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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18화 (418/1,497)

〈 418화 〉1부 17장 26

로마 게이트를 수습한 이후.

나는 히드라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전세계의 상황을 확인했다.

우선 로마.

"일단 추기경 죽인 건 미안해요. 당신 괴인인지 몰랐어요."

"됐어. 나도 걔가 내 인형 만들어서 헉헉대는 미친 놈인지 알았으면 진작에 죽였을 거야."

"말이라도 고맙네요. 그럼 히드라, 뇌절은 당신 괴인 아니죠?"

"아지다하카했잖아. 아지다하카 괴인이겠지."

"그럼 해결."

아돌프 빌헬름 암살.

뇌신 유피테르, 제우스 암살.

히드라의 각성.

내가 로마로 오면서 상정한 세 개의 미션은 여차저차 해결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멕시코로 눈을 돌렸다.

"김누리가 A급까지 성장. 마약왕 제거. 케찰코아틀 격퇴. 차원문까지 봉쇄. 죽은 사람은 없지만 중상자는 다수. ...이건 한국에 돌아오면 치료가 필요하겠네요."

청화단에는 중상자 없음. 즉, 청화단이 아닌 히어로들이나 일반 헌터들 중에는 일부 다친 이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다친 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내 관계자들은 경상만 입었다. 추후 그들에게는 마력을 담은 엘릭서라도 하나씩 보내줘야겠다.

"호주의 캔버라 게이트에는 카르나가 브라흐마스트라."

호주야 이국이니 양해를 구할 것도 없었고, 가루라를 타고 날아간 카르나가 호주 대륙에 닿기도 전에 가루라의 위에서 창을 날렸다. 정확히 마룡의 대가리를 꿰뚫고 차원문만 박살낼 정도로 카르나의 마력 컨트롤은 섬세했다.

"한국에 생긴 차원문은 석하랑이 피에리스 블라썸. ...어우, 코어 엄청 벌었는데요."

어느덧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생긴 석하랑은 단독으로 차원문을 키워서 잡아먹기까지 성공했다. 최초로 나온 암마룡을 얼음창으로 꼬챙이를 꿰어 바닥에 찔러놓은뒤, 뒤따라 오는 마물들을 나오는 족족 사냥했다.

약 1시간. 강원도 일대에 감자보다 코어가 더 많이 나오게 생겼다. 나는 유성의 직원들이 파견되어 코어를 정리하는 장면을 보고 그 수를 세아렸다. 등급 따지는 것 없이 눈으로만 훑어도 족히 천 단위는 넘어보였다.

"많이도 털었네요."

은유하가 '이정도면 됐다'싶은 만큼 사냥했을 것이다. 공급이 과하면 가격이 폭발하기 마련이니까.

"석하랑이면 걔 아냐? 나한테 졌던 애."

히드라의 관심은 하늘하늘한 선녀복을 입은 석하랑에게로 넘어갔다. 생각해보니 둘은 이미 한 번 부산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다.

"네. 당신 대마도 어택했을 때 힘겹게 사람들 구하면서 싸웠던 그 친구. 근데 지금은 얘가 유일신이에요. 셀프 싱크로했죠. 전투 경험만 좀 쌓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걸요?"

"정말? ...큰일났네. 나 괜히 밉보인 거 아닌가."

"상황을 잘 설명하면 될 거예요. 저랑도 잘 지내는데요."

"너는 왜?"

"제가 걔 아빠 죽임. 아, 죽이고 괴인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지금 루살카 남편이죠. 광검 벨로보그. 네, 맞아요. 러시아의 원탁 <운디네>가 루살카 본인이에요. 안에 있는 지륜은 이미 진작에 알고 있지만."

"......."

히드라는 묵묵히 핸들을 잡고 운전에 집중했다. 정보의 폭격에 자신이 알고있던 정보와 비교 대조하여 수용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나는 잠시 침묵했고, 어느덧 우리의 위치는 유럽을 빠져나왔다. 나는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이걸로 사실상 모든 차원문이 틀어막혔네요."

"그런 셈이지. 나야 차원문 열 생각 없으니까, 이제 순수하게 차원문이 열리는 경우 말고는 다 아지다하카랑 펜릴 짓이야."

"아, 그거 말인데요."

나는 현재 펜릴이 김펜릴로 서울에 터를 잡았음을 설명했다. 히드라는 지하를 달리다가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을 뻔 했다. 그 정도로 히드라는 당황했다.

"...김펜릴 미친년 아니야?"

"제대로 미쳤죠. 도대체 무슨 용기로 그렇게 깝죽대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내 말은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하아, 됐어. 그보다 걔, 혹시 그 싱크로인가 뭔가 한 거 아니야? 정령으로서의 힘을 완전히 되찾았다거나."

히드라의 의심은 타당했다. 나도 몇 번을 생각해본 가정이었다. 싱크로를 했다면 나는 질 수 밖에 없다. 설령 내가 유리한 상성이라고 하더라도, 격의 차이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뇨. 그럴 리는 없어요."

하지만 나는 펜릴이 싱크로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석하랑처럼 셀프 싱크로를 할 수 없는 몸이 아닌가.

"세상에 민트초코 갤런 단위로 함께 퍼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민트초코? 미친. 그게 싱크로의 조건이야?"

"정확히는 같은 취미의 공유. 펜릴은 그게 민트초코일 뿐이에요."

쉬운듯 악랄한 조건이었다. 단순히 한 두입 퍼먹는 수준이 아니라, 펜릴과 함께 매 끼니마다 퍼먹어야 할 정도로 싱크로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거기에 절풍도 안에 있으니까 문제 없어요. 절풍은 민트초코 혐오하거든요. 그러니까 둘이 짝짜꿍 맞을 리가 없어요."

"그런가. 그런 거라면 뭐…."

히드라는 핸들을 꽉 붙잡았다.

"생각해보니까 더 열받네. 내가 석하랑 상대하고 있을 때 양동작전은 안 하고 서울에서 놀고 먹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냥 지체가 되어서 늦게 한 게 아니라, 일부러 미루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렇죠? 당신 사람을 잘못 보냈어요. 펜릴이 아니라 그냥 당신 휘하 괴인을 보냈다면 여러모로 힘들어졌겠죠. 가령…'마그드라'라던가."

"...? 걔를 네가 어떻게…. 아하. 그 미래 지식."

"그런 셈이죠."

가루라와 함께 화속성 3대장 중 한 명인 마그드라. 샐러맨더의 형상을 하고 있는 화속성 괴수로, 마그마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줄어든 녀석이었다. 지륜의 토룡 중 하나가 창염의 아래에서 화속성이 된 케이스였다.

"걔를 보냈으면 아마 당신이 이겼을지도 모르죠.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저는 빡돌아서 당신 잡아 죽이려하고."

"...마그드라보다 펜릴이 더 강해서 부탁했던 건데 인선 미스네."

"그런 셈이 되어버렸죠."

간부에 의한 양동을 생각하다가 사람을 잘못 고른게 화근이었다. 히드라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혼잣말로 툴툴거렸다.

"그러고 만나러 갈 거예요?"

"하아.... 지륜이라면 모를까 내가 만나도 돼?"

"다들 딱히 신경 안 쓸 거예요. 모처럼 다같이 모이는 거니까."

현재, 캔버라 게이트를 틀어막은 카르나는 가루라를 타고 인도네시아 일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영공 허가 따위는 없었지만, 그 누구도 카르나의 움직임에 대하여 막을 자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지하를 통해 동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리상으로 과장 좀 보태어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셈이었지만, 지하 터널을 실시간으로 만들어 달리는 스포츠카는 거의 가루라급 스피드였다.

"그럼 그...석하랑도 오는 거야?"

"아뇨. 석하랑 빼고. 순수하게 정령들만."

히드라/지륜의 합류에 따라,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전략을 짜내야했다. 오늘은 그 전략을 짜내기 위한 작전회의 겸 환영회를 하는 날이었다.

"......내 소개도 다시 한 번 해야하고."

끼이익.

히드라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를 바라보는 표정은 몹시도 험악해졌고, 나는 히드라가 뭐라 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쳤다.

"어른 모습만 보일 거예요. 어린 모습은 숨길테니까."

이미 지륜이 다 까발리기는 했지만 내가 안 보여주고 버티면 어쩌겠는가. 히드라는 불만 어린 얼굴이었지만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꼭이다?"

히드라도 결국 지륜에서 파생된 존재인 만큼, 중증은 아니더라도 쇼타콘이었다.

* * *

<중국 베이징, 환룡의 장원.>

팔각형으로 된 테이블.

샤오린조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삼중결계 속에는 세 명의 정령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루살카, 환룡, 그리고 카르나.

제각기 수속성, 환속성, 그리고 광속성의 자리를 차지하는 정령으로서, 그들은 두 명의 정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자리 배석에 불만이 있다."

둘이 도착하기 전, 자리에 앉은 카르나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불만을 내비쳤다.

"왜 피닉스의 양 옆으로 너희 둘이 앉는 건가?"

'창염의 피닉스'라는 명패가 걸린 자리의 양옆에는 '설야의 루살카'와 '혼돈환룡'이라는 명패가 걸려있었고, 당연히 그 자리의 당사자들은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말하잖니. 화-수-풍-지-광-암-환. 순서대로면 당연히 내가 얘 옆자리 아니겠어?"

"루살카여, 추하도다. 꼭 주차장에서 일행의 자리를 차지하는 아줌마를 보는 것 같군."

"추하면 어때? 나중에 여기에 우리 딸이 앉을 건데."

"......좋아, 순서상 그렇다고 인정하지. 그럼 환룡은 그 옆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카르나는 환룡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자신의 자리 옆으로 '마암룡 아지다하카' 명패가 있고, 원래는 '혼돈환룡'이어야 했을 자리는 비어있었다. 장소 제공자의 농간으로 자리는 한 칸 비워져 있었다.

"내 맘이야."

"......."

결국 카르나는 당사자가 오면 항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팔괘를 형상화한 테이블은 분명 환룡이 준비한 테이블이었고, 워낙 넓어서 옆자리라고 하더라도 붙어있지는 않았다.

"...마침 오는군."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갈색 단발의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당당하면서도 어색한 눈빛으로 세 정령을 훑었고, 여인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빳빳히 들었다.

"지륜과 히드라야."

"만나서 반가워. 오랜만이란다, 얘."

루살카가 환하게 반기는 모습에 히드라는 떨떠름해졌다.

"내가 지금 지륜으로 나서야 할까, 아니면 그냥 히드라로 앉아야 할까?"

"어느쪽이든 상관없지만 지금 그대로여도 괜찮다. 어차피 다들 종족이든 뭐든 다 상관없이, 목적은 하나이니."

"성주 타도, 피닉스 확보."

환룡이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히드라는 격한 공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신도 시안이라는 피닉스를 얻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본인은 어디로 갔니? 피닉스가 먼저 들어오고 너를 소개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커밍아웃한다던데."

"오혹."

환룡이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문 너머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넷의 시선이 복도를 향해 고정되었다.

"...이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건 처음이지?"

청화와 똑같은 머리색을 한 청년이 백색의 코트를 입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훑다가, 바로 옆에 앉아있는 환룡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거기 네 자리 아니야. 옆으로 옮겨."

"왜?"

"순서상 나부터 시작이니까."

"......칫."

환룡은 명패를 들고 결국 옆자리로 이동했다. 청년, 피닉스는 코트를 벗어 자신의 의자에 걸치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 소개를 할게. 이쪽은 지륜과 히드라. 현재 지륜이 히드라의 안에 있기는 한데, 여러모로 대화가 잘 안통하는 상황이라 히드라가 주로 활동하기로 했어. 배신은 염려 안해도 돼."

"...만나서 반갑네. 히드라야. 대외적으로는 지저 괴인 왕국의 여왕 <케레스>로 활동할 거야."

히드라는 배를 부여잡으며 살포시 웃었다. 루살카나 카르나나 둘 다 간부의 성향이 짙었고, 정령인 환룡 또한 딱히 혼돈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에 히드라를 받아들이는데에는 큰 거부감이 없었다.

"지륜이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정령 네트워크에서 벗어나있던 카르나만이 의문을 표했다. 루살카나 환룡은 지륜의 실체에 대해 알고 질색을 하고 있었다.

"별 건 아니야.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야. 그럼 드디어."

"그래. ...이런 식으로 소개하게 될 지는 몰랐는데."

피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피닉스는 자연스러웠지만, 나머지 넷은 상당히 어색해했다.

"창염의 피닉스. ...피닉스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쪽도 창염'과' 피닉스인 상황이라서."

"흐음. 그런가? 뭐, 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지륜과 히드라랑 비슷한 거네. 알겠어."

"그렇군. 그래서 창염의 피닉스인 건가."

"......."

루살카나 환룡은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가 가득했지만, 피닉스는 둘에게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으므로.

"일단 가장 먼저 이것부터 생각해보자. 아지다하카."

피닉스는 마암룡의 자리를 가리키며 자신이 가진 의혹을 꺼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아지다하카의 안에도 마암룡이 깨어났을 수도 있어. 우리는 마암룡을 찾아야 해."

"정령을 찾는다고? 아지다하카의 안에 있을 거 같은데?"

"아냐. 마암룡이 자신을 자각했다면, 분명 본체와 분신이 따로 되어있을 거야. 그래. 구체적으로는...."

피닉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테이블 가운데로 마도기어의 홀로그램을 꺼냈다. 여태까지 나타난 아지다하카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가득했다. 분신들은 하나같이 같은 광기가 느껴졌다.

"정령 마암룡이 본체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마암룡, 쑥맥이잖아? 간부 아지다하카가 분신으로 활동하는 것 같아."

그것이, 피닉스가 내린 결론이었다.

* * *

와장창!

도자기가 깨졌다. 아지다하카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실내의 집기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있었다.

"아아악!!"

도자기 조각을 밟은 발에 피가 나고 있음에도 아지다하카는 몸을 멋대로 굴렸다. 씩씩거리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젠장, 히드라까지 먹혔어! 펜릴은 소식도 없고! 진짜 나 혼자 해야되는 거야? 아, 짜증나!"

네 개의 게이트는 전부 막혀버렸다. 회심의 일격으로 폭주시킨 로마 게이트도 히드라의 배반으로 닫혀버렸다.

흐흐흐.

침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지다하카는 눈을 희번득 뜨며 침대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아지다하카와 똑같은 모습의 여인이 전신이 결박된 채 구속되어 있었다.

"웃어? 야, 웃어?"

아지다하카는 여인의 입에 물린 볼개그를 거칠게 빼냈다. 여인은 침을 줄줄 흘리며 숨을 헐떡였지만, 풀린 입으로도 분명히 얘기했다.

"이, 이제 당신은 끝이에요...."

"이 썅년이 진짜...!"

아지다하카는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여인은 기침을 토하며 괴로워했다. 아지다하카의 얼굴은 붉어졌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여인이 느꼈다.

"그래. 어디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고."

아지다하카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사람보다 더 큰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보라색 안광을 흘리는 개 괴수는 언제나처럼 아지다하카를 덮쳤다.

"꺄흥, 요즘 사람들이랑만 해서 익숙해졌지? 하아, 과연 언제까지 버티나 보겠어."

아지다하카는 느긋하게 네 발로 엎드리며 여인을 비웃었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마암룡 님?"

여인은 울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방안에는 찰팍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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