한 곳까지 받아내면서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있었다.

-흐윽, 미안, 미안해요…! 가면, 가면 안 되는데...!

- 어서 그에게 전화해봐라, 흐흐, 전화하면서 한 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뚝. 뚜르르. 기우는 숨을 죽였다.

-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흐윽.

기우는 할 말을 잃었다. 사랑이 넘치고 다정한 두 목소리는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치직.

영상이 끊겼다. 기우는 스트리밍으로 보던 영상이 짤렸음을 직감했다.

"아, 씨발! 미치겠다."

한창 몸이 달아오르게 할 정도였는데 여기서 끊긴다고? 기우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아오, 용량 더럽게 커서 받는 것도…. 헐."

기우는 마도기어 안에 저장된 영상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3분도 되지 않을 짧은 시간만에 영상은 모두 저장되었고, 기우는 문제의 '니 가루□ 쩔더라'영상의 풀버전을 입수하게 되었다.

"......."

그 날.

기우는 일곱번을 쳤다.

문제는 기우처럼 영상을 다운로드한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고, 개중에는 그걸 또 새로이 업로드를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카르나가 아메리카 일대를 지킴에 따라 가루라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승형은 한국에 있으면서 서로 제법 긴 기간을 떨어져있었다.

설마.

혹시.

그리고 이승형은 며칠 쉬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잠적했다.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의도치 않게 마도 기어의 홍보까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홀로그램 AV를 3D로 감상하기 위해 너도 나도 마도기어를 구매했다. 덕분에 마도기어는 일시적으로 품귀현상까지 발생했고, 영상의 제작자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나로서는 스폰서인 은 모씨를 크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프로듀서, 창염의 피닉스.

그리고 두 명의 주연배우는 '성우'로서 최선을 다했다.

천가을 각본의 시나리오.

<네 가루'다' 쩔더라>.

영상 속 목소리의 주인인 이승형과 가루라는 영상을 보며 '더빙'을 했다.

직접 영상에 나오는 당사자는 AI가 탑재된 바이오로이드 가루다. 가루라의 모습처럼 꾸몄다.

그리고 금발태닝양아치는 당연히, 남체화한 개천광 카르나였다.

아지다하카를 낚기 위한 거라고 하니까 기꺼이 나서더라.

역시 암속성 카운터는 빛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