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1부 18장 2
서울에서 피닉스 찾기.
청화가 아닌 피닉스 본인을 찾아 나서는 이들은 이전부터 많았지만, 피닉스가 유배되어있는 백영도가 아닌 서울에서 피닉스를 찾는 사람들이 셋 있었다.
"가을 언니야, 어디 연락들어온 거 있어요?"
"이쪽은 없어. 등대가 지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안 보인데."
"...지화 씨가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니고?"
석하랑, 천가을, 은유하.
현재 셋은 피닉스를 찾아 서울 곳곳을 방방곡곡 뒤지고 있었다. 지금은 하늘에 태양이 쨍쨍 내리쬐어 숨어있을 수 있지만, 어두워지고 난 다음이라면 충분히 그 위치를 발견할 수 있을터.
"아키택트 제보에 따르면 히드라와 함께 다닌다고 했어요."
"쳇. 건방져.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지속성 정령이니까 돌이 맞기는 하죠?"
셋은 한숨과 함께 결국 카페로 돌아갔다. 언제나처럼 김펜릴이 그들을 맞이했고, 셋은 각자 마실 음료를 주문하며 정보를 모았다.
"피닉스가 히드라 데리고 만날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음…. 지속성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 피닉스가 아끼는 그 부하 2호라는 사람도 지속성 아니에요?"
"아냐. 그 놈 상대로 굳이 그렇게까지 챙겨줄만큼 아끼는 사람은 아니야. 아끼는 빠따, 몽둥이지."
"아무리 그래도 빠따는…."
"아냐. 네가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게 사람 신경을 살살 긁는다니까?"
사람이 순식간에 무기취급을 받았지만, 그게 현 청화단에 있어서 조덕배의 위치였다. 본인이 잘 하기라도 한다면 옹호의 여지가 있을 법했지만, 조덕배는 여러모로 많은 곳에 밉보를 보였다.
"암만 걔가 지속성 지속성 노래를 불러도 소용없어. 본인이 뭐 다른 애들처럼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나서서 괴수들 잡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야. 그냥 피닉스 구르는 거 옆에서 보는 걸 좋아하는 변태 새끼일 뿐이야."
"신랄하시네요."
"사실이 그런 걸. 뭣보다 괘씸해서 용서가 안 돼."
가을은 마도기어에서 사진을 꺼냈다. 젤라토를 두 개 들고 걸어가는 백색 코트의 남성에 셋은 속으로 숨을 삼켰다.
"이게 있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안 알려줬다는 거잖아."
"원인을 따지면 고객님이 원흉이기는 한데…. 저는 말이에요."
유하는 김펜릴이 놓고간 콜드브루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너도? 나도. 근데 나는 평소 모습이 더 좋아."
"...아니, 뭐 저도 그렇기는 한데요…. 이왕이면 남자인 쪽이 낫지 않아요?"
세 명의 취향이 갈렸다. 원두커피와 캬랴멜 마키아토, 그리고 블루베리처럼 그들이 피닉스에 대해 가진 취향도 확연히 갈려버렸다.
"그럼 이제 당사자가 어디에 있냐는 게 중요한데…."
가을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하랑을 노려봤다.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렇잖아."
"언니야는 진짜로 하려고 들었잖아요."
"둘 다 똑같은 데요."
"지는 똑같이 생긴 인형 만들어서 색깔별로 재미보고 있는 주제에."
"......본인 허락 받았거든요? 원하면 쓰게 해드려요?"
"됐어. 너랑 카르나에 나까지 구멍동서 하기는 싫으니까."
하랑은 민망해서 블루베리 요거트를 쪽 빨아당겼다. 심신의 안정이 되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유하 언니야는 인형을 쓰면 되고, 가을 언니야는 남자로 변신하면 되고…. 진짜 피닉스 남자로 변신 안 되요?"
"직접 안 보면 안 돼."
가을이 가진 이능력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게 피닉스가 한사코 가을에게서, 다른 둘에게서 남성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도망다니는 이유였다.
천가을, 남성형으로 변신해서 자신을 덮치려 할 것 같더라. 아니면 남성형으로 변하라고 강제하고 촉수로 덮칠 것 같더라.
은유하, 남성형의 신체 데이터를 스캔해서 바이오로이드로 만들 것 같더라. 그리고 인형을 이용해서 8P 대리만족을 할 것 같더라.
석하랑, 그냥 힘으로 덮쳐서 강간할 것 같더라.
그게 피닉스가 셋에게 잡히기 전에 도망치며 남긴 말이었다.
"칫."
"쳇."
"...아니, 생각은 할 수 있지."
확신범, 실행범, 그리고 잠재 용의자는 오해를 풀기 위해 피닉스를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었다.
"명왕성이 어느덧 천왕성을 넘어왔는데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으면…. 하아. 계속 숨어다니지는 않겠죠? 막말로 지금 상황 봐서는 싱크로 본인이 제일 늦게 할 것 같은데."
유하는 양쪽 귀에 걸어둔 귀걸이를 가리켰다. 가을은 그걸 보고 쓰게 웃었다.
"축하한다고 해야하나…."
"어차피 제 쪽은 제가 메인이 아닌 걸요. 저는 인간의 육체만 제공할 뿐, 나머지는 카르나가 알아서 해요."
"언니야는 어떻게 합의 봤어?"
하랑은 자신과는 싱크로 조건이 상이한 유하의 조건이 궁금했다. 유하는 귀걸이를 살짝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고객님이 남성체로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얘기하기 쉬웠지. 카르나는 고객님이 괴인형인 상태에서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뭐 내가 거기까지는 무서워서 못하겠고. 그런데."
카르나가 북경 환룡의 장원에서 있었던 5자 회담을 유하에게 까발린 이후, 둘의 삐걱거리던 관계는 급속도의 발전을 보였다.
"뭐, 합의점이라는게 별 건 아니야."
유하는 커피를 홀짝이며 은은하게 웃었다.
"나나 카르나나 어떤 형태로도 플레이가 가능하니까, 일단 피닉스부터 쟁취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어. 우리 둘 다...수비범위가 꽤 넓거든."
은유하와 카르나는 말 그대로 모든 형태의 플레이가 가능했다.
"과학과 마법이 막대한 자본을 만난 순간, 모든 상상이 펼쳐지는 거야. 우후후."
<인형술사> 은유하, <개천광> 카르나.
둘은 모든 플레이에 대한 수비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하나가 되었다.
* * *
유나의 충격발언은 연이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는 건 아닌데, 첫경험을 셋이서 하는 거면 또 그건 그거대로 잊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자, 잠깐만. 유나야?"
히드라는 당황해서 경칭까지 생략했다. 유나의 흐름대로라면 히드라는 유나와 함께 백청화를 상대로 3P를 하게 되는 꼴이었다.
"괜찮아요. 히드라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아무튼 히드라 언니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피닉스 님의 도움을 받아서. 자, 이리로 와요. 여기 제 침대 따뜻한데…."
"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정말!!"
히드라는 얼굴이 붉어진 채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야! 너 얘한테 좀 뭐라고 해봐. 네가 가르치는 애라며?"
"유나, 어른 상대로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
유나는 침묵했다. 모른 척하고 있다. 히드라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고,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어른 상대로 섹드립 치면서 장난 치는 거는 나중에 진짜 법적으로 성인이 된 다음에 하세요."
"네."
유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섹드립의 여신답게, 유나는 처음 본 히드라를 상대로도 장난을 쳤다. 순박하고 포근한 인상으로 내뱉는 말들은 하나같이 잔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히드라는 기가 찬 얼굴로 유나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지, 지금 나한테 장난친 거라고?"
"네. 그런데 히드라, 유나는 그만큼 당신이 마음에 든 거예요. 좋은 사람아니면 유나는 장난도 치지 않으니까."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아, 아냐. 유나야. 그런게 아니라-"
"...히드라 언니는 제가 싫은가요?"
"이거 장난이야 아니면 진심, 으아악! 유나야! 그런게 아니야! 어, 언니가 너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초면에 이렇게 진도를 급하게 빼는 건 내 적으로 여러모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거든?! 일단 시안이 어떤 모습으로 할-쇼타 빳다ㅈ-아. 진정했어. 미안. 속에 미친 년이 하나 있어서. 언니가 이중인격이란다. 이해해줘."
원작 최대 미스터리. 유나는 과연 천연인가, 아니면 소악마인가. 나는 피닉스 루트를 통해 유나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중인격이면…. 저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는 건가요?"
유나가 치는 모든 말은 일부러 하는 장난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좋아하는,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유나, 히드라 마음에 들어요?"
"네. 아, 그리고 피닉스 님."
울상이었던 유나는 표정을 순식간에 바꿨다. 히드라는 얼이 빠져서 배를 쓰다듬으며 벽에 이마를 찧었고, 유나난 나를 타깃으로 바꾸었다.
"피닉스 님께서 말씀하셨던 거 저 기억해요. 저 원래 나이로 따지면 지금 스무살-"
"거기까지."
나는 유나의 볼을 잡고 비틀었다. 유나는 울상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장난치면 과외 안 해줄 거예요."
"히잉. 저도 시안 씨 직접 보고싶단 말이에요. 여고생! 잘생긴 남자 과외 선생님! 로망이라고요."
"......그 얼굴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라서?"
"히힛."
이유나.
원작에서는 주인공을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는 매우 쉬운 여신이었다. 타이틀 히로인답게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확실했다.
취향저격의 이상형. 성격이야 플레이어 나름이지만, 외형만큼은 유나의 심장을 저격했다. 그리고 어느덧 복통이 가라앉은 히드라는 유나의 고백에 떫은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남자 취향이 같은 걸로 싱크로가 되나?"
"역시 히드라 언니, 남자 보는 눈이 높으시네요."
"그건 꼭 너도 눈이 높다는 말인 것 같은데…."
히드라와 유나가 서로를 지긋이 노려봤다. 한참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보던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입술."
"제일 섹시하지."
"역시 언니랑은 대화가 잘 통하겠네요."
"유나야. 우리 잠깐 둘이서 심도있는 이야기를 좀 해볼까?"
히드라와 유나는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나는 순순히 귀를 막으며 눈을 감았다. 들을 생각도 없었고, 아예 결계까지 쳐서 방 안을 격리했다.
"후우."
유나와 히드라가 사담을 나누는 동안, 나는 히카리에게 연락을 넣었다. 다행히 히카리는 나를 잡아먹으려 들지는 않았다.
"히카리. 혹시 찾았어요?"
[...단장님,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에요.]
히카리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히카리를 달달 볶고 있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조급해서."
[발견하면 제가 바로 연락 드린다고 했잖아요.]
히카리의 말투에는 살짝 짜증이 묻어있었다. 나도 이해는 한다. 하루에 10번 가까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서 물어대니. 하지만 상황이 상황 아닌가.
"...그치만 벌써 방주가 천왕성을 지나고 있는 걸요."
[도착 예정 일자가 아무리 일러도 11월 말 경은 될 거예요. 아직까지 못해도 40일은 남아있다고요.]
"그 40일 동안 아지다하카를 잡아야하는데…."
[잠적해버린 걸 어쩔 수 없죠. 분신을 찾기에는 전세계에 흩어진 암속성 마력 농도가 너무 짙어요. 차원문을 열어서 암마룡을 마구잡이로 죽여댄 게 이런 의도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히드라의 아군화 이후, 히카리는 아지다하카의 흔적을 찾아 탐지기를 실시간으로 돌리고 있었다. 정령 스캐너로는 아지다하카의 본체로 추정되는 마암룡을 찾고, 일반 스캐너호는 아지다하카의 분신을 찾았다.
[솔직히 지금 당장 나온다고 해도, 그게 남극이나 북극이 될 지 모르잖아요.]
마암룡은 결계에 갇힌 것처럼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아지다하카의 분신은 전세계에 퍼져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S+급이라서 어지간한 이능력자는 이겨낼 수 없었다.
"...미안해요. 지금 좀 급해서."
[저도 짜증내서 미안해요. ...하지만 단장님,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지다하카만 찾으면 그 뒤는 일사천리잖아요?]
"그렇긴 하죠."
아지다하카 공략, 펜릴 공략, 그리고 나의 싱크로.
단 3개만 처리하면 된다. 펜릴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고 약속했으니 문제도 없고.
"히카리, 유하에게 연락해서 X로이드들 감시망 잘 돌아가는지 확인해줘요. 열흘이 지나도 아무 소식 없으면 공식적으로 까발려버리고."
[네. 아지다하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감시망 안에 있어요. 아, 그런데 단장님. 그...승형 오빠는 아지다하카 안하겠죠?]
"......."
제자, 화권 이승형. 가루라와의 대련을 통해 어느덧 완벽한 S+급에 이르러, SS급으로의 각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가루라 스캔들로 인해 건장한 청년임이 유출된게 오히려 아지다하카 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된 건 기뻐해야하나 슬퍼해야하나.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아지다하카가 여러모로 신경을 쓰는 건…. 잠깐. 흐음…."
[또 무슨 계획이 생각나신 건가요?]
"별 거 아니에요. 음, 나중에 되겠다 싶으면 그 때 연락드릴게요. 지금은 아지다하카 찾는 것에 집중해주세요. 저도 연락하는 거 최대한 참아볼테니까."
[예. 저도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요.]
뚝. 히카리와의 통화가 끊겼다. 히카리는 지금 온갖 연구를 하고 있느라 바쁜데 내가 괜히 또 밤을 지새우게 만들어 미안했다. 인류멸망이 40일 남았으니 그 시간만 죽을 각오로 잠도 자지 말고 일하라고 하기엔, 히카리는 아직 17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히카리 말고는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당장 히드라를 발견한 것도 지열 스캔와 마력 스캔을 접목하여 지저 세계의 위치를 특정한 것이 아닌가. 그게 이번에는 아지다하카일 뿐이다.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자.'
아지다하카는 히드라만큼 참을성이 없다. 나쁘게 말하면 관종이니 금방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터.
'최종병기 석하랑도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 지구는 당장 멸망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싱크로 가능한 사람들을 하나 둘 늘려나가면-
파아아아앗----
이야기를 나누던 둘의 몸에서 황토색의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히드라의 몸은 마력으로 승화되었고, 유나의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거짓말."
만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싱크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