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19화 (419/1,497)

〈 419화 〉1부 18장 1

이탈리아 로마.

호주 캔버라.

멕시코 멕시코시티.

한국 강원도 원산.

뭔가 어디 한곳이 상당히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지다하카가 일으킨 네 개의 게이트가 소멸한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한국인들도 원산의 위치를 잘 모르건만, 외국인들은 다른 곳은 전부 수도인데 왜 한국만 원산에 차원문이 열렸나 의아해했다.

-신서울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강원? 원산?

그에 대한 대답으로 설화령 석하랑은 '서쪽의 결계를 신경쓰느라 동해 쪽에 잠시 소홀했다'고 언급, 피닉스에 대한 존재로 인해 경계에 틈이 생겼음을 인정했다. 한반도 이남은 확실히 경계하고 있어도, 여전히 옛 북한 땅에 대해서는 주요 거점 도시를 제외하고 관리가 소홀한 건 사실이었다.

-이거 한반도 여전히 위험한 거 아닌가?

막대한 양의 코어를 쓸어담기는 했지만, 설화령 혼자서는 한반도 전체를 완전히 커버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이에 집행관 백희아는 위기를 역으로 이용했다.

-거꾸로 얘기하면 한반도 이남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

멕시코에 주전력이 빠져나갔음에도 석하랑 혼자서 차원문을 닫았다. 그것고 홀로 차원문 키워서 잡아먹기를, 심지어 마룡이 몇 마리가 나오든 마구잡이로 잡아족쳤으니 그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백희아는 추가타를 날렸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 12명의 잠재 S급 이능력자가 남아있다.

그야말로 폭탄 선언이었고, 백희아는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국에서 사람들이 접촉하여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고, 이에 사람들은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인데도 그러느냐고 불평불만을 내비쳤다.

-세계는 지켜질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정체는 숨길 필요가 있습니다. 아지다하카가 접근할 수 있으니.

백희아는 불평불만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오히려 누구인지 물어보는 이를 아지다하카의 하수인으로 규정하며 12인의 S급을 철저히 함구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추정하는 이가 있다면 세이렌을 탈피하고 새로이 <닉스>라는 이명을 받은 A급 이능력자 김누리. 그리고 몇몇 A급 이능력자들.

이상하리만큼 한국에는 점점더 강한 히어로들이 늘어만 갔고, 그에 따라 한국으로 넘어오는 이들도 늘어만 갔다.

-명왕성이 날아와도 석하랑 님께서 막아주실거야!

근거없는 믿음이었지만, 사람들은 결국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존재의 아래로 찾아가기 마련이었다.

동아시아에는 석하랑.

미국의 최강자 자리를 차지하던 라이트닝이 아지다하카하며 공석이 되었고, 이에 따라 아메리카 일대에 <개천광> 카르나가 상주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안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

사람들은 본디 가웨인이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려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해상을 차단하고 철길을 끊으며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차단해왔다. 여왕과 가웨인, 공주가 로마를 방문한 이유도 그런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로마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저 여왕 <케레스>.

새로운 SS급 이능력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왜 이제서야 나타났냐고 불평하는 이들은 케레스의 사진을 보고 회개했다.

'이 분 게이트 열리기 전부터 로마 일대에서 남자랑 데이트 하던 분 아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케레스와 함께 데이트를 나온 푸른 머리의 백색 코트 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연인, 아니 부부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진한 애정을 벌였고, 사람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래서 시안이 누구야?'

시안.w.히비스커스.

를 사칭한 범인, 피닉스는 현재 <케레스>와 함께 한국에 있었다.

***

<2020년 10월 10일, 서울 동작 지하.>

"당장 변신해."

"사양합니다."

나는 정중히 히드라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히드라는 험상궂은 얼굴로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자, 자. 누님. 우리 보스 지랄 맞은 거 한 두 번이요? 진정하쇼."

머리에 안전모를 쓴 아키택트가 히드라의 앞을 막아서며 그를 말렸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더니, 아키택트가 지금 하는 짝이 딱 그 꼴이었다.

"당신 내 간부인데 왜 히드라한테 붙은 거죠?"

"보스 지랄 맞은 거 지금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뭘 그러십니까. 솔직히 얘기나온 김에 말합시다. 이건 부하의 충언인 줄 아쇼. 크흠."

아키택트는 헛기침을 하며 입안 가득한 먼지를 뱉어냈다.

"여태까지 남성체가 될 수 있었으면서 숱한 많은 여자들을 양성애와 동성애의 길로 빠뜨린 죄, 지금 나랑 누님이 파내려간 동작 지하 왕국보다 깊은 거 아시우?"

"잘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도망다니는 거 아녜요."

"그걸 잘 아는 정령이 그럽디까?!"

"얘기했지만 남성체로 변환이 가능해졌던 건 지--인짜 얼마 전이에요. 그리고 히드라를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했다고요."

나는 시안, 그러니까 백청화로 변신할 수 있음을 들키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촬영을 한 건지, 내가 히드라를 데이트로 공략하는게 전세계에 찍혀 퍼져나가고 말았다.

"이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상황이지. 후후."

"누님, 슬슬 한국으로 귀화하셔도 되겠는 걸?"

"귀화는 됐고, 일 다 끝났으면 지저 왕국으로 돌아가서 사도랑 괴물들 다독여요. 분명 지저로 도망치겠다고 하는 미친 놈들도 나올테니까."

시안을 찾는 이들도 극소수였지만, 케레스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았다. 히드라는 가웨인과 아르엘을 지하로 초대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언제 지상을 침공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저의 괴물과 괴인들.

케레스는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땅의 여왕을 자처했고, 지구가 파괴되는 것은 자신도 바라지 않으니 한시적으로 돕겠다고 천명했다. 마치 히드라가 시안과의 사랑을 위해 성주를 죽일 때까지 협조하는 것처럼.

"얘는 기껏 열심히 일한 사람한테 고생했다는 인사도 없네."

"아까전에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이제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인사는 이걸로 해야지."

히드라는 상체를 숙이며 볼을 톡톡 건드렸다. 뽀뽀를 해달라는 제스쳐에 나는 그대로 히드라의 볼에 입술을 붙이려 했고, 히드라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게 정말."

"인사 끝. 그럼 저도 돌아갑니다."

"보스. 근데 돌아가도 또 도망칠 거 아닌가?"

아키택트는 새롭게 뚫어놓은 지하도를 가리켰다. 그 길의 끝은 동작을 빠져나가 한강으로 들어가는 루트였다.

"지금 서울 한복판에 그러고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시겠지? 천가을이 지금 벼르고 있다고. 천가을만 그러는 줄 알아? 지금 자기들 기만 당했다고 난리야 아주."

"......알고 있다고요."

나는 코트를 주섬주섬 챙겼다. 어느덧 날씨는 쌀쌀해졌고, 아키택트가 나를 위해 뚫어둔 비밀 통로로 달렸다.

현재.

나는 내 정조를 노리는 간악한 무리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어느덧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벌써 열흘이나 되었다.

"그럼 제인스, 나머지 뒷일을 부탁해. 나는 얘랑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까."

히드라는 나를 따라올 것처럼 내 뒤에 섰다. 아키택트는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고,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 상관없나. 어서 빨리 도망치는게 낫겠구만. 보스, 힘내쇼. 원래 영웅은 삼처사첩이라고 하지만, 보스는 벌써 두 자리 수를 넘겼잖수. 으하하!"

"네 당신 아내들 쌍둥이 자매."

"...뭐...라고."

나는 오늘도 남의 미래를 스포일러했다. 그리고 잽싸게 비밀 통로로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너머에서 아키택트를 쥐잡듯이 잡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통로를 울렸다.

피닉스 어디갔어----!!!

이미 히드라가 통로를 막아버렸기에,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히드라를 데리고 비밀 통로의 끝, 한강을 향해 잠수하고자 했다.

"그냥 들어가면 옷 젖는데."

"말리면 돼요."

"젖는 거 자체가 싫다는 거야."

히드라는 흙벽에 손을 짚으며 구체를 만들어냈다. 나는 히드라의 인도에 따라 구체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히드라는 구체 안을 오리배처럼 만들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되니?"

"은하대학교 기숙사요."

그곳에 히드라가 싱크로 할 대상, 여신 이유나가 있었다. 우리는 페달을 밟으며 한강을 거슬러올라갔다.

***

<잠시 뒤, 은하대학교 여자 기숙사.>

"피닉스 님, 이제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지금은 여성체로 들어왔으니 문제 없습니다."

"그런가요. 정령에 관한 규정은 없으니 문제 없겠네요. 그래서 피닉스 님."

유나는 마도기어에서 사진들을 꺼내며 나를 추궁했다. 영상이 재생됨과 동시에 히드라는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정말로 이 분이 피닉스 님의 아내분이신가요?"

"아뇨. 그냥 자기가 혼자서 기세 좋게 지른 말이에요."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조금 짜증나네."

히드라는 귀를 막고 있으면서도 내 말은 제대로 들었다. 영상에는 시안의 아내를 운운하는 케레스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알고있다. 저러고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내 영창을 듣고 울었던 걸.

"정말로 아내분이 아니신 거죠?"

"물론이죠. 그런데 유나, 그걸 걱정하는 이유는…?"

"제가 괜히 아내분과의 시간을 빼앗는게 아닐까 걱정되어서."

유나의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 나는 유나의 마음씨에 감동했고,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히드라의 손목을 잡아다가 유나와 손을 맞잡게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유나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는 걸요."

"공부야 이제 이능력 관련 공부만 하니까 괜찮아요."

"네? 수능은요?"

"일과 시간 끝나고 자기전에 두 시간만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흐읏."

유나는 히드라가 손을 깍지 끼자 몸을 떨었다. 히드라는 조용히 힘을 일으키며 유나의 몸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내가 넣은 양보다 더욱, 더 많이. 나는 유나의 반대쪽 손을 붙잡았다.

"음...104!"

신난다! 유나는 지속성 SSS+4가 되었다. 실제로는 이능력의 등급은 이제 막 개방 되어서 사용할 수 있는 마력 자체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제 아무 부담없이 히드라는 유나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싱크로 하기만 하면 되겠네요?"

"음…. 히드라 님은 간부라고 했는데 제가 히드라 님과 싱크로가 되나요?"

"싱크로의 주체는 정령 지륜. 의식의 주체는 간부인 히드라. 유나 당신은 그를 위한 그릇. 오직 당신만이 가능한 특권이죠."

"그게 제 운명이네요. 네, 알겠어요."

유나는 히드라의 손을 맞잡았다.

"수능 사수를 위해서라면, 저는 얼마든지 당신의 그릇이 되겠어요!"

"피닉스가 이상한 표현을 했다고 해서 너까지 그릇이라고 하지 말아줄래?"

"그걸 지적하는 경우는 처음인데."

어쩌다가 세계 정복을 꿈꾸던 괴인 집단의 간부가 상식과 이성의 대변인이 되었단 말인가. 나는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럼 이제 싱크로는 어떻게 하는 거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어요. 피닉스 님, 알려주실래요?"

"......."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석하랑이야 계기가 마련 된 이후 정신적 각성을 통해 셀프 싱크로에 성공했지만, 히로인과 정령의 싱크로는 기본적으로 그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왜 그러세요?"

이유나.

05년생.

실제 캡슐에서의 나이를 계산하면 성인일지 몰라도, 유나는 법적 나이는 미성년자였다. 나는 마도기어로 문자를 적어 히드라에게 싱크로하는 방법을 알렸고, 히드라는 아연실색하며 유나와 손을 놓았다.

"...제정신이야 지금? 얘 미성년자인데? 미쳤어?"

"아무래도 미성년자는 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그에 준하는 행동이 싱크로의 조건인가봐요?"

"아오, 이래서 내가 문자로 알려준 건데."

유나는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 그리고 히드라의 '미성년자'언급에 따라 싱크로하는 방법을 눈치로 깨달았다.

"...유나 양? 그, 얘 말은 오해하지마. 그냥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거지, 얘가 너를 어떻게 해보겠다 그런 생각은…."

"저는 괜찮은데요?"

"......."

순진무구한 유나의 얼굴에 히드라가 굳어버렸다. 유나는 볼을 긁적이며 베시시 웃었다.

"저, 두분이라면 괜찮아요."

유나는 걸터앉은 침대 양 옆의 빈 자리를 손으러 팡팡 두드렸다.

"제 처음, 상냥하게 해주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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