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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21화 (421/1,497)

〈 421화 〉1부 18장 3

싱크로를 한다고 하여 바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사용 가능한 마력의 양이 늘어나는 형태이며, 실제로 히카리는 나의 코어를 연구하며 그 원리를 발견해냈다. 물론 그 사용 가능한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단순 계산으로도 제곱이지.'

그리고 싱크로, 해당 속성의 신이 되는데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이르게 된다. 원작에서도 서로 절친이라고 평가받던 조합도 싱크로에 불발이 일어나기도 할 정도로 싱크로는 힘들었다.

"...안녕하세요, 피닉스 님?"

그런데 그 예외가 눈앞에 나타났다. 여신은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은은하게 웃었다. 그 모습은 내가 원작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성녀 이유나(21세, 진 26세)의 모습이었다.

"......성장했네요?"

"네. 아무래도, 음…. 이런 표현이 맞을까 모르지만."

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좌우로 한두바퀴 돌렸다. 옷차림까지 대학생처럼 변했고, 몸 구석구석도 젖살이 빠지며 한층 성숙해졌다. 성숙함과 풋풋함이 동시에 자리를 잡고있는, 정말로 신비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히드라와 지륜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싱크로는 하게 되었는데, 제가 메인이 되어서 전부 뒤섞여버린듯한 그런 느낌?"

"유나라서 그런걸까요."

나는 원작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간부-정령-인간의 삼단 싱크로 현상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히카리에게 연락을 넣었다. 히카리는 막 잠들려고 했는지 잠옷차림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저 아직 못 찾았는데요.]

"히드라가 유나랑 싱크로해버렸어요. 지륜까지 있는 상태에서."

[기숙사죠? 바로 갈게요.]

히카리는 바로 연락을 끊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숙사까지 날아왔다. 나는 창문을 열어젖혔고, 불과 5분이 채 되지 않아 히카리는 좌식형 대형 로보트에서 내려 방안에 굴러들어왔다.

"저거 뭐예요?"

"히카리제 특수기동병기요. 본인은 이동용 메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얼굴은 영락없는 군담이다. 본인은 흉조(凶鳥)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나가 흉조메카에 눈이 팔린 사이, 히카리는 유나에게 눈이 팔려있었다. 히카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과연. 드디어 싱크로를 한 소체가…!"

"소체요?"

"......저 히메지 히카리, 이런 샘플을 눈앞에 두고 빠꾸는 없습니다! 유나 학생, 제 실험용 소체가 되어주세요!"

"그건 좋은데요 교수님, 피닉스 님 말씀에 따르면 저는 조금 특이한 것 같은데요? 보통 싱크로한 대상과는 조금 다른? 그런 특이개체?"

"히힛,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특이개체라도 샘플 자체가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일단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나는 히카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히카리는 유나에 관한 제반 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유나가 말하는 '뒤섞인 느낌'에 대해 자신만의 가설을 내세웠다.

"심기체가 삼위일체로 하나가 된 것 같은데…. 정신은 유나양이고, 마력은 지륜, 그리고 몸은 히드라? 단장님, 보세요. 지금 유나 양의 마력에서 뭐만 활성화되어있는지."

"...지속성밖에 없네요."

싱크로가 성공했다는 증거기도 했다. 유나는 싱크로 이전에는 전속성을 SS까지 찍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존재였으나, 정작 한 정령과 싱크로를 하고 나면 그 속성만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나는 손을 들어 마력을 일으켰다. 지속성만 나왔다.

"확실히 그러네요. 피닉스 님이 주신 화속성 마력이 전부 억눌려있어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뇨? 완전히 억제되어 있어요. 방출 자체가 지속성 마력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유나는 손에서 실뜨기를 하듯 마력을 짜냈다. 유나의 손 사이에는 연필심이 들려있었고, 유나는 이리저리 손을 돌리며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나와 히카리는 유나의 행동에 침을 꿀꺽삼켰다.

"저거 혹시-"

"단장님, 쉿. 무례는 결과 보시고 혼내세요."

"......."

히카리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확 혀로 핥아버릴까 싶었지만, 히카리의 의도대로 유나의 집중을 깨지 않기로 했다. 결과가 나쁘기라도 한다면 바로 히카리의 볼기짝을 때리리라.

유나는 5분간 숨조차 쉬지 않으며 연필심을 마력으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다 됐어요."

유나는 손가락 위에 연필심을 바꾸어버린 물건을 올리며 우쭐댔다. 우쭐할 수밖에 없었다. 개당 300원도 되지 않을 연필에서 심을 추출한 유나는 흑연심을 완벽한 구형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냈다.

"혹시나 해서 될까 해봤는데 되네요?"

"......역시 여신."

은유하가 알면 아마 뒤집어지지 않을까. 순식간에 연필심을 다이아몬드로 연성해버린 유나의 힘은 가히 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외형은 다이아몬드인데 내부는 마력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나는 외부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코어를, 지속성 정령석을 연필심 하나로 만들어냈다.

역시 유나는 여신이었다.

"히카리. 탄소나노튜브를 유나가 만들어버리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당신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탄소나노튜브든 그래핀이든 뭐든지 만들 수 있다면, 아마 20년 내로 궤도 엘레베이터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연필심을 가지고 이런 걸 5분만에 만들어내는 순간부터 여러모로 미친 것 같은데. 이건 이미 마법의 영역이에요. 단순히 이능력이 아니라, 진짜 마법."

히카리는 두 손을 들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기를 포기했다. 마력을 통한 이능력도 마법이었지만, 히카리에게 마법은 자신의 사고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나 다름 없었다.

"진짜 신이네요. 근데 단장 님, 설화령도 싱크로하지 않았어요?"

"본인이 마력 쓰는 테크닉이라거나 실력이 SS급에 머물러 있어서 그래요."

하랑과는 달리 유나는 이능력의 사용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그래서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든다는, 옛 중세시대 연금술사들이나 할 법한 생각을 스스럼 없이 해냈다.

"아, 잠시만요. 저 이거 연습 좀 해볼게요."

유나는 샤프통에서 심을 전부 빼내어 마력을 조정했다. 좁쌀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코어가 십수개 만들어졌고, 유나는 그걸 마력으로 이어 히카리의 손목에 걸었다.

"선물이에요."

"대박. 유나 학생, 아니 유나 언니. 이제부터 언니라고 부를게요."

"...교수님 저랑 나이 차이가-"

"원래 이능력 짱 쎈 사람이 형님 언니 하는 법이에요. 아니면 여신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아, 아니다! 유나 언니, 제 연구실에 들어오세요! 은하대학교에 대학원 만들어지면 대학원생으로!"

"그건 좀."

여신조차 대학원생은 사양이었다.

아무튼. 유나는 히드라의 육체와 지륜의 마력을 이어받은 신이 되었다. 나는 원작처럼 히드라가 주체가 될 것이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지륜이라는 존재와 유나라는 특이성이 시너지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신은 여신이고, 전투력은?

"유나."

"네."

"훈련 프로그램 솔플 어디까지 잡았어요?"

"...S급에서 막혔어요."

유나의 눈꼬리가 아래로 쳐지며 시무룩해졌다. 히카리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유나의 프로그램 클리어 상태를 확인했다.

"전 속성 A급까지 클리어. 나머지는...시도 횟수는 많은데 클리어하지는 못했군요."

"네. 흑염룡 님이야 워낙 도전자가 많아서 거의 시도를 못하는데, 다른 괴수들은 홀로그램인데도...."

유나는 여전히 흑염룡도, 물지기도, 지파룡도, 캘리펠라도, 야차도 클리어하지 못했다. 다른 속성이나 다른 종류의 S급 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그 아랫 단계의 적들을 모두 물리친 것도 상당히 대단한 성과였지만, 그래도 유나는 솔로 클리어를 고집하고 있었다.

"유나, 어차피 나중가면 다같이 싸워야할텐데...."

"합은 제가 다른 분들께 맞춰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저 그건 자신있거든요. 그리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거죠. 가령...."

유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웃으며, 자신이 상정한 최악의 경우를 언급했다.

"피닉스 님 말대로, 제가 진짜로 적이 된다면 저랑 친하게 지내던 분들은 모두 저를 죽이는데 손대중을 할 거 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 상태로 계속 가는게 나아요."

나 때문에 유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갸륵하기는 하지만, 괜히 유나에게 막대한 짐을 지운 것 같아 미안했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 그러했지만, 유나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여러모로 미안하네요. 고맙고."

"...꼭 죽을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무렴 당신이 죽는 것보다 제가 죽을 각이 더 많이 보여서."

싱크로를 하면 할수록 성주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성주에게 세뇌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생각난김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히카리,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거로...."

"이거라면 밤을 지새울 수 있습니다! 흐히히."

"...발동 걸렸네. 아참. 유나."

나는 창문을 나서기 전, 유나에게 싱크로를 해제하는 마법의 주문을 알려줬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으면 '그라운드 제로'라고 외치세요. 그러면 다시 분리될 거예요. 진짜로 가능할 지는 모르니까, 나중에 저희 없을 때-"

"그라운드 제로!"

파---앗.

유나의 몸집이 줄어들었다. 유나의 머리칼은 다시 검게 물들었고, 유나의 등 뒤에는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 히드라는 분리되자마자 벽에 이마를 짚었다.

"와, 바로 분리됐다."

"......피닉스, 혹시 다시 싱크로 할 때도?"

"네. 당신들이 어떻게 싱크로하게 되었는지는 히카리가 밝히게 되겠지만, 둘-아니 셋이서 싱크로 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나는 두 손을 깍지끼며 활짝 웃었다.

"손잡고 외치세요. 그라운드 제로! 포즈는 둘이서 합의 보시고. 거기 그쪽 관련해서 전문가가 있으니까."

"......후후, 단장님. 제게 정말 막중한 임무를 맡기셨군요."

히카리는 마도기어를 두드려 허공에 온갖 영상물을 펼쳤다. 그곳에는 오토바이 핼멧같은 투구나 가면을 쓴 수 십 수 백 명의 남자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하늘하늘한 옷차림의 소녀들이 온갖 포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 유나 언니, 히드라 씨. 저랑 같이 지금부터 가장 적절한 포즈를 찾아보도록 할까요...?"

히메지 히카리.

특촬물과 전대물과 마법소녀물의 덕후로서, 유나와 히드라/지륜의 싱크로체인 <얄다바오트>의 변신 포즈를 만들어내리라. 나는 둘에게 애도를 표하며 유리창 너머로 빠져나왔다.

"그럼 이제...."

지속성 싱크로, <얄다바오트>가 동료가 되었다.

"다른 애들 만나러 가야겠네요."

언제까지 피하고 다닐 수 없으니, 내가 직접 만나야 할 터. 나는 나를 노리는 또다른 하이에나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아, 음. 환룡? 한 두 시간 뒤에 북경으로 갈게요. 네. 두 명이서."

다행히 환룡은 별다른 조건없이 내 방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나를 쫓아오는 세 명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환룡의 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몰래 문자를 넣었다.

[처음 만난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 정도 문자면 충분하리라. 나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내가 정한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 시각, 카페 Padre Juan.>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세 여인 중, <팬텀> 천가을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가을은 문자를 보자마자 의연한 표정으로 문자를 닫아버렸다.

"......고객님이죠?"

"가을 언니야, 숨기면 안 되는 거 알제?"

눈치 빠른 것들. 나름 아무렇지 않게 대처한다고 했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고 말았다. 가을은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호출됐어. 왜?"

"우리 얘기는 없어요?"

"몰라. 나만 부른 거니까 한 명 한 명 얘기하려고 하는 거겠지. 셋이 같이 달려들면 걔 분명 멘탈 터질 걸?"

가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어둔 코트를 챙겼다. 그 코트는 현재 로마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누군가의 코트를 꼭 빼닮아 있었다.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 나 다녀온 다음에 그 문제를 정하는 걸로 하자."

"...혹시나 고객님이 언니를 먼저 불렀다고 해서, 언니가 첫번째는 아닌 거 알죠?"

"뭐래. 나이 상으로 내가 제일 연상인 거 몰라?"

"...저희가 살게될 곳이 전부 제 자금이 들어간 거 잊으셨어요?"

"유하 언니야."

가만히 있던 하랑이 블루베리와 딸기가 혼합된 요거트를 마시며 담담히 말했다.

"일단 가을 언니야 보내고 나서, 그 뒤에 이야기 들으면 안 되겠나? 가을 언니야도 가서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예요? 우리 동맹 잊으면 안됩니다?"

"물론. 당연하지."

가을은 엄지를 치켜올리며 카페를 떠났다. 모처럼 분위기를 내기 위해 주차장에 대어놓았던 차를 타고 여의도를 질주했다. 이미 서울의 모든 인프라는 복구되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잘 발달되어 있었다.

"동맹이라...."

과연 이 피비린내 날 동맹이 얼마나 갈까. 가을은 두 동맹에 발을 걸쳐놓은 입장에서, 여러모로 난감한 입장에 처해있었다.

"뭘 동맹이라고까지 거창하게 표현할 게 있을까 싶기는 한데."

어차피 자신이 승리를 확정지으면 동맹도 끝나는게 아닌가. 가을은 S급의 기감으로 도로를 질주하여, 금방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관악산.

S대학교, 강의동.

안 좋은 기억이 짙은 주차장에 차를 대충 대어놓은 뒤, 가을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강의동에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곳은 평범한 강의실.

"일찍왔네요?"

피닉스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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